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9화 (19/200)
  • <-- Sphincter -->

    ***

    오늘도 로키는 무한한 초원에서 다도를 즐기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향기를 즐기는 것은 로키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아니,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보스를 만든 뒤로 그는 새로운 즐거움에 눈을 떴다.

    "은근히 재밌단 말이지. 그년을 속이는 것도, 인간들을 지켜보는 것도. 음?"

    육체가 지닌 격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로키였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인간이었을 때 감정을 부여잡고 있었다. 물론 이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초월자들도 어느 정도 전생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로키만큼은 아니었다.

    덕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로키였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재주가 있었다.

    바로 장난이었다.

    장난에는 무형적인 장난도 있었고, 유형적인 장난도 있었다. 보스는 아직 무형의 장난이었다. 어쨌든 그는 자신이 만든 장난감으로 다른 생명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오래전 지구의 인류에게 쥐어준 장난감과 보스는 전혀 달랐고, 그것은 로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다양한 군상을 볼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확실히 인간은 재미있는 존재지."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스를 즐기는 인간들을 훔쳐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던 로키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찻잔을 내려놓더니 검지로 이마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 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로키의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췄다. 이마에 딱 달라붙어 있는 손가락 끝에 은은한 빛이 모여 들었다. 그가 이마에서 손을 떼더니 빛이 모여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탁.

    화악!

    로키의 눈앞에 갑자기 거대한 화면이 나타났다. 반투명한 화면 속에는 어디서 많이 보았던 남자가 여자의 입속에 성기를 밀어 넣고 있었다. 듬직한 덩치에 선한 눈매를 가진 남자는 다름 아닌 박고영이었다.

    말없이 박고영의 성투를 지켜보던 로키가 불현듯 미소를 베어 물었다. 양쪽 입꼬리가 살짝 말아 올라간 모습이 꼭 광대 같았다. 그것도 음흉한 광대였다.

    "아프로디테. 그년이 장난질을 쳐놨군!"

    처음에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로키는 금세 아프로디테가 친 장난을 알아챘다. 문란한 생활과 달리 아프로디테의 신격은 의외로 높았다. 만약 로키가 만든 장난감이 아니었다면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지도 몰랐다.

    사정이 어떻든 결국 로키가 알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밝아졌던 표정도 잠시 로키가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쓸데없이 격만 높아서는!"

    조곤조곤 차분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평소와 달리 버럭 화를 지른 로키는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었다. 분명 자신이 만든 세계였지만, 그는 아프로디테의 장난을 어찌할 수 없었다.

    짜증도 잠시 로키가 부드럽게 찻잔을 들어 다시 다향을 즐겼다.

    "내 방에 치울 수 없는 쓰레기가 들어왔다면. 그렇다면, 그곳을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지."

    로키는 굳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목매지 않았다. 그는 아프로디테의 장난은 그대로 둔 채 보스를 조금 바꾸었다. 어쨌든 결과는 같아질 게 분명했다.

    다향을 즐기며 보스를 수정한 로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박고영은 로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

    "후우."

    다음 방에 들어서며 숨을 골랐지만 한아름 가득한 걱정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꾸 괄약근에 힘을 주며 움찔거렸다. 뒤늦게 흑문을 열고 나갔어야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이미 늦었지. 에효.

    나는 선택을 했다. 선택을 했으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다. 그것이 올바른 사람이 가져야할 덕목이었다.

    "미안하다. 어쩌겠니. 때론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사는 게 우리들 인생인데."

    오솔길을 가로지르며 나도 모르게 잔뜩 화난 엉덩이를 어루어 달랬다. 물론 내가 달랜다고 화가 난 엉덩이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내 엉덩이는 여전히 잔뜩 분노를 토하고 있었다.

    딴딴한 엉덩이와 반대로 어깨를 늘어트린 나는 금세 익숙한 숲 속 공터에 도착했다.

    이제 곧 나오겠네. 중보스가.

    예상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검은 손톱의 몽마는 이전 몽마들보다 더 빠르게 나오며 자신의 성질이 급하다는 걸 온몸으로 알렸다. 그녀의 두 팔과 허벅지를 감싸고 있는 검은 붕대가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

    "에휴……. 그래, 매도 먼저 맞으면 편하다고. 어차피 잠깐이야."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지나갈 일이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고통이 길 것임을 나도 알았고, 몽마도 알았다.

    고통스러운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몽마가 와서 나를 눕히기도 전에 내가 알아서 벌러덩 누워 버렸다. 내 행동에 오히려 몽마가 당황하여 움찔할 정도였다.

    왜? 쫄려? 쫄리면 뒤지든가!

    팔짱은 낀 손으로 머리를 받힌 채 누워있는 나는 거만한 눈빛으로 몽마를 올려다보았다. 혹시라도 기세에 따라서 공격권이 정해지나 싶어 취한 행동이었다. 아쉽게도 내 손에 잡히는 지푸라기는 없었다.

    그럼 그렇지.

    기술이 발동되지 않는 걸로 내 공격권이 아님을 확인한 나는 살짝 혀를 찼다. 그 사이 몽마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금세 다가와 내 허리 옆을 딛고 똑바로 섰다.

    응?

    몽마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지금까지 상대한 시랑은 나타나자마자 내 배위에 엉덩이부터 깔고 앉았었다. 선공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전투 준비 자세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었다.

    "근데 쟤는 왜 저러지?"

    의아한 목소리로 여전히 무릎을 굽히지 않는 몽마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뜨거운 햇볕에 눈을 찡그리고 말았다. 그 찰나의 순간을 몽마는 놓치지 않았다.

    내가 미처 방비하지 못한 사이 몽마의 새로운 공격이 날아왔다.

    그것은 아주 작고 아담한 발이었다.

    백설기 같은 발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와 내 사타구니 사이로 떨어졌다.

    퍽! 퍽퍽! 퍽퍽퍽!

    "컥! 꺼억……."

    난데없이 내 불알에 고운 발이 떨어졌다. 한 번이 아니었다. 연속 세 번의 짓밟기에 당한 내 불알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기습에 그대로 당한 나는 욕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엄청난 고통이 내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어 버렸다.

    ['흑조 시랑'에게 41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흑조 시랑'에게 36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흑조 시랑'에게 39의 피해를 받았습니다.]

    [상태 이상 '혼란'에 걸렸습니다.]

    뭐?

    세 번의 발길질이 세 번의 공격이었다. 더 찡그릴 수 없을 것 같았던 내 얼굴이 더 흉측해졌다. 미친년 바퀴벌레 밟듯 밟힌 것도 억울한데, 거기에 상태 이상까지 걸리는 건 사기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피해는 내가 느낌 고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시팍. 진짜 뒤질 뻔 했네. 자비 없는 년!

    3연격이었지만 피해는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상태 이상 혼란도 나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전체 정력의 3%씩 매 회전 사라지는 건 공격권을 넘겨주는 것보다 백번 나았다.

    오냐, 이제 내 차례지?

    뿌드득 이를 간 나는 자연스레 강한 한 방을 준비했다. 기술을 계속 쓰다 보니 이제는 내 의지로 발동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진 상태였다. 엑스칼리버에 힘이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이거나 먹어라!"

    우렁찬 외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섬광처럼 양손을 뻗었다. 몽마는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완벽하게 몽마의 머리를 구속한 나는 망설임 없이 허리를 밀어 올렸다.

    퍽.

    응?

    소리가 이상했다. 이렇게 쉰 김치처럼 김빠진 소리는 처음이었다. 문득 불안감이 치솟았다.

    이윽고 내 불안감의 정점을 찍는 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격에 실패합니다.]

    ……뭐지?

    순간 나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후.

    "뭐가 실패해? 무슨 개소리야! 시……?"

    내 분노의 정점을 찍을 욕지거리를 끝까지 이어갈 수 없었다. 자연스레 바닥에 눕는 와중 몽마의 입가에서 하늘하늘 바람에 날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투명한 면사였다.

    내 엑스칼리버가 고작 저거에 막혔다고?

    억울함보다 허탈함이 먼저 들었다.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건가. 그래서 안서는 놈도 안 되는 건가. 그런 건가.

    허탈함에 맥이 탁 풀린 그때였다.

    쉬이, 쉬이익.

    섬뜩한 파공음이 내 고막을 뚫고 들어와 뇌리를 강타했다. 썩은 동태 눈깔로 변했던 내 눈빛이 돌변했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감지했다.

    다시 힘을 찾은 내 두 눈에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검은 붕대가 보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몽마의 양팔에서 풀린 쌍두사가 나를 노리고 있었다.

    뒤늦게 몽마의 목표를 알아챈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안 돼!

    검은 쌍두사의 목표는 다름 아닌 내 뒷문이었다. 노골적으로 사타구니로 향하는 궤도를 보고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 내 항문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였다.

    "죽어도 안 돼!"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저항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남자들의 본능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에 두 주먹을 불끈 쥔 나는 괄약근에 힘을 빡 줬다. 얼마나 세게 힘을 줬는지 사타구니 안쪽이 터질 것 같았다. 꽤 큰 고통이 밀려왔지만 나는 힘을 풀 수 없었다.

    어금니를 꽉 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를 향해 검은 쌍두사는 가차 없이 들이닥쳤다.

    푸욱! 푸푹!

    "끄으윽……."

    딴딴한 짱돌 같은 내 엉덩이였지만 오늘따라 부드러운 두부처럼 쌍두사에게 길을 열었다. 순간 쌍두사의 부드러운 느낌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힘을 풀 뻔했지만, 다행히 정신을 차리며 더욱 이를 악물었다.

    쉬! 쉬이!

    사특한 쌍두사의 숨소리가 들렸다. 집요하기는 쌍두사도 만만치 않았다. 처음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생각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

    아, 힘이…….

    문제가 생겼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까지 근육을 쥐어짜다보니 금세 지구력이 바닥났다. 서서히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엉덩이 골짜기에 크랙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잃는 건가.

    힘이 빠진 육체만큼 의지도 점점 해이해졌다.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만 포기해도 괜찮……기는 개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뿌드득!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기 시작했다. 내 몸에 이런 힘이 있는지 몰랐을 정도였다. 지옥의 봄이 오며 생겼던 골짜기 사이의 크랙이 다시 찾아온 희망의 겨울로 인해 사라져 버렸다.

    사지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윽고 쌍두사의 사특한 울음소리가 끊겼다.

    [방어에 성공합니다.]

    그 순간 내게 환희가 찾아왔다.

    소중한 처녀지를 지켰다는 것에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너무 힘을 쓴 탓에 격한 표현을 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누군지 모를 존재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유일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넣지도 못하는 놈이 박히면 끝난 거니까.

    처음 헐벗은 시랑의 혓바닥은 그래도 애무로 봐줄 수 있었다. 문제는 저 섬뜩한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시랑들이었다. 그녀들에게 당하면 핑계로 댈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나만의 마지노선을 지킬 수 있었다.

    덕분에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내게는 지켰다는 사실이 중요할 분이었다. 누군가 어차피 꿈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빌어먹게도 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꿈은 단순히 꿈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기쁨에 파묻혀 있다 보니 어느새 공격 제한 시간이 끝을 향해 달려갔다.

    [공격 제한 시간까지 5초 남았습니다.]

    내가 이성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제한 시간이 5초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 이런. 아무리 기뻐도 그렇지. 자, 공격! 그냥 공격해!

    구강 삽입이 불가능했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공격 방법은 오직 일반 삽입뿐이었다.

    그때 복은 마와 함께 온다는 걸 알게 됐다.

    야! 공격하라고! 왜 공격을……아, 젠장.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여기는 1층이 아니었다. 2층부터 공격을 위해서는 내가 직접 행위로 옮겨야했다.

    지금 나는 온 몸이 경직되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공격 제한 시간까지 3초 남았습니다.]

    [공격 제한 시간까지 2초 남았습니다.]

    [공격 제한 시간까지 1초 남았습니다.]

    [공격 제한 시간을 모두 소진했습니다.]

    [공격권을 상실합니다.]

    무심하기 그지없는 보스의 선고를 듣는 순간.

    나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좆 됐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