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5화 (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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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릿속이 새하얗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가.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내 물건이 바짝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는 게 중요할 뿐.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시원하게 웃어 버렸다. 이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땅과 수직이 되는 내 물건의 모습이 이토록 고마울 수 없었다.

    비록 너무 흥분하여 첫 경험이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은 많았다.

    혹시나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디테도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내 가슴에 머리를 포개 놓은 채 가슴을 헐떡이고 있었다. 왠지 모를 뿌듯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흐트러진 머릿결을 쓸어 넘겨주었다.

    "으응, 좋아. 역시 특등품. 정말 최고였어."

    내 가슴을 베고 있는 디테는 마치 기분 좋게 갸르릉 거리는 고양이 같았다. 그녀의 칭찬에 더욱 내 남성이 꿈틀거렸다. 성수를 끼얹은 것 같이 희번덕이는 녀석의 바람이 곧 내 바람이었다.

    더 이상 못 참겠다.

    나는 살짝 등을 일으키며 팔을 뻗었다. 목표는 디테의 양쪽 겨드랑이었다. 내 의중을 알았는지 디테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허리를 일으켰다.

    디테는 솜털처럼 가벼웠다. 내 의중을 알고 몸을 움직여준 덕분이겠지만, 이유가 뭐 중요할까. 그녀가 내 몸 위에 엎드려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디테의 풍만한 가슴이 내 가슴에 짓눌려 사이로 삐져나온 모습이 그토록 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또 다시 침을 꼴깍 삼켰다. 슬쩍 손을 내려도 그녀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꾸욱.

    "아이, 참. 부드럽게. 그리고 강하게. 단조로운 건 지루하다니까."

    "응. 알았어. 이번에는 그렇게 할 테니까. 응?"

    내게 기적을 선사한 디테였다. 그녀의 말에 거역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디테의 풍만한 가슴과 탱탱한 엉덩이가 주는 감촉을 즐기며 다시 한 번 2차전을 준비했다. 어쩔 수 없었다. 너무 흥분한 1차전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흥분했으면……. 완전 발정 났었나 보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장장 30년인데.

    첫 경험이 기억나지 않았기에 더 급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대로 끝낸다면 어제와 뭐가 다를까.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잊을게 따로 있지.

    생각해보니 더 심각한 문제네. 안 되겠다. 더 이상은 무리야.

    "저기, 한 번 더 하자. 도저히 못 참겠다!"

    "풋! 뭐야, 그게. 요 못된 몽둥이가 언제 또 이렇게 성이 났을까아?"

    내 애달픈 재촉에도 불구하고 디테는 여전히 여유로 가득했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 사이에 내 물건을 끼운 채 좌우로 비비기 시작했다. 흥분할 대로 흥분한 내 물건이 바르르 떨었다.

    디테의 야한 장난에 내 머리로 하얀 물감이 들어왔다.

    아, 안 돼. 이번에는…….

    기겁한 나는 퍼뜩 입술을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은근슬쩍 흘러들어오던 하얀 물감이 도로 빠져나갔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모습이 재밌는지 디테가 꺄르르 웃었다. 그녀는 웃는 와중에도 허벅지 사이에 끼운 내 물건을 계속 자극했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그녀의 허벅지 안쪽 살은 정말 끝내줬다.

    새로운 취향에 눈을 막 뜨려는 그때였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시간이 다 됐네?"

    "뭐?"

    난데없는 봉변이었다.

    디테도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내 가슴을 양손으로 짚고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이럴 순 없다고! 이건 아니잖아!"

    내 절규에 디테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 물건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녀도 정말 아쉬운 듯 보였다. 안타깝게도 아쉬움은 아쉬움일 뿐이었다.

    "미안해. 시간이 다 됐다니까. 이 방에 더 이상 있을 시간이 없어. 그러면 규칙을 어기게 되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거 먹튀야! 먹튀라고!"

    내 동정 물려내라, 이 도둑고양이야!

    차마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했다. 혹시라도 방법이 있을 수 있으니까. 미련이란 놈은 남자를 참 약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애매한 표정이 웃겼는지 디테가 작게 실소를 흘렸다.

    웃는 것도 예쁘네. 아차차, 지금 그게 문제냐? 정신 차려라, 박고영!

    나름 표정을 관리하려고 했지만, 한 녀석은 불가능했다. 반골 기질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그 녀석을 디테가 검지로 톡 튕기며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내 억장이 다 무너졌다.

    사박사박.

    방의 중심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디테의 끝내주는 뒤태가 새하얀 천에 가려졌다.

    이건 아니잖아!

    내 가슴이 비명을 질렀다. 소용이 없었다. 허무했다.

    허무함도 잠시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침대 아래에 너부러진 옷가지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알몸으로 달렸다. 순식간에 디테에게 다가간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당겼다.

    "어?"

    디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석상이 따로 없었다. 순간 머리가 모로 돌아갔다.

    뭐지? 이건 뭐지? 이게 말이 돼?

    갖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나름 훤칠한 키에 듬직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나였다. 디테는 가슴과 엉덩이가 풍만했지만 몸 자체는 늘씬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몸도 굳었고, 머리도 굳었다. 마음 한 구석 밀어 넣고 외면했단 사실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개꿈이었어."

    "꿈은 맞는데, 개꿈은 아니야. 아무튼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도움말을 참조해. 지금은 일단 이것부터 받아."

    디테가 언제 돌아섰는지 나를 마주보며 화사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방금 전과 달리 성스러운 후광이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내 아랫도리는 여전히 재빨리 반응했다.

    드디어 나에게도 음란 마귀가 씌었구나.

    묘한 희열을 느끼는 와중에 디테의 고운 손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단검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내 고개가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들어 디테의 맑고 깊은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설명을 요하는 눈빛에 디테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둘러 오밀조밀한 입술을 움직였다. 그녀 말대로 시간이 없긴 없는 모양이었다.

    "보상이야. 약자를 배려하는 거니까, 잘 쓰도록 해. 자세한 건 설명을 보면 돼. 뭐해? 얼른 받아. 그리고……."

    이미 디테에 홀린 나는 그녀가 건네는 단검을 무의식적으로 건네받았다.

    그 순간 내 귓가로 익숙한 전화기 속 목소리가 들렸다.

    ['초보초보자의 단검'을 획득합니다.]

    뭐지, 이 튜토리얼의 진한 내음이 나는 물건은?

    잠시 단검에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다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디테의 등 뒤에서 피어난 새하얀 광채가 갑자기 나를 덮쳐왔다. 성스럽기 그지없는 빛에 내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 이게 후광이라는 거구나. 멋진……. 아니, 눈부신데. 님? 님아? 저기요?

    후광은 눈이 부시다 못해 아팠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가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새하얀 빛은 내 손을 뚫고 그대로 내 망막을 파고들었다.

    아, 후광은 엑스레이였구나.

    새로운 사실에 탄성을 막 터트리려던 그때였다.

    쪽.

    보드라운 디테의 입술이 내 볼에 닿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고 말았다. 무장해제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달달한 입맞춤이었다.

    아, 오늘따라 나 왜 이러지.

    작은 자책도 들었지만 그보다 황홀함이 더 컸다.

    눈을 감고 디테의 입술 감촉을 음미하고 있을 때 또 다시 자동응답 목소리가 찾아왔다.

    ['아프로디테의 입맞춤'을 적용합니다.]

    [모든 능력이 100% 증가합니다.]

    [업적 '여신 겁탈'을 달성합니다.]

    ['여신 겁탈의 증표'를 획득합니다.]

    [업적 증표는 업적창에서 활성이 가능합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보스가 일종의 게임 같은 거라고 알고 있었기에 갑자기 들린 안내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단지, 한 가지 거슬리는 게 있을 뿐이었다. 다름 아닌 업적이었다.

    나는 성난 눈으로 뒤늦게 근엄한 척하고 있는 디테를 노려보았다.

    "이거 너무한 거 아냐? 난 처음이었다고! 그런데 겁탈이라니! 강간이라니! 내가……!"

    순간 기가 막히면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나도 목구멍이 막혔다. 어이가 없다 못해 화가 났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내 전신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무단횡단 한 번 안 해본 놈인데, 내가!

    내 억울한 감정이 느껴졌는지 디테가 서둘러 손을 흔들었다.

    "얘는. 그런 거 아냐. 그냥 이거 만든 애가 좀……. 너희 말로 또라이? 그런 애거든. 그냥 이해해. 그리고 제목에 속지 마. 내용을 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거야."

    "기래기냐?"

    나도 모르게 퉁명한 목소리가 툭 튀어 나왔다. 아무래도 풀지 못한 게 원인인 듯 싶었다. 그 증거로 내 아랫도리는 여전히 빳빳이 고개를 들고 디테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 나도 남자니까. 이제는.

    괜한 뿌듯함에 가슴을 살짝 폈지만 내 기대와 달리 디테는 지각 직전에 있는 아이 엄마처럼 행동할 뿐이었다.

    "응? 아무튼 자세한 건 도움말! 잊지 마. 도움말이라고 외치면 큰 책이 나타날 거야. 거기서 확인하면 돼. 알겠지? 늦었다. 늦었어. 자자, 얼른 가. 저기 하얀 문 보이지? 저 문으로 들어가면 돼. 백문은 몽마와 싸우는 거고, 흑문은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럼 힘내!"

    설명을 끝낸 디테가 서둘러 내 몸을 돌렸다. 멍하니 있던 나는 태풍 속 바람개비처럼 맥없이 돌아갔다. 그녀는 부지불식간에 내 등을 양손바닥으로 밀며 나를 백문으로 인도했다.

    백문의 코앞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나는 이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필요한 건 이성이 아니었다. 오직 본능에 충실하고 싶었다.

    "저, 저기?"

    "정말 늦었어! 이러다 큰일 나! 얼른, 얼른!"

    디테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쫓기는 빚쟁이처럼 서둘러 백문을 열었다. 쓸데없는 곳에서 친절한 그녀였다.

    "그럼 잘 가, 특등품!"

    뭐 어떻게 반항할 틈이 없었다. 아니, 힘이 부족했다. 나름 버둥거렸지만 디테의 힘은 태산 같았다.

    나를 열린 백문 안으로 집어 던진 디테가 그제야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게 보였다.

    이보시오!

    이 놈 안보이오!

    이건 상도의가 아니잖소!

    애타는 내 마음과 달리 백문은 빠르게 닫혔다.

    "아, 씨발."

    욕지거리를 참을 수 없었다.

    ***

    박고영을 백문으로 집어 던진 디테가 양쪽 가슴에 손을 모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큰일 날 뻔 했네. 나도 참 주책이지. 오랜만에 보는 특등품에 그만……."

    "아귀 같은 신계에서 제일가는 탕녀에게 이일을 맡긴 내 잘못이겠지."

    홀로 자책하던 디테의 등 뒤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표정한 평소의 얼굴로 돌아온 디테가 품위 있는 분위기를 풍기며 몸을 돌렸다. 그녀의 앞에는 일전에 대화를 나누었던 남자가 서 있었다. 여전히 검은 누더기를 뒤집어 쓴 채 온몸을 가리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네가 만든 세계가 어떻든 내가 있는 곳은 나만의 공간이라는 걸 잊은 건가?"

    "그럴 리가. 발랑 까져도 격을 이룬 존재인데. 하지만 엄한 영혼을 끌고 와 잡아먹는 바람에 영혼이 소멸할 뻔 했지?"

    "흥!"

    "운 좋게 시간을 넘기지 않았지만……. 자칫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의 영혼이 공간에 먹였을 것이다. 더 이상 너에게 이 일을 맡길 수 없다. 아프로디테."

    "마음대로 해. 나도 흥미가 사라졌으니까. 약속이나 잘 지켜라, 로키."

    로키의 통보에 심드렁한 대꾸를 끝으로 아프로디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심통을 부리는 아프로디테의 작태에 로키가 쓴 웃음을 지었다. 탕녀. 아니, 탕신의 변죽은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새 끈적끈적한 공기가 남아 있던 침실이 무한한 초원으로 변했다.

    로키는 여느 때처럼 초원의 중앙에 위치한 자신의 안식처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오래된 세월이 느껴지는 나무 의자에 앉더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찻잔을 끄집어냈다. 공간을 격하고 나타난 찻잔에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물이 담겨 있었다.

    차향을 잠시 즐기며 한 모금 마신 로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시작이다, 아프로디테."

    그곳에 있는 구름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작품 후기 ==========

    Sated.

    …에 물린.

    누구에 물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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