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521화
112. 배도빈(5)
【제2회 오케스트라 대전 초읽기!]
【유력 오케스트라 참가 등록 완료1
【미카엘 블레하츠, “참가 악단 총 500여 곳. 초회 이상의 치열한 경쟁이 될 것.”]
【아리엘 핀 얀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복귀. 오케스트라 대전에도 참가 선언1
【베를린 필하모닉, 마왕이 나선다】
오케스트라 대전 참가 신청이 마감 되고 그에 관련한 보도 기사가 쏟아 졌다.
제1회 오케스트라 대전을 즐겼던 세계 음악 팬들은 그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가슴 설렜다.
첫 번째 대회가 FIFA 월드컵 시청자 수에 근접했던 만큼 참가 악단도 늘어났으며, 광고 단가 및 후원사가 크게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는데 음악계 최대 거물 배도빈이 실명 이후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 이었다.
첫 우승자이자 클래식 음악의 상징 과도 같은 배도빈이 불참한다면 오케스트라 대전의 이미지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몇몇 언론에서는 배도빈의 건강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고령을 이유로 케르바 슈타인 감독이 나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고.
그것은 오케스트라 대전을 주최하는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나 각 참가 악단, 팬들에게 불안요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 필하모닉이 배도빈을 지휘자로 참가한다는 사실이 알 려 졌고.
팬들은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ㄴ 배도빈이 나서네. 지금 정기 연주회도 참가 못해서 걱정했는데.
ㄴ 당분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적응하면 정기 연주회도 하것!지.
ㄴ 앞이 안 보이는데 지휘를 할 수 있나?
ㄴ 연습할 때 듣고 그때마다 교정한다고 함. 배도빈이 지적하면 각 사람들이 개인 악보를 고치고 그거 취 합해서 다시 하나로 만든다고 했음.
ㄴ 넌 그런 걸 어떻게 알아?
ㄴ 베를린 필하모닉 홈페이지 가면 소식지 볼 수 있음.
ㄴ진짜 대단하다. 다들 그냥 배도빈이 천재라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쟤 알고 보면 진짜 대단함.
ㄴ 너만 아는 거 아니야~
ㄴ 지금이야 외할아버지가 WH그룹 유장혁 회장이고 본인도 조 단위 재벌이지만 어렸을 때는 엄청 가난했다며.
ㄴ 배경은 잘 모르겠고 일단 일정이 헬이었음. 중간에 공부한다고 몇 년 안 쉬었으면 진짜 원 사달이 나도 났을걸? 한 달 30일 중에 스케줄 없는 날이 없었는데 그나마도 분 단 위로 활동했다고 함.
ㄴ 비행기 추락해서 또 한 두 달 생 고생했지.
ㄴ 그러고도 멀쩡하게 활동하다가 저렇게 되고도 또 계속 활동하는 거 보면 멘탈 자체가 아예 다름.
ㄴ 아무튼 진짜 기대된다. 아리엘도 LA로 복귀했잖아. 사카모토도 빈 필하모닉 지휘봉 잡고 첫 오케스트라 대전이고.
ㄴ 토스카니니가 새로 만든 오케스트라도 대단하더라. 이탈리아에선 그냥 뭐 압도적이던데.
ㄴ 브루노 발터도 여전하지.
ㄴ 와. 이렇게 보니 진짜 장난 없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요즘 폼 그보다 좋을 수 없음. 밀로스 발 렌슈타인이라고 플루트 주자가 있는 데 요즘 완전 상승세야.
ㄴ ㅇㅇ. 엘리아후 인손도 인정하는 지 플루트 활용하더라.
오케스트라 대전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 대로 부풀어 있었기에 공개 예 선에 대한 관심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를 놓칠 수 없었던 차채은 은 덕분에 괴롭기 그지없었다.
“끄으아으으.”
차채은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앓는 소리를 냈다.
제2회 오케스트라 대전 예선은 모든 악단이 4월 11일부터 12일까지 각자 실황 영상을 게시.
한 달간의 누적 조회 수를 판단해 상위 12개 악단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는데, 500개가 넘는 악단을 전부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차채은도 그렇게 생각해 주목할 만 한 악단을 추려내 보았지만 그래도 백여 개.
그들의 연주를 듣고 또 그 감상과 분석을 원고로 작성하고자 하니 머 리가 터질 것 같았다.
“으우아우우으.”
더욱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무 작정 쓸 수도 없었기에 제1회 오케스트라 대전 당시와 지난 3년간의 자료를 모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지칠 대로 지쳐 있거늘.
그 때문에 학점 관리도 엉망이었던 차채은은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침대를 내려쳤다.
그때 핸드폰 알림 소리가 났고 잠 시간 엎드려 있던 차채은이 힘겹게 팔을 뻗었다.
한이슬이 보낸 메시지였다.
베를린에 도착했다는 내용 뒤에는 식사 제안이 붙어 있었고 차채은은 답장을 하려다 전화를 걸었다.
발신음이 채 한 번 들리기도 전에 한이슬이 전화를 받았다.
-응. 채은아.
“언니이이.”
-어? 왜 그래? 어디 아파?
“언니이이이이.”
-왜. 무슨 일 있어? 말 좀 해봐. 내가 그쪽으로 갈까?
“난 멍청이야. 쓰레기야아.”
-어딘데. 응?
“집……
-기다려. 지금 갈 테니까.
잠시 뒤.
차채은을 찾아 정황을 들은 한이슬이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큰일 난 줄 알았잖아.”
“이게 큰일이 아니야? 큰일이라고. 엄청나게 크고 많은 일……
“욕심 부리니까 그렇지. 누가 참가 악단을 전부 분석하고 다녀? 유명한 곳 몇 개만 추려.”
“그랬다고오.”
“그래서 100개 넘게 하고 있니? 참 미련하다 미련해.”
한이슬은 차채은의 방에 널린 자료들을 훑으며 고개를 저었다.
순진한 건지 의욕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바보인 건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정보량을 다루려 했다.
“자, 봐. 상위 12개 악단에 들 가 능성이 있는 악단 20개만 정해. 당연히 저번 오케스트라 대전을 기준으로 상위 20개 악단만 정하면 되잖아.”
“그럼 다른 데는?”
“빼야지. 얘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너 이걸 어떻게 다 쓰려고.”
“그래도 언급 안 되면 궁금해할 거잖아.”
“너 말고 다른 사람은 뭐 노니?
자기 나라 악단은 그 나라 사람이 챙길 거 아니야.”
“내 독자들은 모르잖아……
“중요도에 따라 선택을 해야지. 너 올해 내내 이것만 쓸 거야? 올해 안에 쓸 수 있기나 해?”
선배의 꾸중에 풀이 죽은 차채은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런 것도 다 공부고 좋긴 한데 지금 네가 할 일은 이게 아니잖아. 제일 중요한 게 뭐야.”
차채은이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도빈 오빠 이야기.”
“그래.”
한이슬이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베를린 필하모닉이 어떤지, 배도빈이 어떤 상태인지 제일 잘 전 달할 수 있잖아. 앞으로도 글 쓸 때 뭐가 제일 중요한지부터 생각해. 세 상 모든 이야기 다 쓰고 싶은 마음 은 알지만 그래야 해.”
“응.”
“그리고 블로그도 조금 줄여. 너 글 받아보고 싶은 곳이 얼마나 많은 데 아직도 붙잡고 있니? 솔직히 수 익도 없잖아.”
“••••••있어?”
차채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이슬이 의아하게 물었다.
“어떻게? 원고료 받는 거야?”
“아니. 광고가 붙어서.”
“광고? 누가 붙여주는데?”
“고글에서 배너 거는 것도 있고. 슈타인웨이나 EMI에서 주는 것도 있고.”
인터넷 광고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개인이 운용하는 블로그에 대기업이 광고를 의뢰하다니, 한이슬은 믿을 수 없었다.
“ 얼마나?”
“만 달러 정도.”
“히〜”
생각보다 많은 금액에 놀란 한이슬 이 다급히 물었다.
“일 년에?”
“아니. 한 달에.”
한이슬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하고 십 년 이상 인지도를 쌓은 본인 수입의 절 반 달하는 금액을 블로그 운용만으로 번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응?”
조금 전만 하더라도 블로그 활동에 부정적이었던 한이슬의 태도 전환에 차채은이 당황하고 말았다.
* * *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 어떤 때보다 의지가 넘쳐났다.
정기 연주회를 비롯해 여러 공연으로 빼곡한 스케줄 사이에서 대교향 곡을 준비하는 과정은 큰 부담이었으나 그들은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시력을 잃고도 평소와 같이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그들의 보스를 위해.
그와 함께 최고의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그들에게 매일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 4월 11일이 사고 후, 2달 만에 배도빈이 루트비히홀 포디움에 오르는 날이었다.
정기 연주회이자.
오케스트라 대전 참가 녹음을 하는 자리였기에 베를린 필하모닉으로서는 평소보다 관객들에게 정숙해 주 길 부탁했고.
배도빈의 복귀 무대란 사실만으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거리가 마비 될 지경으로 몰려든 인파는 그들을 위해 질서정연하게 콘서트홀로 입장 했다.
취재를 나온 아사히 신문의 이시하 라 린 기자는 그 높은 시민 문화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못 들어가겠다.”
“그러게요.”
차례를 지켜 입장하고 있다곤 하지 만 워낙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기에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이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복잡했다면 몸이라도 들이 밀었을 텐데 이런 분위기에서 그러 기도 쉽지 않았다.
“또 기다려야 하나.”
“저번에도 허탕 쳤잖아요. 혹시 배도빈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요?”
“아니. 왜?”
“예전에는 단독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요즘엔 통 시원치 않잖아요. 뭐 기분 나쁜 말이라도 했나 싶었죠.”
“이게.”
“악!”
이시하라 린이 파트너의 정강이를 냅다 후렸다.
그러지 않아도 배도빈이 워낙 바쁜 탓에 시간을 따로 내기 힘들어 신경 쓰고 있었는데 옆에서 바가지를 긁 으니 짜증이 솟구쳤다.
“도빈이 아픈데 괜히 부담 줄까 봐 연락도 못 하는 마음 알아?”
“아으으으윽. 제가 뭐 나쁜 말 했어요? 이시하라 씨도 솔직히 한 건 올려야 하잖아요.”
“뭐!”
“다른 기자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부담 가지는 거 내가 뭐 모를 줄 알아요? 같이한 세월이 얼만데.”
“시끄러.”
이시하라 린이 퉁명스레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의 시야에 히무라 쇼우가 들어왔다.
그녀가 다급히 소리쳤다.
“대표님! 히무라 대표님!”
자신을 일본어로 부르는 소리에 히무라 쇼우가 고개를 돌렸고 곧 이시 하라 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반갑게 웃으며 이시하라 린에 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이시하라 씨.”
“정말요. 잘 지내시죠?”
“바쁘게 살고 있죠. 도빈이가 준 숙제 때문에 심심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일이요?”
이시하라 린이 눈을 반짝이자 히무라 쇼우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공연 시작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이후에 천천히 이야기하죠. 이시하 라 씨라면 언제든지 인터뷰 응할 테 니까.”
“그럼 내일은 어떠세요?”
“아하하. 좋습니다. 그런데 도빈이 인터뷰는 안 하시나 보죠?”
“그게••••••
히무라 쇼우는 이시하라 린의 반응으로 베를린 필하모닉과 배도빈이 기자회견 이후 그의 건강을 문제로 모든 매스컴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음을 떠올렸다.
이시하라 린이라면 개인적 친분을 이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가 아 픈 배도빈에게 독점 인터뷰를 요청할 리 없었다.
“도빈이한테 슬쩍 물어볼게요. 내일 괜찮겠냐고.”
“아, 아니에요. 좀 괜찮아지면.”
“공연까지 할 정도니 몸 자체는 괜찮아졌을 거예요. 또 물어보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럼.”
히무라 쇼우가 손을 흔들고 자리를 뜨자 이시하라 린과 그녀의 파트너 가 허리를 몇 번이고 숙이며 인사했다.
“이시하라 씨 아직 살아 있네요.”
“그럼. 내가 누군데.”
히무라 덕분에 자신감이 잔뜩 살아 난 이시하라 린이 웃으며 말했다.
“인터뷰도 땄으니까 마음 편히 들 어가자고.”
“딴 게 아니라 받은. 악!”
“꼭 한 마디씩 붙이네.”
이시하라 린이 정강이를 붙잡고 괴 로워하는 파트너를 노려보다가 기분 좋게 루트비히홀로 향했다.
그녀의 희망이 이번에는 어떤 곡을 들려줄지 너무나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