소설리스트

The Boss-32화 (32/200)
  • <-- Jan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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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력 : 440/440

    + 정력 : 17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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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력 : 34

    + 마법력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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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어력 : 32

    + 항마력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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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중률 : 8

    + 회피율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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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도 : 1

    + 치명 증폭 : 100%

    + 치명 저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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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하다 못해 이제는 그리운 상태창에 나는 멍한 눈으로 스마트폰 좀비가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삼촌도, 숙모도, 심지어 선영이도 당당하게 내밀고 있는 선호의 스마트폰에 이목을 집중했다.

    음. 근데 조약하네. 완전 개쪼렙인데?

    놀람도 잠시 나는 스윽 선호의 상태창을 훑어보며 전력을 가늠했다. 썩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가장 먼저 상태창에 유혹을 이겨내고 선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야, 근데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너 그 머시냐. 그 카메라 같은 거 산 거야?"

    "응? 아니. 안 샀는데? 그냥 동기화하니까 됐는데?"

    "동기화?"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선영이였다. 선영이는 가늘게 뜬 눈으로 선호를 바라보며 얼른 설명하라는 기운을 풍겼다.

    살짝 움찔했던 선호가 괜한 긴장에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몰라 나도. 갑자기 머릿속에서 보스가 동기화 하겠냐고 묻길래. 그냥 했는데……."

    "어?"

    "음?"

    "어머!"

    나, 삼촌, 숙모 순서대로 탄성을 터트렸다. 아마 이유는 같지 싶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머릿속에 울리는 보스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동기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래. 해. 하자.

    [동기화를 원하는 물체를 탐색합니다.]

    [탐색을 완료합니다.]

    [원하는 물체를 지정하시겠습니까?]

    보스의 안내가 끝나기 무섭게 내 머릿속에 또렷한 형상이 들어왔다.

    TV, 카메라, 필름, 컴퓨터, 스마트폰.

    모두 익숙한 물체들이었다. 동시에 모두 내 주위에 존재하는 물체였다. 개중에는 내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내 물건이 아니었다.

    남에 걸 선택하면 어떻게 되지?

    엉뚱한 호기심이 들었지만 결과는 뻔했다. 아마도 해당 물건과 동기화가 진행될 것 같았다. 그 대신 쓸모가 없을 듯 싶었다.

    나는 유일한 내 물건은 스마트폰을 선택했다.

    [동기화를 진행합니다.]

    보스의 안내를 듣기 무섭게 나는 선호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침대 위에 나뒹굴고 있는 스마트폰을 챙긴 나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삼촌이나 숙모도 나처럼 스마트폰을 들고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이 조금 웃겼다.

    [동기화를 종료합니다.]

    동기화는 금세 끝났다.

    나는 서둘러 스마트폰에 달라진 점이 있나 확인해 보았다. 바로 눈에 들어왔다. 바탕 화면에 성투라 적힌 아이콘이 보였다.

    거 참 신기하네. 진짜 만능이야. 만능.

    놀람을 잠시 뒤로 미루며 나는 얼른 해당 어플을 실행시켰다. 마치 게임화면 같은 게 나타났다. 능력, 상태, 기술, 물품 등의 항목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직관적으로 사용법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상태부터.

    상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익숙한 상태창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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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력 : 550/550

    + 정력 : 375/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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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력 : 215

    + 마법력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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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어력 : 25

    + 항마력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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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중률 : 126

    + 회피율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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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도 : 17

    + 치명 증폭 : 125%

    + 치명 저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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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나쁜 쪽이었다. 허접하다 느꼈던 선호의 상태창이나, 나나 무슨 차이가 있나 싶었다.

    모든 능력을 2배로 증폭시켜주었던 아프로디테의 입맞춤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체감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태라면 마지막 보스몹이었던 이오스를 상대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나마 스킬을 적절히 배워 사용했다면 모르겠다. 그렇게 해도 과연 가능했을지는 의문이었다.

    "체력. 활력이 중요하구나."

    뒤늦게 몰 힘에 문제점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사람은 잘나갈 때 문제를 모르는 법이었다. 거품이 빠지니 지금 내 상태창이 얼마나 위태로운 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상태창에 이어 능력창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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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격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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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력 : 100 + 5

    + 지력 : 0 + 5

    + 체력 : 0 + 5

    + 속도 : 0 + 5

    + 정확 : 0 + 5

    + 행운 : 0 + 5

    + 잔여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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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전한 건 매한가지였다. 증폭되어 나타났던 추가 능력치가 아작 났다. 괜히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아, 그냥 깨지 말고 나도 경험치 노가다 좀 할 걸. 실수 했네, 실수 했어.

    뒤늦게 신경 쓰지 않았던 일들이 아깝게 느껴졌다. 이미 늦었다. 몽마의 성체는 파괴됐고, 더 이상 몽마의 성체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허탈함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쉴 때였다.

    "올, 우리 엄빠님께서도 보스를 즐기셨단 말이지? 이거 불륜아악!"

    "이게 어디 할 소리가 있고, 하지 말 소리가 있지. 지금 그게 말이야, 방구야? 뒤질래?"

    선호가 선영이에게 조인트를 까이며 바닥을 뒹굴었다. 누구도 동정하지 않았다. 모두 자업자득이었다.

    심지어 숙모는 조용히 선영이에게 눈짓으로 명령했다.

    정신 차릴 때까지 패라고.

    숙모의 지원을 등에 업은 선영이가 신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퍽퍽! 퍽퍽!

    "악! 누나! 누님! 컥!"

    "늦었단다, 동생아!"

    나와 삼촌은 고개를 저으며 슬쩍 소파 위로 올라가 몸을 사렸다.

    내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먼지 나듯 처맞고 있는 선호를 보고 있을 때 삼촌이 슬쩍 내 옆구리를 찌르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영아. 너도 가능하디?"

    "삼촌. 고……영이 무시하지 마."

    나도 모르게 3인칭이 흘러 나왔다. 특이 취향을 가진 건 아니었다. 단지 고로 시작하는 다른 말을 읊고 싶지 않았다.

    삼촌도 그 점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해라."

    "어. 근데 삼촌. 삼촌은 이거 무섭지 않아?"

    "나이 먹으면 나이 먹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없다는 걸 알 게다."

    "그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분명 사람들이 두려움보다 호기심을 느끼는 배경이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괴상한 존재의 장난질일 가능성이 높았다.

    뭐, 상관없나. 직접 위해만 가하지 않는다면.

    아마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포기하면 편해지니까. 하긴 기껏 만들었는데, 무서워서 아무도 사용안하면 그것도 문제였다.

    신기한 일을 벌인 존재니까, 이정도 문제는 해결할 힘이 있지 싶었다.

    그 사이 선영이의 매타작이 끝났다.

    "얼른 무릎 꿇고 잘못했습니다. 해야지? 우리 동생?"

    "……잘못했습니다."

    "어이구, 잘했네. 참 잘했어요. 한 번만 더 그런 개소리하면 알지?"

    "……넵, 누님. 명심하겠습니다."

    묘하게 괴상한 대화였다.

    어찌됐건 소란은 사라졌고, 우리는 슬쩍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네 관념이 문제였다. 성에 대해서 금기시하는 문화는 여전히 공고했다.

    그때 의외의 사람이 나섰다.

    선영이었다.

    "다들 왜 그래? 아직도 그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얽매여있는 건 아니겠지? 난 우리……아무튼 엄마, 아빠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어."

    "험험."

    "어머, 얘는……."

    삼촌과 숙모는 개방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성에 관해서는 더욱 그랬다. 두 사람은 누가 부부 아니랄까봐 똑같이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렸다.

    두 분의 귀여운 행동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뭐가 그렇게 좋을까? 고자도 보스에 적응할 수 있나 봐?"

    "야!"

    "너!"

    "김선영!"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이 동시에 선영이의 과한 언사를 질타했다.

    그럴수록 선영이가 삐뚤어지는데……. 에휴.

    내 민감한 문제를 건든 선영이도 문제였지만, 나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가족들도 문제라 생각했다. 삐뚤어진 성격은 괜히 생기는 게 아니었다. 보통 이런 경우 대부분 유년기의 애정 결핍이 원인이었다.

    선영이가 이렇게 삐딱하게 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내가 어릴 때 함께 살며 부모님의 애정을 뺏어갔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기에 나는 선영이에게 유독 약할 수밖에 없었다.

    내 예상대로 선영이가 짜증을 부렸다.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쟤 고자잖아! 불능이라서 병원 들락거리잖아!"

    "이게 정말! 엄마한테 혼나 볼래!"

    "왜!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데!"

    결국 사단이 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잔뜩 얼굴을 붉히고 있는 숙모에게 다가갔다. 내가 말리면 선영이가 더 싫어하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괜히 숙모를 껴안으며 되도 않는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숙모. 숙모가 그렇게 발끈하면 내가 뭐가 돼? 이제 아무렇지 않아. 진짜야. 그리고 가능성이 있다니까? 아, 이런 이야기 말하기 좀 그런데……."

    "너……?"

    "아무튼 내가 여기서 젤 고렙일 걸? 그건 몰라도 게임은 잘하잖아. 자자, 화내지 말고.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였는데, 왜 이래. 자꾸 이러면 저녁도 안 먹고 그냥 간다?"

    다행히 너스레가 통했다. 선영이가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더니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휙 자기 방으로 도망쳤다. 나는 슬쩍 삼촌에게 눈짓을 하며 선영이를 달래달라고 부탁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삼촌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선영이를 뒤따라갔다.

    잠시 후 삼촌이 선영이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숙모가 미안하다 사과를 해 왔다.

    "미안해, 고양아. 내가 딸자식을 잘못 키웠지. 잘못 키웠어."

    "작은 엄마. 진짜 이러기야? 세상에 어떤 엄마가 자식한테 자식 잘못 키웠다고 해?"

    "오! 그건 형 말이 맞다. 지금 엄마가 실수했어."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선호가 묘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그 덕분에 거실에 남은 우리는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격하게 요동치던 분위기가 얼추 수습되자 선호가 슬쩍 숙모의 머리를 배고 누우며 어리광을 부렸다.

    갑작스런 막내아들의 애교에 숙모는 싫지 않은 얼굴로 녀석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다 큰 녀석이 창피하지도 않니?"

    "뭐가 창피해? 우리 엄만데."

    "아주 막내라고 티를 내라, 티를 내. 밖에서는 이러지마. 여자들이 싫어해."

    "아이고, 알겠습니다요. 고 여사님."

    보기 좋았다. 엄마와 아들이 정이 느껴졌다. 따스한 눈길로 선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는 숙모가 진짜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라는 게 어쩜 그리도 진할까.

    숙모의 손길에 실없이 웃던 선호가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 앉더니 진지한 얼굴로 숙모를 바라보았다.

    "근데 엄마. 진짜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해? 그 보스라. 그러니까……. 아, 답답하네."

    "인마. 어련히 알아서들 하실까. 궁금한 것도 많다. 많어."

    "형은 안 궁금해? 사실 좀 그렇잖아. 요즘 그거 때문에 인터넷이 뜨거운데. 합법적인 불……읍!"

    나는 선호의 눈치가 또 사라진 걸 느낀 것과 동시에 움직였다. 다행히 의미 없는 단어가 튀어 나오기 전에 막을 수 있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성공적으로 선호의 입을 막았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조심스레 숙모의 기분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숙모는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휴, 다행이다.

    나름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숙모의 눈에는 빤히 보인 모양이었다. 숙모가 나와 선호의 머리에 사이좋게 꿀밤을 먹였다. 마치 짓궂은 개구쟁이들을 혼내는 것 같았다.

    "이것들아. 부부야. 부부는 부부만의 방법이 있는 거야. 요 며칠 엄마랑 아빠가 금슬이 좋아진 걸 보면 모르니?"

    나는 보았다. 숙모의 얼굴에 피어난 부끄러운 홍조를. 이윽고 나타난 아쉬움까지 나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선호도 마찬가지였다.

    처녀 총각들과 달리 부부에게는 부부만의 방식이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연인의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궁금했지만, 비슷한 방식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선택권을 부여하든지.

    "아……. 선택 할 수 있도록 해줬구나."

    "엄마, 형 말이 맞아? 선택권을 줘?"

    "너희는 모르겠지만 그걸로 부부 싸움하는 집들이 많았지. 부녀회에서도 난리도 아니었어. 바깥양반이 거절해서 따로 하게 됐다고 얼마나 총무가 성질을……어머, 내가 주책이네. 별 말을 애들 앞에서 다한다."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배려가 있었구나.

    이 작은 배려가 우리들을 방심하게 하는 암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결과는 시간이 흘러봐야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혹에 불과했다.

    의혹은 있었지만, 성투가 꼭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일본에 이어 섹스리스 부부의 비율 2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였다. 그들에게 성투난무는 꽤 좋은 치료제가 될지도 몰랐다.

    여전히 세상은 동전의 양면 같았다.

    해가 도망칠 때까지 우리는 최면에 걸린 듯 스스럼없이 보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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