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3화 (3/200)
  • <-- Tutorial -->

    ***

    컸다.

    정말 컸다.

    커도 너무 컸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거대한 성채(城砦)를 보며 든 첫 감상은 이게 전부였다.

    하늘을 노닐고 있는 구름을 꿰뚫을 정도로 성채는 지금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공간에 홀로 솟아 있는 거대한 성채를 잠시 올려다보았다. 그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넋을 잃은 채 썩은 동태 눈깔을 하고 오랫동안 고개를 젖히고 있다 보니 슬슬 목이 결렸다. 자연스레 몸이 반응하며 어깨를 으쓱이고 뒷목을 접었다. 그제야 조금 뻣뻣하던 근육이 풀리는 것 같았다.

    뒷목의 굳은 근육이 풀리는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근데 여긴 어디야?"

    태어나 처음 보는 장소.

    태어나 처음 보는 성채.

    태어나 처음 보는……쌍월?

    "두……개? 다, 달이?"

    새까만 하늘 위에 사이좋게 만월 두 개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꿈인가?

    아, 꿈이구나.

    꿈이겠지, 설마…….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약간 살집이 있는 볼을 꼬집어보았다.

    "윽!"

    아팠다.

    졸라 아팠다.

    아, 미련한 새끼. 정도껏 꼬집지. 미련해 가지고는, 쯧.

    눈물이 찔끔 나온 것 보니 내가 봐도 참 미련한 것 같았다. 아니, 그것은 둘째 치고 꿈이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는데? 그럼 여기는 도대체…….

    끼이익.

    움찔.

    의문을 갖기 무섭게 성벽이라 생각했던 거대한 석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선 채 몸을 움츠렸다. 결코 내가 겁이 많아서 이런 게 아니다. 귀신 잡는 해병대를 나왔든 무서운 건. 아니, 놀란 건 놀란 거다.

    순간 머쓱해진 나는 얼른 신색을 회복하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움츠린 허리와 등을 폈다.

    "큼! 흠흠. 흠."

    그 사이 두터운 석문이 활짝 열렸다. 그 사이로 하늘하늘 꿈틀거리는 불꽃이 보였다. 불빛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유려한 곡선을 마음껏 뽐내는 불꽃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무슨 불꽃이 저렇게……."

    야했다.

    졸라 야했다.

    30년 동안 순백을 유지하다보니 이제 무생물 보고 별 생각을 다하는 구나. 나도 참 갈 때까지 간 것 같다. 순간 자괴감이 밀려온다.

    "이제는 그러려니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럴 때면 자꾸만 한숨이 는다. 늘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입안이 씁쓸한 그때였다.

    "어머? 오래 기다렸나요? 미안해요, 내가 정신이 없어서. 이리로 와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걸로만 알았던 달달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꿈인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선 미녀가, 웃으며, 손짓하는 일이…….

    물컹.

    "어어?"

    갑자기 내 오른팔에서 평생 느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은 조물주의 두 명작 중 하나였다. 한없이 보드랍고, 한없이 탱클 했다.

    순간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아, 이것이 팔짱인가? 정녕 그런 것인가! 내 인생에도 광명이 찾아왔구나.

    모든 신경이 여느님의 왼쪽 마음에 쏠려 있을 때 갑자기 내 얼굴로 무언가 훅 들어왔다. 여느님의 고운 손이었다. 그녀가 내 터질 듯한 얼굴을 쓸어내리며 걱정을 잔뜩 담아 물었다.

    "아이, 참. 추워요. 얼른 들어와요. 이것 봐. 코가 빨갛잖아?"

    거기만 빨간 게 아닌데요. 온몸이 다 벌게진 건데요. 저기, 저기요? 님아? 여신님아? 이거 반칙인데요.

    여체의 신비라고 해야 하나. 여느님은. 아니, 여신님은 손바닥까지 부드러웠다. 내 곰발바닥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흘러 나왔다. 도저히 흘러내리는 모자람을 막을 길이 없었다. 부럽다, 오른팔!

    "풋!"

    너무 바보 같았나? 여신님의 눈매가 활짝 펴졌다. 웃는 모습도 이쁘구나.

    아차! 이게 아니지.

    "흠흠."

    뒤늦게 표정 관리를 시도해봤지만 소용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이분이 웃는다면, 그렇다면……응?

    무언가 이상한데? 나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잖아? 여자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러지?

    작은 위화감이 척추를 타고 꼬리뼈까지 파고들었다.

    확실히 이상했다.

    슬픈 이야기지만 나는…….

    고자다.

    전문용어로 발기불능.

    선천적 불능에 빠져 서른 평생 여자와 관계를 한 번도 맺어본 적 없는 반 강제적 천연기념물이 바로 나다.

    물론 병원에도 죽어라 다닌 적도 있었다.

    진단은 간단했다. 건장한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단지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 같다고 했다.

    절망하지는 않았다. 원인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나름 긍정적인 청년이었다.

    현대 의학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정신 질환하나 고치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때까지는.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한 번 변했을 시간동안 정신과를 드나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약물 치료도 해봤고, 심리 치료도 해봤다. 백약이 무효했다.

    그동안 얻은 건 어릴 적 얻은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가 전부였다.

    성적 사망 선고였다.

    20살에 발기불능이라니. 그 당시 나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의 눈치가 보여서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기도 해보고, 용하다는 정신과 전문가를 찾아가기도 해봤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또 다시 5년이 흘렀다.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고, 허름한 진단서만 남았다.

    서른이 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됐다.

    이번 생에는 아쉽지만 여자와 인연이 없다고. 남자를 좋아하는 취향도 아니니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 수 밖에 없다고.

    다른 자위를 하며 억지로 웃었다.

    어릴 적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을 잘 지키고 불린 덕분에 평생 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니까.

    인생에서 섹스를 지우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트라우마 때문이라지만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으니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다. 삼촌은 포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렇게 사는 것도 꽤 괜찮지 싶었다.

    나는 현자타임 속에서 살아간다.

    ========== 작품 후기 ==========

    글의 배경이 되는 시기와 맞지 않아 글 내용에 넣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지구도 달이 2개죠?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달이고.

    다른 하나는 얼마 전에 하와이 천문대에서 처음 발견한 2016HO3입니다.

    이런거 보면 도대체 저 휘영청 밝은 달이 어떻게 이리도 근접해서 도는 게 정말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습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