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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529화 (529/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529화

    115. March(1)

    범지구적 인기 속에서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는 두 번째 오케스트라 대 전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배도빈과 같은 거장들의 출전이 불명확했었기 때문.

    “정말 다행이죠. 토스카니니 선생님 일.”

    “그러게 말입니다. 이탈리아 건이 취소되었단 소식에는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잘 풀려서 천 만다행이죠.”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장 미카엘 블레하츠와 레이 스클레너 이사는 최중요 요인과의 미팅을 앞두고 가 슴을 쓸어내렸다.

    이탈리아에서 구성을 마쳤던 토스 카니니의 오케스트라가 투자 문제로 와해되었을 때는 협회 임직원 모두 가슴이 철렁했다.

    첫 번째 대회의 경이로운 성공 때 문에 팬들의 기대가 부풀 대로 부푼 상황에서 협회는 대회 규모를 무리하게 키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도 모두 첫 번 째 대회의 성공을 눈여겨 본 여러 도시 지자체와 기업들의 투자 덕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같은 명장 이 나서지 않는다면 대회 홍행에 영 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오늘 만날 사람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보다도 중요한 인물이었다.

    -회장님, 도착하셨습니다. 안내할까요?

    블레하츠의 비서가 인터폰을 통해 VIP가 도착했음을 전달했다.

    블레하츠가 반갑게 답했다.

    “어서 모시게.”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협회장실 문이 열리고 미 카엘 블레하츠와 레이 스클레너가 벌떡 일어났다.

    “도빈아.”

    “미카엘.”

    블레하츠가 배도빈에게 다가갔다. 반가운 마음에 끌어안으려다 혹시나 놀랄까 망설이는데 배도빈이 손을 내밀었다.

    블레하츠는 방향이 엇나간 배도빈의 손을 몸을 움직여 정면에 두고 잡았다.

    블레하츠의 손을 잡은 배도빈이 빙그레 웃었다.

    “손 관리는 여전하네요. 그만 쉬고 복귀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 그럴 리가. 굳어서 망신만 받을걸. 잘 지내지?”

    “그럼요.”

    “다행이네. 아, 인사해. 오늘 같이 보자고 했던 스클레너 씨도 있어.”

    미카엘 블레하츠가 배도빈에게 레이 스클레너를 소개했다.

    “4년 전에 뵈었죠. 레이 스클레너 라고 합니다. 마에스트로.”

    “기억합니다. 샛별 엔터테인먼트에 도 도움 주셨죠.”

    배도빈과 레이 스클레너가 악수했고 그를 수행하던 죠엘 웨인도 미카 엘 블레하츠, 레이 스클레너 등과 목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마주 앉은 뒤 블레하츠가 입을 열었다.

    “전화로 해도 괜찮을 텐데 여기까 지 직접 오고. 무슨 일이야?”

    “흠.”

    배도빈이 쉽게 대답하지 않고 숨을 골랐다.

    “혹시 몸이 안 좋아진 거야?”

    블레하츠가 걱정스레 물었다.

    미카엘 블레하츠는 물론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는 혹시나 배도빈이 오케스트라 대전 사퇴 이야기를 꺼내 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블레하츠는 배도빈과의 개인적 친 분으로 그가 오케스트라 대전에 참 가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음을 걱정했고.

    협회로서는 오케스트라 대전 흥행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뇨. 건강해요. 알다시피 앞이 안 보일 뿐이에요. 다만.”

    레이 스클레너 이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공연 순서를 부탁 드리려고 왔어요.”

    미카엘 블레하츠와 레이 스클레너 가 두 눈을 끔뻑였다. 배도빈이 직 접 협회까지 찾아와 공연 순서를 부 탁하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유

    블레하츠의 질문에 배도빈은 부끄 러움을 감내하고자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처럼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그게 안 된다면 부축을 받아 걷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요.”

    아직 배도빈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을 위해 죠엘 웨인이 나섰다.

    “보스께선 지금까지 무대에 혼자 오르기 위해 여러 번 연습해 오셨습니다. 덕분에 루트비히홀에서는 평 소와 같이 다닐 수 있었지만 오케스트라 대전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부득이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블레하츠와 스클레너는 예상치 못 한 이야기에 심히 당황했다.

    “첫 번째 무대라면 관객이 들어오 기 전에 무대에서 대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모쪼록 넓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죠엘 웨인이 고개를 숙였다.

    블레하츠는 설마 각 지역을 옮겨 다니는 대회 운영 방식이 배도빈에 게 부담을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또 비록 적은 수이긴 하나 그간 루트비히홀에서 훌륭히 지휘를 했던 배도빈이 뒤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 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배도빈이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찾아왔는지는 알 수 있었다.

    시각 장애인 지휘자가 아니라 베를린 필하모닉의 배도빈으로 활동하고 싶은 그 마음을 음악인이었던 그가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

    블레하츠가 배도빈의 손을 덥석 잡았다.

    “걱정하지 마. 그런 일이라면 어떻게든 준비해 볼게.”

    “미카엘.”

    블레하츠는 어느새 장성한 배도빈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앞으로 수십 년.

    아니, 수백, 수천 년간 기억될 천재에게 닥친 시련이 안타까우면서도.

    고작 공연 순서를 부탁하면서 마치 부정을 저지르는 듯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

    레이 스클레너가 입을 열었다.

    “협회장님 말씀처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투표 방식으로 점수가 책정되다 보니 도리어 첫 번째 공연은 불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점은 상관 없습니다.”

    배도빈이 고개를 저었다.

    제2회 오케스트라 대전은 투표로 순위가 결정되었고 투표는 모든 공연이 모두 끝난 뒤 하루간 진행되었다.

    기억에 의존하는지라 마지막 순서 가 투표에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럼에도 그러한 페널티는 조금도 염려하지 않는 배도빈의 자신감에 레이 스클레너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자는 다쳐도 사자란 말인가.’

    스클레너가 부드럽게 말했다.

    “크게 마음 쓰실 이유 없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콩쿠르에서 첫 번째 순서로 나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스클레너의 말에 배도빈이 작게 웃었다. 그 우연들이 이런 식으로 도 움이 될 줄은 몰랐다.

    “또 정 마음에 걸리신다면 다른 방법도 있고요.”

    “다른 방법이라면?”

    “장막을 치면 될 일이죠. 각 악단에 협조를 요청해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스클레너의 말에 배도빈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확실히 공연 시작 전에 커튼을 쳐 관객들의 시야를 가린다면 굳이 첫 번째 순서를 고집해야 할 이유도,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이유도 없었다.

    배도빈이 짐을 덜었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멋진 생각이네요. 이 일은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조언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그럴 수 있나요. 거듭 말씀 드리지만 그리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 마에스트로의 사정을 안다면 분명 모든 악단이 흔쾌히 수락할 겁니다. 그들도 음악가니까요.”

    레이 스클레너의 말에 배도빈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잠시 후.

    대화를 마치고 배도빈과 죠엘 웨인을 배웅한 블레하츠와 스클레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

    “네. 이 상황에서 그런 일을 걱정할 줄이야. 협회장님도 눈치채셨겠지만 겨우 공연 순서를 부탁하면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참……

    “그조차 특혜라고 생각했겠죠. 그 럼에도 음악만으로 다가가고 싶었던 것일 테고.”

    “하하. 전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할까 봐 가슴이 다 뛰었습니다.”

    “……대회를 떠나 도빈이가 음악 활동을 그만 두면 그 자체로 많은 사람이 실의에 빠질 겁니다. 말 그 대로 희망이죠.”

    “같은 생각입니다.”

    오케스트라 대전 본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러 문제를 해결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사기는 충천해 있었고 준비에 도 만전을 기하였다.

    송년 음악회 이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했기에 확인 작업만 남았을 뿐.

    악단주 배도빈은 죠엘 웨인의 브리 핑으로 서류 결재를 진행하고 있었다.

    “다음은 음악교육원 강사 모집에 관한 일입니다.”

    “찰스에게 위임할게요. 우리 중에 교육에 관해서는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브라움 악장께서 따로 말씀 하신 내용인데.”

    “프로그램 관련해서 의논할 이야기가 있다며 면담을 신청하셨습니다.”

    “권한은 모두 넘겼잖아요.”

    “그래도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밖에 다른 말은 없었고요?”

    “네.”

    죠엘의 설명에 배도빈이 눈썹을 좁 혔다.

    어지간한 일은 찰스 브라움이 알아 서 처리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의논 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찰스 지금 어디 있어요?”

    “아마 제2연습실에 계실 겁니다.”

    “잠깐 불러줘요.”

    “ 네.”

    죠엘 웨인이 찰스 브라움에게 메시지를 남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배도빈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무슨 일이에요?”

    “오자마자 일 이야기야? 몸은 좀 어때.”

    “좋아요. 뭔데요.”

    “요새도 하나하나 다 확인하는 건 아니지?”

    “너무 쉬어서 탈날 것 같은 거 알면서 왜 그래요? 말 돌리지 말고 빨리 말해요.”

    찰스 브라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시장 조사할 때.”

    “ 네.”

    “일반 교양이나 초급부는 상관없는 데 의외로 전문가급 교육을 바라는 사람이 많더라고.”

    “좋은 일이네요.”

    “그래. 좋은 일이긴 한데 마스터 클래스를 운영해 달라는 요청이 많아. 특히 네가 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배도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마 상냥한 찰스 브라움이 눈이 불편한 자신에게 수업을 맡아 달란 말을 하긴 어려웠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원장직에 앉혀 놓고 차도가 보이길 기다렸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그의 찌질함이었다.

    “그냥 말을 해요.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재요?”

    “그런 배려 필요 없어요. 이제 정말 아무 이상 없고 괜찮으니까.”

    “넌 항상 괜찮다고 하지.”

    찰스 브라움의 일침에 배도빈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찰스는 그 모습을 보다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네 말대로 정말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또 네 수업을 듣고 싶은 사람 도 많고. 네가 심심해하는 것도 아 니까 나도 그런 생각이 좀 들더라. 무리가 안 가는 선에서 활동하는 게 좋지 않겠나.”

    “ 맞아요.”

    “걱정되는 건 지금 좀이 쑤셔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네가 정말 괜찮은 지야. 정말 너 괜찮은 거야?”

    찰스 브라움의 진심 어린 걱정에 배도빈이 민망함을 감추려 웃었다.

    “괜찮다니까요. 죠엘, 뭐라 말 좀 해봐요.”

    “철저히 관리하고 계십니다. 의료 진에서도 너무 폐쇄적인 생활보단 활동적인 게 낫다고 하셨고요.”

    “••••••그래?”

    “그렇다니까요. 아무튼 그 일은 오케스트라 대전 끝나면 진행해 봐요. 당장은 할 일이 많으니까.”

    “그래. 그게 좋겠다.”

    똑똑“

    두 사람의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을 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네.”

    배도빈이 대답하자 피셔 디스카우 수석이 문을 열었다.

    “어? 바쁠 때 찾아왔나?”

    “아니요. 마침 잘 왔어요.”

    배도빈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어린이 타악 교실도 음악교육원 과정에 넣으려 해요. 디스카우도 강사로 활동해 줬으면 하는데. 어때요?”

    “소속만 바뀌는 거면 문제 없지. 그거 꽤 재밌다고. 꼬맹이들이 말을 잘 들어.”

    “지금보다 많은 아이를 상대해야 할 거야. 교수법도 공부해야 하고.”

    “어…… 그럼 좀 망설여지는데.”

    찰스 브라움의 말에 디스카우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공부라는 단어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그로서는 부 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배도빈이 작게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왔어요?”

    “아, 뮌데르크가 몸이 안 좋아서 은퇴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 당장은 괜찮겠지만 사람을 슬슬 구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죠. 어디가 안 좋대요?”

    “나이가 있으니까. 여기저기 문제 가 있는 모양이야.”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A팀을 구성 해 왔던 단원들은 대부분 60대 이 상이었다.

    그중에는 뮌데르크와 같이 일흔 가 까이 악단 생활을 한 사람도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죠. 그 이야기는 뮌데 르크랑 따로 자리 마련하죠.”

    "응."

    피셔 디스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산타는 어때요?”

    배도빈이 화제를 돌렸다.

    벌써 반년 이상 산타와 어린이 타 악 교실을 돌봐주었던 디스카우는 신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녀석 아주 물건이야. 박자 감 각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배우면 그대로 기억하니 천재라고. 천재.”

    죠엘 웨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어디에서도 부족하게 여겨졌던 동생을 말뿐이라도 천재라 해주니 기쁘 기 그지없었다.

    “녀석이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북을 치고 싶다 하더라고. 10년만 열심히 하면 분명 그럴 수 있을 거라 했더 니 요즘 엄청 열심히야.”

    “좋네요. 시카고 다녀오고 나서 한 번 들를게요.”

    “얼마든지. 아, 죠엘도 끝날 시간에 만 오지 말고 놀러 오라고.”

    “네. 감사합니다.”

    죠엘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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