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547화
119. Fin(4)
“형이다!”
화장실에 다녀온 배도진이 배도빈을 발견하곤 와락 끌어안았다.
배도빈도 적절한 시기에 치고 들어 온 동생을 기특히 여겨 머리를 쓰다 듬었다.
배도빈 가족과 죠엘 웨인은 배도진 의 졸업을 축하하는 의미로 잔을 들었다.
“축하한다.”
“축하해, 아들?”
“축하해.”
“응!”
유진희가 방끗방끗 웃고 있는 차남 에게 말했다.
“도진아, 연구실 들어가면 또 다를 거야. 힘들면 엄마나 아빠한테 꼭 말하고. 엄마 아빠한테 말하기 싫으면 형한테라도 꼭 말해야 해?”
“응.”
“꼭 힘들지 않아도 놀고 싶으면 놀아도 돼.”
이미 할아버지와 교수들 덕분에 하고 싶은 실험을 마음껏 하고 논문도 쓰며 놀고 있었지만 배도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 받고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는 덕분 이었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배도빈을 부부가 차남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아들.
배도빈이라는 신기한 아들을 한 번 키워봤던 부부는 전과 같이 천재 아 들을 사랑하고 걱정한 나머지 품에 넣으려고만 하지는 않았다.
배도빈이 처음 엑스톤과 계약할 때 도, 영화•게임 음악을 작업하기 위 해 미국에 갔을 때도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할 때도 모두 망설였지만 결국 믿고 바라봐 주었던 경 험과 그로 인해 배도빈이 장성하는 과정에서 느낀 바가 있었다.
배도진이 바라는 일이라면 무엇이 든 믿고 들어줄, 그리고 지원해 줄 생각이었다.
다만.
너무나 어른스러웠던 배도빈이 실 명할 정도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걸 몰랐던 것 이 평생 후회될 뿐이었다.
“쉬고 싶을 때는 꼭 쉬어야 해? 아무도 도진이한테 뭐라 할 수 없어.”
“엄마랑 아빠가 있으니까?”
“그럼.”
“형도?”
“당연하지.”
배도진이 밝게 웃었다.
“그런데 연구실 이야기는 뭐예요?”
식사를 시작하고 배도빈이 유진희 에게 물었다.
“도진이 석사 과정. RWTH 아헨 에 생명공학 대학원이 있대. 거기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있게 됐어.”
“너무 이르지 않아요?”
학교에 다니는 건 찬성하지만 이제 겨우 11살 먹은 동생이 벌써부터 일선에 나선다고 하니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유진희, 배영준에게는 정작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부터 활동한 본인 생각은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배영준이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아, 너는 4살 때부터 일해 놓고 동생은 안 된다고?”
“저는 다르잖아요.”
“얘는. 도진이도 얼마나 똑똑한데. 그치?”
“응! 나 똑똑해! 형보다!”
배도빈은 동생이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아직 어리기 때문에 좀 더 보 호받을 수 있는 곳에 있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어릴 적 부모님이 왜 그렇게 유치 원과 학교를 보내고 싶어 했는지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배도빈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도진아.”
“응.”
“놀고 싶으면 형한테 말해. 쉬고 싶을 때도. 뭔가 힘든 일이 있어도. 꼭.”
“엄마가 방금 한 말이잖아.”
어머니에 이어 동생과의 대화에서 도 밀리는 배도빈을 보며.
죠엘은 배도빈이 그의 가족에게는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늘 점심때 레몽 도네크를 대할 때도 그러했다.
시크한 배도빈의 이미지, 악단주로 서의 위엄과 반대되는 그 모습들이 그가 얼마나 그 가족과 주변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형 눈도 꼭 낫게 해줄 거야!”
뭘 알고 말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배도빈은 다부지게 말하는 배도진이 고맙고 기특할 뿐이었다.
“그래. 부탁할게.”
“응! 나만 믿어!”
5월 26일.
2027 오케스트라 대전 로테르담 그랑프리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진가가 발휘된 대회였다.
창단 1년 만에 오케스트라 대전 본선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업적이거늘, 홈그라운드를 맞이해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
2027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첫 우 승을 차지하며 로테르담 필하모닉을 종합 4위까지 끌어올렸다.
한편 베를린 필하모닉은 근소한 차 이로 준우승을 거두어 단독 선두 자 리를 유지.
3위를 기록한 빈 필하모닉은 종합 2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의 점 수 차이를 20점으로 좁히며 통합 우승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6월 23일.
빈 그랑프리는 역대 그랑프리 중 가장 치열했다.
주제 현대곡.
사카모토 료이치는 오케스트라 대 전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했던 신곡 ‘교만’을 발표하며 7,000만 표 이상을 쓸어 담아 종전의 베를린 필하모닉이 기록한 6,800만 표를 앞섰고.
베를린 필하모닉은 영화 블랙 나이 트의 OST이자 배도빈 교향곡 4번 ‘심판의 날’을 연주해 준우승을 거 두었다.
또한 4〜5위 권에 머물며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오지 못했던 암스테르 담 로얄 콘세르트허바우는 마리 얀 스가 2000년에 발표해 그해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던 ‘오직 그만이 구 원이었다’를 연주해 그 저력을 과시, 3위를 기록했다.
총 12개 그랑프리 중 절반을 넘어 선 시점에서 점점 우승권이 그려졌고 그것은 베를린 필하모닉, 로스앤 젤레스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암스 테르담 로얄 콘세르트허바우 네 악 단이었다.
라이든샤프트를 주도하는 배도빈과 아리엘 얀스는 새 시대의 음악을 유 감없이 펼쳤고.
오랜 시간 활동하며 전설로 추앙받 아온 사카모토 료이치와 마리 얀스는 그들의 음악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7월부터 이어진 8차 그랑프리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게 되었다.
배도빈은 마치 자신이 했던 말을 지키려는 듯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 갔다.
7월 체코 그랑프리, 8월 상트 페테 르부르크 그랑프리, 9월 암스테르담 그랑프리에서 세 번 연속 우승을 거 둔 베를린 필하모닉은 누적 222포 인트를 기록.
남은 10월 베를린 그랑프리와 11 월 서울 그랑프리에서 단 2점만 획 득해도 2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 연속 우승을 거두지 않는 이상 통합 우승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점만 획득하더라도 최소 공 동 우승을 확정된 상황에.
본선 참가자들은 물론 전 세계 음악 팬들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ㄴ 야잌ㅋㅋㅋㅋ 그미친 ㅋㅋㅋㅋ
ㄴ 아, 오케스트라 대전 망했어요. 통합 우승 이미 정해졌어요.
ㄴ 지린다 지려. 1회랑 2회 모두 통합 우승하넼ㅋㅋㅋㅋㅋ
ㄴ 정해진 거 아니잖아. 베를린이 무득점하고 LA가 연속 우승하면 통합 우승 못 함.
ㄴ ㅋ?
ㄴ 농 촘 잘하시는 듯.
ㄴ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우는 소 리가 여기까지 들린다아아아!
ㄴ 배도빈 진짜 독하다 독해. 빈이 랑 로스앤젤레스 잘 따라왔는데 결국 이렇게 되네.
ㄴ 순위 경쟁하는 맛에 봤던 애들은 좀 실망스럽겠네.
ㄴ 솔직히 다들 알고 있지 않았냐. 베를린이 우승한다는 건.
ㄴ ㅇㅈ. la랑 빈이 잘하고 있긴 했지만 득표 수부터 차이가 좀 많이 나긴 했음.
ㄴ 어차피 우승은 배도빈 공식 소름 돋네.
ㄴ 망한다는 놈들 진짜 클알못이다. 사람들이 순위 때문에 봤겠냐? 감상 하려고 보는 거지.
ㄴ 그럼 베를린 필하모닉은 이제 힘 좀 빼고 하려나?
ㄴ 그럴 리가.
ㄴ 배도빈이랑 베를린이 대충할 리가 없지.
ㄴ 베를린 그랑프리 주제 떴다!
ㄴ [링크]
[2027 오케스트라 대전 베를린 그 랑프리 주제 발표]
9월 27일.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그랑프리 주 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배도빈 악단주가 정한 주제는 오리 지널.
이로써 12개 악단은 그들만의 고 유 곡을 선정해 10월 27일부터 30 일까지 나흘간 베를린에서 그랑프리
를 치르게 되었다.
이는 사실상 제2회 오케스트라 대 전 통합 우승을 확정 지은 배도빈 악단주의 의지 표명으로 보인다.
아리엘 핀 얀스 감독과 사카모토 료이치 상임 지휘자를 제외하고 최 근 10년간 클래식 음악 차트는 배도빈 악단주가 지배하다시피한 상황 에서 오리지널 곡을 주제로 선정한 것은 일말의 가능성도 배제하겠단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ㄴ 아까 아직 모른다고 했던 애 있음?
ㄴ ㅇㅇ. 여기 있음. 끝난 거 맞네.
주제가 발표되자 각 언론은 분주히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을 제 외하고 유일하게 통합 우승의 가능 성을 가지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에게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 한 수순이었다.
“얀스 감독님! 한 마디만 부탁드릴 게요!”
“감독님! 여기, 여기 좀 봐주세요!”
아리엘 얀스가 고개를 돌리자 어렵게 기회를 붙잡은 기자가 다급히 마이크를 들이댔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통합 우승이 거의 확실시 되었습니다. 지금 심경이 어떠십니까?”
아리엘 얀스는 기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비현실적인 예술 작품이 자신을 뚫 어지게 바라보자 질문을 한 기자가 넋을 놓고 말았다.
주변에서는 그 기자가 언론과 좋지 않은 일을 겪은 아리엘 얀스에게 또 한 번 무례를 저질렀다 생각하며 거 리를 두었다.
“당연한 질문을 하셔서 뭐라 답해 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리엘 얀스는 차분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통합 우승을 거두는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 금은 남은 그랑프리에서 어떤 연주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다시 달려들어 어떤 곡을 준비하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진 행 중인지 질문을 쏟아냈지만 아리 엘은 오케스트라 대전 규정상 공연 당일을 기다려달라는 말만 남겼다.
아리엘 얀스의 짧은 인터뷰는 기존 순위 경쟁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아 아쉬워하던 팬들과 일부 참가자들에 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해주었다.
“그래. 통합 우승 못 하면 어때. 그랑프리에서 한 번 정도는 우승해 봐야 하지 않겠어?”
“이제 겨우 1년 된 로테르담도 우 승했어. 우리가 못 할 게 뭐야.”
참가 악단의 단원들은 다소 김이 빠졌던 분위기를 쇄신해 의지를 다졌고.
팬들도 각 그랑프리 우승이 가지고 있는 의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ㄴ 생각해 보니 그랑프리 우승도 대단하긴 하네.
ㄴ 대단한 정도가 아님. 일단 본선 올라간 것만 해도 수백, 수천 오케스트라 중에 탑12에 든 거니까.
ㄴ 어쨌든 한 번이라도 우승하는 게 의미가 없을 수 없지.
ㄴ 대충 그랑프리 6위 안에 들면 호 성적이라고 함. 3위 안에 들면 진짜 진짜 잘한 거고.
ㄴ 베를린이랑 L/\가 다 해 먹어서 그렇지 빈 필도 우승은 한 번밖에 못 했음.
ㄴ 그랑프리 상금도 어마어마함.
ㄴ 얼만데?
ㄴ 그랑프리 우승이 1,500만 달러. 준우승 750만 달러. 3위부터 300 만, 200만, 100만, 75만, 50만, 25만 달러임. 그 뒤로는 상금 없고.
ㄴ 500만 달러면 100억 원이 넘 네;;
ㄴ 근데 규모에 비해선 적은 거 아님?
ㄴ 통합 순위 상금은 따로 있음. 그 게 진짜임.
ㄴ 통합 우승이 3억 달러, 준우승이 1억 5,000만 달러.
ㄴ ??????????
ㄴ 상금 수준 보소;;
ㄴ 스폰 붙은 기업만 총 112곳인데 전부 글로벌 기업임. 첫 오케스트라 대전 성공 보고 진짜 지원 엄청 붙었음. 국가적으로도 지자체에서도 나섰으니까 가능하지.
ㄴ 으으, 빨리 다음 그랑프리 보고 싶다.
ㄴ 그러게. 베를린 필하모닉 오리지 널이면 진짜 기대되는 거 많은데. 베를린 환상곡, 불새, 타마키 히로시는 연주했으니까 다른 거 뭐 남았지?
ㄴ 인기로 따지면 잠자는 숲속의 공 주를 협주곡으로 하려나?
ㄴ 거 연주하면 다 자서 안 됨. 득표 수가 도리어 떨어질걸.
ㄴ 그럼 뭐가 제일 가능성 높음?
ㄴ 가장 큰 희망도 있고 용감한 영 혼도 가능성 높지. A108도 있네. 베를린 필하모닉 레퍼토리가 진짜 다양한 게 배도빈 곡이 워낙 많고 또 편곡 능력이 개사기라서 뭐가 나 올지 모름.
ㄴ 아예 신곡이 나올지도.
ㄴ 그러고 보니 배도빈이 준비한 게 있다고 했던 거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