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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537화 (537/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537화

116. Legacy(4)

딸이 전화를 마치자 그레이 웨인이 걱정스레 물었다.

“악단주님 전화니?”

“응. 보스가 산타랑 엄마 모시고 와달라고 하셨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응. 급한 일인가 봐. 차 보내주신 다고 하셨으니 준비하자. 산타〜”

“응!”

타마키 히로시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싶어 안달이 나 있던 산타 웨인 이 누나의 부름에 불쑥 얼굴을 내비쳤다.

산타에게 씻고 옷을 입으라 말하려던 죠엘은 벌써부터 준비를 마친 동 생을 보고 웃고 말았다.

“벌써 입고 있었어?”

죠엘이 동생의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물었다.

산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히힛 하고 웃었다.

“히힛. 두, 두 시간 뒤에 가야 해. 느, 늦으면 아안 돼.”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고 외투와 가 방을 챙긴 죠엘은 어머니, 동생과 함께 로비로 내려갔고 곧 배도빈이 보낸 차량에 탈 수 있었다.

한편.

웨인 가족을 기다리던 배도빈에게 뮌데르크에 대한 소식이 전달되었다.

병원으로 갔던 직원으로부터 상황을 전달받은 비서 엠마의 설명에 배도빈과 최지훈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심근경색이라고 합니다.”

심근경색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심각한 질환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행히 늦지 않아 치료 중이라고 합니다. 디스카우 수석도 막 도착하셨다고.”

“도빈아!”

엠마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피셔 디스카우가 배도빈을 발견하곤 달려 왔다.

늦지 않았다는 말에 안도한 배도빈이 한숨을 내쉬곤 디스카우를 치하 했다.

“고생했어요.”

“고생은 무슨. 천만다행이지.”

“그러게요. 뮌데르크는 좀 어때 보였어요?”

“정신을 차리진 못했어. 그래도 괜찮아질 거라 했으니 믿고 기다려야지.”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제 공연은 어쩌지? 북을 빼야 하나?”

배도빈이 고개를 저었다.

비록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악기는 아니지만 타마키 히로시가 큰북과 작은북을 넣고 싶었던 걸 고려해도.

곡의 분위기를 위해서라도 결코 빠지면 안 될 악기였다.

“산타가 할 거예요.”

최지훈이 깜짝 놀랐다.

산타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했지만 배도빈이 신경 쓰는 아이였기에 그 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하긴. 그 수밖에 없나.”

피셔 디스카우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타악기 수석조차 인정하자 최지훈이 물었다.

“산타라면 어린이 타악 교실에 다니던 아이 말하는 거야?”

“ 맞아.”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묻지는 않았지만 최지훈이 무 엇을 물어보고 싶어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 사실을 알리면 단원 중 에 반발하고 나설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차별이 아니었다.

타악기가 연주를 하는 분량은 다른 악기에 비해 상당히 적다 해도, 완 벽한 타이밍에 들어서야 했기에 최지훈의 말대로 곡 전체를 완벽히 이 해하고 기억해야 했다.

그조차 산타 웨인의 비정상적인 박 자감각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면 믿을 수 없었을 터.

아마 산타 웨인이 드러머로 오늘 공연에 합류한다고 전해지면 다른 단원들도 우려할 터였다.

“산타는.”

“분명 뭔가 있겠지.”

최지훈이 배도빈의 말을 끊었다.

산타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배도빈을 믿었기에 굳이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신뢰에 배도빈이 싱긋 웃었다.

웨인 가족이 도착했다.

“ 보스.”

“죠엘. 갑자기 미안해요. 웨인 부인 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일로.”

“일단 자리를 옮기죠. 엠마.”

“네, 보스.”

일행은 조용한 장소로 자리를 옮겼고 배도빈은 뮌데르크가 쓰러진 일 부터 산타의 도움을 받고 싶은 이야 기까지 설명했다.

1시간 분량의 개막식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자, 잠시만요. 보스.”

당황한 죠엘 웨인이 나섰다.

“산타를 높게 평가해 주시는 건 너무 감사하지만 그 무대는……

오케스트라 대전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악단과 그 지휘자 그리고 수십 년간 자신을 갈고닦은 숙련된 연주 자들이 나서는 무대였다.

전 세계 수억 명이 지켜보는 공연 이었고 그것이 주는 중압감은 프로 연주자들조차 버거워할 정도로 무거 웠다.

그런 자리에 동생이 나선다면?

자랑스럽기 이전에 걱정이 앞설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실수라도 했다가 비난이라도 당할 것이 너무나 걱정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일하면서 불 특정 다수의 무심함과 잔인함을 지켜본 그녀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저는 반대예요. 산타는 아직 너무 어리고 게다가 한 번도 연습한 적 없잖아요. 더군다나 악기를 다루다니.”

죠엘의 반대에 배도빈이 고개를 끄 덕였다.

산타를 지극히 아끼는 죠엘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여겼다.

그때 그레이 웨인이 딸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

죠엘이 고개를 돌렸고 곧 엄마의 차분한 표정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배도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죠엘,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산타는 죠엘이 생각 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전 모르겠어요.”

“정말이야. 그건 1년 넘게 가르친 내가 장담하지.”

피셔 디스카우가 거들었지만 죠엘 은 좀처럼 마음을 굳힐 수 없었다.

배도빈이 산타 웨인을 불렀다.

“산타.”

“녜. 힛

산타가 천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타마키가 쓴 곡 많이 들었지?”

산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배도빈은 대 답을 기다렸다.

죠엘이 산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타일렀다.

“산타, 대답해야지?”

“많〜이. 많〜이 들었어요.”

“다 기억해?”

“네! 따다다다담 따다담.”

산타의 허밍에 배도빈이 싱긋 웃었다.

“오늘 형이 산타의 도움이 필요해. 형이랑 같이 연주해 볼래?”

“응!”

산타의 대답은 무척 빨랐다.

조금의 고민도 없었고 도리어 기쁘다는 듯 입을 더욱 크게 벌렸다.

“산타.”

죠엘이 동생을 불렀다.

말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 고 있을 때 산타가 몸을 들썩였다.

“나, 나나나도. 타마키 선새님이랑 노, 놀래. 도비니 형이랑 노놀래. 햫

그레이 웨인도 딸과 같은 마음이었지만 산타의 말을 듣는 순간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잠깐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길게 걸리진 않을 거예요.”

그레이 웨인의 요청에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빈, 최지훈, 엠마, 피셔 디스카 우가 자리를 비우자 죠엘이 입을 열었다.

“엄마, 난.”

“죠엘.”

그레이 웨인이 딸을 끌어안았다.

“죠엘, 엄만 요 몇 년간 정말 행복 했단다. 네가 베를린 필하모닉 같은 근사한 곳에서 너무나 잘하고 있고 산타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얼 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들었단다. 엄 마가 죽으면.”

“갑자기 그런 말을 왜 하는 거야.”

“언젠가 그런 날이 올 테니까.”

“……엄만 너도 산타도 너무나 사 랑해. 똑같이 사랑해. 그래서 산타가 네 짐이 되는 게 항상 미안했어.”

죠엘이 결국 눈물을 떨어뜨렸다.

“울지 마. 왜 울어.”

“안 울어.”

그레이 웨인이 항상 씩씩하고 자랑 스러운 딸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저 작은 몸이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있는지 알기에 그 미소에는 고 마움과 안타까움이 함께했다.

죠엘이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내가 데리고 산다고. 그런 걱정을 왜 하는데에.”

그레이 웨인이 착한 딸, 소중한 딸 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

“아니야. 난 내 딸이 하고 싶은 일 많이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죠엘이 투정 부리듯 어깨를 흔들었다.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이었기에 엄마의 걱정이 괜한 일처럼 여겨 졌다.

그러나 엄마의 입장은 달랐다.

“그리고 산타도 하고 싶은 거 많이 하면 좋겠어. 자기 힘으로.”

그것이 그녀의 진심이었다.

“기억하니? 아빠 돌아가시고 산타, 말은커녕 잘 웃지도 않았던 거.”

죠엘이 눈물을 닦으며 코를 들이마셨다.

“근데 어린이 타악 교실 다니면서 많이 웃게 되고. 말도 늘고. 신나서 오케스트라에 대해 설명해 줬어. 얼마나 기뻤는지 아니?”

자신도 너무나 기뻤기에.

죠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욕심이 나더라. 이대로라면 어쩌면 산타에게도 기적이 일 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런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

“그리고 방금 그 희망을 본 것 같아. 산타가 스스로 하고 싶다고 하잖니. 엄마는, 엄마는 그런 말 평생 못 들어볼 줄 알았어.”

그레이 웨인의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죠엘은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처음 보는 엄마의 눈물에 겨우 참았던 눈 물을 다시금 떨어뜨렸다.

그리고 산타의 손을 잡고 물었다.

“산타.”

“우, 울면 안 돼. 서선물 못 받아.”

산타가 누나와 엄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산타, 베를린 필하모닉에 들어가 고 싶어? 공연 하고 싶어?”

“뎨!”

그 힘찬 대답에 웨인 가족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 *

보호자 그레이 웨인이 참관한 자리에서 산타 웨인은 베를린 필하모닉 의 견습 단원 계약서에 서명했다.

1년 계약에 임금은 최저 수준이었지만 그레이 웨인과 죠엘 웨인이게는 너무나 기쁘고 기특한 일이었다.

공연이 30분 앞으로 다가왔기에 직원들이 산타를 탈의실로 데려갔고 죠엘과 그레이 웨인도 함께했다.

생에 처음으로 분장을 하고 정장을 입은 산타의 모습에 그레이와 죠엘 이 환하게 웃었다.

“산타 근사하다.”

“멋있네, 우리 아들.”

“힛. 헤힛. 머, 멋있다. 헿.”

한편.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은 대기실 에 모여 배도빈의 말에 귀 기울였다.

뮌데르크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는 소식에 단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오늘 뮌데르크를 대신해 한 친구가 합류했습니다.”

뮌데르크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해 공석을 어떻게 채울지는 생각지 못 한 단원들이 의아해했다.

타악기에 예비 인원이 없는 걸 잘 알았고.

베를린에 있는 단원이 오기에는 시 간이 너무나 부족한 탓에 여러 상상을 하는데, 죠엘과 함께 들어온 산 타를 보곤 깜짝 놀랐다.

산타를 잘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가 예전에 공연 중 소란을 일으킨 사실과 이후 어린이 타악 교실과 웃 고 떠드는 밴드가 생긴 일 그리고 배도빈의 비서 죠엘 웨인의 동생이

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가 자폐증을 앓고 있단 사실 또 한 알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걱정도 우려도 될 테고 그런 생각 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전 그가 오늘 역할을 훌륭히 해낼 거라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절 믿고 평소 와 같이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죠엘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산타의 손을 꼭 쥐었다.

지금까지 받아왔던 차별과 무시가 떠올라, 상처가 벌어졌으나.

그래서 무서웠지만 산타도 할 수 있다고 말해준 배도빈을 믿었다.

그리고.

“좋아.”

“다들 준비하자고. 얼마 안 남았어.”

“환영한다, 꼬맹아.”

“들어오자마자 오케스트라 대전 본 선이야? 제법인데?”

“타마키랑 친했다며? 잘해보자고.”

“뎨!”

베를린 필하모닉은 반대하고 나설 줄 알았던, 적어도 의문이라도 제시할 줄 알았던 죠엘의 예상과 달랐다.

지금까지의 경험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녀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단원들 은 아무렇지도 않게 각자 무대에 오르기 전 필요한 일을 했다.

또 산타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기 에 죠엘은 하마터면 또다시 눈물을 보일 뻔했다.

‘ 아아.’

단원들도.

걱정하지 않을 리 없었다.

항상 최고의 무대를 추구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평소보다도 더욱 완벽히 준비한 오늘의 무대.

그런 자리에 한 번도 호흡을 맞추 지 않았던 사람과 함께하는 게 달가울 리 없었다.

그 사람이 장애인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악단주 배도빈의 결정이니까.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으로 이끌어 주었던 왕의 말이었기에.

그들은 기꺼이 산타 웨인을 동료로 맞이했다.

배도빈은 죠엘이 소리죽여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졌다.

“산타.”

“네!”

배도빈에게 불린 산타가 힘차게 대답했고 배도빈은 손을 더듬어 산타 의 어깨를 잡았다.

“오늘은 큰북을 맡을 거야. 타마키랑 피셔한테 배웠지?”

“네!”

“그렇게만 하면 돼. 무서워할 필요 없어. 쳐야 할 때는 힘껏 쳐. 알겠지?”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습을 항상 지 켜보며 타마키 히로시 피아노 협주 곡을 완전히 머리에 담아 놓았던 산 타 웨인은 그저 기쁠 뿐이었다.

그 힘찬 북소리를.

마음껏 칠 수 있단 생각에 큰소리 로 대답했다.

“네!”

1월 8일(수) 휴재, 9일(목)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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