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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526화 (526/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526화

113. 분투(4)

스칼라가 의욕을 보이는 가운데 여름이 무르익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던 단원들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스칼라를 그들의 악장으로 인정하기 시작 했고.

배도빈도 내심 그를 차기 악장으로 삼길 마음먹고 있었다.

“모레 공연을 위해 내일은 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컨디션 관리하고 모레 아침 9시에 보도록 하죠.”

“ 네.”

“수고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연습을 마친 배도빈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수고했어.”

악장 자리에 앉아 있던 스칼라가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동안 악장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것 같아.”

스칼라의 솔직한 발언에 배도빈이 슬며시 웃었다.

훌륭히 적응하여 악단을 잘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스칼라가 얼마나 노 력했을지 알 수 있었기에 특히나고 다웠다.

“잘하고 있어.”

스칼라가 힘을 더해주지 않았다면 악장단에게도 부담이 컸을 테고, ‘타마키 히로시’를 준비하는 과정도 어려웠을 터.

배도빈이 진심을 담아 스칼라를 격려했다.

“응. 잘해야지. 그럼 먼저 간다.”

“그래.”

스칼라가 악기를 챙기고 나섰고, 동생과 함께 연습을 지켜보고 있던 죠엘 웨인이 배도빈에게 다가왔다.

“보스. 손을.”

“ 네.”

배도빈이 제법 익숙해진 느낌으로 연습실을 벗어나려는데, 죠엘이 산 타를 데려가던 평소와 달리 곧장 밖으로 향했다.

“ 산타는요?”

“아, 디스카우 수석께서 데리고 가셨어요.”

“피셔가?”

“네. 산타가 북 치는 걸 좋아한다 고 말씀드렸더니 연습 뒤에 조금씩 봐주신다고……

본인 연습만으로도 충분히 고될 텐 데 산타까지 챙겨준다는 말에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네.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요.”

입단과 동시에 B팀 타악기 수석을 맡은 피셔 디스카우는 베를린 필하모닉 안에서도 실력자였다.

그런 사람이 직접 지도해 주고자 나섰으니 죠엘은 그 친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산타는 좋아하고요?”

“네. 요즘은 정말 밝게 지내고 있어요. 디스카우 수석과 함께 있다 보니 기분도 많이 나아진 것 같고요.”

“다행이네요.”

대화를 나누며 걸은 두 사람은 이 내 로비에 이르렀다.

나윤희가 그들을 맞이했다.

“끝났어?”

“네. 죠엘, 내일 봐요.”

“내일 뵙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죠엘과 인사를 나눈 배도빈은 나윤희의 안내를 받아 그녀의 차에 탑승 하곤 등을 기댔다.

“힘들었지.”

“적응하려 노력은 하는데 잘 안 되네요. 이것저것 신경 쓰이니 쉽게 피로해지는 것 같고.”

“어서 가서 쉬자.”

나윤희가 팔을 뻗어 배도빈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곤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에 이르자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어땠어요?”

“악장 회의 하고 대교향곡 파트 연 습 하고. 아, 점심 때 가우왕 씨랑 지훈이가 또 피아노 연주해서 구경 갔었어.”

“또 싸웠어요?”

가우왕과 최지훈은 배도빈 콩쿠르 이후로 시간 날 때마다 서로 누가 잘하니 마니 하며 경합해 오고 있었다.

벌써 몇 달째 반복된 일에 배도빈 이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응. 덕분에 단원들은 좋은 것 같아. 다들 점심 먹고 연습실에 모여 서 심사 봐주고 있어.”

“오늘은 누가 이겼는데요?”

“지훈이.”

배도빈이 슬쩍 웃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가우왕을 상대로 곧잘 판정승 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형제의 성장이 기쁘면서도.

가우왕이 얼마나 열 받아 있을지 생각하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54전 19승 35패래.”

“승패가 뒤집어지는 날도 오겠죠.”

“지훈이라면 정말 그럴지도?”

웃으며 답하던 나윤희가 슬쩍 배도빈의 눈치를 보곤 물었다.

“혹시 같이하고 싶은 거야?”

“아니에요.”

“그런 거 깉은데?”

“아니라니까요.”

배도빈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나윤희가 씁쓸히 미소 지었다.

그에게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은 걸 잘 알고 있었다.

반년 전 시력을 잃은 배도빈은 평 소와 같이 행동하는 듯하면서도 현 실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곡을 편곡하고 조율하는 것만으로 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했기에 예전이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자제해야 했다.

나윤희는 배도빈이 그 아쉬움을 내 색하지 않아 안타까웠다.

“가끔은 하고 싶은 거 해도 되지 않을까?”

“무슨 말이에요?”

“대교향곡도 잘 진행되고 있고 타 마키 히로시 협주곡도 무대에 오르면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 까 싶어서.”

나윤희의 말에.

배도빈도 어쩌면 그래도 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잠시 떠올렸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통해 큰 인 기를 끌었던 타마키 히로시의 소나 타가 협주곡으로 발표된다는 소식에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오케스트라 대전 예선 이후로 오랜 만에 배도빈이 지휘를 맡기도 했으며, 웃고 떠드는 밴드를 통해 인지 도를 쌓던 스칼라가 악장으로 첫 활 동을 한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었다.

ㄴ도빈이다 T 도빈이야 ㅠㅠ

ㄴ 이제 슬슬 다시 활동하겠지?

ㄴ 그럴 가능성이 높음. 오케스트라 대전도 이제 반년밖에 안 남았고 내 부에서 처리할 일도 많이 정리한 듯.

ㄴ 타마키 히로시 진짜 좋아하는 곡인데 협주곡으로 나오네.

ㄴ[링크] 베를린 필하모닉 홈페이 지 가면 배도빈이 올린 글 있는데, 원래는 타마키도 협주곡으로 쓰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오케스트라 부분을 못 적었대.

ㄴ 아.

ㄴ 친구 둘이서 완성해 준 거네.

ㄴ 배도빈이 진짜 난 사람인 게 홈 페이지 가보면 베를린 필하모닉 전 속 작곡가 목록에 배도빈, 프란츠 페터, 타마키 히로시라고 적혀 있음.

ㄴ 진짜?

ㄴ ㅇㅇ. 아직도 그대로인 거 보면 실수는 아니지.

ㄴ 스칼라는 하피스트 아닌가? 갑자 기 악장?

ㄴ 브라움이나 나, 왕에게 가는 부 담이 커서 어쩔 수 없었을 듯. 한스 이안도 출산 휴가 갔잖아.

ㄴ 이안도 이안인데 이승희가 빠지는 건 진짜 타격이 클 듯.

ㄴ 이승희가 빠지는 게 큰일은 맞는 데 그래도 베를린 필하모닉임. 하락 세라곤 해도 2026년 상반기 기준 매출 탑이야. 2위인 로열 콘세르트 허바우랑 비교해도 3배임.

ㄴ 베를린이 진짜 미치긴 미쳤네.

ㄴ 그래서 더 아쉽지. 배도빈이 활 동 계속 이어갔다면 올해는 진짜 기 록 경신했을 테니.

ㄴ 매출액도 대단하긴 한데 난 베를린 필하모닉이 대단한 이유는 이번 자선 콘서트나 웃고 떠드는 밴드 같음.

ㄴ 나도. 배도빈 저렇게 되고 단원 건강과 퀄리티 위해서 공연 수 줄였잖아. 당연히 수입도 줄었을 테고. 그런데 자선 행사나 실내악팀 공연 은 조금도 줄이지 않았음.

ㄴ 그것도 돈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거지.

ㄴ 그렇긴 한데 그것도 배도빈이랑 베를린 필하모닉의 능력이잖아. 난 진짜 베를린 필 음악 듣다 보면 가 슴이 따뜻해져서 좋음. 음악도, 저 사람들이 활동하는 모습도.

베를린 필하모닉 자선 콘서트를 하 루 앞둔 시점에 스칼라는 프란츠 페 터와 함께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프란츠가 보여주는 여러 댓글은 스 칼라가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많은 탓에 전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대략 적인 의미는 전달되었다.

“다들 기대하고 있는 것 같네.”

비록 자신에 대해서는 드문드문 언 급될 뿐이었지만 스칼라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여러 사람 이 기대하고 있고, 친구 타마키 히 로시의 곡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프란츠 페터가 물었다.

“내일 형 가족 분들도 오신다면서요? 얼마 만에 보는 거예요?”

“1년 정도. 이주해 오곤 못 봤으니 까.”

“좋겠다아. 악장 되셨으니까 엄청 자랑스러우실 거예요.”

가족이라고는 어린 동생뿐인 페터 가 부러운 듯 호들갑을 떨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일 수 있다니.

가족을 동경하는 소년은 그것이 얼 마나 기쁠지 상상해 보았다.

“그보다 다들 깜짝 놀라지 않을까 싶은데.”

“놀라요?”

“베를린 같은 큰 도시는 처음이고 큰 무대도 처음일 테니까. 엄청 놀라실 거야.”

“아, 시골에서 사셨다고 했죠?”

“응. 아주 시골.”

스칼라는 빈 근처의 옛 테메스인들 이 살았던 곳에 자리 잡은 마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경이롭고 멋 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자동차를 보았을 때.

비행기를 탔을 때.

전화기를 접했을 때.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환희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깜짝 놀라 어리둥절할 할아버지 칼 과 마을 사람을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럼 내일은 출근하기 전에 공항으로 마중 나가시는 거예요?”

“아니. 사무국에서 데려와 주신다 고 했어.”

“으아. 너무 떨려요. 잘하셔야 해요. 아니, 부담 느끼시면 안 되는데. 부담 갖지 말고 꼭 멋진 모습 보여 주세요.”

“응. 그럴 거야.”

스칼라는 내일과 같이 행복한 무대에 왜 부담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지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한 스칼라는 익숙하지 않은 개인 대기실에서 악보를 살폈다.

그러기를 얼마간.

노크 소리와 함께 반가운 소식이 전달되었다.

“스칼라 씨, 가족 분들 도착하셨어요. 지금 로비에 계신데 어떻게 안내할까요?”

스칼라가 곧장 문을 열고 나섰다.

가족들이 얼마나 놀라고 있을지를 상상하며 발을 재촉한 그는 곧 로비 에 이르렀고.

테메스인들도 스칼라를 발견하곤 반갑게 달려들었다.

“스칼라다!”

“우와. 이 옷 뭐야?”

“사진 찍자. 사진.”

마을 아이들이 스칼라에게 달려들어 핸드폰을 들이댔고 스칼라는 어 리둥절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인스타에 올리자.”

“나, 나도 사진 보내줘.”

"...?"

자신도 모르는 말을 하며 핸드폰을 사용하는 마을 아이들을 보며 황당 해하는 스칼라에게 그의 할아버지 칼이 다가왔다.

“잘 지냈느냐.”

“할아버지……

“껄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많이 의젓해졌구나.”

“왜 그러느냐.”

스칼라는 화려한 꽃무늬 셔츠에 반 바지를 입고 있는 할아버지를 믿을 수 없었다.

항상 촌장으로서 근엄함을 지켰던 할아버지가 마치 가우왕과 같은 부류처럼 느껴진 탓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차림은.”

“아, 이거 말이냐. 옷감도 부드럽고 시원하고 아주 좋다. 너도 한 벌 챙겨주련?”

“ 아뇨.”

“우와! 여기 빈에 있는 극장보다 크다!”

“엘리베이터는 없어? 걷기 싫어.”

“바보야. 우린 1층에서 보잖아.”

“도빈이는? 도빈이는 어디 있어? 스칼라, 도빈이 아프다며. 지금은 괜찮아?”

“안녕하세요. 스텔라 TV입니다. 오늘은 베를린 필하모닉 자선 콘서트를 보러 왔어요. 제가 스칼라랑 친 하다고 했죠? 영상 시청하기 전에 구독과 좋아요 버튼 꾹 눌러주세요.”

1년 전만 해도 순박하고 세상 물정 하나 모르던 마을 사람들을 놀라 게 해줄 생각으로 잔뜩 기대했던 스 칼라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스칼라도 이제 겨우 통화랑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법을 익혔거늘.

각자 아주 익숙하게 핸드폰을 다뤘 고 차림도 베를린에 거주하는 사람 과 큰 차이가 없었다.

스칼라가 당황하고 있으니 곧 촌장 칼이 손뼉을 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 다들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입장한 뒤에는 조용해야 한다.”

“촬영하면 안 돼요?”

“안 돼.”

마을 사람들에게 현대 문명의 경이로움을 알려주고 싶었던 스칼라는 어쩌면 테메스 사람 중에 아직 덜 적응한 사람은 자신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스칼라, 스칼라, 인스타 아이디 뭐야?”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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