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60화 (560/564)
  • 6. 인류의 희망

    [“인류가 희망을 얻다” WH라이프 탈모제 특효 입증!]

    어제 WH라이프 연구진이 개발한 탈모 특효약 ‘비단’이 3상 시험을 통과해 하반기 시판을 앞두고 있다.

    WH라이프 김우혁 연구소장이 밝히길 발모제 비단은 모낭을 재생시키며 호르몬 등 신체에 부작용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반기 출시를 앞둔 ‘비단’이 안전하다고 판단된 것은 아니다.

    여러 약품이 출시 후 4상 시험에서 판매 중지되었으며, ‘비단’도 엄격한 기준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한편 분자생물학계에서는 WH라이프 연구원 배도진의 성과가 모낭뿐 아니라 신체 여러 곳에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WH라이프의 첫 성과가 가시화되었다.

    연이어 쏟아진 후속 기사는 WH라이프가 개발한 발모제를 높이 평가했다.

    뒤이어 전문가들도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자 WH라이프 주가는 이틀 연속 장중 상한가를 쳤다.

    2028년 기준 전 세계 3억 명이 넘는 탈모인들은 독일과 미국, 한국 식약청에서 동시에 임상을 진행한 발모제 ‘비단’에 희망을 걸었다.

    WH라이프는 그 전부터 준비해 오던 제품 출시에 박차를 가했고.

    연구원 배도진이 강력히 추천한 두 사람과 홍보모델 계약 관련 미팅을 진행 중이었다.

    “비단은 이미 여러 기준을 통과하여 효과를 입증받았습니다. 큰 관심을 받는 만큼 WH라이프에서도 자체적으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고요. 탈모 환자들의 희망이라고 자신합니다.”

    소파에 오른팔을 걸친 채 박종호 전략마케팅팀장의 설명을 듣던 가우왕이 그의 말을 잘랐다.

    몹시 언짢은 기색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복잡한 말 필요 없고. 그 발모제를 홍보해 달라 이 말 아닙니까.”

    “하하. 맞습니다.”

    박종호 팀장이 넉살 좋게 답하자 가우왕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고. 여기 이 인간이면 몰라도.”

    평소 같았으면 가우왕의 건방진 발언에 역정을 냈을 테지만.

    이미 비단에 혼을 빼앗긴 마누엘 노이어의 귀에 가우왕의 헛소리가 들어올 리 만무했다.

    마누엘 노이어가 박종호 팀장에게 물었다.

    “홍보하는 거야 좋은데 먼저 괜찮은지 좀 써 봐야 하지 않나 싶네요.”

    “물론이죠.”

    박종호 팀장이 눈치를 주자 동행한 팀원이 테이블에 ‘비단’을 올려두었다.

    마누엘 노이어의 눈이 탐욕으로 차올랐다.

    그가 이미 틀렸음을 확인한 가우왕이 일어섰다.

    “아무튼 난 일 없으니 이야기 잘들 나누쇼.”

    “가우왕 씨.”

    박종호 팀장이 일어서 가우왕을 불러세웠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박종호 팀장이 사원일 적 다년간 클라이언트와 고객을 설득했던 경험을 발휘했다.

    “탈모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가우왕이 눈을 부라리며 박종호를 노려보았다.

    “탈모. 아니라고요.”

    “저를 속일 순 있지만 본인을 속일 순 없죠.”

    “뭐라고?”

    가우왕이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릴 듯 다가갔지만 박종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손을 머리로 가져갔다.

    가발이 벗겨지고 그의 맨들맨들한 두피가 드러난 순간 가우왕의 화가 다소 누그러졌다.

    “…….”

    “저는 압니다. 이 고통을 알아서, 저희 연구진이 개발한 발모제를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가우왕이 박종호 팀장을 노려보았다.

    확신에 찬 그의 눈빛은 가우왕을 조금도 피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직시했다.

    “이 약이. 이 비단이 정말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것이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기 위해 말씀드립니다.”

    박종호 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십시오. 가우왕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가우왕이 망설이자 노이어가 그를 달랬다.

    “왕, 이건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모든 사람이 너처럼 머리를 심을 수 없어.”

    “시끄러워.”

    가우왕이 혀를 차곤 다시 앉았다. 반복해 고민하고 망설인 끝에야 선심 쓰듯 말했다.

    “꼬맹이 때문에 하는 거야.”

    “감사합니다.”

    박종호 팀장이 시원하게 답하자 마누엘 노이어가 속으로 감탄했다.

    ‘누가 물주인지 모르겠네.’

    1년간 홍보모델로 큰돈을 벌 기회를 단호히 거절하려 했던 가우왕도 대단했고.

    그렇게 건방진 가우왕을 설득한 박종호 팀장의 영업력과 반들반들한 두피도 대단했다.

    ‘뭐, 어찌 되든 좋지만.’

    생각을 마친 마누엘 노이어는 귀가하자마자 오늘 받은 비단을 곧장 발라보리라 마음먹었다.

    * * *

    [배도빈입니다]

    안녕하세요. 배도빈입니다.

    입대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지난날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지키고자 인사드립니다.

    우선 현역 입대가 불가능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병무청의 요청에 따라 총 네 번의 검사를 받았으며 후유증이 재발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와 명예를 다하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국방 의무를 다하신 분, 지금도 이행하고 계신 분들과 마음만이라도 함께하고자 가능한 영역에서 손을 보태려 합니다.

    베를린 기준 오늘 14시 대한민국 육군, 해군, 공군에 작은 성의를 전달했고 추가적인 지원 방법을 논의 중입니다.

    국가 방위에 힘쓰는 군인 장병 여러분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겠습니다.

    다음은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지난 일요일, 베를린 필하모닉 나윤희 악장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몇 년간 함께하며 자연스레 생긴 마음이 무엇보다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힘차게 노래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도, 용기 있고 현명하며 아름다운 여성으로서도 깊이 사랑합니다.

    축복해 주실 분도 서운해하실 분도 있을 테죠.

    어떻게 생각하시든 짧게는 하루, 길게는 20년간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항상 감사합니다.

    배도빈 팬 카페 콩깍지를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 팬 카페에 배도빈의 입장문이 게시되었다.

    지지와 반대 여론을 떠나 대부분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이럴 줄 알았어ㅠㅠㅠ

    └첨 봤을 때는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제 연애도 하네. 하, 세월.

    └마왕님 연애하신다!

    └솔직히 둘이 너무 잘 어울림.

    └그 전부터 만났던 거 아냐?

    └놀라서 기사 찾아봤는데 아직 뜬 거 없네. 진짜 여기에 젤 먼저 썼나 봐.

    └약속 잘 지키는 우리 마왕님.

    └나윤희 양심 좀 있어라. 어떻게 9살 차이 나는 애를…….

    └여기 비하나 모욕 발언 금지임.

    └내가 욕이라도 씀?

    └누가 너보고 양심 좀 있으라고 하면 기분 좋아? 비속어가 들어가야 욕이야?

    └방금 제목만 붙은 기사 올라옴ㅋ

    └도빈아아아아ㅠㅠㅠㅠ 누나는 너 못 보내ㅠㅠㅠㅠ

    └[마왕님] 핸드크림 잘 쓰고 있어요.

    └헐. 도빈이가 답글 달았어.

    └미쳤다

    └가짜 아님?

    └저분 매년 조공 인증하더니 도빈이도 기억하나 보네. 부럽다.

    └안 돼ㅠㅠㅠ 핸드크림 100개씩 보낼 테니까 그러지 마ㅠ

    └[마왕님] 100개나 필요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단호햌

    └배도빈 맞넼ㅋㅋㅋ

    └안 돼ㅠ 결혼은 하지 마ㅠ 결혼은 안 돼ㅠ

    └[마왕님] 저번에 보낸 편지에 결혼하셨다면서요.

    └헐. 진짜 편지 다 읽나 봐.

    └응응 ㅠㅠㅠㅠ 아 나 미치겠다. 지금 이거 꿈 아니지? 도빈이가 답글 달아주고 편지도 기억하고 선물도 언급해 주고ㅠㅠ

    └[마왕님] 결혼 축하해요.

    └[마왕님] 다른 분들도 기억합니다. 매번 사진 찍어 주시는 분도 편지 모아서 보내주신 분도, 그 편지 써 주신 분 모두요.

    └[마왕님] 축하받고 축하하고 싶어서 들렸어요. 다들 남자친구, 여자친구, 결혼 축하해요.

    └[마왕님] 다음 공연에서 또 같이 놀아요.

    └그런 거 안 키우는데.

    └그런 거 다 있는 것처럼 말하면 안 돼ㅠ

    └고마워요ㅠㅠㅠ 저도 축하해요.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안 축하해요 ㅠㅠㅠㅠ

    └나간 듯?

    └아니……. 갑자기 이렇게 뼈 때리고 가면 어떡해.

    └괜찮아. 아직 안 태어나서 그렇지 태어나기만 하면 나도 바로 연애할 것.

    20년이나 활동한 만큼 배도빈의 팬층은 여러 연령대를 아울렀다.

    특히나 배도빈이 처음 주목받았을 당시 10대, 20대였던 사람들은 어느덧 직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았다.

    부모가 된 경우도 있었다.

    배도빈은 나윤희를 욕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그들을 축복하는 것으로 대신했고.

    팬들도 그 마음을 이해했다.

    다음 공연에서도 같이 놀자는 말로 그들과의 연결고리가 여전히 굳건함을 알렸기에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으로 소통하는 관계.

    배도빈이 무대에 오르는 한.

    팬들이 공연장을 찾는 한 그 관계가 깨질 리 없었다.

    모든 팬이 납득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진솔한 모습을 보인 덕에 많은 사람이 배도빈과 나윤희를 응원하고 나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쉼 없이 올라오는 글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일단 안도한 나윤희가 핸드폰을 접으려 할 때 배도빈의 눈에 이상한 광고창이 들어왔다.

    “잠깐만요.”

    “응?”

    배도빈이 눈을 의심하며 화면을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찰빈마마 vs 왕빈마마 3차전’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뭔 말이지?”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소싯적 팬 활동을 제법 해봤던 나윤희는 본능적으로 배도빈이 봐선 안 될 게시글 같다고 느꼈다.

    “찰? 왕? 이거 찰스랑 가우왕 말하는 거죠?”

    나윤희가 말리기도 전에 배도빈이 제목을 터치했고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의 요관을 소중히 하세요]

    [찰스 브라움이 소개합니다]

    [건강한 요관 만들기]

    [용사님, 용사님, 일어나세요]

    [이 광고는 독일 비뇨기협회가 주관하는 공익광고입니다]

    나윤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예상했던 게시물은 아니었지만 침대 위에서 우아함을 뽐내는 찰스 브라움과 그 문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입을 벌린 채 눈을 깜빡이던 배도빈이 화면을 내리자 이번에는 인터넷 신문 기사를 볼 수 있었다.

    [비단 대대적 홍보 시작! 모델은 가우왕]

    [가우왕, “탈모 아니라고.”]

    [비단 첫 홍보모델에 가우왕, 마누엘 노이어]

    WH라이프는 지난 21일, 피아니스트 가우왕과 바수니스트 마누엘 노이어와 모델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WH라이프는 하반기 출시가 예정된 발모제 비단이 글로벌 사회에 큰 힘을 줄 수 있다며, 가우왕과 마누엘 노이어가 큰 힘이 되어줄 거라고 덧붙였다.

    지난날 극심한 스트레스로 탈모를 겪었던 가우왕 씨가 탈모가 지속되었음을 밝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세상엨ㅋㅋㅋㅋㅋ뭔가 했더니 주접대전ㅋㅋㅋㅋㅋㅋ

    └아, 연재 중인 만화 아니었네.

    └헐! 왕자님 왤케 멋있게 나왔어

    └찰스 처음엔 화내더니 공익 위해서 모델도 하네. 진짜 리스펙트.

    └아닠ㅋㅋㅋㅋ탈모 아니라면서 왜 발모제 모델 하는뎈ㅋㅋㅋㅋㅋ

    └진짜 얘들 음악 안 했어도 예능으로 성공했을 듯ㅋㅋㅋㅋㅋ

    └찰스가 인물은 인물이다. 마흔이 넘었는데 진짜 존잘이네.

    가장 아끼는 두 단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팬들의 반응을 확인한 배도빈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악단 안에서만 두기에 두 사람의 능력이 너무나 아까웠던 터라 외부 활동에 제약을 걸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 * *

    [배도빈, 800억 원 통 큰 기부!]

    오늘 오전 10시 국방부가 음악가 배도빈이 800억 원을 기부했음을 밝혔다.

    국방부 대변인은 현역 입대가 불가능한 배도빈 씨가 장병들의 생활 개선 및 복지에 써 달라는 뜻으로 기부금을 전달했다며 소식을 전했다.

    이어 배도빈 씨가 액수를 밝히길 꺼렸지만 너무나 큰 금액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리고자 논의 후 발표하게 되었음을 덧붙였다.

    한편 이준경 국방부 장관은 배도빈 씨의 마음이 헛된 곳에 쓰이지 않을 것이며, 기부금 사용처와 내용을 빠짐없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른 아침.

    유력 일간지 헤드라인과 각 방송국 아침 뉴스는 모두 배도빈의 기부로 꾸며졌다.

    민간인이 국방부에 기부하는 일이 드물진 않았으나 8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왕 클라스 미쳤고요

    └F35 전투기도 사겠네;;

    └2020년에 대당 7,100만 달러 주고 샀으니까 진짜 전투기 값이넼ㅋㅋㅋㅋㅋ

    └800억 지렸고요.

    └좋아하던 팬티였는데…….

    └현역 간다고 언플하더니 결국 돈으로 해결하네ㅋ

    └너 팔아도 전투기 유리값도 안 나옴.

    └난 왜 불안하냐. 저 돈 이상한데 쓰일 것 같아 ㅠㅠ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그런 거 안 되지. 국방 관련 범죄는 무조건 법정 최고형량이고 기무사도 완전히 독립 개편됨.

    └사용 내역 다 공개한다잖아.

    └배도빈한테 800억이 돈이겠어?

    └경제관념하곤ㅋㅋㅋㅋㅋㅋ 아랍에미리트 왕자한테도 800억 원은 커ㅋㅋㅋ

    └진짜 마음 크게 먹었네.

    └안 돼……. 예전엔 그래도 키라도 작고 군대라도 안 갔는데 이래 버리면…….

    └괜찮아. 너도 눈 두 개 코 하나일 거 아냐. 배도빈하고 다를 거 없음.

    배도빈과 최지훈의 입대 의지 표명.

    그의 눈이 아직 다 낫지 않은 점.

    현역으로 입대하게 생긴 최지훈.

    배도빈이 바이올리니스트 나윤희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식과 찰스 브라움의 공익광고, 가우왕의 발모제 홍보 모델 발탁.

    거기에 배도빈의 통 큰 기부까지 클래식 음악계가 한시도 쉬지 않고 시끌벅적하던 중.

    세계인이 가장 주목한 일은 WH라이프가 개발한 신약이었다.

    ‘비단’은 배도빈 외 그 누구도 얻지 못했던 인류의 희망이란 타이틀이 붙으며 탈모인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얼마나 효과적인지, 대체 언제 출시하는지 WH라이프는 고객과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대응하느라 분주했고.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서 핵심 기술을 고안해낸 천재 배도진에게 관심이 쏠렸다.

    유장혁 회장의 외손자인 만큼 WH라이프 생명연구소에서 일하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만 10세에 불과한 배도진이 대체 어떻게 비단의 핵심 기술을 고안해낼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었다.

    배도진을 단순히 배도빈의 동생이라고만 인식하고 있던 사람들은 새롭게 알려진 정보에 긴가민가했다.

    [배도빈 동생, 일찍이 천재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악단주 배도빈의 동생 배도진이 최근 화두에 오르고 있다.

    WH라이프가 개발한 발모제 비단의 핵심 기술을 고안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탓이다.

    그렇다면 2017년생, 올해 생일이 지나며 만 10세에 불과한 배도진은 어떻게 WH라이프의 연구원이 될 수 있었을까.

    배도진이 언론에 처음 언급된 것은 2023년 베를린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을 때다.

    당시 만 6세의 배도진은 2022년 한 차례 대학 입시에 떨어진 경험을 원동력 삼아 이듬해 베를린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한다.

    2024년 돌연 분자생물학과를 복수 전공하는데 그 이유는 배도빈의 개인 SNS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진이가 푸르트벵글러의 머리카락을 고쳐 준다고 했다. 그때까지 푸르트벵글러가 살아 있을까. 크노퍼스부터 압수해야겠다.’

    -배도빈 페이스노트 中-

    위 게시물처럼 친형인 배도빈조차 배도진이 고작 6년 만에 탈모 치료제를 만들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베를린 대학에서는 일찍이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있던 정황이 제보되었다.

    베를린 대학 분자생물학과 브라운 호퍼 과장 교수는 두 학기 내내 최하위 성적을 내던 배도진이 세 번째 학기부터는 단 한 번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다며 그의 천재성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브라운 호퍼 교수는 현재 WH라이프 연구소장으로 겸직하고 있으며 배도진을 6년째 지도하고 있다.

    배도진의 대학 성적 및 논문 그리고 학계 권위자들의 증언이 알려지면서 대중은 더욱 배도빈 일가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10살 때 베를린 대학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했다고? 수석으로?

    └어떻게 된 집안이야;;

    └이건 좀 말이 안 되는데. 음악이야 어렸을 적부터 재능 보이는 사람이 많다지만 이공계 쪽에서 그럴 수가 있나?

    └음악에도 많음? 배도빈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ㅇㅇ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성인 되기 전부터 지휘하고 다녔음.

    └크리스틴 지메르만도 18살에 쇼팽에서 만장일치로 우승했지. 지메르만 최연소 우승 기록 깬 건 배도빈이랑 최지훈뿐인데 무려 40년 뒤에 깨진 거야.

    └다니엘 바렌보임은 7살에 연주회 열었음ㅋㅋㅋㅋ

    └근데 어렸을 적부터 유명했던 사람은 진짜 많아. 보통 4살, 5살 때부터 피아노 배우고 함. 10살 때 어디 오케스트라랑 협연 이런 기록도 많고.

    └그래도 배도빈 4살은 이해하기 힘든데.

    └그분은 개중에도 특별하신 분.

    └이거 부정 아니냐? 상식적으로 6살에 대학 입학하고 복수전공까지 하다가 10살에 졸업하는 게 말이 되냐고.

    └그렇게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근데 이미 성적표나 논문 같은 증거가 다 나옴.

    └조작일지 누가 알아. WH그룹 회장 손자인데.

    └꼭 이런 놈들 있더라.

    └쟤들은 그냥 믿고 싶은 것만 믿으니까 암만 증거 보여줘도 효과 없음.

    └진짜 저런 애들 지긋지긋하다.

    └20년이나 관리했는데도 모르는 애들이 많네. 진짜 조심해. 배도빈 가족한테 악플 달았다가 벌금 받았다는 인증 엄청 있어.

    └난 그런 거에 안 쫄아.

    └아직 어린 거 같은데 범죄를 망설이지 않는 건 멋지지 않아. 멍청한 거야.

    └다른 정황이 없으면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대학이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증명했구만 뭘 더 의심해.

    └애초에 배도진이 의심받을까 봐 유장혁이랑 배도빈이 미리 기사 풀었을지도 모르지.

    └응.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너 같은 인간 때문에.

    * * *

    맑디맑은 하늘 아래 치솟은 궁전에 배도진, 차채은, 최지훈, 진달래, 프란츠 페터, 알베르트 페터, 산타 웨인, 죠엘 웨인이 눈을 빛냈다.

    뾰족한 푸른 지붕과 성 이곳저곳에 높이 쌓인 탑까지.

    판타지를 지양하는 고딕 양식의 성은 디자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였다.

    “우와아아아아!”

    “사진!”

    “형! 저기 버즈! 버즈 라이트세컨드!”

    “헤힛!”

    디자인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을 보는 배도빈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항상 단정하고 차분했던 죠엘 웨인마저 감격한 나머지 동생과 여기저기 구경하기 바빴다.

    “죠엘도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응?”

    배도빈은 제법 들뜬 나윤희를 보고 웃었다.

    아이들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뛰어다니진 않았지만 생기 넘치는 눈빛과 벅찬 표정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놀이공원 좋아해요?”

    “디자인랜드잖아!”

    나윤희가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힘차게 답했다.

    그녀의 말대로 디자인랜드는 어쩔 수 없었다.

    전 세계 모든 아이의 꿈.

    그리고 아이였던 모든 어른이 꿈꾸었던 디자인랜드.

    1997년생인 나윤희도 ‘Let me up’을 듣고 부르며 자랐고, 토이 사가 4편을 본 뒤 1편부터 찾아서 보았다.

    “아핳핳학학핳!”

    “알! 천천히 가!”

    “빨리 와!”

    노먼 감독과의 강행군에서 잠시 벗어난 프란츠 페터도 동생을 말리는 걸 포기하고 즐기기 시작했다.

    “형! 나 저기! 저기 가고 싶어!”

    배도진이 달려와 형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쥐돌이 모양의 구조물에는 월드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저기가 뭔데?”

    “맥스 테마 캠퍼스랑 스타피스랑! 얼음왕국이랑! 또! 호수랑! 어, 또! 어트랙션이랑!”

    배도진이 허겁지겁 설명했지만 배도빈은 동생의 말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알았어. 잠깐만.”

    “누냐, 쩌기.”

    “어디? 저기?”

    산타 웨인도 붉고 푸른 돌과 그 위의 수풀로 미로처럼 이루어진 공원을 가리켰다.

    배도빈이 동생을 잡아두고 주변에 말했다.

    “다들 잠깐 모여 봐.”

    배도빈이 아이들을 불렀지만 흥분할 대로 흥분한 아이들이 통솔될 리 없었다.

    배도빈이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말 안 들으면 돌아갈 거야.”

    모이라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아이들이 후다닥 달려왔다.

    근질대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들의 집중력이 얼마 못 버틸 것 같았다.

    “형, 누나하고 떨어지면 안 돼. 이유는 프란츠가 잘 알겠지?”

    이탈리아에서 길을 잃었던 프란츠가 고개를 숙였다.

    “파크부터 가고 싶은 사람 있어?”

    “저요!”

    진달래, 차채은, 페터 형제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이들 인솔을 위해 데려온 차채은과 진달래마저 신을 내니 배도빈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내가 데려갈게!”

    진달래와 차채은이 페터 형제를 끌고 달리자 최지훈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저쪽에 붙을게.”

    “너라도.”

    배도빈이 가장 신뢰하는 최지훈에게 너라도 아이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기도 전에 최지훈이 달려갔다.

    “……괜찮겠지.”

    배도빈은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며 웨인 남매와 배도진 그리고 피앙세와 함께했다.

    월드 디자인 스튜디오 파크로 향하길 얼마간. 곧 터콰이즈 색상의 거대한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부로 들어서자 배도진과 산타, 죠엘, 나윤희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분명 건물 안으로 들어섰는데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도시 한복판에 이른 듯했다.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간판이 이국적이고 판타지스러운 건물로 발길을 이끌었고.

    대형 건물 안에 있는 기념품을 팔기도, 음식을 팔기도 하는 작은 상점들에 일행은 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형, 나 저거 사 줘!”

    “들고 다니기 힘들잖아. 나갈 때 사.”

    “으으으응. 지그음. 내가 들고 다닐게. 응?”

    “안 돼.”

    배도진이 울먹이려고 하자 나윤희가 소년과 산타의 머리에 머리띠를 씌워 주었다.

    금세 기분이 좋아진 배도진과 산타가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고 나윤희에게 인사한 죠엘이 황급히 뒤를 쫓았다.

    배도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배도진이 기관사 복장을 한 직원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거 재밌어요?”

    배도진의 말에 직원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죠엘이 나서서 통역해 주었다.

    “그럼. 하지만 무서워서 용감하지 않은 친구는 타기 어렵지.”

    “저 용감해요! 그치, 산타 형!”

    “헿. 응. 도진이 용감해.”

    배도진과 산타 웨인이 몸을 들썩이며 안달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직원이 배도빈과 나윤희를 알아보곤 깜짝 놀랐다.

    배도빈은 그에게 눈인사를 건넸고 그를 발견한 여러 사람과 같이, 가족과 휴가를 즐기는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대기실은 고풍스러운 호텔 내부처럼 꾸며져 있었다.

    베이지색 벽과 짙은 갈색 바탕의 카펫을 은은한 조명이 비추었다. 곳곳에 조각품과 소파 등이 놓여 그것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당장 놀이기구를 타고 싶었던 배도진과 산타 웨인도 내부를 구경하며 재잘대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죠엘 웨인이 배도빈에게 거듭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일 아니에요.”

    “별일이에요. 저도 정말 와 보고 싶었거든요.”

    죠엘 웨인의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도진이도 친구들이랑 같이 오는 게 더 좋다고 했으니까 부담 느끼지 말아요. 죠엘이 있어서 편하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죠엘이 장식품에 손을 대려는 산타와 배도진을 말리러 가자 나윤희가 입을 열었다.

    “데려오길 잘한 것 같아.”

    “그러게요.”

    산타와 함께 배도진의 얼굴에선 한시도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어릴 땐 친구도 없이 어쩌나 싶었는데.”

    배도빈이 동생을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피앙세가 웃고 있었다.

    “왜요?”

    “어머님 생각이 나서.”

    배도빈이 이해하지 못하자 나윤희가 이야기를 좀 더 풀었다.

    “너 어렸을 때 그런 걱정 많이 하셨대. 너무 특별해서 친구 사귈 환경도 마땅치 않은데 성격도 나빠서.”

    배도빈이 눈썹을 찌푸렸다.

    과거와 비교하면 나름대로 부드럽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래도 지훈이나 채은이, 달래, 아리엘처럼 친구도 사귀니까 안심하셨대. 도진이는 성격도 밝으니까 문제없을 거라고.”

    “다 좋은데 거기에 얀스가 왜 들어가요?”

    “아니야?”

    “아니에요.”

    나윤희는 두 사람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외골수고 음악에 미쳐 있으며 나이도 비슷하니 친하게 지내길 바랐지만 굳이 강요하지는 않았다.

    배도진과 산타는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배도빈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돼요.”

    “아리엘?”

    “어머니요.”

    나윤희가 본심을 들킨 것 같아 웃었다. 겨우 진정하곤 물었다.

    “응. 어떤 게?”

    배도빈이 동생을 보며 말했다.

    “걱정되더라고요. 너무 똑똑하다 보니 또래랑 대화가 안 통하는 거예요.”

    “아.”

    “그나마 집에서는 들어주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어야죠. 한글보다 수학을 먼저 배웠으니 뭐라 하는지도 모르겠고. 자기 딴에도 답답했을 거예요.”

    배도빈은 해맑게 웃는 동생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대학부터 가는 게 정말 옳은지 걱정했어요. 혼자인 게 얼마나 외로운지 아니까.”

    나윤희가 배도빈의 손을 꼭 잡았다.

    다시 태어난 후로 단 한 번도 외로운 적 없었고, 이미 200년도 더 된 일을 언급할 뿐이었으나 그것을 모르는 나윤희는 그가 천재가 필연적으로 느끼는 고독을 고백하는 것 같았다.

    배도빈이 슬쩍 웃으며 호응했다.

    “그래도 저렇게 밝게 자라더라고요. 처음에는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님 덕분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랑을 받으면 외롭다고 생각할 수 없으니까.”

    “응.”

    나윤희가 배영준, 유진희 부부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 같은 게 없었어요. 좋아하는 일은 얼마든지 하게 해주고, 혹시나 부담 느낄까 봐 언제든 그만해도 된다고 하셨으니까.”

    배도진이 배도빈과 나윤희에게 다가와 죠엘 웨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함께 사진을 찍고 후다닥 달려가 잘 나왔는지 확인하는 동생을 보며, 배도빈이 말을 이었다.

    “그때는 그저 걱정이 많으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너무 빨리 큰 관심을 받은 도진이가 혹시 그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을 때 마음 편히 다른 길을 갈 수 있었으면 해요.”

    “아깝지 않을까? 그렇게 재능 있는데.”

    배도빈이 고개를 저었다.

    “재능보다 관심이 더 중요해요. 재능이 있다고 무리시키고 싶지 않아요. 평범하더라도. 혹은 조금 모자라도 내 동생이니까.”

    나윤희가 슬며시 웃었다.

    배도빈이 동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언론과 많은 사람에게 희망으로 불리는 동생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가족이기에, 사랑하기에 할 수 있는 걱정이었다.

    아마 같은 경험을 미리 했던 그라서 더 우려하는 듯했다.

    “부담스러웠어?”

    피앙세의 질문에 배도빈이 피식 웃었다.

    “처음에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응.”

    “나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다고 하는 아이들이 생기면서 부담스러웠죠. 미래의 음악가들이 실망하게 둘 순 없으니까.”

    “응. 너무 멋진 선생님이었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배도빈이 피식 웃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엔 우리 아이도 사랑해야지. 무엇을 좋아하든 자기 길을 찾을 때까지 지켜줘야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배도빈이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곧 터질 것 같은 나윤희를 볼 수 있었다.

    “왜 그래요?”

    나윤희가 힘내서 입을 열었다.

    “너무 빨라…….”

    “빨라요?”

    나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이런 곳도 오고 싶고. 여행도 하고 싶고.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고 싶기도 하고. 산책도 하고 싶고 저녁 먹고 영화도 보고 싶은데…….”

    배도빈이 씩 웃었다.

    “나도 그래요.”

    나윤희의 얼굴이 금방 밝아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과 믿음이 가득해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저런 면도 있으셨네.’

    한편 죠엘 웨인은 생전 처음 보는 다정함에 놀랐다.

    언론에 알려진 악마 같은 이미지와 퇴폐적이고 날카로운 외견과 전혀 달랐다.

    따뜻한 사람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나윤희를 대할 때는 또 달라 보였다.

    그 옆에 배도진과 산타 웨인이 눈을 깜빡이며 배도빈, 나윤희를 바라보다가 이내 관심을 돌렸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 올라가요? 꽤 올라왔는데.”

    배도빈의 질문에 나윤희가 스마트폰을 꺼내 헐리포레스트 타워 호텔을 검색했다.

    “자이로드롭 같은 건데 멈추는 곳이 무작위래. 여러 가지 층을 보여주려고 그런 거 아닐까?”

    “자이로드롭?”

    유원지에 관한 정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배도빈이 되물었다.

    “응. 떨어지는 거.”

    배도빈이 고개를 갸웃하자 나윤희가 웃으며 영상을 검색해 보여주었다.

    자이로드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한 배도빈의 미간이 잔뜩 찌그러졌다.

    “이걸 사람이 탄다고요?”

    “응. 재밌어.”

    배도빈이 슬쩍 신난 동생과 산타 웨인을 보았다.

    “쟤들이 타도 돼요?”

    “응. 키도 넘었고. 나이도 괜찮아.”

    배도빈이 몹시 미심쩍은 표정으로 자이로드롭 영상을 확인했다.

    나윤희가 웃으며 물었다.

    “무서워?”

    “무섭긴요.”

    “정말?”

    나윤희가 되물으니 배도빈이 화제를 돌렸다.

    “이런 걸 대체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해요?”

    “응. 좋아해.”

    “그대로 떨어지면 죽는데?”

    나윤희의 웃음보가 터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받는 그가 놀이기구 앞에서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

    그의 인간적인 면을 본 듯해 마냥 즐거웠다.

    그녀가 맞잡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손잡고 타면 안 무서울 거야.”

    “…….”

    배도빈은 못마땅했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끝내 나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뒤.

    작은 영화관 같은 기구에 올라탄 배도빈은 놀이기구의 안전에 의문을 던졌다.

    “수십 미터에서 떨어지는데 이 낡은 안전 벨트가 버틴다고?”

    나윤희가 웃으며 안전 벨트를 대신 채워주었다.

    “히힣! 재밌겠다! 그치, 형!”

    “제대로 매. ……꼭 타야겠어?”

    “응! 꼭!”

    “…….”

    충분히 즐기려면 테마별로 하루는 잡아야 한다고 들어서 사흘이나 할애했거늘.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던 그는 디자인랜드에 데려와 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배도빈은 왼손으로 배도진을, 오른손으로 나윤희를 붙잡고 있다가 눈을 크게 떴다.

    * * *

    “아핳핳하하핳!”

    “헤헿.”

    “재밌었지!”

    “네!”

    헐리포레스트 타워 호텔을 타고 나온 배도진과 산타, 죠엘 그리고 나윤희가 함박웃음을 짓는 한편, 배도빈은 넋이 나간 채 터벅터벅 걸었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벤치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나윤희가 놀라서 그가 조금이라도 편히 누울 수 있도록 다리를 받쳐주었다.

    “형, 괜찮아?”

    배도진이 걱정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뽀스.”

    “보스.”

    산타와 죠엘도 걱정하긴 마찬가지였다.

    배도빈이 손을 흔들었다.

    “형 좀 쉴 테니까 죠엘 누나 말 잘 듣고 다녀. 떨어지면 안 돼.”

    “…….”

    배도진은 놀이기구도 잔뜩 타고 싶었지만 형이 더 걱정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에 배도빈이 피식 웃었다.

    “가서 놀아. 곧 따라갈 테니.”

    “그래두.”

    “괜찮아. 죠엘, 부탁해요.”

    “네. 나 악장님…….”

    “네.”

    세 사람이 떠나고 배도빈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실 거 사 올까?”

    차가운 음료가 진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물었다.

    배도빈이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조금만 있어요.”

    나윤희가 약혼자를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 일을 떠올려, 그가 떨어지는 데 트라우마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타인 앞에서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자진해서 누워버릴 정도면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가 아닐 것 같았다.

    “들어가자.”

    배도빈이 눈을 떴다.

    걱정이 잔뜩 어린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좀 놀랐을 뿐이에요.”

    “응.”

    “단둘이 있으니 좋은데.”

    배도빈의 농담에 더는 얼굴을 굳히고 있을 수 없었다.

    배도빈이 나윤희의 얼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주변의 시선을 느낀 나윤희가 이제는 버릇처럼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의 손을 잡았다.

    “부끄러운데…….”

    배도빈이 웃으며 손을 내렸다.

    -다시 태어난 베토벤 앙코르 2권에 계속-

    다시 태어난 베토벤 앙코르

    2

    우진 현대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7. 음악 여행

    8. 훈련병의 편지

    9. 파우스트

    10. 앞으로 더 앞으로

    부록: 플라워위키 배도빈

    부록: 인물 설정

    부록: 1부에 등장한 곡 목록

    부록: VARLOG THEME SONG

    부록: Garland theme - Origin

    부록: Black knight sa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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