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23화 (52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523화

    113. 분투(1)

    【오케스트라 대전 예선 종료]

    【베를린 필하모닉 압도적 1위! 그 러나 실상은기

    지난 달 진행되었던 제2회 오케스트라 대전 예선 결과가 발표되었다.

    초회 흥행에 따라 전 세계 오백여 악단이 참가하며 더욱 규모를 키운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가장 먼저 치 고 나선 악단은 단연 배도빈의 베를린 필하모닉이었다.

    누적 조회 수 3억을 돌파한 베를린 필하모닉은 2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모차르트 41번 교향곡, 2억 7,012만) 과 3위 빈 필하모닉(차이코프스키 5번 교향곡, 2억 5,708만)을 큰 차이로 따돌 리며 제국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악단주이자 예술감독 배도빈이 그에게 닥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팬들은 그 모습에 일단 안도할 수 있었지만 5월이 지나는 지금도 그가 오케스트라 대 전 이외의 활동에 나서지 않기에 안 심할 수만은 없다.

    배도빈이 직접 밝혔듯,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의 신곡을 준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신곡의 높은 난이도와 교정 문제 등으로 준비가 늦어지고 있어, 예선에서 발표하려던 계획이 틀어진 것은 베를린 필하모닉이 밝힌 사실 이다.

    신곡 준비에 부담을 느낀 탓일까.

    베를린 필하모닉은 지난 달부터 그 들이 참가해 오던 여러 행사에 참가하는 비율도 줄이고 있다.

    배도빈의 부재와 공연 수 감소는 굳건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재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마누엘 노이어, 이승희, 가우왕, 찰스 브라움, 나윤희, 최지훈, 왕소소 와 같은 프랜차이즈 연주자들이 개인 리사이틀 또는 실내악 공연을 더 해 분발하고 있으나 베를린 필하모닉 디지털 콘서트홀 이용객 수는 올 해 2월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유지하 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탄탄한 자금을 바탕으로 운영하던 대규모 자선 콘서트와 크루즈 사업 등을 어떻게 운용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후우.”

    기사를 읽은 이자벨 멀핀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는 언급되지 않은 일도 있었지 만 대체로 그들이 걱정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고작 세 달이 흘렀을 뿐인데 배도빈이 없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익 은 완만히 하락하고 있었다.

    디지털 콘서트홀 구독자 수에는 변 함이 없었지만, 이용 시간에는 큰 변화가 생겨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 구독자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고.

    대교향곡 준비에 부담을 느껴 몇몇 공연을 취소하고 감축한 탓에 공연 수익과 그에 따른 부가 수익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선 콘서트와 크루즈 사업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걱정하는 일은 이 무거운 이야기 때문에 배도빈이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었다.

    배도빈의 집무실 앞에 선 이자벨 멀핀이 문을 막 두드리려 할 때 배도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멀핀은 발소리를 듣고 누군지 알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벌써 세 달이나 반복된 일을 마냥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배도빈은 소파에 누워 있었다.

    왼손으로는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듯 손가락을 접었다 폈고 오른손은 마치 지휘를 하듯 허공을 휘저었다.

    그 옆에 프란츠 페터가 펜을 든 채 눈을 빛내고 있었다.

    “대교향곡 악보 작업은 마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멀핀의 말에 배도빈이 흥얼거림을 멈추고 답했다.

    “끝났어요. 지금은 타마키 히로시.”

    “ 아.”

    “진짜, 진짜 엄청나요!”

    곁에 있던 페터가 호들갑을 떨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속 작곡가로서 활동하기 위해 베토벤 기념 콩쿠르 이후 줄곧 노력하던 소년에게 배도빈과의 공동 작업은 크나큰 도움 이 되었다.

    배도빈이 곡을 다루는 방법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그것을 악보로 옮기는 과정을 함께하는 일은 그 어떤 방법보다 홀륭한 교육 방식이었다.

    “여기, 이 부분. 빠밤! 빠빠바바 빠 빠빠바바 보기만 해도 막 들리는 거 같지 않으세요?”

    페터가 악보를 보이며 멀핀에게 물었지만 그녀로서는 그저 악보일 뿐, 그것이 어떻게 들릴지 알 수 없어 그저 웃을 뿐이었다.

    “타마키 형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페터의 말에 세 사람이 잠시 말을 잃었다.

    배도빈이 멀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네. 현황 보고 드리려고 왔습니다.”

    이자벨 멀핀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반적 상황을 읊기 시작했다.

    배도빈이 걱정할 것을 우려했으나 악단주인 그가 요청하는데 그에게 사실을 숨길 수도 없는 노릇.

    보고 내용은 투명했다.

    단지 조금이라도 덜 걱정시키기 위 해 최대한 담담히 전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익이 줄어들 고 있다는 내용에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를 마친 이자벨 멀핀이 그를 유심히 살폈다.

    “다른 일은요?”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좋아요. 다음 정기 회의 때 논의 해 보도록 하죠.”

    멀핀은 배도빈의 의연한 태도에 안 도하며 숨을 내쉬었다. 그 작은 소리를 포착한 배도빈이 고개를 돌렸다.

    “왜요?”

    “신경 쓰실까 봐 걱정했습니다.”

    “ 뭘요?”

    “스트레스가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또 아무래도 수익이 줄면 무리하실 것 같아서.”

    멀핀의 말을 들은 배도빈이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활동을 안 하는데 수익이 주는 게 당연하죠. 안 줄면 그게 더 서운했을걸요.”

    시력을 잃고도 그 자신감은 여전해 이자벨 멀핀은 안도했다.

    “수익이 크게 줄지 않았다는 건 푸르트벵글러나 단원들이 열심히 해주 고 있단 뜻이니 도리어 기뻐할 일이에요. 걱정 말고 앞으로도 계속 보 고하세요.”

    “네.”

    이자벨 멀핀은 그녀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리더가 배도빈이라 다행이라 여기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들어와요.”

    배도빈의 말과 노크 소리가 겹쳤고 잠깐 간격을 둔 뒤 죠엘 웨인이 문을 열었다.

    같은 경험에 이자벨과 죠엘이 서로를 보곤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이 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어 배도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죠엘이 입을 열었다.

    “보스, 이번 주 관찰 보고 드리겠습니다.”

    “네.”

    “공연 수 감소로 인해 전체적인 피 로도는 감소했습니다. 다만 세프와 가우왕 부감독, 찰스 브라움 악장, 나윤희 악장, 이승희 수석은 개인 공연과 같이 스케줄이 늘어나 부담 이 늘고 있습니다.”

    배도빈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 복하다 입을 열었다.

    건강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는 하나 푸르트벵글러의 나이가 여든이었기에 배도빈은 그가 가장 염려되었다.

    그러나 본인이 없는 상황에서 그를 대체해 베를린 필하모닉을 받쳐줄 사람은 없었다.

    “다음 회의에서 정기 연주회를 줄 이는 안건을 넣어주세요. 세프 관련 한 일은 특별히 자세히 보고해 주시 고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실내악팀에서 찰스랑 가우왕을 빼죠. 페터.”

    “네, 형.”

    “앞으로 네가 밴드 맡아.”

    “네? 마, 말도 안 돼요! 제가 어떻게 브라움 악장님 역할을 맡아요.”

    “너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이면 군말 말고 해. 다니엘이나윤희 누 나가 봐줄 거니까 걱정 말고.”

    “으으으으.”

    프란츠 페터가 난데없이 내리친 벼 락 같은 명령에 떨었다.

    “밴드 리더 역할은 다니엘 홀랜드 에게 맡기겠습니다. 가우왕 자리는 지훈이가 잘해줄 거예요. 찰스랑 가우왕은 지금처럼 개인 리사이틀과 A팀 공연에 집중하게 해주세요.”

    “네. 관련 내용 전파하겠습니다.”

    “그리고 윤희 누나도 이제 B팀 일 은 제외시키세요. 빈자리는 한스 이 안 악장이 채우도록 하시고요. 그리고 승희 누나는……

    배도빈이 고민하고 있을 때 죠엘 웨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스.”

    “ 네.”

    “이승희 수석에 관한 일은 직접 대 화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오 늘 면담 요청을 하셨거든요.”

    “ 면담?”

    배도빈이 의아하여 되물었다.

    다른 단원도 아니고 이승희가 면담을 요청하는 경우는 지금껏 없었다.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기에 할 말 이 있어도 그때마다 바로 처리해 왔었다.

    “바로 불러주세요.”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음을 직감한 배도빈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잠시 후.

    이승희가 배도빈의 집무실을 찾았다. 한스 이안이 함께했기에 의아해

    하고 있는 배도빈은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전해 듣곤 크게 놀라고 기뻐 했다.

    “축하해요.”

    배도빈이 손을 뻗었고 이승희와 한 스 이안이 그의 손을 맞잡아 악수를 나누었다.

    “식은요?”

    “아직. 바쁠 때기도 하고. 좀 정리 가 되면 하려고.”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건 뭐든 말해요. 결혼식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아니야. 무슨 말이야.”

    “다른 일도 아니고 두 사람이 결혼 하는 일이잖아요. 죠엘.”

    “네, 보스.”

    “책임지고 두 사람 결혼식 최고로 준비해 주세요. 두 사람도 눈치 보 지 말고 하고 싶은 건 모두 말해요. 모든 비용은 내가 댑니다.”

    “도빈아.”

    “시끄러워요.”

    이승희가 배도빈을 말리려 했지만 그는 완고했다. 그녀와 한스는 배도빈이 이렇게까지 기뻐해 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결혼식, 내년은 되어야 할 수 있을 것 같아.”

    “왜요?”

    “아이 낳고 하려고.”

    배도빈이 허리를 폈다.

    결혼 사실만으로도 기뻐했던 그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드물게 반응 했다.

    “얼마나. 얼마나 됐어요?”

    “6 개월.”

    배도빈이 입을 벌렸다.

    마치 가족처럼 진심으로 두 사람을 축복했고 그럴수록 이승희는 고마우 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당분간 나도 한스도 휴가를 내야 할 것 같아.”

    “목소리가 왜 그래요. 당연한 일을 ”

    이승희와 한스가 말이 없자 배도빈 이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 다 걱정할 거 없어요. 당연하게 축복 받아야 할 일이에요. 출산 휴가는 얼마든지 써요. 얼마든 늘려줄 테니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고맙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 연한 일이에요. 단원들은 알고 있어요?”

    “응. 배 불러오니까 다들 묻더라.”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고 푹 쉬고 몸조리도 잘하 세요. 한스도요.”

    이승희와 한스 이안이 대화를 마치 고 밖으로 나서자 배도빈이 숨을 길 게 내쉬며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이승희와 한스 이안의 공 석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데, 마 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을 더 뽑아야 할 것 같아요. 첼로는 소소가 맡아준다고 하니 다 행인데, 악장 자리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겠어요.”

    “어떻게 할까요?”

    “최대한 경력이 긴 사람을 위주로 모집해 보세요. 이 이야기는 세프랑 악장단하고 같이 논의하겠습니다.”

    “네, 자리 마련하겠습니다.”

    배도빈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이승희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일본에서 녹음할 때 처음 만났던 때와 그녀가 한국으로 찾아와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하라 권했을 때.

    그 이후로 십수 년을 교류하며 지 낸 그녀가 결혼하고 아이까지 가졌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의 머리에 그녀의 강인하고 활기 찬 첼로 연주가 떠올랐고 곧 선율로 이어졌다.

    ‘결혼식에 맞춰 준비해 봐야겠어.’

    배도빈은 그녀와 한스 이안을 위한 곡을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이제 끝인가요?”

    “네.”

    “수고했어요 참, 산타 요즘엔 어때요?”

    말이 제법 늘었지만 타마키가 죽은 후로 우울하게 지낸다는 이야기를 떠올린 배도빈이 죠엘에게 물었다.

    “걱정해 주신 덕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쓸쓸해한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죠.”

    죠엘의 말에 배도빈이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타마키 히로시 피아노 협주곡 공연할 때 데려와요.”

    “감사하지만 일반 공연에는……

    타마키가 떠난 이후로 그가 남긴 ‘타마키 히로시 소나타’를 매일 반복해 들으며 그를 그리워하는 동생 이었다.

    그러나 과거 콘서트홀에서 소동을 냈을 때가 떠오르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좋아하겠지만.’

    들려주고 싶어도, 동생이 정말 기 뻐할 일이라도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배도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 주 연습실로 데려와요.”

    “ 보스.”

    “관객이 있는 편이 연습할 때 도움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죠엘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음악을 사랑하는 동생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이곳,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배도빈에게 그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을 만큼 큰 은혜를 받고 있다 여겼다.

    이미 단원들이 모두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는 것처럼 죠엘 웨인도 점차 베를린 필하모닉의 구성원으로서 자 아를 잡아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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