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22화 (52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522화

    112. 배도빈(6)

    한편.

    배도빈은 지휘자 대기실에서 오늘 공연에서 선보일 곡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비록 앞을 볼 순 없지만 그 어떤 악보보다 선명한 선율이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공연 전의 명상은 버릇처럼 자연스 럽고 당연한 일이었지만 오늘만큼은 한 가지 더 상정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는 무대에 올라선 순간부터 몇 걸음을 걸어야 포디움에 이를 수 있는지, 발을 얼마큼 들어야 헛딛지 않는지, 몸을 얼마나 틀어야 관객을 향할 수 있는지 반복해 되뇌었다.

    지난 한 달간.

    대교향곡을 준비한 노력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신경 써서 연습 했던 일이었다.

    “보스, 시간 되었습니다.”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죠엘 웨인이 시계를 확인하곤 배도빈에게 공연 시각을 알렸다.

    “ 가죠.”

    배도빈이 일어섰다.

    죠엘은 그를 부축해 무대로 안내했고 지울 수 없는 불안에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지휘단에 오르실 때까지라도……

    앞을 볼 수 없는 그가 혼자서 포 디움으로 가 객석을 향해 인사하고 다시 단원들을 정면에 두길 얼마나 연습했는지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넘어지거나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날 것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배도빈은 단호했다.

    “그래야 해요.”

    그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그도 두려워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음악이 더 이상 음악으로 전해지지 못하는 것.

    관객들이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무 대에 오른 자신을 장하다고, 그 열 정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게 두려웠다.

    감동을 주기 위해.

    즐거움을 주기 위해.

    그리고 음악을 통해 마음을 나누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음악과 관객 사이에 다른 요소가 침범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여지를 두고 싶지 않았다.

    죠엘 웨인이 약속한 장소에 섰다.

    “도착했습니다.”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긴장을 풀고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배도빈이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1 년간 지켜보았던 죠엘조차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언제나 자신감에 차 있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되었기에 죠엘은 가슴을 졸이며 그가 무사히 무대에 서길 기도했다.

    배도빈이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두 걸음.

    배도빈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이 열렬히 그를 맞이했다.

    배도빈 콩쿠르 이후 한 달 이상 공백을 가졌던 탓에, 팬들은 타는 갈증처럼 오늘을 기다렸고 그 간절 함을 담아 배도빈을 불렀다.

    “마에스트로!”

    “배도빈! 배도빈!”

    찰스 브라움 악장에 의해 기립한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들의 지휘자에 게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당당한 걸음.

    앞을 볼 수 없음에도 조금도 위축 되지 않고 포디움으로 향하는 그가 뒤에서 얼마나 많이 연습했을지, 넘 어졌을지 알 수 없었다.

    배도빈이 지휘단 앞에 섰다.

    수백 번 연습했던 감각을 떠올리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휘단에 올라선 배도빈은 정면과 양옆을 향 해 고개를 숙였다.

    객석에서 보내오는 박수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히무라 쇼우 도 더욱 힘을 주어 손뼉을 쳤다.

    단원을 정면에 두고 선 배도빈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위해 같은 행동을 얼마나 반복했을지 짐 작할 수 없었다.

    ‘그래. 너라면 어떤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히무라 쇼우는 사장되던 클래식 음악계를, 전 세계가 즐기는 문화로 부흥시킨 배도빈을 믿었다.

    삶에 지친 이들에게.

    재앙을 맞이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상냥한 마왕을 믿었다.

    그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배도빈이 고개를 숙인 채 두 팔을 벌렸다.

    루트비히홀에 적막이 흐르고.

    ‘노래하자. 나의 성채여.’

    배도빈의 절제된 손짓과 함께 마흔 개의 현이 구름처럼 밤하늘을 가렸다.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7번.

    늦은 밤.

    왕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거듭된 재해와 인접 국가로부터 나 라를 지켜야 하기에 왕의 고심은 깊어져만 간다.

    관악기가 비장히 울리는 왕의 심장 처럼 나서고.

    현악기가 때때로 송곳처럼 다가온다.

    ‘말러.’

    배도빈은 그의 일곱 번째 교향곡을 준비하며 다시금 그의 천재성을 확 인했다.

    중심 조성 없이 전개, 발전되는 1 악장은 그 난해함 속에서도 악장 전 체를 관통하는 선명함을 지니고 있었다.

    조성 변화로 불안이 고조되면서도 명확한 주 멜로디 덕분에 희망을 가 질 수 있었다.

    그것이 배도빈이 이 곡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단원들이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

    현악기는 평소보다 더욱 섬세하게 떨었고 관악기는 그 어떤 때보다 힘 찼다.

    팀파니가 중심을 잡는 가운데.

    트라이앵글이나 탬버린 등을 비롯한 여러 타악기는 조명처럼 내려 어 둠을 밝혔다.

    마왕은.

    그의 충실한 하수인들이 채워낸 루트비히홀에 만족하고 있었다.

    볼 수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그의 의지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손짓 하나에 가장 충성스러운 기사단이 일제히 활을 켰고 두 번째 손짓에 떨었으며 세 번째 손짓에 춤췄다.

    배도빈이 팔을 활짝 벌렸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고상한 노랫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소리가 메아리처럼 흩어질 즈음.

    문득 방울이 청명히 울린다.

    배도빈이 손짓이 빨라진다.

    그럴수록 연주에 활기가 더해진다.

    굳세게 주먹을 쥐자 큰북이 크게 울리고.

    한 번 더. 한 번 더 허공을 때리자 트럼펫이 그에 호응하며 마왕의 강 한 의지를 보인다.

    백성들을 걱정했던 왕에게 더 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 *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차분히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관객들이 배도빈의 이름을 연호하자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망설이며 뜬 눈이 당당히 걸어 나오는 배도빈을 담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먹먹했다. 후회되었다.

    찬란한 재능을 발견해, 그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앞으로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떠올리면 늙고 지친 심장이 힘차게 뛰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를 지켜보고 싶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 그 두 눈 과 귀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 욕심이 과했던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담을 준 것이다.

    아직 성장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소년에게 한 악단을 맡겼던 것이 실책이었다.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배도빈이 만들어가는 음악에 심취해 스승으로서 해야 할 일을 무시하고 말았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던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손짓 에 망설임은 없었다. 강물처럼 자연 스럽게 때로는 파도처럼 맹렬하게 관객의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그렇구나.’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이 단 한 번 의 지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악보를 적을 수 없는 탓에.

    직접 바이올린을 들어 연주진에게 들려주었고 그가 연주하지 못하는 악기는 섹션별 연습에 참가해 조율 했다.

    앞을 볼 수만 있었다면 종이 위에 지시문을 하나 써놓거나 음표 하나를 수정하면 될 일조차 그에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이렇게나 훌륭한 연주를 완성 해냈다.

    수고가 더 들 뿐.

    그는 여전히 희망을 노래했고 그의 성채는 여전히 굳셌다.

    연주는 이제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훌륭하구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눈에 눈물 이 맺혔다.

    장애를 딛고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 탓이 아니었다. 강렬하면서 도 서정적인, 그러면서도 밤을 지나

    아침을 향해 나아가는 심상이 너무 도 잘 그려졌기에 응당 느낄 수밖에 없는 감동.

    배도빈이 팔을 들어 올려 연주를 마치자.

    “브라보!”

    푸르트벵글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러 7번 교향곡이 울려퍼지다]

    【배도빈 복귀 첫 무대, 여전하다]

    【배도빈, “만족스럽다. 단원들이 준 비를 잘해주었다.”]

    【오케스트라 대전 예선 경쟁 시작! 배도빈-베를린 필하모닉의 말러 7 번, 등록과 함께 1위 등극]

    【예선 시작 3시간 만에 베를린 필 290만 건 조회]

    【베를린 필하모닉을 바짝 추격 중 인 로스앤젤레스와 빈]

    배도빈의 복귀 공연 연상이 오케스트라 대전 예선 참가를 위해 게시되 자 전 세계 음악 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등록 후 한 달간의 총 조회 수를 기준으로 상위 12개 악단이 진출하 기에 섣불리 판단할 순 없었지만.

    시작부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 인 베를린 필하모닉의 진출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비슷한 시간에 등록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공연 중에서도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말러 7번 교향곡 이 각 커뮤니티와 포럼에서 활발히 언급되기 때문이었다.

    ㄴ 베를린 봐라. 진짜 꼭 봐라. 세 번 봐도 된다.

    ㄴ 그냥 미친 수준임. 배도빈 좀 폭 력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말러 7번은 진짜 비장한 와중에 우아하다고 해 야 하나. 진짜 너무 풍부했음.

    ㄴ 색채감이 좋더라. 진짜 악기 하 나하나가 음색을 내는데 수채화처럼 그려졌음.

    ㄴ 이게 배도빈이지.

    ㄴ 혼자서 걸어 나오는 것도 인상적 이었는데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네.

    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연주 때문 에 생각 못 했음.

    ㄴ 이거 다 쇼야. 앞이 안 보이는데

    ㄴ 망설이지도 않고 성큼성큼 잘만 걸 어 나오더라. 실눈 뜨고 있던 거 아 니야? 실명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ㄴ 미칠 거면 곱게 미쳐라.

    ㄴ 아니, 왜. 베토벤도 사실은 귀머 거리 아니라는 말도 있잖아. 유명해 지려고 일부러 그런 소문 냈다고.

    ㄴ  관리자에 의해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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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난 쟤들처럼 욕 써서 차단 먹긴 싫어서 좋게 말하는데, 너 정말 큰 일 났음. 세상 분간 못 하고 악플 다는 낙으로 사는 모양인데, 배도빈을 건들면 안 되지.

    ㄴ ㅋㅋㅋㅋ 뭐 어쩔 건데 ?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인데 민주주의 국가에 서 그런 말도 못 하나?

    ㄴ ㅇㅇ. 민주주의 법치국가는 너 같은 새끼가 함부로 나불대게 해주는 나라가 아니라 선량한 사람을 보호 해 주는 나라임.

    ㄴ ㅋㅋㅋㅋㅋ 쟤 진짜 너무 불쌍해서 어떡하냐. 배도빈은 악플 합의 없단다. 힘내.

    ㄴ 그나저나 배도빈 파워가 진짜 어 마어마하긴 하네. 지금 24시간 지났는데 2,000만이 넘었음. 천만 넘긴 오케스트라가 세 곳밖에 없는데 그 나마도 압도적이네.

    ㄴ 천만? LA랑 빈임?

    ㄴ ㅇㅇ. 신기한 게 빈보다 LA가 조회 수가 많음.

    ㄴ 아리엘도 개화했지. 베토벤 기념 콩쿠르 때 인지도도 확고히 했고. 괜히 배도빈 라이벌이라 불리는 게 아닌 듯.

    ㄴ 이번 오케스트라 대전은 배도빈-베를린 필하모닉 VS 아리엘-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인가?

    ㄴ 지금 조회 수만으로도 차이가 나지만 솔직히 어떻게 비비냐? 아리엘이 잘하긴 해도 아직 한참 멀었지.

    ㄴ 싸워라. 싸워라.

    ㄴ 둘이 친할걸? 진달래랑 사귀어서 꽤 오래 베를린에 같이 있었다고 하던데.

    ㄴ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당연히 선의의 경쟁이 더 좋지.

    포럼을 살펴보고 있던 차채은은 배도빈에 대한 호평을 참고하던 와중 그를 향한 악플을 발견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혼나야지.’

    캡처 도구를 실행한 차채은이 콧노래를 훙얼거리며 이메일을 열었다.

    히무라 쇼우 대표의 주소를 입력하고 캡처한 파일과 URL 주소를 동 봉, 발송한 차채은이 다시금 원고를 작성해 나갔다.

    [희망으로 불린 불굴의 음악가]

    -말러 7번을 통해 알아본 배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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