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32화 (53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532화

    115. March(4)

    시카고 그랑프리 두 번째 날.

    세계를 지배해 온 베를린 필하모닉과 과거 토마스 필스 체제 이상으로 부홍에 성공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연주를 듣기 위해 2억 명의 관객이 이日에 접속해 있었다.

    이를 예견한 이日는 오케스트라 대전을 위해 대대적으로 서버를 증설 했지만 잠시간 접속 오류를 겪는 이 들이 있을 정도로 팬들의 관심은 지 대했다.

    베를린과 로스앤젤레스.

    배도빈과 아리엘 얀스.

    가우왕•최지훈과 엘리자베타 툭타 미셰바까지 서로 얽힌 이야기는 산 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팬들에게는 좋은 이야깃거리였다.

    ㄴ 오늘 베를린 2,000만 표 이상 본다.

    ㄴ 찬양일색인 시카고랑 지메르만이 1,400만 표였는데 2,000만이나?

    ㄴ 베를린이니까 가능할지도 모름.

    ㄴ 로스앤젤레스도 불가능한 건 아 님. 2026년 매출액 보면 베를린 필하모닉이 2조 3,000억 원으로 1위 인데 로스앤젤레스가 1조 7,000억 원으로 2등임.

    ㄴ 차이 엄청 큰데?

    ㄴ 2025년이랑 비교하면 엄청 줄어 든 거임. 2025년 베를린이 2조 9,000억 원 수준인데 그해 2위 암 스테르담 로얄 콘세르트허바우가 1 조가 안 됐었음.

    ㄴ 그 진짜 베를린이 독식하고 있었네.

    ㄴ ㅇㅇ. 작년에 배도빈이 저렇게 되 고 베를린이 주춤하긴 했지만 로스 앤젤레스도 장난 아님.

    ㄴ 일단 아리엘 얀스가 미쳐 날뛰고 있지. 작년에 발표한 곡 3개 모두 대박 났잖아. 배도빈 곡으로 가득 찼던 클래식 TOP20 차트에 아리엘 이랑 사카모토만 이름 올렸고.

    ㄴ ? 한스 짐이랑 알렉스 데스플로 도 올렸음. 배도빈이 신곡 발표 늦 어서 작년에는 꽤 고루 분포함.

    ㄴ 아리엘이 괜히 배도빈의 유일한 대항마라 불리는 게 아님.

    ㄴ 지겹지도 않냐. 그냥 배도빈이면 배도빈, 아리엘이면 아리엘로 보면 되는 걸 굳이 그렇게 비교하고. 둘 다 대단한 사람들인데.

    ㄴ 비교하며 즐기는 건 나쁜 게 아 님. 한쪽을 비하하는 게 나쁜 거지.

    ㄴ 근데 피아노에선 좀 차이가 많지 않나. 툭타미셰바 대단한 건 아는데 가우왕이랑 최지훈에 비해서는

    ㄴ 나도 거기서 많이 갈릴 것 같음. 일단 툭타미셰바가 la랑 계약한 후 로 공연에 잘 나서질 않았음.

    ㄴ 봐야지. 저번 배도빈 콩쿠르 때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 치는 거 못 봄?

    ㄴ 아 시작한다.

    ㄴ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도 나이가 먹긴 먹었다. 다들 머리가 희끗희끗하네.

    수많은 기대 속에 장막이 걷혔다.

    아리엘 얀스의 복귀를 계기로 분골 쇄신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은 작년 한 해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토마스 필스 사후 최전성기에 접어 든 아리엘 얀스 체제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은 악단 역사상 가장 많은 실황 음반 판매량을 올리며 최다 매출액을 달성, 베를린 필하모닉에 이어 2026년 가장 부유한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했었다.

    감독 사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몰렸던 그들로서는 그 분위기를 이어나가고자 했고.

    이번 오케스트라 대전에 참가하는 자세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각오는 겉모습에서도 여실 히 드러났다.

    악장 이승훈을 비롯한 전 단원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으며 어깨까지 내려왔던 긴 머리를 자른 아리엘 얀 스 감독의 외모가 그러했다.

    과거 관객이 음악이 아니라 외견에 집중할 것을 우려해 가면을 썼던 아리엘 얀스는 당당하고 여유로운 모 습으로 서 있었다.

    바이칼 호수와도 같이 맑은 벽안.

    금으로 자아낸 듯한 금발.

    우아하게 떨어지는 콧대와 티끌 하나 없는 피부는 마치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듯했다.

    ‘세상에.’

    ‘CG도 저렇게는 못 만들겠다.’

    관객과 시청자들은 순간 넋을 놓고 말았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통해 자신을 깨닫고 스스로 우뚝 선 남자는 이제 이러한 반응을 즐길 수 있었다.

    자신의 외모에 빠지더라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을 연주하여 그들이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열게 할 자신이 있었다.

    아리엘 얀스는 객석을 둘러보며 미소 짓고는 그의 피아니스트를 향했다.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

    푸른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아름답고 긴 금발을 땋아서 말아 올리고 있었다.

    “툭타미셰바 씨 엄청 예쁘다.”

    그 기품 있는 모습에 대기실에 있던 나윤희가 감탄했고 진달래는 불 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한 남자를 돌아보게 하기 위해 평생을 그의 그림자를 뒤쫓았던 피아니스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 웠다.

    다부진 눈빛.

    가슴속에 품은 뜨거운 열정이 그녀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최지훈에게 이긴다거나.

    그에게 인정 받는 일은 더 이상 중 요치 않았다.

    1년간 함께한 동료들과.

    자신을 가장 돋보이게 해주는 천재 음악가와 함께 최고의 연주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만이 무대에 오르는 이유였다.

    그녀는 아리엘 얀스와 눈을 마주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훈을 비롯한 단원들과도 시선을 교환한 아리엘 얀스는 지휘봉을 들어 가로로 그었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B플랫 단조.

    오케스트라 웅장한 성을 그리고.

    피아노가 주제를 이어받아 우아하 게 춤춘다.

    아리엘 얀스의 손짓에 따라 오케스트라는 공주의 몸짓에 반주하고.

    이내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만다.

    곱디고운 손짓 하나.

    고상하게 내딛는 걸음은 차분하고 여유롭게 이어진다.

    춤을 끝낸 공주는 찬사 속에 연회장을 벗어난다.

    혼자 남은 그녀의 마음은 무겁다.

    춤을 출 때는 새처럼 가볍던 몸이 침대에 위에서는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일국의 공주라는 입장이.

    춤을 사랑하는 그녀에게는 족쇄였다.

    숨 막히는 규제와 일정 속에서 그 녀는 연회장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동작에도 최선을 다했다. 억눌렸던 마음을 담아 간절히 음악을 느꼈다.

    그러나 연회가 끝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독과 미련이 그녀의 숨통을 조였다.

    그렇게 침묵과 억압의 시간을 그저 버텨내고 있을 때 날아든 소식.

    강성한 서쪽 나라에서 군대를 일으켰단 보고에 왕성은 충격에 휩싸였다.

    일부는 전쟁을 주장했으나 대다수 대신들은 평화 교섭을 바랐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인다. 치열한 언쟁 끝에는 정략 혼인.

    대신들은 용맹하고 젊은 서쪽 나라 왕과 아름다운 공주가 결혼하는 것 이 평화를 지키는 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남몰래 무용수를 꿈꿨던 공주는 백 성들을 위해서 그래야 한단 생각과 한 번도 보지 못한 상대와의 혼인 그리고 꿈마저 거세될 상황에 고뇌 했다.

    오케스트라는 마치 피아노를 몰아 붙이듯 노래했다.

    나라를 위해 결혼해야 한다는 말들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막아서려 해 도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들에 피아노가 소리친다.

    오케스트라의 장대한 소리를 뚫고 간절히 노래한다.

    ‘멋져.’

    최지훈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위대한 두 거장을 떠올렸다.

    명반 중의 명반으로 남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장인과 사위 관계인 두 사람은 각 기 자리에서 더 이상 오를 데 없을 정도로 위대한 음악가였으나.

    서로를 이해하진 못했다.

    웅장하며 진중함을 요구했던 아르 투로 토스카니니와 격정적인 연주를 했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결국 두 사람은 의견을 좁히지 못 했고.

    오케스트라는 진중하게.

    피아노는 그 사이를 강렬하게 치고 나왔다.

    대치되는 그 연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수없이 많이 공연된 연주 중에서도 명연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두 거장의 연주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에 의해 완성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는 더욱 웅장하지만 해 일처럼 밀어닥쳤고 피아노는 격정적이었으나 우아함을 갖췄다.

    오늘 저들의 연주를 듣지 못했더라 면 이러한 연주가 가능하리라 생각지 못했을 터.

    최지훈은 서서히 고조되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공연을 즐겼다.

    연주는 경쟁하는 듯하면서도 아름 답게 조화를 이루며 이어졌다.

    엘리자베타의 기품 있는 타건이 괴 로워하며 춤추는 공주처럼 울리는 사이 조금씩 전쟁의 위협이 다가왔다.

    관객들은 숨조차 조심스레 쉬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에 빠져들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발버둥 치는 피아노를 응원했다.

    연주는 절정으로 치닫고.

    강대한 군대를 이끌고 친정에 나선 서방의 왕은 항복을 촉구했다.

    힘 없는 나라의 공주는 이내 꿈을 접고 학살을 막고자 스스로 침략자 의 진영으로 향했다.

    항복의 투서.

    우방을 약속하는 혼인.

    왕은 스스로 첩실이 되기로 한 공주를 맞이했다. 감정이라고는 조금 도 느낄 수 없는 눈빛으로 전리품을 취하는 듯했다.

    해가 진 막사.

    공주는 마지막 춤을 췄다.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고.

    자신을 거짓으로 위로하며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상상하며 발을 내딛 고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본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그 간절한 몸짓이 얼음 같던 그의 심장을 녹였다.

    진실로 사랑을 빠진 왕은 정중히 물었다.

    ‘무엇이 당신을 그리 지극히 하였소.’

    ‘어째서 그리도 애처롭게 춤을 추오.’

    공주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 춤을 이어나갈 뿐.

    그러나 왕에게는 충분한 답이 되었다. 왕으로서 지켜야 할 것이 있었기에 그녀가 무엇을 간절히 바랐는 지 또 무엇을 위해 그것을 포기했는 지 알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제왕학의 가르침 속에 서 음악을 포기해야 했던 기억 때문 일까.

    아니면 폭군의 변덕일 뿐일까.

    왕이 입을 열었다.

    ‘돌아가오.’

    공주는 엎드렸다. 제발 백성들을 해치지 말라고 무엇이든 하겠다고 간절히 빌었다.

    ‘그대의 나라를 침범하는 일도 그 리하여 그대의 꿈을 짓밟는 일도 없을 거요. 그저 춤추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구려.’

    공주가 가지고 온 소식에.

    온 나라가 환호를 질렀다.

    학살의 공포에서 벗어났음에.

    그들의 공주가 무사함에 나팔을 불었고 왕성은 사홀 밤낮 연회를 열었다.

    공주는 그 사이에서 마음껏 춤추고 축제가 끝나는 날 홀연히 자취를 감 췄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공주가 사라진 슬픔도 충격도 잊힐 즈음.

    서쪽 나라의 한 극장에 아름다운 무용수가 있단 소문이 들릴 뿐이었다.

    마침내 꿈을 이룬 공주의 힘찬 스 텝과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대 단원이 오르고.

    “브라보!’’

    “브라보!”

    시카고를 넘어 전 세계가 일제히 감탄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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