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55화 (외전) (555/564)
  • 외전

    다시 태어난 베토벤 앙코르

    1

    우진 현대판타지 장편소설

    목차

    1. 비불법 반영구 노예계약

    2. 프란츠 페터 넘어지다

    3. 불새는 죽은 뒤에 더욱 찬란히

    4. 안 돼

    5. 불멸

    6. 인류의 희망

    1. 비불법 반영구 노예계약

    제2회 OOTY 오케스트라 대전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전 세계가 하나 되어 즐겼던 음악 축제는 뜨겁게 달아올랐던 클래식 음악계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촉진제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알려진 런던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등이 인터플레이의 후원에 의지해야 했던 일은 이미 먼 과거의 일이었다.

    2027년 기준 글로벌 클래식 음악 시장 규모는 880억 달러 수준으로.

    2016년, 글로벌 음악 시장 규모가 471억 7,300만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최근 10년간 클래식 음악 시장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성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단연 배도빈 악단주의 베를린 필하모닉이었다.

    한 해 매출액 170억 달러.

    전 세계 클래식 음악 시장의 약 20퍼센트를 단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베를린 필하모닉과 배도빈의 브랜드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디지털 콘서트홀을 확장해 출시한 클래식 음악 플랫폼 ‘DOBEAN’은 출시 당일 1,400만 구독자를 확보, 2028년 2월에 이르러서는 2억 명을 돌파하는 진기록을 수립하는 데 이르렀다.

    팬덤 중 일부는 과거 베를린 필하모닉이 전체 시장의 4할을 차지하던 때를 그리워하며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적어도 배도빈과 그 동료들은 그리 생각지 않았다.

    많은 음악가의 삶이 나아지고.

    또 그들의 음악이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는 환경에 만족했다.

    또한 시장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재정과 최고의 오케스트라라는 명예까지.

    시장 점유율이 낮아졌다곤 하나 베를린 필하모닉은 분명 스스로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고 있었다.

    지난 50여 년간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에게 그보다 기쁜 일은 없었다.

    “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문을 덮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히니 지난 일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참 오래되었다.

    큰 꿈을 안고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한 그는 당시 지휘자였던 ‘K’와 매일 언쟁을 벌였다.

    그러다 실력을 인정받아 악장직에 올랐지만 ‘K’와의 다툼은 끊이질 않았다.

    각자 추구하는 바가 너무도 달랐기에 지독히도 싸웠다.

    그러나 결국 누가 옳은지 끝을 보지 못한 채 ‘K’가 세상을 뜨고, 베를린 필하모닉은 푸르트벵글러 체제 아래 새롭게 구축되었다.

    그로부터 50년.

    사라진 얼굴도, 새로운 얼굴도 있지만 푸르트벵글러는 함께했던 단원을 잊은 적 없었다.

    그럴 수 없었다.

    모두 베를린 필하모닉을 빛나게 했던 별이었으니 단지 떠났을 뿐, 그들의 유산은 지금도 베를린 필하모닉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번성할 수 없었을 터.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아니 되었다.

    그리고.

    제국을 번성케 하고 그 역사를 지켜왔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자신 역시 역사의 일부가 될 때가 되었다고 여겼다.

    ‘내려놓을 때도 되었지.’

    음악가로서, 지휘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이뤘다.

    자랑스러운 아들딸들은 제국을 더욱 부강하게 할 터였다.

    그리 생각하니 이제는 그만 치열한 무대에서 내려와도 될 것 같았다.

    부담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아들딸들을 찾고 싶었다.

    “은퇴할까.”

    푸르트벵글러의 말에 곁에서 잡지를 보고 있던 카밀라 앤더슨이 깜짝 놀랐다.

    “갑자기?”

    “갑자기는 무슨. 되레 늦은 편이지.”

    만족스러운 표정과 다소 지친 얼굴.

    미묘하게 걸린 미소를 확인한 카밀라 앤더슨은 그가 정말 마음을 굳혔음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지휘봉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 이뤘다고.

    이제 남은 사람에게 맡겨도 된다고 여기는 듯했다.

    카밀라 앤더슨이 푸르트벵글러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

    “수고했어요.”

    푸르트벵글러도 미소 지으며 카밀라와 손을 포갰다.

    “자네가 함께해 줘서 참 다행이었어. 뒷일도 부탁하지.”

    “혼자만 그만두려고? 나도 이제 벅차요. 글자 보는 것도 힘든데.”

    두 사람이 크게 웃었다.

    웃음을 멈춘 카밀라 앤더슨은 간격을 두고 슬쩍 입을 열었다.

    “다들 서운해하겠네.”

    베를린 필하모닉에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단순히 존경하는 지휘자가 아니었다.

    아버지이자 스승이었으며 기반이었다.

    그것은 배도빈이 악단주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푸르트벵글러가 단원들을 자식처럼 여기는 것처럼, 베를린 필하모닉 역시 그를 부모처럼 대했다.

    시간이 흐른다고 부모 자식의 관계가 달라지진 않는 법.

    베를린 필하모닉은 푸르트벵글러를 영원히 위대한 스승이자 자랑스러운 부모로 기억할 터였다.

    “언젠가 거쳐야 할 일이지. 그 녀석들이라면 잘 해낼 거야.”

    푸르트벵글러가 아쉬움을 신뢰로 덮었다.

    “도빈이한테도 얘기했어요?”

    “아니. ……조만간 해야지.”

    “그렇게 쉽게 놔주지 않을걸요?”

    “그 녀석이 뭐, 안 놔주면 어쩌겠어.”

    푸르트벵글러의 심통 맞은 대꾸에 카밀라가 벽에 걸린 달력을 슬쩍 보았다.

    2028년.

    처음 은퇴하기로 마음먹은 2023년으로부터 햇수로 5년이 흘렀다.

    “커흠.”

    푸르트벵글러가 멋쩍게 헛기침하자 카밀라가 슬며시 웃었다.

    “하고 싶은 일, 다 했어요?”

    “그럼. 8살 때부터 해왔다고. 이곳에서만 50년을 넘게 지냈어. 차고 넘치도록 했지. 암. 차고 넘치도록.”

    * * *

    서류를 결재하던 배도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30년 이상 베를린 필하모닉의 한 축을 담당했던 마누엘 노이어 바순 수석이 재계약을 거절했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피로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배도빈이 안경을 벗곤 고개를 젖혔다.

    “피곤하신 것 같은데 오늘은 이만 쉬시는 게 어떨까요?”

    비서 죠엘 웨인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배도빈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죠엘이 차라도 내오고자 커피포트에 물을 따르던 중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죠엘.”

    “네.”

    “앨런 불러주세요.”

    배도빈이 인사팀장 마스 앨런을 호출했고 곧 그가 악단주를 찾았다.

    “노이어가 재계약을 거절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이유는요?”

    악단주의 심기가 매우 좋지 않았기에 인사팀장 마스 앨런은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인사팀이 그에게 제시한 조건은 5년간 연봉 700,000유로(인센티브 별도).

    지휘자인 케르바 슈타인과 헨리 빈프스키에 준하는 악단 내 최고 대우였다.

    세계 어느 오케스트라를 뒤져도 바순 수석에게 한화 1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을 연봉으로 지급하는 경우는 없었다.

    인사팀은 기존 단원을 붙잡으려는 배도빈의 의지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다.

    배도빈이 숨을 길게 내쉬자 마스 앨런 인사팀장이 입을 열었다.

    “조건 조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은퇴를 고려하고 계셔서…….”

    “은퇴?”

    배도빈의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었다.

    “네. 그 때문에 장기 계약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마스 앨런이 설명을 마쳤음에도 배도빈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은퇴라는 말이 가슴속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알겠습니다. 수고했어요.”

    마스 앨런이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나섰다.

    죠엘 웨인은 서류를 두고 고민에 빠진 배도빈을 안타깝게 살폈다.

    단원들을 끔찍이 아끼는 배도빈은 특히나 각별했던 마누엘 노이어의 은퇴 예고에 슬퍼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조금이나마 위로하고자 그가 좋아하는 코나 커피를 준비했다.

    방 안에 커피 향이 그윽해지는 중에도 배도빈은 여전히 다른 일을 하지 못했다.

    ‘충격이 크시겠지.’

    A팀의 연령대는 평균 61세.

    그중에서도 고령인 단원들은 확실히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꼈고 연주력이 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배도빈과 단원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죠엘 역시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때 배도빈이 중얼거렸다.

    “강제로…….”

    커피를 타던 죠엘이 멈칫했다.

    배도빈이 강제라는 말을 꺼낸 것 같으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으로 커피를 내렸다.

    “아니. 합법적인 방법이 있을 텐데.”

    배도빈이 또 중얼거렸고 죠엘은 오늘 자신의 귀가 이상하다고 여기며 고개를 저었다.

    “죠엘.”

    “네, 보스.”

    “루덴도르프 불러주세요.”

    배도빈의 입에서 법무실장 요하임 루덴도르프가 언급되자 죠엘 웨인은 자신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과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구속하기 위해 평생종속계약을 알아봤을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죠엘이 배도빈 앞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세프 때도 알아보셨잖아요.”

    “…….”

    “지금은 노이어 수석님과 직접 이야기해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배도빈이 숨을 크게 내쉬며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굳이 죠엘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그를 보내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노이어 지금 어디 있어요?”

    죠엘이 시간을 확인했다.

    “섹션 연습 중이실 거예요.”

    “내일 아침에 보자고 전해줘요.”

    “네, 알겠습니다.”

    죠엘이 집무실을 나섰고.

    배도빈도 퇴근하기 위해 외투를 챙겼다. 주차장으로 향해 자신의 벤츠에 올라타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윤희가 다가왔다.

    그녀가 문에 손목을 가져다 대자 곧 문이 열렸다.

    “기다렸지.”

    “아뇨. 막 나왔어요.”

    나윤희가 안전벨트를 매자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메르세데스.”

    -네, 오너. 어디로 모실까요?

    “슈퍼 슈바인.”

    -목적지 확인. 베를린 미테의 슈퍼 슈바인으로 주행 시작합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배도빈의 안색을 살핀 나윤희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배도빈이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윤희도 마누엘 노이어의 소식에 안타까워했다.

    “당장 나가신다는 건 아니지?”

    “내일 얘기해 봐야죠.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좀 더 계시면 좋겠다.”

    “내 말이요.”

    배도빈이 팔짱을 풀곤 불평을 늘어놓았다.

    “실력이 준 것도 아니고, 나이가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바순을 못 들 정도로 약해진 것도 아닌 데다 대우를 못 받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일찍 은퇴하지 못해 난린지 모르겠어요.”

    올해 초에만 다섯 명의 단원을 내보낸 탓에 마음이 어수선했던 배도빈은 차마 다른 사람에겐 티를 내지 못하고 찰스 브라움, 최지훈, 나윤희 등 한정적 인원에게만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나윤희도 배도빈이 얼마나 속상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을 더해 위로하고자 그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

    배도빈이 분을 가라앉혔다.

    “잘은 모르지만.”

    나윤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만족하셔서 그러지 않을까?”

    “만족?”

    “응. 오케스트라 대전도 두 번이나 우승했고. 대교향곡도 연주했고. 연주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으니까.”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했다.

    “노이어 씨나 은퇴하신 분 모두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으신 게 아닐까 싶어. 악단도 번창했고 우승도 했고 시기적으로 은퇴하기 좋을 때라 생각하실지도.”

    “…….”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분들도 분명 나쁜 이유로 그러진 않으실 거야. 그러니 웃으며 보내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헤어질 날은 언젠가 오기 마련.

    나윤희는 기존 단원들이 악단을 떠나는 이유가 기량 하락이나 고령 혹은 인간 관계가 아니라, 음악가로서의 목표를 이루고 만족했기 때문으로 여겼다.

    그러니 도리어 기뻐하고 축하할 일 같았다.

    그들이 흡족하게 은퇴할 환경을 조성해 준 배도빈도 그리 생각해 주길 바랐다.

    화를 내던 배도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해야죠.”

    그렇게 말하던 배도빈이 문득 눈썹을 좁혔다.

    “……만족해서?”

    “응. 다들 얼마나 좋아하는데. 다 네 덕분이야.”

    배도빈이 잠시 고민하더니 나윤희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지 못하면 되겠네요.”

    “……어?”

    나윤희가 눈을 깜빡였다. 만족하지 못하면 되겠다는 배도빈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뭐라 묻기도 전에 배도빈이 혼잣말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바순을 메인으로 한 공연은 안 했지.”

    “으, 응.”

    “노이어가 독주자로 나선 적도 없네.”

    “그, 그랬나?”

    “곡이 적기도 하니까. 비발디랑 아마데. 또 뭐 있었지?”

    “……베버?”

    혼잣말하던 배도빈이 나윤희의 답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한두 곡 줘서는 금방 할 테니까 아예 전집을 내자고 하면…….”

    배도빈이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때요?”

    “어, 어?”

    “노이어도 나서고 싶을 테니까. 솔로로 활동해 본 적 없고. 자기 이름을 앞에 두고 앨범 낸 적도 없고.”

    배도빈의 말대로 악기 연주자라면 누구나 주인공이 되길 바랐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만족하더라도 그중에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싶은 마음이 없을 순 없었다.

    “그, 그런가?”

    나윤희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푸르트벵글러 실각 사태나 사랑과 전쟁 in 베를린처럼 자신이 또 한 번 큰 사고를 조성한 건 아닐까 걱정했다.

    그녀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배도빈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왜, 왜?”

    “좋은 생각이었어요.”

    “내 생각 아닌데…….”

    단원들에게 집착하는 배도빈이 마누엘 노이어를 붙잡기 위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아뇨. 멋졌어요.”

    “으.”

    그러나 이미 마음을 굳힌 배도빈을 말릴 수 없었다.

    그의 그런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윤희는 부디 마누엘 노이어가 무사히 은퇴하길 바랄 뿐이었다.

    배도빈에게 잡힌 손을 빼내고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확인한 그녀는 배도빈이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음을 느꼈다.

    마누엘 노이어를 붙잡을 더 좋은 생각이 없냐고 재촉하는 듯했다.

    “그, 그렇게 봐도 아무 말 안 할 거야. 난 몰라.”

    노이어를 붙잡을 확실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나윤희는 배도빈 콩쿠르 때 겪은 낭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배도빈이 아무리 압박을 넣어도 입을 열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배도빈이 슬며시 웃었다.

    “앞머리 잘랐네요.”

    배도빈의 미소를 멍하니 보던 나윤희가 고개를 돌렸다.

    다음 날 늦은 오전.

    마누엘 노이어가 크게 웃으며 제2연습실을 찾았다.

    “하! 하! 하! 하!”

    “뭐예요. 좋은 일 있어요?”

    진 마르코의 질문에 마누엘 노이어가 우쭐거리며 악보 뭉치를 보였다.

    모차르트 바순 협주곡임을 확인한 마르코와 주변 단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어?”

    “크학핳학핳!”

    “뭔데? 진짜?”

    “흐핳핳학핳학.”

    “웃지만 말고 말 좀 해봐요. 뭔데. 진짜 하는 거예요?”

    단원들의 반응이 그가 바랐던 그대로라 마누엘 노이어의 어깨가 더욱 올라갔다.

    “아니, 글쎄. 내가 바란 건 아니고.”

    “응. 응.”

    “도빈이가 그러더라고. 내 바순을 제대로 기록해 놔야 하지 않겠냐고.”

    “기록?”

    “그래. 어찌나 칭찬하던지 예전에 세프랑 했던 거 틀면서 녹음 상태가 아쉽다나 뭐라나.”

    “녹음? 앨범 내는 거예요?”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로 하자니까 어? 별수 있어?”

    “와, 대박. 축하해요.”

    “언제? 언제 하는데?”

    단원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게 말이지.”

    노이어가 뜸을 들이자 단원들이 그의 등을 때리며 재촉했다.

    “아니이~”

    “아니이?”

    “한 곡만 넣기 좀 그러니까. 아이, 다 하자고 하더라고. 으흫흫흐.”

    “뭘요?”

    “비발디랑 베버랑. 도빈이도 한 곡 써준다나? 하하하! 하! 아, 이거 참 말하기 쑥스러운데.”

    “진짜?”

    “그러자고 하네? 올해랑 내년은 파우스트랑 저 올림픽 뭐시기로 바쁘다고 좀 기다려 달라는데. 거,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닌가 몰라.”

    “좋아 죽으면서 뭔 소리야, 이 대머리가!”

    그 능글맞은 태도와 배도빈에게 곡을 받는단 부러움으로 흥분한 단원들이 노이어를 탓했다.

    “그만!”

    한참 구박받던 노이어가 고개를 불쑥 들었다.

    깜짝 놀란 단원들이 잠시 멈추자 노이어가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부럽냐?”

    연습실에 있던 단원 모두 마누엘 노이어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그렇게 한창 시끄럽던 중, 푸르트벵글러가 연습실 문을 열고 단원들을 살폈다.

    “도빈이 없나?”

    단원들이 깜짝 놀라 돌아봤고, 푸르트벵글러가 자신들을 꾸짖을 거란 생각에 눈치를 보았다.

    노이어가 나섰다.

    “집무실에 있을 거예요. 방금 다녀왔어요.”

    “그래? ……너흰?”

    “노이어가 앨범 낸다고 해서 축하해 주고 있었습니다.”

    진 마르코가 냅다 대답했다.

    단원 모두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기다리던 호통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 잘 됐구나.”

    푸르트벵글러가 순순히 복도로 나섰고 단원들은 멍하니 서 있다가 서로를 보았다.

    “세프 왜 저러시지?”

    “글쎄.”

    나이 먹었으면 좀 점잖아지라며 나무라던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단원들은 의아할 뿐이었다.

    * * *

    푸르트벵글러가 배도빈의 집무실을 찾았다.

    “도빈이 안에 있느냐.”

    “네. 들어와요.”

    방으로 들어선 푸르트벵글러는 악보 무더기 위로 보이는 제자를 기특하게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한순간도 악보를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면 후계자를 정말 잘 들인 것 같았다.

    “쉬엄쉬엄해. 또 그러면 어쩌려고.”

    “신경 쓰고 있어요.”

    배도빈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은 탓에 눈썹을 찡그렸다. 고개를 몇 번 젓더니 펜과 안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이제는 정말 장성하여 자신보다 큰 배도빈의 외견 또한 푸르트벵글러로서는 자랑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정말 다 컸구나.”

    감상에 젖은 푸르트벵글러의 말이 배도빈에게는 이상하게 들렸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에요?”

    “별 뜻 없다.”

    배도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인터폰을 눌렀다. 커피를 요청하고 소파에 기대어 얼굴을 쓸었다.

    “파우스트 초안 잡고 있었어요. 올해 안에 발표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길어질 것 같아요.”

    “급할 거 있나. 천천히 해. 천천히.”

    푸르트벵글러의 태도가 평소와 달리 온화했다.

    배도빈은 푸르트벵글러의 낯선 태도가 아직 자신의 눈을 걱정하는 탓이라고 여겼다.

    “어느 정도는 빼야 해요. 따로 생각해 둔 일도 있어서요.”

    “생각해 둔 일?”

    “네. 그러지 않아도 말해야 했는데 잘 왔어요.”

    대화 중인 두 사람 사이에 커피가 놓였다.

    푸르트벵글러가 뜨거운 커피를 머금고 향을 깊이 음미했다.

    지휘봉을 내려놓겠단 이야기는 배도빈의 이야기를 들어준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은 이 감상을 조금 더 느긋하게 느끼고 싶었다.

    푸르트벵글러의 마음을 모르는 배도빈은 다소 즐거운 듯 이야기를 전했다.

    “작년에 오케스트라 대전 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시카고라든지 로테르담도 그렇고.”

    “수상식 때도 말하지 않았느냐.”

    “네. 사실 첫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푸르트벵글러는 벌써 5년 전 이야기를 떠올렸다.

    제1회 오케스트라 대전이 끝날 무렵 배도빈은 자신만의 오케스트라를 꾸리기 위해, 또 자신이 아직 모르는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했었다.

    그때는 어떻게 강제로 자리에 앉혀두었지만, 세계 여러 음악가를 접하니 그 마음이 또 도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베를린 필하모닉과 관련한 모든 것이 배도빈의 소유였고, 반대로 그 역시 베를린 필하모닉에 묶여 있기에 그때처럼 자유롭게 떠날 수도 없었다.

    푸르트벵글러는 싱글싱글 웃었다.

    “그래서, 또 여행 다니고 싶다?”

    “네. 길게 다닐 순 없지만 그래도 필요한 일이니까.”

    “흐음. 진심이구나.”

    “연수 목적으로 한두 달 돌아볼 생각이에요. 단원들도 차례로 보낼 예정이고.”

    “그래. 나쁘지 않다.”

    푸르트벵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을 뿐.

    배움의 장을 넓히기 위한 단기 연수라면 그 또한 이로운 일이리라.

    음악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 배도빈다운, 베를린 필하모닉다운 계획이기에 푸르트벵글러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저부터 다녀오려고요. 푸르트벵글러 생각은 어때요?”

    “그거야 네가 정할 일이지.”

    푸르트벵글러가 어깨를 으쓱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제자의 빈자리를 잘 채울 수 있는 건 그가 시력을 잃었을 때 증명되었다.

    한두 달의 공백으로 흔들릴 일 없으니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미 상임 지휘자 자리를 내려놓을 생각이기에, 이미 자신을 뛰어넘은 제자에게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배도빈에게는 푸르트벵글러의 태도가 무척 수상하게 보였다. 평소와 달라도 너무나 다른 태도였기에 눈썹을 모으고 그를 살폈다.

    “뭐 묻었어? 왜 그리 빤히 봐?”

    “아뇨.”

    푸르트벵글러가 너무나 태연했기에 배도빈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아, 그리고 올해는 이런 것도 해보려고요.”

    배도빈이 일어나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제법 묵직한 악보 뭉치를 꺼내 푸르트벵글러 앞에 놓았다.

    초연하게 시선을 옮긴 푸르트벵글러가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어냐?”

    “실황 앨범으로만 있잖아요. 플랫폼도 궤도에 올랐으니 새로 녹음해서 콘텐츠로 쓰려고요.”

    지난 세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했던 악보 일부였다.

    푸르트벵글러 본인도 잊고 있던 것이 상당했다.

    “이걸 다 어디서 났어?”

    “레몽이 두고 갔어요.”

    푸르트벵글러는 굳이 창고에 쑤셔 넣어두란 것을 하나하나 챙겼던 제자를 떠올리며 악보를 살폈다.

    레몽 도네크가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기록한 총보는 푸르트벵글러를 그리운 과거로 이끌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추억이 샘솟았고 그렇게 한동안 푸르트벵글러는 자신이 남긴 악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흐음.”

    추억을 회상하는 푸르트벵글러를 바라보며 배도빈은 천천히 때를 기다렸다.

    그가 지난 연주를 다시금 녹음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인내심을 가졌다.

    “그래. 이런 것도 괜찮겠지.”

    배도빈이 애써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브람스부터 어때요? 작곡가별로 나눠서 1년씩 준비하면 될 것 같은데.”

    “빠듯하지 않겠느냐?”

    푸르트벵글러의 질문에 배도빈이 고민하는 척했다.

    “서두를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허술하게 할 순 없으니까. 좀 더 여유롭게 잡는 것도 좋겠죠.”

    푸르트벵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헨리가 하면 일정에 여유가 좀 있겠구나.”

    배도빈이 눈썹을 좁혔다.

    푸르트벵글러에게 새로운 목적의식을 주어서 그를 붙잡겠단 계획이 엇나가고 있었다.

    “헨리는 바빠요. B팀이랑 C팀을 맡아야 하니까.”

    “흠. 케르바는 어떠냐.”

    “마찬가지예요. 정규 연주회도 하고 음악교육원 교수로도 활동해야 하니까요.”

    푸르트벵글러가 턱을 쓸었다.

    “네가 하기엔 너무 바쁘지 않으냐. 그러다 또 잘못되면 어쩌려고.”

    푸르트벵글러의 걱정스러운 말에 배도빈이 탄식했다.

    “그러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하고 싶은데, 후유증이 언제 도질지 모르니까.”

    “으음.”

    푸르트벵글러가 악보를 살피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 녀석이?’

    약한 소리는커녕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리려 해도 악보와 지휘봉을 놓지 않았던 배도빈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영 낯설었다.

    ‘……다시 겪고 싶지 않겠지.’

    그러나 2년 가까이 앞을 보지 못한 경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푸르트벵글러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악보를 접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겠구나. 천천히 하는 수밖에.”

    배도빈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면 안 돼요.”

    “뭐가?”

    “구독자 오르는 거 몰라요? 지금 콘텐츠 풀어야지 언제 하게요.”

    “정기 연주회 올리고 있잖느냐. 밴드도 활동하고 있고. 달래 그 녀석 요즘 아주 신났더구나.”

    “록 밴드 흉내도 좋지만 이게 더 중요하잖아요.”

    “할 사람이 없는데 어쩌자고 자꾸 고집을 부려?”

    “할 사람이 없긴 왜 없어요. 푸르트벵글러가 있잖아요.”

    푸르트벵글러의 반응이 예상외로 시원치 않은 탓에 다급해진 배도빈이 본심을 내뱉고 말았다.

    푸르트벵글러는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리며 고민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알 수 없는 긴장이 흐른 뒤.

    푸르트벵글러가 호통쳤다.

    “이 녀석이! 무슨 속셈인지 모를 줄 아느냐!”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오다가 들었다. 노이어한테 앨범 내자고 했다지?”

    “네. 기념 삼아서.”

    “기념 삼자고 몇 년 뒤에 곡 써주겠다고 해? 그 녀석 잡아두려는 생각 아니냐!”

    “…….”

    “이것들도 마찬가지고.”

    작전이 모두 들키자 표정 관리를 하던 배도빈이 다시 본래 얼굴로 돌아왔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가면 어디 덧나나.”

    “이 녀석이 뭘 잘했다고 당당해?”

    “자꾸 나가려고 하니까 그렇죠! 돈 잘 주지, 모든 일정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주지, 도대체 뭐가 부족해요?”

    “이젠 나도 늙었어!”

    “늙긴 뭘 늙어요! 아침마다 3㎞씩 잘만 뛰면서!”

    “연주회 한 번 하고 나면 진이 빠져! 침침한 눈으로 악보 들여다보는 게 얼마나 고된 줄 알아!”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뭐, 뭐?”

    “난 안 보였어도 했어요!”

    배도빈의 반격에 푸르트벵글러가 짐짓 당황했다.

    눈이 침침하단 말을 꺼낸 것이 실책이었다.

    기회를 잡은 배도빈은 푸르트벵글러를 설득할 때까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앞 못 보고, 귀 안 들리는 사람도 했는데, 뭐가 문젠데요? 뭐가 늙었다고 자꾸 그만둔다는 건데!”

    “도빈아.”

    “죽을 때까지 음악 할 거잖아요!”

    “…….”

    “그럴 거면 여기서 하라고요. 원하는 건 다 해줄 테니까. 더 큰 무대 가지고 싶으면 말만 해요. 얼마든지 지어줄게요. 소소하게 하고 싶으면 따로 챔버 구성하고, 아니, 원하는 사람 명단만 넘겨요. 다 데려올 테니까.”

    배도빈의 간절함을 느낀 푸르트벵글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소 격정적이긴 하나 대부분 이성적이었던 평소와 달리 배도빈은 떼를 쓰고 있었다. 억지를 부렸다.

    처음 봤을 때부터 정말 아이인가 싶을 정도로 성숙했던 배도빈이 처음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너무나 고마웠고.

    너무나 안타까웠다.

    푸르트벵글러가 온화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제자를 불렀다.

    “도빈아.”

    “왜요.”

    “내가 지휘봉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우리 사이가 변하는 게 아니란다. 사제로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그 관계는 변하지 않아. 다만 좀 떨어질 뿐이야.”

    “당연하죠.”

    푸르트벵글러가 눈을 껌뻑였다.

    어린 배도빈이 자신과의 관계가 변할 것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던 그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당신이 남긴 것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에요.”

    “…….”

    “당신이 만들었잖아요. 당신의 정신으로 커왔잖아요. 그러니까 나가고 싶으면 마무리는 확실히 지으라고요.”

    “…….”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배도빈의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

    푸르트벵글러는 당장에라도 울먹일 것처럼 보이는 제자의 낯선 모습에 당황했다.

    “아니, 어렵다는 게 아니라.”

    “그럼 뭔데요! 그렇게 자기 맘대로, 자긴 만족했으니까 남은 사람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거 아니에요! 레몽이랑 뭐가 다른데!”

    레몽 도네크 이야기가 나오자 푸르트벵글러가 펄쩍 뛰었다.

    “그 녀석이랑 다른 게 뭐냐고?”

    “그렇잖아요!”

    푸르트벵글러의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고, 더욱이 이젠 울먹이기까지 하는 배도빈을 더는 내칠 수 없었다.

    푸르트벵글러는 호통을 치는 대신 팔을 벌려 배도빈을 끌어안았다.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다.”

    배도빈이 몸을 들썩였다.

    “이 녀석아, 사내놈이 울긴 왜 울어?”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이 코를 들이마시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한동안 그렇게 달랜 뒤 푸르트벵글러는 조만간 은퇴하길 완전히 포기하곤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죠엘 웨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왔다.

    계약서를 받아 든 푸르트벵글러가 눈을 좁히고 서류를 든 팔을 쭉 폈다.

    “이게 뭐야! 10년?”

    “바흐, 아마데. 베트호펜은 당연하고. 브람스랑 브루크너, 말러, 드보르자크에 제 것까지 하려면 그 정도는 걸리잖아요.”

    “아니, 이 녀석아! 그걸 다 어느 세월에 해?”

    “10년이요.”

    배도빈의 뻔뻔함에 푸르트벵글러가 펄쩍 뛰었다.

    “다 빼! 그래! 베트호펜이랑 브람스만 하면 되겠네!”

    “어떻게 빼요. 다른 작곡가는 차별하는 거예요?”

    “이상하게 몰지 마!”

    “솔직히 푸르트벵글러보다 브루크너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바흐도 그렇고. 그리고 다들 아마데는 마리 얀스랑 아리엘 얀스라고 하는데, 모르는 말이지. 푸르트벵글러 아마데가 얼마나 멋진데.”

    “……그건 그렇지.”

    “그리고. 제 건 왜 빼요? 하기 싫어요?”

    “아니!”

    흥분한 푸르트벵글러가 간신히 진정하고 타이르듯 말했다.

    “좋다. 3년으로 하자.”

    “9년이요.”

    “……3년 6개월.”

    “8년 6개월.”

    “배도빈!”

    “어쩔 수 없죠. 5년. 더는 양보 못 해요. 해봐요. 해보고 나중에 힘들다고 하면 뺄 테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것처럼.

    푸르트벵글러는 한숨을 내쉬며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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