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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26화 (2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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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독한 눈빛이 시위에서 떠났다.

    고삐 풀린 살벌한 눈빛은 순식간에 목표에 도착했지만, 안타깝게도 목표는 그보다 더 무심했다.

    로키의 공간에 난입한 아프로디테는 살벌한 기세를 뿌리며 로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뒤늦게 로키가 판 함정을 깨달은 상태였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색욕의 화신이라지만, 아프로디테는 격을 이룬 존재였다.

    뒤늦게 자신의 꾀를 알아챈 아프로디테를 바라보는 로키의 눈빛에는 더 이상 가식이 없었다. 그는 조소를 숨기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미 주사위는 굴러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랐다고 해야 하나, 아프로디테?"

    "너, 너……!"

    "네 꾀에 네가 넘어간 기분이 어떤가, 아프로디테?"

    "격을 이뤄도 천박한 수작질이나 일삼는 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아프로디테가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다. 아니, 한 가지 되돌아 온 것은 있었다.

    그것은 로키의 신랄한 비꼼이었다.

    "천박하기로 따지면 나보다 그대가 더 하지 않은가? 이미 주사위는 굴러가고 있다. 그것을 다시 멈출 수는 없는 법이야."

    "웃기고 있네. 개소리 하지 말고 빨리 고쳐. 제대로 안 고치며 언약에 징벌을 처 받게 될 테니까!"

    고막 따위는 찢어발길 정도로 뾰족한 고음이 터졌다.

    다행히 로키의 고막은 찢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아프로디테가 잊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이 그를 즐겁게 했다.

    "벌써 잊은 모양이군. 나는 최선을 다했지. 그것에 너도 동의했을 텐데?"

    "흥! 네 놈이 장난질 쳤잖아? 그래놓고 이제 와서 발뺌이야? 발뺌은!"

    "발뺌은 네가 하고 있지. 나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다. 그 이유는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로키의 비웃음에 아프로디테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녀도 이제 되돌릴 수 없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이 욕망을 참지 못해 일어난 결과란 것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아프로디테는 고집을 부렸다. 그래야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인류가 사라질 지도 몰랐다.

    "……이미 파종한 걸 되돌릴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나와 네가 동의하면 약간의 변화를 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지금 내 동의가 필요하다. 이 말인가?"

    "그래. 이대로 인류를 멸종시킬 생각이야? 그랬다가는 너도, 나도. 무사할 수 없을 걸?"

    아프로디테에게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격을 이룬 존재에게도 율법이란 것이 존재했다. 그들 스스로 만든 율법을 어기면 격에 큰 타격을 입는 제약을 받게 됐다.

    실상 아프로디테도 인류가 사라지는 것보다 자신의 격이 떨어지는 게 더 걱정스러운 것 같았다.

    로키가 아프로디테의 속내를 꿰뚫어보며 눈빛을 싸늘히 굳혔다.

    "여전히 자기밖에 모르는 천박함을 가지고 있구나, 아프로디테. 네 욕심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도 너 혼자 살겠다는 것이냐?"

    "그게 어때서? 잘난 척 하지 마, 로키. 결국 인류를 끌어 들인 건 너니까."

    아프로디테는 더 이상 화내지 않았다. 그녀는 가면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신색을 회복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심한 아프로디테가 마지막 통보를 던졌다.

    "결국 너와 나. 똑같은 징벌을 받게 될 거야, 로키. 아니, 네가 더 심하겠네. 나는 가지일 뿐이니까. 풋! 격이 더 떨어지겠어. 어쩌나?"

    "네 년……."

    로키가 분노를 드러냈다.

    아프로디테는 여전히 차분했다.

    "쯧쯧…….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는 말이 있더라? 역시 인간들이야. 어리석지만, 똑똑한 것들. 그런데 어쩌나? 멍청한 놈의 장난질에 이제 운명을 달리해야하네? 어머, 안타까워라."

    '  "너……. 그랬군. 내 꾀가 아니라 네 꾀였군."

    아프로디테의 눈빛을 잠시 바라보던 로키는 그제야 거짓 속에 숨어 있던 진실을 발견했다. 꾀를 쓴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은 아프로디테의 꾀에 넘어간 상태였다.

    다시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로키를 보며 아프로디테가 손뼉을 쳤다.

    짝!

    "잘했어요, 로키. 그런데 어쩌죠? 이미 늦었다는 걸. 당신 말대로 주사위는 이미 굴러가고 있어요. 당신이 던진 주사위가."

    "큭! 꼴사납게 됐군."

    로키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는 담담히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패배를 통해 그는 더욱 의지를 다졌다.

    물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어리석음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로키가 반응이 없자, 아프로디테는 살짝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렸다. 더 이상 대화는 필요 없었다. 이미 결정은 내린 상태였고, 결과는 바꿀 수 없었다.

    최소한 아프로디테는 미래를 확신했다.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아프로디테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로키는 두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의자에 앉아 차향을 즐길 뿐이었다.

    잠시 후.

    로키가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여기서 포기할 그가 아니었다.

    "어차피 너와 나는 공존이 불가능한 존재였다."

    서로가 서로를 혐오했다. 이유는 없었다. 로키는 아프로디테가 싫었고, 아프로디테도 로키가 싫었다.

    그들은 격을 이룬 뒤로 매일같이 부딪혀 왔다.

    결국 충돌은 파멸을 만들뿐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아프로디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특히 이 게임은 말이야."

    로키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말아 올라갔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억센 인류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었다.

    "네 년이 끼어들어 온전한 내 영역이 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네 년 말대로 내가 뿌리다. 곁가지에 불과한 네 년의 동의는 필요치 않지."

    아프로디테가 보스에 영향을 끼친 게 있지만 그것은 확실히 로키보다 적었다. 당연한 조치였다. 그녀는 자신보다 로키가 더 큰 타격을 받길 원했으니까.

    세상에 한쪽 모습만 있는 게 없듯이, 아프로디테의 선택도 마찬가지였다.

    로키는 아프로디테보다 보스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결국 결정은 내 몫인가……."

    인류를 멸망으로 인도하고 격을 내놓을지. 아니면 인류를 생존으로 되돌리고 격을 유지할지.

    결정은 로키의 몫이었다.

    아무리 격을 이룬 존재라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인류의 존속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로키의 머릿속에는 아프로디테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격을 내놓게 만들지.

    어떻게 하면 더 심한 고통을 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후회란 걸 하게 될까. 그년이."

    로키의 고민은 쉬이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신이라 부르는 존재에게 관심을 받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인류에게 좋은 결과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는 인류의 존망에 관심이 없었다.

    한참동안 홀로 고민하던 로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올가미부터 고쳐야겠지. 여기저기 틈이 있는 올가미는 제 역할을 할 수 없으니까."

    로키가 결정을 내리자 주변 공간이 새까만 어둠으로 물들었다. 모두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니 이제 공간까지 본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무심히 허술한 올가미를 보완하기 시작했다.

    올가미를 손질하는 로키의 입가에 특유의 장난스런 미소가 맴돌았다.

    주사위가 더욱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이오스'에게 1778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이오스'가 절정에 올랐습니다.]

    ['경험 4,000'을 획득합니다.]

    ['오래된 황금 상자'를 획득합니다.]

    ['오래된 황금 궤짝'을 획득합니다.]

    ['오래된 황금 봉인석'을 획득합니다.]

    ['부러진 옥비녀'를 획득합니다.]

    [음격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음격 20단계 돌파 보상으로 하나의 제단을 추가 개방합니다.]

    끝났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쾌락에 울부짖던 이오스가 찬란한 빛으로 화해 내 남성에 흡수됐다.

    여기가 끝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니다.

    아직 끝은 오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변을 세심하게 둘러보았다.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분명 뭐가 더 남았는데……."

    내가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 더욱 그 의심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몽마의 성체' 붕괴까지 10분 남았습니다.]

    확실했다. 무언가 또 있었다. 튜토리얼은 끝났지만, 아직 무언가 남아 있었다.

    지푸라기도 잡아야했기에 나는 오랜만에 임무창을 열어 보았다.

    --------------------

    [그루스 파괴]

    + 그루스를 파괴하라.

    + 기본 보상 : 고유 칭호

    + 추가 보상 : 고유 기술

    + 전체 임무

    --------------------

    상세 임무를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힌트는 개뿔. 그냥 뺑이 치라는 거네.

    아무런 소득을 올리지 못한 나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분명 무언가 있을 게 분명한데, 도저히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미친놈처럼 침실 여기저기를 만지고 쓸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사이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몽마의 성체' 붕괴까지 3분 남았습니다.]

    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벌써 7분이나 허비했다. 마음이 급할수록 냉정해져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더욱 마음이 급해진 나는 더욱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마치 공짜로 얻은 라이터를 잃은 골초 같았다. 그 꼴을 하며 돌아다녔지만 침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몽마의 성체' 붕괴까지 1분 남았습니다.]

    "썩을……."

    틀렸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평범한 내 머리가 원망스러웠다. 나름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 듯 싶었다. 아니면 그것으로 부족했을지도 몰랐다.

    결국 나는 피식 실소를 흘리며 침대에 벌러덩 들어 누웠다.

    "드럽게 푹신하네."

    쓸데없이 보드라운 침대였다. 이런 좋은 침대에 혼자 누워있다는 게 씁쓸했다. 그 전에 언제부터인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엑스칼리버가 안쓰러웠다.

    결국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가.

    엑스칼리버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으로 안 되는 것 같았다.

    하긴,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을 없애야지. 그래야…….

    나는 끝가지 생각을 이을 수 없었다.

    내 눈에 여전히 신기하게 생긴 천장의 창문이 들어왔다. 그 창문의 중심에 있는 아주 작은 구멍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내 눈이 오늘따라 본래 능력 이상을 뽐냈다.

    꽤 높은데? 내가 이렇게 눈이 좋았나. 저 멀리 있는 걸 이렇게 선명하게 볼 줄은 몰랐네.

    "거 참 보면 볼수록 야시시하네. 하여튼 처음 들어 올 때 불꽃도 드럽게 야하더니. 이제는 하다하다 창문까……지? 창문이 야해? 저게?"

    그동안 50번의 섹스 배틀을 하면서 내가 미친 건 아닐까 싶었다. 그건 아니었다. 이 골 때리는 꿈은 현실에 영향을 주면서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최소한 몽마의 성체에 끌려온 것 때문에 미쳤다는 사람은 없었다.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것은 생각도 아니었다. 그냥 망상이었다.

    남사스러운 망상이었지만, 누가 욕할 사람은 없었다.

    내 꿈이었고, 나 혼자였다.

    마른침을 삼킨 나는 정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작게. 아주 작게 속삭이듯 읊조렸다.

    "전투. 아니, 공겨……어어어?"

    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내 몸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실 끊어진 풍선처럼 떠오르던 내 몸이 빠르게 야한 창문으로 솟구쳤다. 정말 눈 깜짝하는 사이 만에 나는 창문과 닿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또 다시 미세한 변화가 포착됐다.

    "움직였어?"

    창문의 중심에 있는 아주 작은 구멍. 그것이 움직인 게 보였다.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꿈은 빌어먹을 정도로 거지같았다.

    "큭!"

    썩소를 입에 문 나는 이쯤 되면 막가자는 심정으로 행동했다.

    "그래. 나 쌤이 그랬지? 몽마의 성체는 몽마의 자궁이라고……!"

    두 눈을 질끈 감은 나는 그대로 오물거리는 작은 구멍에 엑스칼리버를 꼽았다.

    그 순간…….

    수욱!

    ['몽마의 성체'에 666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몽마의 성체'가 절정에 올랐습니다.]

    ['몽마의 성체'를 파괴합니다.]

    [칭호 '성체 파괴자'를 획득합니다.]

    [기술 '절대 삽입술'을 획득합니다.]

    ['보물 상자'를 획득합니다.]

    [업적 '파괴의 달인'을 획득합니다.]

    ['초보초보자의 단검'이 소멸합니다.]

    ['아프로디테의 입맞춤'이 소멸합니다.]

    헐?

    보스의 쓸데없이 친절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몽마의 성체는 다른 몽마들처럼 빛으로 화했다. 새까만 암흑 그 자체였다.

    빛이 아닌 어둠으로 변한 그것은 이내 내 남성에 스며들었다.

    나도 모르게 전율이 일어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은 마치…….

    은근한 기대가 담긴 내 눈에 새하얀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내 양기였다.

    나는 진정한 동정을 상실했다.

    "……근데 나 지금 창문한테 빼앗긴 거야? 그런 거야?"

    하아.

    갑자기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아니다.

    내 신세는 그냥 처량함 그 자체였다.

    빌어먹을.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 작품 후기 ==========

    주말인데 글을 못쓰고 있어서 슬픕니다.

    좀 어려운 편을 쓰다가 버릇처럼 손톱을 깨물었는데.

    잘못 뜯어서 살이 좀 크게 벌어졌네요.

    덕분에 왼손 약지로 키보드를 누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ㄱ-;;;

    그리고 당분간 글 올리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을 겁니다.

    유난히 이번 글은 집중하지 않으면 못쓰다 보니

    아예 핸드폰 끄고, 시계도 안봅니다.

    렙탑 시간조차 없애 버려서..-_-;;;

    남은 주말 잘 보내시고, 저는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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