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539화
116. Legacy(6)
“마에스트로, 또다시 대기록을 수립하셨습니다. 6,000만 표 이상을 받으시며 런던 그랑프리 1차전 우승이 예상되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예상된 결과입니다. 딱히 소감이라고 할 것은 없습니다.”
6,011만 3,348표를 얻으며 또 한 번 기적을 일으켰으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 답하는 배도빈의 태도에 기자들은 당황했다.
“ 다만.”
배도빈에게 익숙한 팬들이 웃으며 채팅창을 채워나가고 있는 와중에 배도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우승보다 가치 있는 것을 얻었습니다. 뮌데르크가 차도를 보여 의식을 되찾았고 새로운 단원이 첫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죠. 무척 기쁩니다.”
배도빈의 대답에 기자와 팬들이 다소 놀랐다.
지금껏 언론을 통해 보인 그의 모 습은 상당히 건조하고 담담한 편이었다.
그가 감정을 내비치는 경우는 보통 푸르트벵글러나 가우왕과 같은 사람과 다툴 때였고 그나마도 대부분 시 큰둥하거나 살짝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무척 기쁘다와 같은 표현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한 기자가 다급히 질문을 이었다.
“새로운 단원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그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배도빈은 잠시 간격을 두고 답했다.
“몇 년 전 어린이 타악 교실의 학생으로 들어왔습니다. 음악을 사랑 하고 즐길 줄 아는 친구였죠.”
“온라인상에 그가 자폐증을 겪고 있단 이야기가 올라왔습니다.”
한 기자의 발언에 엄마, 동생과 함께 인터뷰를 지켜보던 죠엘이 눈썹을 좁혔다.
배도빈은 또 한 번 간격을 두고 답했다.
“사실입니다.”
기자들은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히 울리며 질문을 쏟아냈다.
“어떤 훈련을 하신 겁니까?”
“자폐증 환자가 입단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제부터 단원으로 받아들이셨습 니까?”
“무모한 일이었단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대 규모의 공연에 자폐증 환자를 올리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쾅
어느 기자의 질문에.
배도빈이 테이블을 내려쳤다.
앞다투어 목소리를 높였던 인터뷰 장이 고요해지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글 쓴다는 분들이 말을 함부로 하 시네요. 말은 고칠 수 없습니다.”
배도빈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최대 규모의 공연에 자폐증 환자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소리를 치는 건 아니었지만 그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충분히 전달 되었기에 인터뷰장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엠마, 방금 헛소리한 인간 어디 소속인지 확인하고 앞으로 모든 일정에서 제외하세요.”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자리에서 감히 언론을 적으로 두는 배도빈의 과감함을 우려하는 팬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범지구적 문화로 자리 잡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배도빈의 발언이었기에.
언론인들은 도리어 그들에게도 영 향이 미칠까 두려워했다.
“ 나도.”
그는 분명 화를 내고 있었다.
감히 오케스트라 대전과 같은 권위 있는 무대에 자폐증 환자를 올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화를 내고 있었다.
“장애인입니다.”
배도빈의 발언에 활발하게 올라가던 채팅창도 숙연해졌다.
“장애가 무대에 오르지 못할 이유입니까? 오케스트라 대전과 같이 권위 있는 무대에 참가할 자격조차 없는 겁니까? 나는 오늘 무대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산타는 자기 역 할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배도빈은 뿌연 빛만을 느끼며 말했다.
볼 수 없었다.
화를 내는 대상이 말실수를 한 기자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차별을 자행하는 불특정다수인 것처럼 대상을 분별할 수 없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세계 속에서 막막함과 답답함을 느끼는 그의 목소리는 조금씩 격앙되었다.
“무대에 오르기에 한 점 부끄러움 이 있었더라면 스스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방금 질문하신 분께 묻겠습니다. 내가 부족했습니까?”
카메라가 기자석을 비추자 다른 기 자들이 슬금슬금 몸을 피했고 지목 받은 기자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해를 하신 듯한데. 저는 단지 그 자폐라는 게 지능적으로. 사, 사실 마에스 트로는 그런 경우가 아,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 기회를 걷어찬 대답에.
배도빈은 일말의 동정조차 느끼지 않았다.
“산타의 큰북이 오늘 어떤 역할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문예부 기자를 하시는지 모를 일입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철저히 배제된 그는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숨을 길게 내쉰 배도빈이 일어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산타 웨인은 오늘 본인의 역할에 충실했고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할 자격이 있습니다.”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가 끝 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레이 웨인과 죠엘 웨인은 산타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힛
지금도 연주의 기쁨에 사로잡혀 있는 산타는 웃을 뿐이었다.
‘ 보스••••••
죠엘은 말과 행동으로 다할 수 없는 감사와 희망을 전해준 그를 위해 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휘유.”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피셔 디스카우가 한 숨을 내쉬었다.
그와 함께하는 타악기 주자들도 일단은 안도했다.
“피셔, 산타 오늘 너무 완벽하지 않았어요?”
네빌 부수석의 질문에 피셔 디스카 우가 우쭐해졌다.
“당연하지. 누가 가르쳤는데.”
“그러니까요. 보스랑 피셔는 알고 있었던 거네요. 진짜 어떻게 그렇게 딱딱 맞는지 연주하면서도 너무 신기했어요.”
네빌의 말에 피셔 디스카우가 작게 웃었다.
“도빈이 덕분이야.”
그의 말에 타악기 주자들이 귀를 기울였다.
“기억력이 좋고 박자 감각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산타가 기억하는 타마키 히로시는 작년 첫 공연 때의 연주였어.”
“그런데요?”
“우리가 준비했던 대로 연주했으면 어긋났을 거란 뜻이지. 오늘 공연 준비했던 거랑은 좀 달랐잖아.”
“네. 박자가 좀.”
“도빈이가 맞춘 거야. 난 솔직히 그게 가능할 거라곤 생각 안 했어. 그저 기적을 바랐을 뿐이지.”
피셔 디스카우의 설명에 단원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뜻이에요? 보스가 작년 공연 때 큰북 소리에 맞춰 지휘했던 말씀 이세요? 그게 가능해요?”
“그러니까 말했잖아. 기적이었다고.”
피셔 디스카우는 그저 웃음만 나왔다.
“왜, 농담이든 진담이든 도빈이보고 신이라고들 하잖아. 그냥 관용적 표현이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정말 대단했어. 연주하는 내내 소름이었다니까. 생각해 봐. 1년 전의 연주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야?”
배도빈을 잘 아는 단원들조차.
그가 오늘 어떤 일을 해냈는지에 대해 쉽게 믿을 수 없었다.
***
최지훈과 함께 숙소로 귀가한 배도빈은 침대가 어디 있는지 확인한 순간 몸을 눕혔다.
신경을 극도로 예민하게 유지했던 탓에 지친 탓이었다.
배도빈이 이렇게 지친 모습은 처음 보았기에 최지훈이 그를 위로했다.
“고생했어.”
“어. 고생했어.”
항상 강한 모습만 보였던 배도빈이 드물게 자신이 고생했음을 인정하자 최지훈이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어? 왜 이렇게 축축해?”
땀으로 범벅이 된 와이셔츠에 최지훈이 깜짝 놀랐다.
“몰라. 잔다.”
“안 돼. 씻고 자.”
“귀찮아.”
“빨리.”
최지훈이 배도빈을 샤워실로 안내해 샴푸와 바디클렌저, 수건, 샤워기 위치 등을 알려주었다.
최지훈이 샤워 부스에서 나가자 배도빈은 궁시렁대며 옷을 벗기 시작 했고 최지훈은 느긋하게 TV를 틀었다.
뉴스에선 런던 그랑프리 1차전, 개막일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고 소파에 기대 앉은 최지훈은 핸드폰을 펼 쳐 클래식 음악 포럼 ‘아마데우스’ 에 접속.
오늘 공연의 반응을 모니터링했다.
잠시 후 배도빈이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입은 채 나왔다.
최지훈이 그에게 다가가 화장대 앞에 앉혔다.
“안 말려도 된다니까.”
“감기 걸려.”
“안 걸려.”
“걸려.”
최지훈이 드라이기를 꺼내 배도빈의 머리를 말려주었고 그러는 도중에도 두 사람은 시시한 말다툼을 이 어나갔다.
그러다 배도빈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신경 쓰여?”
"조금..."
최지훈이 드라이기를 껐다.
“많이 바뀐 것 같으면서도 그런 이야기 접하면 조금도 안 바뀐 것 같고 그래.”
희망을 노래했지만 증오와 차별은 계속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고 부정 하며 신념을 지켜왔던 그도 오늘만 큼은 조금 지쳐 있었다.
최지훈은 그런 형제를 보며 로션을 짜 그의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글쎄. 난 많이 바뀐 것 같은데?”
배도빈이 눈썹을 좁히며 설명을 촉구하자 최지훈이 빙그레 웃었다.
“홈페이지에 산타 정식 단원으로 되었으면 좋겠단 글이 올라오고 있어. 벌써 몇백 개나.”
“••••••그래?”
“응. 다들 분명 감동한 거야.”
최지훈의 말에 배도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아직 지쳐 보였기에 최지훈이 로션을 바르던 손에 힘을 주었다.
“무슨 짓이야!”
“히힛
최지훈은 평소와 같이 화내는 형제가 언젠가는 꼭 그가 이룬 기적을 두 눈으로 확인하길 바랐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리라 믿었다.
* * *
런던 그랑프리 1차전 두 번째 날 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장 미카엘 블레하츠는 한 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임원들을 소집했다.
설명을 마친 블레하츠가 임원들의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유롭게 들려주시죠.”
다들 말을 아끼는 도중 레이스클 레너 이사가 입을 열었다.
“협회 홈페이지에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인 터넷 반응을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 같고요.”
레이 스클레너는 블레하츠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한 사람 씩 의견을 더했다.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 협회장이자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이사인 한지 석도 블레하츠와 스클레너의 의견에 동참했다.
“사실 개인상이 없는 게 아쉬움도 있었지요. 이번 기회에 제정하는 것 도 나쁘지 않겠지만 일단은 특별상으로 두고 반응을 지켜보는 게 어떻습니까.”
한지석의 말에 임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네 번째 그랑프리가 진행되는 도중에 새로운 상을 제정하는 건 형 평성에 어긋났기에 내놓은 절충안이었는데, 미카엘 블레하츠도 그 의견 이 옳다 여겼다.
“좋습니다. 그럼 이 안건을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죠.”
* * *
[런던 그랑프리 1차전 종료!]
【우승. 베를린 필하모닉!]
【공동 1위로 올라선 베를린 필하모닉!]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런던 그 랑프리 1차전 특별상 제정. 수상자는 산타 웨인]
【산타 웨인. 오케스트라 대전 최초로 개인 수상의 영광을 얻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산타 웨인이 보여준 기적]
【네티즌들의 응원 쇄도]
지난 4월 24일. 베를린 필하모닉 홈페이지가 잠시 마비되는 소동이 있었다.
이유는 당일 베를린 필하모닉의 그 랑프리 우승이 확정되고 산타 웨인 이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로부터 ‘매카시 상’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는 전설적인 왼손 피아니스트 ‘니콜라 매카시’의 이름을 딴 특별상을 제정, 런던 그랑프리 1차전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준 산타 웨인의 공로를 치하했다.
산타 웨인은 다음과 같은 수상 소 감을 남겼다.
“타마키 형이 보고 싶어요. 도빈 형이 느끼게 해줬어요. 엄마, 누나 사랑해요.”
어눌한 말투로 전한 진심 어린 목 소리에 전 세계 클래식 음악 팬들은 감동했다.
그들은 산타 웨인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정식 단원이 될 수 있길 기원 한다는 글을 남기고자 베를린 필하모닉 홈페이지에 접속, 현재까지 7 만여 건의 글을 남기며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음악가를 응원했다.
•정세윤 (관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