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31화 (531/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531화

115. March(3)

제2회 오케스트라 대전 시카고 그 랑프리가 시작되었다.

2027년 1월 1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치러지는 시카고 그랑프리는 하루 세 악단이 공연을 펼치고 투표 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주제는 피아노 협주곡.

시카고 그랑프리가 개막되면서 각 악단의 곡과 협연자가 발표되었고,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노림수 도 알려지게 되었다.

“와우.”

피셔 디스카우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협연자가 크리스틴 지메 르만임을 확인했다.

“확실히. 시카고로선 최선의 선택 이군.”

찰스 브라움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피아노 협주곡을 주제로 정했을 때만 해 도 대다수 여론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우승을 점쳤었다.

오케스트라의 완성도는 기본.

피아니스트의 역량과 호흡도 중요 했기에 세계 1, 2위를 다투는 가우왕과 최지훈이 소속된 베를린 필하모닉이 우세하단 판단이었고.

베를린 필하모닉 역시 자신들의 우 승을 예상하고 있었다.

죠엘 웨인에게 크리스틴 지메르만 이 나섰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배도빈이 빙그레 웃었다.

“시시할 뻔했는데 잘 됐네요.”

“그러게나 말이야.”

“응. 재밌겠다.”

가우왕과 최지훈이 배도빈의 말에 공감했다.

가우왕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입맛을 다셨고 최지훈은 방실방실 웃으며 다른 오케스트라를 확인해 나갔다.

[시카고 그랑프리 프로그램 안내]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 크리스틴 지메르만, 제르바 루빈스타인)

대한국립교향악단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최성신, 차명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 E플랫 장조. 그레고리 소콜라브, 브루노 발터)

오늘 공연이 예정된 세 개 악단을 확인한 최지훈이 눈을 깜빡였다.

스승 크리스틴 지메르만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만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브루노 발터와 그레고리 소콜라브 조합은 이미 제1회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그 파괴력을 선보인 바 있었다.

더군다나 차명운과 최성신 또한 오 랜 시간 호흡을 맞췄던 사이였다.

또한 아시아 최고 수준을 넘어서 유럽과 북미 악단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 대한국립교향악단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오늘 대단하다.”

“어디 어디 나오는데?”

배도빈이 최지훈의 혼잣말을 듣고는 궁금한 나머지 다그쳐 물었다.

“시카고랑 대한국향, 런던 심포니. 차명운 선생님이랑 성신이 형이 같이 하고 런던 심포니는 저번이랑 같아.”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너먼트가 아니었기에 조가 어떻게 짜였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내일로 예정된 베를린 필하모닉이 어떤 악단과 함께하는지 궁금 했다.

“내일은?”

“잠깐만.”

최지훈이 팸플릿으로 시선을 돌렸고 곧 반가운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B플랫 단조.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 아리엘 얀스)

베를린 필하모닉

(배도빈 피아노 협주곡 1번(:단조 ‘베를린 환상곡’. 가우왕•최지훈, 배도빈)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 장조,  ‘황제’. 루리얼 부르상, 알렉산드르 헤신)

“아, 로스앤젤레스랑 상트 페테르 부르크. 아리엘 씨랑 같이하네?”

“그래?”

배도빈의 얼굴이 음흉하게 웃고 있던 가우왕의 표정과 비슷해졌다.

“흐흐흐흐. 그래. 이대로 넘어가긴 서로 아쉽지. 잘됐어. 아주 좋아. 크 흐흐흐.”

최지훈은 스승을 잡아먹고 싶어 안 달이 난 사형과 아리엘을 어떻게 밟아줄까 흥미롭게 고민하는 형제를 보며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의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부르상 씨도 나오는구나. 도빈이 콩쿠르 때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 데. 다음에 인사하러 가야겠다.’

최지훈이 루리얼 부르상의 연주를 떠올리며 웃고 있을 때, 정작 그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왜. 왜!”

배도빈 콩쿠르를 통해 가능성을 인 정받고 지난 1년간 부단히 노력한 루리얼 부르상은 생에 첫 오케스트라 대전에 무척 설레고 있었다.

스스로 아직 부족하다 생각했지만 알렉산드르 헤신이라는 걸출한 지휘 자와 또 단원들의 격려 속에 최선을 다하자 마음먹었다.

그러나 정작 조가 편성되자 1년 전의 악몽이 떠오르고 만 것이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에 이어 가 장 위대한 음악가로 칭송받는 배도빈과 역사상 가장 완벽한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게다가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통해 그의 유일한 라이벌로 인정받고 있는 아리엘 핀 얀스와 의지를 다진 전통의 명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뒤라니.

아무리 조별 순위 경쟁이 아니라도 투표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는 조 편성이었다.

공연을 앞두고 장막 뒤에 자리한 시카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마지 막 점검을 마치고 있었다.

벌써 근 30년째.

클래식 음악은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강력한 제국을 이룩한 베를린 필하모닉과 왕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암스테르담 로얄 콘세르트허바우, 2020년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두 거장을 통해 다시금 올라선 런던 심 포니와 런던 필하모닉.

그리고 사카모토 료이치가 가세한 빈 필하모닉까지.

2000년대 클래식 음악계를 양분하던 북미 출신 음악가들의 자존심은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다.

시카고 심포니는 북미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서 자긍심을 지키고자 칼을 갈아왔다.

그 순수한 향상심은 제르바 루빈스 타인이라는 위대한 지휘자를 통해 그들을 더욱 먼 곳으로, 높이 이끌 어 나갔다.

그 마음이 크리스틴 지메르만과 같았다.

‘오늘은 조금 긴장되네요.’

완전무결의 피아니스트.

세기를 대표하는 비르투오소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두 제자를 떠나보 내고 그들의 성장 과정을 바라보며 가슴이 뛰었다.

독불장군이었던 첫 번째 제자가 피아니스트로서의 긍지를 가지게 되고 끝내 그것을 지켜냈을 때.

불가능한 연주를 해냈을 때는 벅차 오르는 감정을 달래느라 애먹었다.

순수한 두 번째 제가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내고 마침내 날개를 활 짝 펼쳤을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앞으로 또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매일 두근거리며 두 사람의 여정을 지켜보았다.

그 마음이 과연 스승으로서의 대견함 뿐이었을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음악가로서 경이로움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이었다.

피아니스트로서 어느덧 자신을 넘어선 두 사람에게 뒤처질 수 없다는 호승심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이제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그들을 지켜보리라 생각했던 스스로에게 솔 직해졌다.

최고의 무대에서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 그들과 함께하길 바랐다.

수천 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무대에 올랐던 그녀는 마치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장막이 걷히고.

관객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온몸으로 느낀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어딘가에서 투지를 불태우고 있을 가우왕과 진지하게 지켜볼 최지훈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즐겁네요.’

터질 듯이 뛰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관객을 앞에 둔 순간 긴장감은 거 짓말처럼 사라지고 수없이 반복해 느꼈던 무대의 즐거움이 그녀를 사 로잡았다.

지휘자 제르바 루빈스타인과 시선을 교환한 그녀의 손가락이 건반을 눌렀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

아기를 다독이는 듯 상냥히.

곧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그 다정한 소리에 어울린다.

오랜 친구의 목소리다.

오케스트라는 지난번 여행을 떠올 리며 자랑스레 이야기를 풀었다.

배에 올라타고 험난한 파도를 만났 다고 전했다. 그러나 풍랑 뒤에 맞이한 섬이 너무도 아름다웠다고.

피아노가 묻는다.

어떤 동물이 살고 있었냐고.

사람도 사는 곳이었냐고.

오케스트라는 신을 내며 말한다.

부리가 크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새가 있었고 사람은 살지 않았으며 과 실은 무척 달았다고 과장된 손짓을 더해 흥을 돋운다.

여행을 떠난 적 없었던 피아노는 그의 말에 푹 빠지고 만다.

재잘재잘 상상력을 더하여 나무는 어떻게 생겼는지, 물고기는 얼마나 힘찼는지 물었다.

신비한 섬을 노래하는 오케스트라는 손을 높이 들어 나무를 표현했고 팔뚝만 한 물고기를 흉내 내기도 하며 피아노를 희롱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행복했다.

피아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언젠가는 꼭 함께 여행을 떠나잔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해도.

믿고 싶은 거짓말.

달콤한 거짓말.

꿈을 꾸는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 했다.

‘ 과연.’

배도빈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제르바 루빈스타인의 시카고 심포 니 오케스트라는 북미 제일의 오케스트라라고 해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현악기의 음색은 탁월했고 그것을 조절하는 데 능숙했다.

목관악기는 발랄하여 어디에서나 빛을 발했다.

그리고 크리스틴 지메르만의 피아노는 완벽주의자 배도빈마저도 감탄 이 나올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연주했던 사람이 또 있었나.’

그가 의도했던 바 그대로.

지메르만의 타건은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놓여 있는 것처럼 건반 위를 거닐었다.

가장 완벽한 때에 가장 적절한 힘 으로.

그녀의 연주는 마치 완성되어 있던 퍼즐을 다시 맞추는 일처럼 느껴졌다.

절제된 감정 속에서 펼치는 완전무 결의 연주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감동적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천재를 접했던 배도빈조차 이보 다 완벽한 피아니스트는 접하지 못 했다.

배도빈은 가우왕, 최지훈 그리고 본인과는 또 다른, 한 세대를 대표 하고 역사에 줄기가 되어버린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매료되고

말았다.

이윽고 재잘대던 피아노의 목소리 가 조금씩, 조금씩 힘을 잃었다.

관객들은 활기찬 멜로디 속에 감춰 진 슬픔을 직감하고 눈물을 참아내 는데, 꺼져가는 줄만 알았던 피아노 의 목소리가 다시 힘을 찾았다.

‘내일도 놀러 올 거지? 내일은 산 에 갔던 이야기 해줘.’

눈물을 훔친 오케스트라 두 팔을 번쩍 들고 호들갑을 떨며 호응한다.

‘그럼! 너무 놀라지 말라고! 내일 은 산에 사는 바위 괴물 이야길 들 려줄 테니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피아노.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희망이 객 석까지 전달되자.

배도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브라보!”

자신이 남긴 곡을 너무나 완벽히 연주해낸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와 크리스틴 지메르만을 향한 악성 의 진심이었다.

I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크리스 틴 지메르만 기적의 하모니!]

【1,408만 9,911명이 감동하다]

[제르바 루빈스타인. “오늘 우리는 베토벤의 네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했다.”]

【크리스틴 지메르만. “즐거웠습니다."]

【가우왕, “들어줄 만했다.”】

【최지훈. “최고였어요.”]

[제2회 오케스트라 대전 시카고 그랑프리 첫날 투표 결과】

시카고 그랑프리는 첫날부터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다.

평론가 차채은의 예상대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크리스틴 지메르만이라는 최고의 수를 준비. 세계를 감동시키고야 말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배도빈이 가장 먼저 일어나 연호한 장면이 포착될 정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첫날 부터 14,089,911표를 획득. 현재까 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최성신 피아니스트와 호흡을 맞춘 대한국립교향악단은 단번에 다크호 스로 도약했다.

최성신의 대표곡이기도 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지금까 지 연주된 모든 무대 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이었으며 9,880,521표를 획 득할 수 있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다소 아 쉬운 모습을 보였다.

리빙 레전드 브루노 발터와 런던 심포니는 평소와 같이 훌륭했으나 그레고리 소콜라브의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은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6,545,773표를 획득한 런던 심포 니 오케스트라는 시카고 그랑프리에 서 높은 순위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크리스틴 지메르만의 제자로 알려진 가우왕과 최지훈은 내일 두 번째 순서로 나선다.

-평론가 한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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