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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ss-22화 (2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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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스한 봄날의 햇볕이 느껴졌다.

    커튼 사이를 비집고 침실로 들이닥친 햇볕의 따가움을 느끼며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깬 나는 긴장어린 손길로 내 몸을 포개고 있는 이부자리를 그러쥐었다. 이내 정말 조심스럽게 이불을 옆으로 젖혔다.

    그 순간 내 침실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내 입이 열렸다.

    "에이, 씨. 업적은 개뿔. 내가 그렇지……."

    아주 작은 기대는 여지없이 부서졌다. 내 물건은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축 늘어진 녀석이 오늘따라 더욱 꼴 보기 싫었다.

    김이 팍 샌 나는 버릇처럼 입에 붙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내려갔다.

    뚜벅뚜벅 욕실로 걸어간 나는 시원한 물로 몸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닿으면 꿈틀거릴 법 한데도, 녀석은 여전히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그나마 따끔거리는 감각을 통해 썩은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반쯤 썩은 거지. 에효. 근데……왜 이렇게 쓰리지?"

    뒤늦게 따끔거리는 강도가 크다는 걸 느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내 다리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덜렁거리는 녀석이 벌겋게 부어 있는 게 보였다. 녀석의 처참한 상태를 확인한 순간 내 눈썹이 거칠게 휘었다.

    어젯밤과 마찬가지였다.

    "……이거 단순한 꿈이라고 할 수 없겠는데? 꿈결에 맞췄다고 이렇게 부어오르나? 그건 아닌데."

    나 원장의 추측이 이번에는 틀린 게 틀림없었다. 단순히 꿈결에 움직인다고 이정도로 물건이 부을 리가 없었다. 이건 의사가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진실에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몽마의 성체는…….

    "꿈과 현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거네. 흐음!"

    내 침음이 깊어졌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샤워를 끝낸 나는 조심스럽게 물기를 닦았다. 부드러운 수건이 내 물건을 스칠 때마다 따끔따끔했다. 그 때문에 샤워시간이 평소보다 곱절은 길어졌다.

    욕실에 나온 뒤에는 식은땀 범벅인 이불까지 세탁기에 넣어야했다. 따로 빨래하는 게 귀찮아서 빨랫감도 같이 넣어 버렸다. 아무리 은둔형 외톨이로 산다고는 하나 나는 생각보다 깔끔한 성격이었다.

    대충 빨래를 돌린 나는 그제야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었다. 위장에 뭐가 들어가는 순간 엄청난 허기가 찾아왔다. 평소와 달리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은 느낌. 아니, 고통이었다.

    "아, 사냥을 오래 했다고 더 배가 고픈가? 안되겠다."

    라면을 직접 끓이고 자시고 할 기력조차 없었다.

    결국 나는 지갑과 스마트폰을 챙긴 채 집을 나섰다.

    ***

    브런치. 아니, 아점을 파는 가계는 한산했다.

    덕분에 부드럽게 익은 달걀과 소시지, 빵 등으로 구성된 기본 메뉴를 금방 받을 수 있었다.

    눈앞에 음식이 나오는 순간 포크를 든 나는 단숨에 그릇을 비웠다. 나름 푸짐한 양이었지만 나는 그것으로 부족했다. 결국 그 뒤로 4인분을 더 먹고 나서야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장님이 이상하게 보지만, 뭐 어때? 내가 살고 봐야지.

    무전취식을 할 것도 아니었기에 남들의 눈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섭취한 나는 후식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까지 먹어치웠다. 그 후 계산을 마치고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서 가계를 나섰다.

    뽈록 튀어 나온 배를 슥슥 문지르며 동네를 산책하던 나는 모처럼 행복함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끼는 행복은 길지 않았다.

    동네 카페의 입간판에 적힌 날짜가 문제였다.

    [3월 9일 화요일]

    어, 잠깐만. 난 분명 3월 7일에 잤는데? 그것도 해떨어지기 전에…….

    "헐."

    나이 서른 먹고 애들처럼 감탄을 터트렸다. 어쩔 수 없었다. 이 한 단어가 내 지금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었다.

    대충 가늠해도 40시간 넘게 잠을 잔 것 같았다.

    40시간.

    말이 40시간이지, 하루하고 한나절이었다.

    오늘 날짜를 확인한 나는 지체 없이 걸음을 돌렸다.

    내가 걸어가는 길의 끝에는 나 원장의 병원이 있었다.

    ***

    벌컥!

    "나 쌤!"

    "깜짝아! 너 자꾸 노크도 없이 들락거릴래?"

    원장실 문을 활짝 연 채 내가 소리치자, 나 원장이 새침한 얼굴로 반격했다.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으며 조금 멍청한 표정을 보였다. 내 방어기재의 발현이었다. 보통 이러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나 원장은 아니었다.

    나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또각, 또각.

    이윽고 내 코앞까지 다가온 나 원장이 사정없이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악!"

    "그런 게 회피하는 게 더 안 좋다고 했지? 실례를 했으면 사과를 해야 하는 거라고 내가 몇 번이나 그랬어?"

    "알았어! 진짜 안 그럴게. 나 쌤, 아퍼! 진짜 아퍼!"

    "하여튼 엄살은……. 앉아. 아직 날도 제대로 안 풀렸는데 무슨 땀을 이렇게 흘려?"

    나 원장이 무심한척 답했다. 당연히 무심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리를 권하면서 시원한 냉수 한 사발. 아니 한 컵을 떠와서 내밀었다.

    나는 씽긋 웃으며 나 원장이 내미는 얼음물을 날름 받아 마셨다.

    "크! 역시 나 쌤뿐이야. 나 쌤. 우리 사귈까?"

    "됐네요. 그것보다 왜? 또 무슨 일이야?"

    "와, 철벽.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 나름 돈 많아. 사지 멀쩡해."

    "흰 소리 그만하고. 내가 그랬지? 고민이 있으면 일단 털어놓으라고. 괜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자꾸 말 돌리지 말고 말해 봐."

    역시 나 원장이었다. 내 가면 따위는 사정없이 찢어발기는 그녀였다. 어찌 보면 참 대단한 여자였다.

    씨알도 안 먹히는 나 원장의 태도에 나는 혀를 차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나마 나 원장이니 이 정도였지, 다른 사람이나 의사였다면 속내를 보일 생각을 안했을 나였다. 정말 나 원장이 내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나 원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나 몽마의 성체에서 이틀 동안 있었어. 그러니까 엇 그제 나 쌤이랑 밥 먹고 집에 가서 깜빡 잠이 들었거든?"

    "근데?"

    "근데 아까 전에 일어났다니까? 나 큰일 난 거 아닐까?"

    "흐음……."

    큰일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었지만 나 원장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덕분에 나도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있을 수 없었다. 진짜 심각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헝클었다.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나 원장이 딱밤을 먹이듯 내 콧등을 튕겼다.

    난데없는 일격에 나는 짧은 비명과 함께 나 원장을 노려보았다.

    "아. 왜 또?"

    "뭘 또 그렇게 심각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나도 가끔 이틀 동안 잘 때가 있어. 그리고……."

    "그리고? 왜 말을 하다 말아?"

    "요즘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사람 많은데 가는 걸 싫어하잖아? 그래서 피곤했나 보지. 아니면 몽마의 성체에서 오래 있었니?"

    "응? 어. 좀 오래 있었던 거 같기도 해. 왜? 그것도 상관이 있어?"

    나 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마지막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내 애매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나 원장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역시 그녀는 의사였다. 피식 웃은 그녀가 내 볼을 살짝 꼬집으며 답했다.

    "민감한 문제는 묻지 않을게. 아무튼 오래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어. 너와 비슷한 현상을 겪은 사람들도 많고."

    "진짜?"

    "응. 진짜야. 그것 때문에 지각하는 사람이 속출해서 난리였잖아? 그게 학교든, 직장이든."

    "그랬어?"

    나 원장의 해답을 들은 나는 편안한 얼굴로 의자에 기댔다. 정말 나 원장이 내 만병통치약인 듯 했다.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가 그녀를 만난 게 아닌가 싶었다.

    "아, 넌 자고 있었지? 아무튼 난리도 아니었어. 현실에 영향을 주지 않을 줄 알았던 꿈이 결국 어떤 방식이든 현실에 영향을 주게 됐으니까. 좀 시끄러웠지."

    "흠……. 나 쌤. 근데 진짜 큰 문제는 없을까? 보스라는 거 말야."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내 심각한 질문에도 나 원장의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볍게 대꾸할 뿐이었다. 조금 서운했다. 나름 심각한 고민인데.

    얼굴에 고스란히 들어나는 씰룩한 표정에 나 원장의 손길이 달라붙었다. 이번에 그녀는 내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악의 없는 행동이었지만 생각보다 그녀의 손은 드럽게 매웠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아파?"

    "그럼 안 아프겠냐? 무슨 의사가 손이 이렇게 매워?"

    "그렇게 아팠어? 누나가 호오! 해줄까?"

    "됐네요. 그나저나 진짜 괜찮을까?"

    "모르지."

    고통을 뒤로한 채 물었지만 나 원장의 대답은 무성의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서운함이 더 커졌다.

    다행히 내 서운함은 금세 사르르 눈처럼 녹아 없어졌다.

    나 원장이 내 이마를 살살 문질러주며 말을 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대응 방법도 마찬가지고.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현행법을 바꾸는 정도인데……."

    "정치인들이 법을 잘도 바꾸겠네. 뭐든 사건이 터져야 바꾸는 것들인데."

    "그렇지. 너무 우리나라만 욕하지 마.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니까. 암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지켜보는 거지. 별 수 있겠니?"

    우문현답.

    내 어리석은 질문에 나 원장은 현명한 해답을 내줬다. 이미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단지, 오늘따라 유독 미련을 둔 것 같았다.

    이왕 속내를 털어 놓은 김에 나는 그동안 애써 억눌렀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 보기로 결심했다. 나 원장이 아니면 털어 놓을 사람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전처럼 꾹꾹 혼자 고민하고 낙담할 필요가 없었다.

    "근데 나 쌤. 이거 진짜 괜찮을까?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상한 괴물들이랑 그……. 그러니까……."

    "섹스 하는 거?"

    내가 쉽사리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나 원장이 시원하게 문제의 단어를 내뱉었다. 역시 그녀는 대단했다. 화끈한 그녀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인간과 아닌 존재와 그짓 하는 꿈을 매일 꾸면 미치는 거 아냐? 아니. 미치지 않더라도 성적 취향이라든지. 뭐 다른 것들에 영향을 주지 않아?"

    "음…….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

    역시 그런가?

    나 원장의 진지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인간을 앞에 두고 서지 않는 내 물건이 몽마에게만 반응하는 게 그것이었다.

    다행히 나 원장의 대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큰 영향을 준다고 확답할 수도 없어. 사람은 사회에 존재하는 통념들에게 생각보다 큰 지배를 받거든? 아무리 야동을 본다고 야동 따라하는 사람은 없잖아?"

    "어? 와……. 나 쌤 진짜 똑똑하네."

    명확한 비유에 나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꿈이나 매체에 영향을 심각하게 받을 정도라면, 애초에 그 사람은 제대로 된 가치관을 형성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 원장도 내 생각과 같은 듯 비슷한 맥락의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교육이지. 단순히 학문에 관한 교육이 아니라 하나의 삶을 지탱한 관념을 어떻게 형성했는가. 그게 중요하니까. 야동 단속할 시간에 유년시절 제대로 된 보살핌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주는 게 범죄율을 줄이는데 더 효율적일 걸?"

    "역시 나 원장! 나 원장을 국회로!"

    "또, 또! 대화중에 자꾸 그렇게 피하지 말라고 했지?"

    "……알았어. 나도 노력하는데 잘 안 돼. 너무 그러지 마라. 나 쌤까지 그러면 나 어떡해?"

    잘못된 대화 방식을 교정해주는 나 원장은 좀 무서웠다.

    다행히 나 원장은 무섭기만 한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녀는 따듯한 눈빛을 보여주는 누나였고, 어머니였다.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단 채 그녀가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알아. 우리 고영이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힘들어도 피하면 안 돼? 알았지?"

    "알았다니까. 자꾸 그렇게 누나처럼 말할래? 맨날 나이 이야기하면 발끈하면서. 악!"

    "내가 나이 이야기 하지 말랬지?"

    순간 포근한 엄마가 표독한 악마로 변했다.

    부지불식간에 허벅지를 꼬집힌 나는 무조건 빌 수밖에 없었다.

    "나 쌤. 나 환자. 나 환자라고!"

    "환자 같은 소리 하네. 아무튼……."

    "아, 근데 나 쌤. 나 쌤도 보스 유저지?"

    "그렇지. 나라고 별 수 있겠어? 아무튼 골치 아파."

    내가 또 말을 돌리는 걸 알아챈 나 원장이 새침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같은 지적을 계속 반복하는 게 안 좋다 여기는 그녀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름 최선의 질책을 담은 눈빛이었지만, 나는 능숙하게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봐줘서 고마워요, 나 쌤.

    괜히 아무것도 없는 원장실 천장을 바라보며 서둘러 이왕 시작한 행동을 마무리했다.

    "그럼 나 쌤은 레벨 몇이야?"

    "응? 레벨?"

    "응. 레벨."

    기대어린 내 눈빛에 나 원장이 잠시 갈등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애매모호한 표정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원시원한 그녀의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 원장이 짧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12."

    "……뭐라고?"

    "십이! 12레벨이야."

    헐. 님. 밥 먹고 게임만 함?

    차마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아니, 그렇게 따지면 나는 밥도 굶으며 게임한 꼴이었다. 다만 나 원장의 이미자와 너무 다른 결과였다.

    내 표정을 놓치지 않은 나 원장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별거 없던데? 엘프처럼 생긴 오크들이 몸이 좋아서 눈요기도 제대로 했고. 무, 물론 직접 한 건 아냐. 이 누나가 손기술이 좀 좋거든!"

    "……웬 변명?"

    "변명이 아니라! 진짜 내가 소, 손……씨이. 나보다 진영이가 더 고렙이야! 걔는 14레벨이란 말야! 난 진짜 아무것도 아냐! 진짜야!"

    갑자기 나 원장이 논리를 벗어던지고 고집을 뒤집어썼다. 난데없이 데스크를 보고 있는 서 간호사를 끌어 들이는 걸 보니 당황한 게 분명했다. 의외라면 의외인 모습이었다.

    나 쌤한테 이런 면이 다 있네?

    두서없이 변명을 남발하는 나 원장이 참 귀여워 보였다.

    ========== 작품 후기 ==========

    꽁냥꽁냥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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