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57화 (557/564)
  • 3. 불새는 죽은 뒤에 더욱 찬란히

    [크리스틴 노먼, “이어 원은 블랙 나이트 사가 중 가장 매력적인 서사가 될 것.”]

    [크리스찬 에일, “완벽한 시나리오.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란츠 페터 생방송 중 넘어져]

    <이어 원>의 제작 발표회 후, 블랙 나이트의 팬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 클래식 음악 팬들은 다른 이유로 즐거워했다.

    바로 1차 예고편과 함께 게시된 차채은의 칼럼 때문이었다.

    [“넘어져도 괜찮다.” 스승이 바라본 프란츠 페터]라는 제목의 칼럼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본문과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괜찮아!

    └세상엨ㅋㅋㅋㅋㅋㅋ

    └배도빈 예언 봨ㅋㅋㅋㅋㅋ 돗자리 펴야 할듯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 엄청 훈훈한 이야기였는데 어제 프란츠 넘어지는 것 때문에 안 웃을 수가 없넼ㅋㅋㅋㅋ

    └잘 됐지 뭨ㅋㅋㅋㅋㅋ 블랙 나이트 팬들도 페터 곡 좋아하곸ㅋㅋㅋ

    프란츠는 자동 번역된 댓글을 보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너무나 창피해서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스승 배도빈이 자신을 생각한 마음에 감동한 한편, 그것을 우스운 이야기로 만들어버린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알베르트가 그런 형을 위로했다.

    “형, 괜찮아?”

    동생의 위로에 이불 속에 틀어박혀 있던 프란츠가 슬며시 물었다.

    “나 어제 많이 창피했어?”

    “아니야.”

    “정말?”

    프란츠가 이불 밖으로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었다.

    알베르트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보스 형도 괜찮다고 했잖아.”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으으으!”

    프란츠 페터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한편.

    열심히 기사를 준비했던 차채은은 글 내용과 무관한 글로 가득 찬 댓글난을 보며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프란츠 페터를 분석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고, 독자 모두 어제 제작 발표회에서의 해프닝과 연결 지어 웃고 있었다.

    멍하니 댓글을 확인하던 차채은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댓글 수를 보고 자세를 바로 했다.

    평균 1,000여 개 정도 달리던 댓글난에는 이미 5,000여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고 그마저도 매분 새로운 댓글이 갱신되었다.

    평소 10만 정도를 이루었던 조회 수도 40만이 훌쩍 넘어 있었다.

    복잡했던 심경이 다소 위로받는 듯했다.

    “……좋은 건가?”

    * * *

    ‘제법인데.’

    찰스 브라움이 진달래의 악보를 보고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고쳐 오라고는 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았거늘. 이 정도면 기대해 볼 법했다.

    “어때? 어떤데?”

    진달래가 재촉하자 찰스 브라움이 악보를 내려놓았다.

    “나쁘지 않네. 맞춰보면 되겠어.”

    진달래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찰스 브라움이 칭찬에 인색한 걸 익히 알고 있었기에 더욱 기뻐했다.

    “진짜? 진짜 좋아?”

    “좋다고 안 했어. 나쁘지 않다고 했지.”

    “그게 그거잖아.”

    최지훈과 나윤희가 호들갑 떠는 진달래를 축하해 주었다.

    왕소소도 작은 미소를 띤 채 진달래의 볼을 꼬집어 기쁨을 함께했다.

    모든 것이 행복했던 그 순간.

    작게 미소 짓고 있던 찰스 브라움에게 때아닌 고통이 찾아왔다.

    갑작스레 찾아온 그것은 날카로운 창처럼 찰스 브라움의 하복부를 관통하고 말았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통증.

    찰스 브라움이 쓰러지고 말았다.

    “끄으으으.”

    밴드 멤버들이 깜짝 놀라 그에게 다가갔다.

    “찰스!”

    “뭐야? 왜 그래?”

    조금 전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찰스 브라움은 대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호소했다.

    사색이 된 얼굴과 입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이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해줄 뿐이었다.

    나윤희가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112번을 눌렀다.

    “여보세요. 네, 사람이 쓰러져서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가 1번지, 네. 베를린 필하모닉 실내악홀이요. 네. 서둘러 주세요.”

    “아저씨! 아저씨! 왜 그래!”

    “안 되겠어. 스칼라, 찰스 좀 들어 봐.”

    나윤희가 구급차를 부르는 동안 진달래와 왕소소는 찰스 브라움이 정신을 잃지 않도록 계속해 말을 걸었다.

    다니엘 홀랜드는 찰스 브라움이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그를 업으려 했다.

    스칼라가 찰스를 부축해 다니엘 홀랜드의 등에 얹었다.

    “끄끄그그그기기긱.”

    비명을 지를 수조차 없었다.

    기괴한 신음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었다.

    “미치겠네. 보통 일이 아닌 거 같은데.”

    다니엘 홀랜드와 스칼라가 함께 찰스 브라움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나섰다.

    진달래, 왕소소, 나윤희가 그 뒤를 쫓았다.

    “예나 씨 번호 알지?”

    나윤희의 질문에 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동의서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나윤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소소가 핸드폰을 꺼냈다. 잠시 후 예나왕이 전화를 받았다.

    -동생~ 들어 봐. 가가가 좀 이상.

    “원래 이상했어!”

    소소가 예나의 말을 다급히 끊었다.

    “찰스가 쓰러졌어. 병원 가는 중이야. 윤희가 수술동의서 필요할 수도 있대서 전화했어.”

    -오빠가? 왜?

    “모르겠어. 어디였지?”

    소소가 고개를 돌려 나윤희를 보았다.

    “샤리테가 제일 가까워.”

    나윤희가 옆에서 대학병원 이름을 알려주자 소소가 다시금 핸드폰에 대고 물었다.

    “들었어? 샤리테 대학병원.”

    -응. 바로 갈게.

    나윤희의 걱정처럼 독일은 한국과 달리 굳이 가족이 아니더라도 수술동의서를 작성할 수 있었지만, 오빠가 쓰러졌단 소식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

    예나왕은 종일 피아노 앞에서 발악하던 남편을 보곤 그가 운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둘러 택시를 잡고자 외투만 걸치고 나서려 하자 가우왕이 의아해하며 따라 나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찰스 브라움의 신음은 계속되었다.

    “어떡해. 어떡해.”

    찰스 브라움의 짐을 챙겨 따라온 진달래가 여전히 괴로워하는 찰스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마침 복도를 지나치던 이자벨 멀핀이 다급히 뛰어오는 단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니엘 홀랜드에게 업힌 찰스 브라움이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

    “찰스!”

    “으으으으윽.”

    멀핀도 걸음을 맞춰 뛰며 찰스의 안색을 살피곤 뒤따라오던 나윤희와 왕소소, 진달래에게 상황을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갑자기 쓰러졌어요. 구급차 불렀는데.”

    나윤희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구급차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찰스! 찰스!”

    이자벨 멀핀이 그를 애타게 부르짖었고 찰스는 괴로워하는 와중에 손짓했다.

    그녀는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그와 함께 구급차에 올랐고 단원들도 곧 다니엘 홀랜드의 차로 뒤를 쫓았다.

    아직 날이 쌀쌀한 어느 저녁의 일이었다.

    * * *

    쨍그랑-

    화분을 닦던 배도빈이 손을 헛짚고 말았다.

    사정없이 낙하한 화분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입맛을 다신 배도빈이 뒷머리를 긁으며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하던 차, 핸드폰이 울렸다.

    나윤희였다.

    슬며시 미소를 띤 채 전화를 받았는데, 평소의 따뜻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도빈아.

    나윤희가 다소 잠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무슨 일 있어요?”

    -응. 찰스 씨가 쓰러지셨어. 지금 샤리테 병원인데.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가 가장 신뢰하는 악장이자 가장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찰스 브라움이 쓰러졌다니.

    지난 몇 번의 경험이 그를 두렵게 했다.

    “지금 갈게요.”

    배도빈이 옷도 챙기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섰다.

    깨진 화분이 떨어진 그대로 식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자동주행 시스템도 끄고 직접 차를 몰던 배도빈이 신호를 받아 정차하곤 핸들을 내려쳤다.

    ‘빌어먹을.’

    단원들의 건강관리는 충분히 신경 써 왔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과로로 쓰러졌던 일과 니아 발그레이, 사카모토가 큰 병을 얻었을 때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에 지출이 얼마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철저히 검진을 받게 해도 문제가 없을 순 없었다.

    런던 그랑프리 때의 뮌데르크와 같이 갑작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 이는 특히 더 신경 썼건만, 설마 젊은 찰스 브라움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안 돼.”

    배도빈이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악연으로 시작된 찰스 브라움과의 인연은 이미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존 악장단이 한두 명 떠나는 시기에 입단한 찰스 브라움은 놀랍도록 훌륭히 악단을 지탱해 주었다.

    최고의 비르투오소란 이름에 걸맞은 연주력으로 무대를 더욱 풍성히 하였으며, 가우왕과 함께 베를린 필하모닉 최고의 프랜차이즈 연주자로서 힘을 빌려주었다.

    더욱이 인재 육성에도 이바지하여 베를린 음악 대학과 연결, 베를린 필하모닉이 신규 단원을 조금이라도 수월히 확보할 수 있게 했으며 현재는 음악교육원장으로서 교육원 설립까지 도맡고 있었다.

    특유의 우아한 음색과 부드러운 감성은 배도빈에게 매번 영감이 되어주었다.

    다른 단원과 달리.

    찰스 브라움은 사업가로서도 음악가로서도 배도빈과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파트너였다.

    까득.

    배도빈이 이를 악다물었다.

    끼이이익-

    차를 거칠게 세운 배도빈이 병원으로 들어섰다.

    핸드폰을 꺼내니 나윤희가 병실 호수를 메시지로 보내두었다.

    401호.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시간마저 기다릴 수 없었던 배도빈이 비상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헉. 헉. 헉. 헉.”

    찰스 브라움의 이름을 확인한 그가 병실 앞에 잠시 멈춰 서 숨을 골랐다.

    그런 뒤 마른 침을 삼키고 노크하려던 찰나, 안에서 기괴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배도빈이 문을 벌컥 열었다.

    “찰스!”

    찰스 브라움이 엉덩이를 내놓고 엎드려 있었고.

    놀란 간호사가 고개를 돌렸다.

    “으기그그그긱.”

    병원에 도착한 찰스 브라움은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 고통에 지쳐갔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동생 예나와 이자벨 멀핀의 목소리가 점점 아득해졌다.

    찰스 브라움은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예, 예나.”

    “응! 여기 있어!”

    “내가 죽으면.”

    “무슨 말이야! 오빠가 왜 죽어!”

    “……죽으면 파, 파이어버드는 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기증해.”

    “찰스…….”

    찰스 브라움이 멀핀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이지…… 미안. 끄으으으윽.”

    “찰스! 찰스!”

    예나와 멀핀이 찰스 브라움을 애타게 부르짖었다.

    예나를 따라온 가우왕이 지나가는 의사를 붙잡고 소리쳤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뭐 하고 있어! 뭐라도 하라고!”

    “보, 보호자분 잠시 진정하시고.”

    “진정하게 생겼어? 죽어가잖아!”

    “왕, 진정해!”

    다니엘 홀랜드와 스칼라가 말렸지만 가족이 위태로운 상황에 금연까지 하고 있는 가우왕을 말릴 순 없었다.

    “이, 이분 검사 결과 아직 안 나왔습니까?”

    의사가 애타게 주변을 둘러보았고 곧 소란을 감지한 경비원이 다가오는데, 한 간호사가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요관결석이네요. 환자분 이동시키게 비키세요.”

    오열하고 좌절하던 일행의 얼굴이 한순간에 멍청해졌다.

    “요관결석?”

    가우왕이 의사를 붙들고 있던 손을 떼고 물었다.

    “네. 안 죽으니까 진정하세요. 여기 병원이에요.”

    예나왕과 이자벨 멀핀도 눈물과 콧물을 훔치며 일어섰다.

    죽을 듯이 아프지만 죽진 않는 병.

    조금 전만 해도 소중한 이를 잃을 거로 생각했던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통증을 겪고 있는 찰스 브라움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으흐기히익끄극.”

    다니엘 홀랜드가 찰스 브라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며칠 고생하면 나아질 거야. 고생하고.”

    “정말 괜찮은 거야?”

    스칼라가 되묻자 경험자 다니엘 홀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괜찮지만 죽진 않아. 자, 치료받을 수 있게 자리 비켜주자고.”

    의료진이 고통스러워하는 찰스를 데리고 병실로 향하자 멀핀과 예나, 가우왕이 뒤를 쫓았다.

    나머지 사람은 그나마 안도하였다.

    긴장이 풀어지니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했다.

    “어차피 정상적으로 대화하긴 글렀으니 돌아가자고.”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어. 원래 저래.”

    다니엘 홀랜드의 말에 밴드 멤버들은 의아해하면서도 발을 옮겼다.

    한편.

    “환자분, 엎드릴 수 있으시겠어요?”

    찰스 브라움이 고개를 젓자 간호사가 가우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두 사람에 의해 엎드리는 도중에도 찰스 브라움은 하복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호소했다.

    “바지 내려야 하니까 보호자분들 잠시 밖으로 나가주세요.”

    멀핀과 예나가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가우왕이 두 사람을 달래어 병실 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윤희를 만났다.

    “안 갔어?”

    “네. 도빈이도 곧 올 것 같아서.”

    가우왕이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그 녀석도 놀랐겠지. 어? 저기 오네. 꼬맹.”

    찰스가 쓰러졌단 소식에 가우왕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배도빈이 일행을 지나쳤고, 말릴 새도 없이 병실로 들어갔다.

    배도빈의 시야에 찰스 브라움의 엉덩이가 들어왔고, 따라온 일행들도 마찬가지.

    좌약을 넣는 순간.

    바이올린의 황제, 고귀한 비르투오소, 파이어버드의 주인이 힘겹게 저항했다.

    “거긴…… 안 돼…….”

    * * *

    잠시 후.

    “토하고 싶으시면 여기에 하세요.”

    찰스에게 수액과 모르핀을 놓은 간호사가 봉투를 하나 두고 나섰다.

    하복부가 창에 꽂히고, 바스타드 소드에 베이는 고통이 끊임없이 이어지던 상황이 다소 진정되었다.

    창 대신 긴 바늘이. 바스타드 소드 대신 부엌칼이 베는 듯할 정도로 고통이 호전되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신이 익히 알고 있던 범주를 한참 벗어난 고통에 비하면 참을 만했다.

    배도빈은 걱정스럽게 찰스를 살펴보며 거듭 물었다.

    “정말 괜찮아요?”

    “안 괜찮아…….”

    “안 죽어요? 안 죽죠?”

    “죽을 것 같아.”

    찰스 브라움의 목소리에 힘이 조금도 없었다.

    배도빈이 이곳이 아니라 자신의 전담 의료진을 불러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하던 차, 가우왕이 입을 열었다.

    “죽을 것만 같고 안 죽어. 요관결석이라고 요도가 막힌 거야.”

    “요도가 왜 막혀요?”

    “노폐물이 뭉쳐서 그래. 예전 매니저가 겪어봐서 들었는데 어마어마하게 아프대.”

    가우왕의 설명을 들은 배도빈이 찰스 브라움을 노려보았다.

    “뭘 주워 먹고 다녔길래 노폐물이 쌓여.”

    속상한 나머지 뱉은 말이었지만 찰스 브라움은 서러웠다.

    진통제를 투여받고 모르핀도 맞고 있지만, 줄어든 고통의 강도는 허리를 망치로 짓이기는 듯했다.

    더욱이 너무나 큰 고통으로 신경 쓰지 못했지만, 치질 이후 신체 중 손 다음으로 가장 소중히 다뤘던 항문에 좌약이 투여되었단 사실이 너무도 치욕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배도빈이 뭘 주워 먹고 다녔냐고 탓하니 서러움을 어쩌지 못했다.

    찰스 브라움이 있는 대로 얼굴을 찡그리자 배도빈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상냥했다.

    “괜찮아질 거예요.”

    “끄으으으으윽.”

    찰스 브라움도 배도빈을 용서하고 힘없이 배도빈의 손을 잡았다.

    나름대로 상황이 훈훈하게 흘러가던 중.

    “아닐걸.”

    가우왕이 초를 치고 나섰다.

    “방광 내시경 하면 죽어. 아니, 죽진 않지만 죽어. 마취할 때도 내시경 넣을 때도 죽는대.”

    예나왕이 가우왕의 등을 철썩 때렸다.

    “자꾸 죽는다고 할래!”

    가우왕이 고통을 호소하며 몸부림쳤다.

    죽을병이 아니라 단지 고통스러울 뿐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나마 안도했거늘, 남편이 불길한 말을 하니 성질이 뻗쳤다.

    “찰스…….”

    이자벨 멀핀이 찰스의 손을 꼭 쥐고 그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예나왕, 가우왕, 배도빈, 나윤희가 잠시 행동을 멈추고 그 모습을 관찰했다.

    직장 동료를 걱정하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네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우읍.”

    찰스 브라움이 손을 뻗었고 놀란 이자벨 멀핀이 봉투를 대주었다.

    속을 게워내는 모습에 가우왕, 배도빈, 나윤희는 물론 동생 예나왕마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이자벨 멀핀이 곁에 있어 다행이었다.

    * * *

    [찰스 브라움! 치질에 이어 요관결석!]

    [황제, 또다시 입원하다!]

    지난 금요일. 베를린 음대 교수,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찰스 브라움(43) 씨가 요관결석으로 입원한 사연이 알려졌다.

    베를린 필하모닉 실내악홀에서 연습 중이던 찰스 브라움은 갑작스럽게 고통을 호소, 샤리테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목격자들은 찰스 브라움이 기괴한 신음을 내며 구급차에 탔다는 사실과 주변인이 너무나 급박해 보였단 일을 SNS상에 올렸고, 한때 찰스 브라움 사망설이 돌았으나 요관결석임이 밝혀졌다.

    그는 지난 2023년 오케스트라 대전 당시에도 중증 치질을 앓아 이탈한 적이 있으며, 이번에는 복귀까지 며칠이 소요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페이스노트, 인스타 등지에서는 찰스 브라움이 하루빨리 결석을 배출하길 응원하는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로부터 사랑받는 찰스 브라움이었기에, 사실이 보도되기 전까지 그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 죽을병에 걸렸다, 이미 사망했다는 등의 루머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의 팬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인터넷 기사를 찾았고 다행히 하루가 지나기 전, 찰스 브라움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접할 수 있었다.

    여론은 치질에 걸렸을 때와 달리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였다.

    팬들은 찰스 브라움의 요관이 건강하길 바란다는 내용을 매일 수천, 수만 번 공유함으로써 응원했다.

    마을 동료로부터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라 재촉받았던 스칼라가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SNS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이걸 보여주면 찰스도 힘 나지 않을까?”

    스칼라의 말에 웃고 떠드는 밴드 멤버들이 고개를 저었다.

    “찰스를 위한다면 절대로 알려주지 마.”

    다니엘 홀랜드가 당부하듯 말하고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나저나 공연은 찰스 없이 해야겠네.”

    나흘 뒤로 예정된 진달래의 첫 곡에 관한 이야기였다.

    “응. 윤희 언니가 전자 바이올린 해주고 소소 언니가 일렉 기타. 내가 베이스 하면 돼. 드럼은 디스카우 아저씨가 해준다고 했어.”

    진달래가 의지를 보였다.

    “그럼 난?”

    스칼라가 나섰고, 다니엘 홀랜드도 마찬가지였다.

    “넌 코러스.”

    “코러스가 뭐야?”

    “후렴구 같이 부르자고. 너 목소리 좋잖아.”

    “내키지 않는데.”

    “시끄러. 홀랜드 아저씨는 나랑 같이 베이스 하자.”

    스칼라가 뾰로통하게 입을 내밀었다.

    “베이스 기타는 다뤄본 적 없는데. 더군다나 전자면.”

    “아냐. 콘트라베이스면 돼. 아저씨라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잖아.”

    “흐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우리 작곡가들 공통점인가 보네. 어디, 해보자고.”

    “그렇게 나오셔야지!”

    진달래가 왕소소, 나윤희의 도움으로 웃고 떠드는 밴드에 맞춰 편곡한 악보를 나눠주었다.

    다니엘 홀랜드가 턱수염을 쓸곤 개인 연습실로 향했고 스칼라는 끝까지 저항했다.

    “하프로도 할 수 있어.”

    “하프는 없어.”

    “그럼 나도 바이올린 할래.”

    “전자 바이올린 다룰 줄 알아?”

    “같은 거 아닌가?”

    스칼라가 고개를 돌리자 나윤희가 그에게 전자 바이올린을 넘겨주었다.

    적당히 자세를 잡고 현을 그어 본 스칼라가 얼굴을 왕창 구겼다.

    “이상해.”

    “울림통이 없는 대신 이걸 써서 그래.”

    나윤희가 웃으며 설명해 주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스칼라가 전자 바이올린을 돌려주었다.

    “하프가 좋아.”

    “하프 소리 하나도 안 들릴걸?”

    진달래가 어깨를 으쓱였다.

    “음량을 줄이면 되잖아.”

    “그럼 힘이 빠지잖아. 실연인데 사운드 빵빵해야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왕소소가 나섰다.

    “하프에도 마그네틱 픽업 달아. 전자 하프도 있고.”

    전자 하프는 그들에게 생소한 이야기였다.

    멤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소에게 집중했다. 소소가 뉴뷰트에 접속, Electric harp로 검색한 뒤 영상을 보여주자 스칼라가 눈을 빛냈다.

    * * *

    입원 이틀째.

    최대한 자주 물을 마셨음에도 결석이 배출되는 일은 없었다.

    소변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찾아오는 극렬한 통증에, 기품 있는 신사이자 고귀한 바이올리니스트 찰스 브라움은 품위를 잃어가고 있었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와 광대까지 내려온 스트레스의 흔적이 그것을 증명했다.

    “부수죠.”

    의사의 말에 찰스 브라움이 깜짝 놀랐다. 마치 요도를, 남성의 소중한 부위를 부수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뭐, 뭐라고요?”

    “자연 배출은 어려운 듯하니 요도에 관을 삽입해 결석을 부수자는 말입니다. 이건 동의서고요.”

    찰스 브라움이 요관경하배석술에 관한 동의서를 읽곤 찡그린 눈썹을 더욱 모았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요도에 상처가 날 수 있단 내용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어떻게 신경 쓰지 말란 겁니까?”

    “혹시 모를 상황일 뿐이에요. 패혈성 쇼크라곤 해도 실제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실제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고요.”

    “못 합니다.”

    찰스 브라움이 고개를 돌렸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이자벨 멀핀이 의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의료진이 병실을 나섰고 멀핀이 찰스를 설득했다.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

    “안 돼. 끄으으윽.”

    멀핀은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고집부리는 찰스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척 예민한 부위다 보니 더는 권할 수 없었다.

    그러고 다시 몇 시간 후.

    찰스 브라움은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통증에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황에도 단원들과 팬을 걱정했다.

    “이지…….”

    이자벨 멀핀이 고개를 돌렸다.

    “연주회는 어떻게 됐어?”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지경에 뭘 걱정하는 거야. 다들 잘하고 있을 테니 신경 쓰지 마.”

    “그래도.”

    찰스는 걱정을 접어둘 수 없었다.

    밴드의 작곡과 편곡을 도맡았던 프란츠 페터가 외주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고, 리더인 자신이 병실에 누워 있으니 분명 어려움을 겪을 터였다.

    “홀랜드 수석이랑 윤희, 소소까지 있잖아.”

    “으윽. 윤희가 전자 바이올린에 익숙하지 않아.”

    “지금 당신보단 낫겠지. 그런 상태로 어떻게 연주하려고.”

    멀핀의 말에 찰스 브라움이 숨을 골랐다.

    확실히 다니엘 홀랜드라면 남은 멤버들을 잘 이끌 테고 공연 준비는 나윤희와 왕소소가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다만 나윤희가 전자 바이올린에 익숙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경험이 풍부한 찰스 브라움은 대규모 솔로 리사이틀에서 팬 서비스로 종종 전자 바이올린을 다뤘지만 나윤희는 경험이 적었다.

    사운드 이펙터를 비롯한 전자음을 다루는 일에 미숙할 수밖에 없었고, 진달래가 만든 곡을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찰스 브라움은 진달래가 처음 곡을 발표하는 자리가 완전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26년 전 처음 곡을 발표할 때를 떠올리면 더욱 그러했다.

    잔뜩 설렌 어린 찰스 브라움은 음원을 등록하고 실연하기까지의 모든 일을 완벽하게 조율하고자 했다.

    다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곡을 처음 대중 앞에 선보이는 일이었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찰스는 진달래도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발표하길 돕고 싶었다.

    그러나 멀핀의 말대로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찰스 브라움이 눈을 감자 멀핀이 웃으며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거동조차 힘들어 누워 있던 그에게는 시원한 천이 주는 청량감이 너무나 달콤했다.

    그가 눈을 감은 채 물었다.

    “팬들은?”

    “……응?”

    이자벨 멀핀이 잠시 멈칫했다.

    찰스 브라움이 눈을 떠 그녀를 보며 물었다.

    “갑자기 공연 못 한다고 하면 걱정할 텐데. 뭐 올라온 거 없어?”

    “그, 그런 거 없던데?”

    “그럴 리가. 으윽.”

    고통에 인상을 쓴 찰스 브라움이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으려 했다.

    당황한 이자벨 멀핀이 그를 바로 눕혔다.

    “지금은 아무 생각 말고 쉬어.”

    “아무리 아파윽도 괜찮다는 말은 해야 걱정 으윽안 하지.”

    “아니야. 지금도 아파하면서 뭘 하려고.”

    낑낑대며 핸드폰을 찾으려던 찰스 브라움이 이자벨 멀핀을 보며 잠시나마 웃었다.

    잔뜩 찡그린 얼굴만으로도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나 대신 글 좀 올려줘.”

    멀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찰스가 핸드폰을 볼까 봐 얼른 낚아챘다.

    찰스 브라움은 그녀가 받아적을 수 있도록 천천히 문장을 불러주었다.

    “찰스 브라움입니다. 불가피하게 며칠간 공연을 쉬게 되었습니다. 끄으으. ……자리를 비우게 되어 크게 실망하셨을 테지만 남은 멤버들이 잘 준비한 공연, 실망하지 으윽 않으실 겁니다. 조만간 무대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멀핀이 찰스 브라움의 개인 계정에 글을 등록하고 잽싸게 덮어두었다.

    초췌해진 찰스는 작게 웃었다.

    “다들 얼마나 걱정하겠어. 갑자기 취소되었는데 이유도 모르니. 다들 날 보려고 기다렸을 텐데. 으흐윽. ……퇴원하면 특별 연주회라도 열어야지.”

    “그, 그러게.”

    찰스 브라움은 자신의 병환이 비밀로 지켜지고 있음을 의심치 않았다.

    연습 도중 갑자기 발생한 일이었고 치질 사건 때 사무국에 철저히 입단속을 요구했었다.

    배도빈도 공식 입장 발표는 뒤로 늦춘다고 약속했으니, 그로서는 400만 명이 참여한 ‘찰스 브라움의 요관을 지키는 모임’을 상상할 수 없었다.

    지난날 그가 해산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던 ‘찰스 브라움의 항문 수호 기사단’보다 무려 300만 명 많은 사람이 모일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찰스 브라움이 멀핀을 보곤 피식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죽을병은 아니라잖아.”

    이자벨 멀핀은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심각한 자아도취병 환자인 찰스가 팬들의 반응을 알게 되면 얼마나 괴로워할지는 뻔했다.

    그녀는 더할 수 없이 상냥하게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응. 걱정 안 해.”

    찰스가 숨을 길게 내쉬어 호흡을 골랐다.

    “물 좀. 줄래?”

    “응. 잠깐.”

    이자벨 멀핀이 물을 가지러 떠난 사이, 찰스 브라움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조금 전 게시한 글에 팬들이 반응하면서 알림이 뜬 것이었다.

    그것은 평소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었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찰스 브라움을 그나마 위로했다.

    탁-

    길게 진동한 핸드폰이 선반에서 떨어졌다.

    찰스 브라움이 핸드폰을 줍고자 상체를 일으키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으윽.”

    대신 팬들이 남긴 댓글 일부가 계속해서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틀째 제대로 뜨지 못했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아.”

    때마침 이자벨 멀핀이 들어섰고 찰스 브라움이 고개를 들었다.

    “……이게 뭐야.”

    찰스 브라움의 목소리가 잔뜩 떨렸다.

    “이게 뭐냐고!”

    그의 울부짖음이 병실을 간절히 채워나갔다.

    * * *

    PrinceCharles 찰스 브라움입니다. 며칠간 공연을 쉬게 되었습니다. 불가피하게 자리를 비우게 돼 크게 실망하셨을 테지만 멤버들이 잘 준비했으니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조만간 무대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제 #근황 #웃고떠드는밴드

    ♥ ⌕ ⤤ ⌂

    조회 21,277회

    └힘내세요 ㅠㅠ

    └찰스의 요도를 위하여!!

    └독일은 찰스 브라움의 요관을 위해 물 정화 사업을 즉각 개시하라!

    └괜찮으세요? 물 많이 드세요 ㅠ

    └솔직히 석회 농도 너무 높음.

    └내가 살다살다 남의 항문이랑 요관을 걱정하긴 처음이지만 응원함.

    └힘세고 강한 요관!

    └♚♚미☆테 비뇨기과 ♚♚ 방문시€€ 1유로 적립☜☜100%증정※ ♜비뇨기과, 항문외과 전문의 상주♜친절¥ 신뢰¥ ★당신의 요관을 소중히 하세요 바로가기

    └ㅋㅋ그만해ㅋㅋ미친놈들앜ㅋㅋㅋ

    └ForCharles’sUreter.com 다들 여기 가입해서 찰스 브라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미친 가입자 봨ㅋㅋㅋㅋ 400만 명이 넘넼ㅋㅋㅋㅋㅋㅋ

    └치질은 괜찮음?

    └찰스의 항문 수호 기사단도 분발하자! 재발이 잦은 병이야!

    └아직 아이도 없는데 어떡하냐ㅠ

    └찰스! 요관! 치질! 찰스! 요관! 치질! 찰스! 요관! 치질!

    └독일 연방보건부는 찰스 브라움의 요관 건강을 위해 질병 관리 프로그램을 즉각 개혁하라!

    └영국인이잖아.

    └비유럽 영국은 해외에 나가 있는 영국인들의 건강을 보장하라!

    └비유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 얜 왜 자꾸 이런 걸로 화제가 되는 거얔ㅋㅋㅋㅋ

    └가우왕은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 같은 걸로 언급되는데 찰스는 왜 항상 항문 아니면 요도로 ㅠㅠ

    댓글을 확인하던 찰스 브라움의 얼굴이 꿈틀댔다.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찰스의 눈에는 그의 소중한 요관과 항문을 그저 재밌는 해프닝으로 취급하는 댓글만 들어왔다.

    특히나 가우왕은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와 같은 연주로 화제가 되는데, 찰스 브라움은 항문과 요도로 화제가 된다는 말이 그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다.

    그를 괴롭히는 요관결석만큼이나 아팠다.

    찰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이자벨 멀핀이 어쩔 수 없이 설명했다.

    “병원 올 때 파파라치가 따라붙었나 봐. 이미 병원 왔을 땐 소문이 퍼져서…….”

    까드득-

    찰스 브라움이 이를 악물었다.

    “의사 불러.”

    “어?”

    “당장. 끄으으. 당장 부수라고 해.”

    찰스 브라움은 모레 예정된 공연에 반드시 나서야 했다.

    자신이 어떤 연주를 했는지.

    왜 바이올린의 황제로 불리는지 대중에게, 치욕을 안긴 이들에게 똑똑히 각인시켜야만 자존심에 난 상처가 아물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다.

    ‘제기랄.’

    그는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보고 싶은, 파이어버드의 노래를 듣고 싶은 팬들을 위했지만 돌아온 것은 조롱 섞인 반응뿐.

    찰스가 힘겹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 연결음이 들리고 진달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 괜찮아?

    “준비해.”

    -준비? 뭘?

    “바이올린…… 윽. 내가 한다.”

    -어? 윤희 언니가 하기로 했는데? 아니, 아저씨 다 나았어?

    “내가 할 거니까 끄으윽. 그리 알아.”

    찰스 브라움이 전화를 끊었다.

    베를린 음악 대학 바이올린 전공 과장 교수로서의 체면과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으로서의 책임 그리고 배도빈 음악교육원장으로서의 사명.

    그리고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자부심으로 잠자고 있던 불새의 날개가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날 이른 저녁.

    유명인으로서 타인에게 중요 부위를 보이는 상황이 몹시 꺼려졌지만 크게 분노한 찰스 브라움은 그마저도 감내할 생각이었다.

    하여 수술에 동의했는데.

    수술실에 들어선 찰스 브라움의 시야에 너무나 흉측한 물건이 들어왔다.

    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언뜻 보인 내시경은 너무나 굵고 길었다.

    들어갈 리 없다.

    아주 작은 결석만으로도 죽을 듯이 아팠던 요도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자, 잠깐. 설마 저걸 넣는 건.”

    “네. 누워 계세요~”

    그러나 의사는 찰스 브라움이 얼마나 겁을 먹든 신경 쓰지 않았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하반신의 감각이 사라지고.

    찰스 브라움은 이를 악문 채 자신을 조롱한 이들에게 복수하려는 일념으로 그 흉악한 내시경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침을 꿀꺽 삼킨 그가 입을 열었다.

    “좋아. 최대한. 최대한 아프지 않게 넣어주세요.”

    “이미 넣었어요. 계속 말씀하시면 위험하니까 가만히 계세요.”

    어떻게 말도 없이 넣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길고 굵은 흉측한 물건이 이미 자기 안으로 들어와 있단 사실에 겁먹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단 일 초라도 빨리 이 끔찍한 상황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잠시 후.

    병실에 돌아온 찰스 브라움은 기적을 맞이했다.

    “아프지…… 않아.”

    그것은 구원이었다.

    화마 속에서 날아드는 창칼에 유린당했던 불과 몇 시간 전이 거짓말 같았다.

    환희.

    평소로 돌아왔을 뿐인데 세상에 달리 보였다. 답답한 병실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고 창밖의 야경이 희망을 노래하는 듯했다. 스틱스강의 경계에서 새 삶을 얻어 돌아온 것 같았다.

    “수술 잘 되셨고요. 내일 아침엔 퇴원하셔도 될 거예요.”

    “고맙습니다.”

    찰스 브라움이 의사에게 거듭 인사했다.

    * * *

    다음 날.

    찰스 브라움은 퇴원하자마자 연습실을 찾았다.

    “찰스!”

    “아저씨!”

    “브라움 악장.”

    단원들이 찰스를 반겼다.

    “괜찮아?”

    새 삶을 얻은 기품 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미소로 답하곤 이내 진지하게 나섰다.

    “악보 줘 봐.”

    “퇴원하자마자 뭘 하려고.”

    “그래. 이번 주는 그냥 쉬어.”

    다니엘 홀랜드와 드럼을 연주하기 위해 합류한 피셔 디스카우가 찰스를 말리자 밴드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나 신경 쓰는 거면 괜찮아.”

    진달래도 첫 발표 무대보다 찰스 브라움을 더 신경 썼다.

    되도록 최고의 환경에서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찰스가 무리하길 바라진 않았다.

    “아니. 해야 해.”

    그러나 자신의 소중한 요도를 조롱당해 분노한 찰스 브라움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누구도 불타오르는 불새를 막아설 순 없었다.

    “공연 내일인데?”

    스칼라가 우려를 표했다.

    내일 공연이 진달래의 신곡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 해도 한 번도 연습해 보지 않은 곡을 단 하루 만에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찰스 브라움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과거 수많은 명장과 비교되었고 파이어버드를 얻은 후로는 기술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숙하여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공인받아온 그였다.

    한 세대를 풍미한 것을 넘어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히는 그는 세간의 평 이상으로 자신을 높이 평가했다.

    찰스 브라움이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고추 아픈 사람.”

    스칼라의 솔직한 대답에 찰스 브라움의 눈썹이 꿈틀댔다.

    “크학학핳학학핳!”

    다니엘 홀랜드와 피셔 디스카우가 크게 웃었다.

    진달래와 나카무라 료코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왕소소와 나윤희가 간신히 웃음을 참았지만 스칼라의 진지한 태도에 무너지고 말았다.

    “고추를 가볍게 여기면 안 돼. 자손을 남기는 소중한 곳이야.”

    “큭큭크크윽.”

    “끄윽. 끄으으윽. 그, 그만.”

    다니엘 홀랜드와 피셔 디스카우가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고 왕소소와 나윤희는 고개를 돌렸다.

    나카무라 료코는 아예 귀를 막았다.

    “그, 그래! 아저씨 그…… 거시기는 소중하니까 무리하지 마!”

    진달래가 나서서 말렸다.

    찰스 브라움의 이마와 목에 힘줄이 잔뜩 돋아났다.

    그가 스칼라의 양쪽 어깨를 잡았다.

    “이번에는 넘어가지. 다신 그딴 말 꺼내지 마. 알아들어?”

    찰스 브라움은 스칼라가 아주 외딴 마을에서 자라온 탓에 사용하는 어휘나 행동이 평범하지 못한 걸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화를 누그러뜨렸다.

    스칼라가 찰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입을 열려고 하자 다니엘과 피셔가 그를 끌고 가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명해 주었다.

    분위기가 간신히 진정되고.

    “시작하지.”

    부활한 불새가 날갯짓할 태세를 갖췄다.

    * * *

    “아리엘 아니야?”

    “아리엘이네.”

    “여긴 무슨 일이지?”

    “진달래 응원하러 왔나?”

    공연 당일.

    진달래가 어떤 곡을 만들었는지 궁금했던 아리엘 얀스는 더는 참지 못하고 베를린을 방문했다.

    진달래가 워낙 들려주려 하지 않아서 그녀에게도 말하지 않고 찾았는데, 혹시나 주변 사람들이 알아볼 것을 우려해 가면까지 썼다.

    조용히 진달래의 곡만 듣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리엘 얀스 감독님 맞죠? 사진 한 번 찍어주세요!”

    실내악홀에 들어선 아리엘에게 두 사람이 다가왔다.

    ‘어떻게 알았지?’

    몇 년 전 가우왕이 선글라스를 쓰고 분장했다가 정체가 들킨 일화를 떠올려 가면을 쓴 것인데 이조차도 통하지 않음에 당황했다.

    그는 우선 부정했다.

    “그런 사람 아닙니다.”

    “에이. 목소리가 똑같잖아요.”

    “그런 가면 쓰고 다니는 사람은 얀스 감독님뿐인데요.”

    “그리고 가면 쓰는 거 많이 봤어요. 베트호펜 기념 콩쿠르에서도 그랬잖아요.”

    “…….”

    아리엘이 가면을 벗고 팬들과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 뒤로 계속해 사인과 사진 요청이 이어져 아리엘은 반쯤 포기하곤 그들의 요구에 응해주었다.

    잠시 뒤.

    아리엘 얀스는 화장실을 찾아 끼고 있던 장갑을 버렸다. 세정제로 손을 닦은 뒤 새 장갑을 착용하고 나서야 만족했다.

    세정제와 장갑을 준비한 자신의 준비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를 지나 공연장 안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은 뒤 팸플릿을 펼쳤다.

    오늘 연주될 곡 목록이 차례로 소개되었고 가장 마지막에 진달래의 이름과 함께 ‘Origin’이란 곡이 적혀 있었다.

    기원, 근원이란 뜻을 확인한 아리엘은 그녀가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고민해 봤지만 좀처럼 알 수 없었다.

    ‘들어보면 알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내리니 연주진 명단에 찰스 브라움이 있었다.

    ‘입원했다더니 벌써 나았나?’

    잠시 의아해한 아리엘이 객석 분위기를 살폈다.

    과연 웃고 떠드는 밴드.

    그가 경험했던 일반적인 콘서트홀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마치 대중음악 공연장처럼 피켓을 든 사람도 있었고 연분홍색의 형광봉도 보였다.

    [왕자님, 물 많이 드세요]

    -왕자 찰스의 요관을 위한 모임-

    [섬유질 섭취와 규칙적 생활]

    -찰스 브라움의 항문 수호 기사단-

    좌석 아래에는 현수막도 부착되어 있었다.

    아리엘 얀스는 찰스 브라움의 인기를 실감했다.

    ‘브라움 악장의 인기는 변함없네.’

    과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다운 인기에 고개를 끄덕인 아리엘은 편히 앉아 무대를 바라보았다.

    곧 베를린 필하모닉이 자랑하는 웃고 떠드는 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팬들의 함성으로 콘서트홀이 떠나갈 것처럼 요동쳤지만 아리엘의 눈에는 강렬한 눈화장을 한 진달래만 들어왔다.

    흰 바탕에 혀를 내밀고 있는 입이 그려진 반팔 옷을 입고 있었다.

    높은 통굽이 위험하진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한 달 만에 본 진달래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 * *

    당당히 무대에 오른 밴드 멤버들이 객석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찰스 브라움의 팬들이 걸어둔 현수막이 대문짝처럼 보였다.

    찰스의 눈이 분노로 들끓었다.

    ‘이것들이고 저것들이고.’

    이제는 저들이 정말 자신의 팬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혹여나 자신을 음해하는 집단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모임을 만들 리 없고 저런 현수막을 걸어 놓을 리 없었다.

    분노에 찬 찰스 브라움이 무대 앞으로 나섰다.

    오늘 공연의 첫 순서는 찰스 브라움의 고집으로 결정한 배도빈 바이올린 협주곡 ‘찰스 브라움’이었다.

    그가 가우왕, 나윤희와 경쟁하기 위해 독주곡으로 편곡했던 것을 바탕으로 제2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베이스, 하프를 더한 버전이었다.

    객석은 묘하게 들떠 있었다.

    찰스 브라움은 그것이 못마땅했다.

    그러나 이내 웃음기 띤 그들의 시선이 곧 경외심으로 가득하게 될 것을 확신했다.

    찰스 브라움이 단원들에게 시선을 주곤 파이어버드를 켜기 시작했다.

    배도빈 바이올린 협주곡 찰스 브라움.

    배도빈이 찰스 브라움을 영입하기 위해 그에게 헌정한 곡으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베를린 환상곡과 함께 감미로운 곡으로 알려져 있었다.

    찰스 브라움의 서정성 짙은 표현력과 스트라디바리우스 파이어버드의 애수 잠긴 음색이 가장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는 곡.

    찰스 브라움의 연주에 따라 파이어버드가 천천히 활강했다.

    이내 나뭇가지 위에 앉은 불새는 찬란했던 빛을 잃어갔다.

    창공을 누비던 날개는 힘을 잃었고 윤기가 흐르던 깃은 푸석해진 지 오래였다.

    첼로와 비올라가 바람처럼 불어오고 베이스가 바람에 스치는 나뭇가지처럼 사각사각 소리 냈다.

    천천히 노래하기 시작한 불새.

    찰스 브라움이 손끝에 힘을 줄 때마다 구슬픈 비브라토가 불새의 눈물처럼 울렸다.

    관객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황제.

    파가니니, 프리츠 크라이슬러, 야샤 하이페츠,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니아 발그레이에 이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펼친 심상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했다.

    생의 마지막을 노래하는 불새의 목소리가, 파이어버드의 음색이 가슴을 옥죄었다.

    늙은 불새는 지난날 창공을 날던 때를 그리워한다.

    그 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자유롭게 아름답게 날던 날을 추억한다.

    찬란했던 불꽃은 위세를 잃고.

    풍성했던 깃털은 듬성듬성 빠져 불새는 초라해진 자신을 한탄한다.

    첼로와 베이스가 점점 더 대두되고.

    파이어버드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든다.

    천천히 눈을 감은 불새는 점점 식어간다.

    툭.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불새가 결국 차디찬 땅으로, 퍼석한 낙엽 위로 떨어지고 만다.

    모든 악기가 연주를 멈춘 잠시간.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날아오르고 싶은 강렬한 열망마저도 차츰 흐려지는데 블러드 와인의 싸늘한 겨울바람만이 날카롭게 불어온다.

    그러다 문득.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를 깨운다.

    스칼라의 하프가 다정하게 불새의 노래를 반복한다.

    애타게 그리워한다.

    왕소소의 첼로가 꾸짖는다.

    어서 일어나라고 정신 차리라고 불새를 흔든다.

    비올라가 비웃듯이 나선다.

    그렇게 잘난 척 날아다니더니 결국 겨울이 오는 줄도 모른 채 죽었다며 조소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틱- 티딕-

    파이어버드 주변으로 불꽃이 튀었다.

    잘 마른 낙엽들이 삽시간에 불타오르고 깜짝 놀란 주변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볼 뿐이었다.

    정화의 시간.

    모든 것을 불태울 듯 강렬히 타오르는 그 속에서.

    불새의 노래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금으로 자아낸 실과 같은 목소리로 노래했다.

    모데라토(Moderato: 보통 빠르기).

    빠르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단순한 음률이 이다지도 아름답게 울릴 수 있는가.

    손끝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이처럼 구슬피 울 수 있는가.

    관객들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어쩔 줄 몰라 했다.

    불새가 날개를 펼쳤다.

    찬란한 불꽃이 주변을 성스럽게 비추고 타오르는 금빛 깃털이 우아하다.

    범접할 수 없었던 과거 그 모습 그대로.

    다시 태어난 불새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엄한 불꽃으로 주변은 어느새 바짝 말랐다.

    동물들은 두려워 몸을 피한 지 오래.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고개를 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

    무한히 펼쳐진 저 넓디넓은 자유의 세상이야말로 불새가 있을 곳이다.

    불새는 오랜 친구를 찾고자 날개를 움직였다. 단 한 번의 날갯짓만으로도 바짝 말라비틀어진 초목이 뿌리째 뽑혔다.

    이내 힘을 되찾은 기쁨을 만끽한 불새가 한 번 더, 한 번 더 날갯짓한다.

    끝을 모르고 가속하여 솟아오른다.

    찰스 브라움이 바삐 움직일 때마다 다른 악기들이 뒤로 물러선다.

    마치 더 이상 같은 곳에 있지 않다는 듯, 빠르게 사라져간다.

    찰스의 보잉이 빨라질수록 관객들은 파이어버드의 자태를 더욱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아리엘 얀스는 감탄했다.

    본인 또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지만 배도빈이 왜 찰스 브라움에게 이런 곡을 써주었는지, 그를 영입하고자 막대한 지출을 감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1718년산 파이어버드.

    유타 심포니 부악장, 유타대학 음대 교수 데이비드 백은 찰스 브라움이 파이어버드를 구입했던 당시, 최고의 바이올린이 최고의 연주자를 만났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는 파이어버드를 두고 이제껏 스트라디바리우스 3개, 과르넬리 델 제수 2개를 연주했지만 파이어버드만 한 바이올린은 없었다며 그 선명하고 화려한 음색을 거듭 찬양했다.

    데이비드 백의 말처럼 파이어버드는 현재까지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 바이올린으로, 찰스 브라움의 연인으로 오랜 세월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스트라디바리우스 파이어버드가 비록 음악사의 보배로운 악기라고는 하나 찰스 브라움이란 명품에 비할까.

    아리엘은 지금 그를 깊이 감동시킨 연주가 스트라디바리우스 파이어버드 때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도리어 파이어버드가 찰스 브라움에게 들렸기에 가능한 일.

    아리엘은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가 수백만에 이른단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이만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터였다.

    연주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도도하게.

    세상을 오시하며 창공에 이른 불새가 태양처럼 빛나며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관객들은 공기 중에 남은 잔음마저 피부로 흡수하고 나서야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를 연호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찰스! 찰스!”

    “찰스! 찰스!”

    당연한 반응에 찰스 브라움은 양손을 펼친 채 그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함성을 만끽했다.

    └역시는 역시나 역시였다.

    └미쳤닼ㅋㅋㅋㅋㅋㅋ

    └가끔 프로면서도 음 찢어지는 사람들 있는데 찰스는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음.

    └당연한 거야. 찰스랑 나윤희가 이상한 거임.

    └심지어 저렇게 빨리 연주하는뎈ㅋㅋㅋ

    └빠른 것도 빠른데 찰스 브라움 바이올린 협주곡이 음계 차이가 미친 수준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함.

    └나 진짜 눈물 나.

    └찰스가 처음 곡 받았을 때 사람이 연주하는 곡 맞냐고 물었대잖앜ㅋㅋㅋㅋㅋ

    └음계 차이가 미친 수준이란 게 뭔 뜻이야?

    └바이올린이 프렛이 없잖아. 정확한 음정 찾는 게 엄청 어려운 악기임.

    └프렛이 뭐야?

    └어디서 야한 냄새 나는데.

    └ㅅㅂ 좀 찾아보고 물어라.

    └욕 좀 하지 마. 알려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너 같은 놈들 때문에 클래식이 고였던 거야.

    └쉽게 말해서 기준이 되는 음을 표시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됨. 건반 같은 느낌임.

    └그게 없으면 어떻게 연주해?

    └감이지. 그래서 빠르고 수직 변동이 큰 곡일수록 힘들고, 미스도 많이 나고 음이 찢어지기도 하는데 찰스는 그런 게 없어서 대단하단 뜻이야.

    └고마워 :)

    └우리 찰스 님ㅠㅠ 아프신데도 나오셔서 너무 고마워요ㅠㅠㅠ

    └괜히 황제가 아니지. 크으으~ 난 진짜 찰스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활동해 주면 더 바랄 게 없음. 항문 수호 기사단에서 이번에 찰스한테 조공한다던데 조금 보태야겠다.

    클래식 음악 팬들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찰스 브라움에게 다시 한번 감탄했다.

    폐부를 깊숙이 파고드는 심상과 그것을 가능케 한 섬세하고 효과적인 표현력.

    베를린 필하모닉을 넘어서 인류의 보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찰스 브라움의 팬덤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결집한 ‘찰스의 요관을 위한 모임’에서는 이제 ‘항문 수호 기사단’과 연합하여 그의 요관과 항문뿐만 아니라 건강 자체를 위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었다.

    한편.

    함께 공연한 동료들도 찰스 브라움이 바로 어제까지 입원해 있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의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단 하루 준비하고 이만한 연주를 해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실제 공연은 즉흥적인 면이 있고 여러 사람을 앞에 서기에 여러모로 연습과 같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며칠을 고생한 탓에 컨디션이 최악이었으니 아무래도 평소 같지는 못하리라 생각했거늘.

    무대 위에서의 찰스 브라움은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었다.

    웃고 떠드는 밴드는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를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찰스 브라움이니까.

    베를린 필하모닉이 가장 의지하고, 자랑하는 악장이니까.

    그 외 다른 이유는 없었다.

    * * *

    ‘대단해.’

    진달래가 주먹을 꽉 쥐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매번 느꼈지만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하는지 믿기지 않았다.

    병상에서 막 일어난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완벽한 연주였다.

    또한 감동을 박수와 환호로 돌려주는 관객까지.

    이보다 훌륭한 환경은 없었다.

    ‘나도.’

    진달래는 단순히 재능 있는, 유망한 사람으로 남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하나 없이.

    저들과 함께 당당해지고 싶었다.

    찰스 브라움 협주곡 이후 잔뜩 무르익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진달래도 몇 차례 노래를 부르며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그리고 한 곡만을 남겨두었을 때.

    긴장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던 진달래는 공연에 취했다.

    동료들의 연주와 관객들의 열띤 호응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컨디션이 좋았다.

    그녀가 마이크를 잡았다.

    “재밌죠?”

    “네!”

    “저도 너무 재밌어요.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제 첫 곡을 처음 들려드릴 수 있어서 기뻐요.”

    “와아아아아아!”

    실내악홀이 떠나갈 듯한 반응에 진달래가 행복하게 웃었다.

    고개를 돌려 멤버들을 보니 그들도 웃고 있었다.

    그것은 중독이었다.

    이 즐거움을 위해, 이 충족감을 위해 지금껏 노력해 왔고 기꺼이 남은 생을 바칠 수 있었다.

    오늘은 가수 진달래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

    헤어나올 수 없는 음표의 바다로 저 심해로 내려가는 날이었다.

    “Origin입니다.”

    진달래의 말이 끝나고.

    피셔 디스카우가 양손에 든 북채를 치며 시작을 알리자, 왕소소의 일렉트릭 기타가 시동을 걸었다.

    마침내 질주하는 폭주족들.

    장대비처럼 꽂히는 32비트의 드럼루프와 그 속에서 선명히 울리는 찰스 브라움과 나윤희의 전자 바이올린.

    흐읍-

    숨을 들이마신 진달래가 입을 열었다.

    무너진 꿈 이불 아래서 I broken

    즈려밟힌 손과 함께 어딘가 망가진 거야

    깨진 약속 다시 걸 손가락도 없이

    도와주세요 하나님

    이 고통을 멈춰주세요

    도와주세요 누구든

    이곳에서 데려가줘요

    흩날리는 흰 장미 너의 노래

    네 온기가 잃어버린 꿈을 채워나가

    네가 준 손으로 다시 일어서

    찢어진 과거를 엮을래

    달콤한 꿈 이불 아래서 미래를 나누고

    둘만의 약속을 만들어가

    드럼과 베이스 기타, 일렉트릭 기타의 폭음 속에 전자 바이올린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우수에 젖은 진달래와 어울렸다.

    진달래의 성악 발성에 익숙했던 관객들은 그녀의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에 목 아랫부분이 묵직해짐을 느꼈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폭력적인 사운드와 대비되어 간절히 울렸다.

    한을 토해내듯 호소력 짙은 발성은 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애달픔을 전해주었다.

    찰스 브라움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저돌적인 이 곡에 무슨 가사를 붙일지, 어떤 방식으로 노래할지 의문이었지만.

    진달래의 더할 수 없이 처절한 목소리와 간절한 가사는 효과적이었다.

    끝을 모르고 질주하는 멜로디와 극단적으로 대비되어 그녀가 얼마나 절망적이고 급박한 상황에 놓였는지 알 수 있었고.

    전자 바이올린과 하프로 연주되는 서정적 멜로디는 그녀가 희망을 얻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난데없이 고백받은 아리엘 얀스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입을 막고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이라이트를 지나 반복구가 끝나자 모든 관객이 다시 한번 일어나 함성을 질렀고.

    일어선 관객 사이에서 아리엘 얀스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식은 어디서 올리지?’

    ‘고향? 베를린? 한국? LA?’

    ‘너무 갑작스럽잖아.’

    ‘내가 하려 했는데.’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

    관객들이 진달래를 연호할 때.

    이불 아래서 미래를 나누고 둘만의 약속을 만들자는 말을 프로포즈로 이해한 아리엘 얀스는 고민이 깊어지고 말았다.

    그는 항상 품에 넣고 다니던 반지를 의식하며 그것을 전해줄 때가 되었음을 조금씩 받아들였다.

    * * *

    “꺄아아아!”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나윤희, 나카무라 료코, 진달래가 서로 손뼉을 치며 야단을 떨었다.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나 좋았고 그들 스스로 공연에 만족한 덕이었다.

    “잘했어.”

    왕소소도 드물게 까치발을 들어 진달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거 괜찮은데?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만 하라고. 이런 공연이면 얼마든지 환영이니까.”

    피셔 디스카우도 공연의 여운을 즐겼다.

    드럼을 있는 힘껏 내리치고, 열광하는 관객과 소통하는 기분이 썩 괜찮았다.

    “찰스 오늘 보니 정말 괜찮아진 것 같네.”

    “평소처럼 대단했지.”

    스칼라와 다니엘 홀랜드도 찰스의 명연주를 언급했다.

    찰스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하던 차 누군가 똑똑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신난 진달래가 문을 벌컥 열었고.

    흰 장미가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두 눈을 튀어나올 듯이 뜬 진달래 앞에 아리엘 얀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감?”

    아리엘이 고개를 들었다.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불렀다.

    “부인.”

    “어, 어? 여긴 어쩐 일이야? 공연은 어쩌고?”

    당황한 진달래 뒤에서 분위기를 눈치챈 왕소소, 나윤희, 나카무라 료코가 두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이윽고.

    아리엘이 그녀의 세레나데에 응했다.

    “나도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그가 품에서 반지함을 꺼내 열어 그녀에게 향했다.

    진달래가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주변을 둘러보니 아저씨 셋이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고 친구 셋이 소리만 내지 않고 오두방정을 떨었으며.

    스칼라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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