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19화 (519/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519화

112. 배도빈(3)

악단주 배도빈이 임직원 회의를 소집 했다.

앞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 의논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그가 예고했던 대로 당분간 배도빈이 취임하기 전, 푸르트벵글러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 골자였다.

“부탁해요.”

“쓸데없는 걱정 마라.”

푸르트벵글러의 무뚝뚝한 대답에서 사랑을 가득 느낀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푸르트벵글러는 현재 배도빈이 유 일하게 베를린 필하모닉을 맡길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러나 문제는 여럿 남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악장단의 인력 부족이었다.

케르바 슈타인이 감독으로 활동하 면서 악장단에는 찰스 브라움, 헨리 빈프스키, 나윤희, 왕소소 그리고 작년에 취임한 한스 이안까지 다섯 명으로 빠듯하게 운영되었는데, 그나 마도 헨리 빈프스키가 부족한 지휘 자 역할을 맡게 된 탓이었다.

현재 음악교육원 설립 사업을 진행 하고 실내악팀 운영과 공연까지 맡고 있는 찰스 브라움은 이미 업무가 포화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선뜻 나윤희, 왕소소, 한스 이안에게 헨리의 역할을 분담할 수 도 없었는데, 나윤희와 왕소소는 이 미 A, B, C팀과 실내악팀 일정까지 소화하고 있는 탓이었다.

한스 이안이 그나마 여유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이제 막 악장으로 취임한 그에게 두 사람 역할을 맡길 순 없었다.

“니아.”

“응. 맡겨줘.”

니아 발그레이의 복귀는 베를린 필하모닉에 너무도 큰 힘을 주었다.

배도빈은 그가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며.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통해 기량이 조금도 줄지 않았음을 증명한 그에 게 악장의 권한과 의무를 넘겨주었다.

대충의 역할 배정을 끝내고.

회의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다음은 등록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오케스트라 대전에 대해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자벨 멀핀의 말에 찰스 브라움이 의문을 던졌다.

“출전은 그렇다 치고 지휘는 누가 맡지? 세프나 케르바 감독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빠져도 일정이 마비될 텐데.”

“제가 나갈 거예요.”

배도빈이 답했다.

임직원들은 시력을 잃은 배도빈을 우려했고 케르바 슈타인이 그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컨디션이 좋아지고 활동하는 게 좋지 않을까?”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데 배도빈이 고개를 저었다.

“앞이 안 보일 뿐 컨디션은 좋아요. 그리고 기자회견 때도 말했지만 앞으로는 이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 도 염두에 둬야 해요. 언제까지나 쉬고 있을 순 없으니까.”

침묵을 지키던 가우왕 부감독이 입을 열었다.

“오케스트라 대전 일정은 어떻게 되지?”

“내년 1월부터 한 달에 나흘씩 1년간 진행됩니다. 예선 결과로 각 개최지가 결정될 테고요.”

“무리한 일정은 아니네.”

가우왕은 배도빈의 말처럼 그가 언제까지나 쉬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시력을 잃었다고 해서 삶이 끝난 것도, 음악가로서의 생명이 다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도리어 부담스럽 지 않은 오케스트라 대전을 통해 조 금씩 활동 영역을 되찾는 것이 바람 직하다 여겼다.

몇몇 임직원도 가우왕과 같은 생각이었지만 회의 참석자 중에는 배도빈의 건강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누엘 노이어가 입을 열었다.

“무리해서 출전할 필요는 없잖아. 난 가급적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고 이 기회에 조금 쉬었으면 하는데.”

일부 사람이 동조했다.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에요. 하지만 무작정 아무런 계획 없이 지내고 싶진 않아요. 베를린 필하모닉의 소유 주로 남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어요.”

임직원 모두 음악가로서의 그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의 굳은 마음을 더는 말릴 수 없었다.

“걱정 말아요.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게 오케스트라 대전이고 또, 가장 많은 사람이 접하는 곳이잖아요. 우리가 그곳에 참가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되죠.”

더 이상 이견이 없자 배도빈이 말을 이어나갔다.

“오케스트라 대전 준비는 제 재활 과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상태가 될 수 있게 천천히 준비하 죠. 제 복귀는 오케스트라 대전 예 선 참가일로 합니다.”

배도빈이 말을 마치자 임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찰스 브라움이 음악교육원 설립 진 행 상황과 이자벨 멀핀이 푸르트벵글러호 사업 개요를 보고한 뒤 회의 가 마무리되었다.

모두 잠시 뒤에 있을 총연습을 준 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배도빈은 회의실에 남았다.

“죠엘.”

“네, 보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제게 솔 직하셔야 해요.”

“그럼요.”

죠엘 웨인은 배도빈의 충고를 의아 해했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마음 이 무거워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이 수석들이나 악장단 그리고 푸르트벵글러에게 넘어갔으니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을 테죠. 그들을 잘 살펴 보 시고 무리하고 있으면 반드시 알려 주세요.”

버스

“이러고 있을 때 과로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래서 그에게 문제가 생기 면 난 아무것도 못 할 거예요. 단원 들의 상태 주기적으로 보고해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30분간 휴식을 가진 뒤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이 제1연습실에 모였다.

현악기 주자가 제1바이올린 42명,

제2바이올린 40명, 비올라 30명, 첼 로 24명, 콘트라베이스 24명, 클래식 기타 4명, 하프 1명, 얼후 1명으로, 그것만으로도 완편 오케스트라 의 인원을 훌쩍 뛰어넘었으며.

목관악기 주자가 플루트 8명, 오보 에 6명, 클라리넷 6명, 바순 8명.

금관악기 주자가 호른 14명, 트럼 펫 6명, 트럼본 6명, 튜바 4명, 유 포니움 4명.

팀파니 1명, 심벌즈를 포함한 여러 타악기를 다루는 주자가 9명.

피아니스트 2명.

그리고 대교향곡을 위해 초청한 태평소 연주자 4명까지 총 244명으로 구성된 대교향곡팀은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의 거의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오직 하나.

규격 외의 교향곡을 완성하기 위함 이었는데, 대부분 연주자는 총보를 받고도 이것이 어떻게 연주될지 쉽 게 짐작할 수 없었다.

B팀 콘트라베이스 주자 시엔 얀이 다니엘 홀랜드 수석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부터 악보 교정하잖아요.”

“그렇지.”

“감이 안 와서요. 이만한 사람이 모여 있는데 들으면서 교정하는 게 가능한 일이에요?”

“글쎄. 나눠서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괜찮겠지만 또 이상 하단 말이에요. 악기별로 수정하면 또 함께 연주했을 때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할 필요도 없고.”

“그러네. 하하. 이것저것 잘 생각하 고 있구나.”

“참. 그렇게 웃어 넘길 일이 아니잖아요. 보스가 엄청, 어어엄청 노력 해서 만든 곡이니까 진지해야 한다고요. 또 그런 일도 있었으니까요."

다니엘 홀랜드가 자신을 나무라는 시엔 얀을 보며 슬며시 웃었다. 그 러고는 악기를 점검하던 손을 멈추었다.

“걱정 마. 도빈이라면 어떻게든 해 낼 거니까.”

다니엘 홀랜드의 태평함에 시엔 얀 이 눈썹을 좁혔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평소가 아니잖아요. 먼저 나서서 도와드려야 한 다고요.”

“음음. 좋은 자세야.”

다니엘 홀랜드가 시엔 얀을 기특히 여기고 있을 때 배도빈이 죠엘의 부축을 받아 연습실로 들어왔다.

단원들이 일어서서 그를 맞이했고 배도빈은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연습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금 여 러분이 앉아 있는 자리를 반드시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단원들은 그들이 받은 좌석 배치도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는 제가 요구하는 바를 빠 짐없이 개인 악보에 적어주세요. 추후 모두 통합해 재분배할 예정입니다.”

단원들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의 연습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대략 55분에서 60분간 244개의 악 기가 연주하는 곡을 기억에 의존해 서 수정하다니.

옆에서 어디가 잘못되었고 어떻게 수정되었다고 말해도 그것을 모두 기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럼 시작하죠. 천천히.”

배도빈이 지휘봉을 들어 흔들자 호 른이 그에 호응하듯 힘차게 나섰다.

태양이 떠오르듯 그 웅장한 빛이 대지를 비추고.

오보에의 맑은 선율과 클라리넷의 따사로움으로 얼어붙었던 대지가 녹는다.

오랜 추위를 견디고 마침내 싹을 틔우는 새싹들.

피아노 건반이 봄비처럼 내리는데.

얼후가 소녀처럼 등장한다.

“잠깐.”

배도빈이 지휘봉을 흔들었다.

“오보에, 음을 좀 더 길게 끌어주세요. 얼후가 대두될 때까지 이어줍니다. 얼후 솔로부터 다시 가죠.”

배도빈이 세 박자를 두었고 이내 왕소소의 얼후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단아하면서도 곧은 목소리가 애 처럽게 울었다. 미세한 떨림이 더욱 구슬프게 가슴을 휘감아 연습실을 채워나갔다.

단원들조차 왕소소의 얼후에 도취 될 정도로 신비한 매력이 있었다.

이내 나윤희가 이끄는 제2바이올린 이 등장해 소녀의 그림자처럼 볼륨을 풍성히 한다.

“잠깐.”

배도빈이 연주를 중단시켰다.

“바순, 느립니다. 따라라라 할 때 나섰어야 했습니다. 제2바이올린 들 어올 때부터 다시 가죠.”

제2바이올린이 다시 연주를 시작하고 바순이 따라붙었다.

얼후의 노래가 이어지는 도중에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까지 함께하며 심상이 짙어질 무렵, 배도빈이 다시 한번 연주를 멈추었다.

“베이스는 힘을 더 빼는 게 좋겠습니다. 피아니시모. 얼후는 좀 더 과 감하게 나서도 좋아요. 비올라, 베이 스부터 다시 갑니다.”

백여 대의 악기가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단원들은 그들이 일주일간 연습했던 곡이 어떻게 들리는 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정교한 시계와 같이.

대교향곡은 모든 악기가 태엽처럼 맞물려 하나로 움직이게 했다. 얼후 가 주인공이라고는 하나 어느 악기 도 뒤처짐 없이 서로가 서로를 돋보 이게 했다.

여러 악기가 연주하는데, 너무나 정교히 구성되어 단조롭게 느껴질 정도로.

마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모든 악기가 하나의 악기처럼 작용했다.

단원들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라 불리는 그들의 지휘자가 이 곡을 만드는 데 왜 12년씩이나 걸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배도빈이 지휘봉을 휘둘러 연주를 멈추었다. 그러고는 눈썹을 좁 혀 집중하더니 입을 열었다.

“비올라. ……쟝인가요.”

“네, 보스.”

“방금 부분 다시 연주해 보세요.”

B팀 비올라 주자 쟝이 연주를 시 작하자 배도빈이 고개를 저었다.

“그 옆이었네요. 넬?”

“네, 보스.”

“쟝의 연주와 본인 연주의 차이를 알겠습니까?”

“네. 비브라토가 부족했습니다.”

“좋습니다. 다시 진행하죠.”

배도빈이 지휘봉을 흔들었다.

그러나 단원들은 백여 대의 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데 그중에서 틀린 사람을 정확히 지목함에 놀라 잠시 늦고 말았다.

배도빈이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집중해요.”

첫 총연습을 마치고 나선 단원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백 대가 넘고, 열 종이 넘는 악기가 동시에 연주하는데 약간의 오차 가 있을 뿐, 한 사람의 실수를 기필 코 찾아내는 배도빈의 청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괴물이라고는 알고 있었는데 정말 인간이 아닌 거 같아.”

“배치도를 다 외우고 있는 거 같아. 어디에 누가 앉아 있는지. 아니 면 어떻게 지적하겠어.”

“그걸 외운다고 틀린 거 찾아내는 게 말이 되냐? 완편도 아니고 두 배 규모가 연주하는데?”

동료들의 대화를 듣던 시엔 얀은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음에 기뻐했다.

“기분 좋아보이는데?”

시엔의 표정을 확인한 다니엘 홀랜드가 목 근육을 풀며 물었다.

“그럼요! 이렇게까지 조율이 될 줄 몰랐어요. 이래서는 평소랑 다르지 않잖아요. 게다가, 게다가 그랜드 심 포니 진짜, 진짜, 진짜 엄청났고요.”

그녀의 반응에 다니엘 홀랜드가 슬 며시 웃었다.

“그래. 정말 엄청났지.”

“수석께선 이미 알고 계셨던 거죠? 보스가 그럴 수 있다는 거.”

“ 설마.”

다니엘 홀랜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믿는 거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솔직히 다들 보스도 어려울 거라 생각했잖아요.”

“응. ”

다니엘 홀랜드는 고민을 이어가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도빈이가 어렸을 때 했던 말인데. 인터뷰에서도 몇 번 했었고.”

“ 네.”

“음악이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대. 힘들지 않았을 때도 없었고.”

“보스가요?”

“어. 그래도 좋으니까 하는 거라 하더라. 그런 마음을 가졌으니까 당 장은 힘들어도 언젠가는 분명 해낼거라 생각했지. 이렇게까지 금방 해 낼 줄 누가 알았겠어.”

시엔 얀은 다니엘을 보다가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흔들었다.

“보스 진짜 멋진 거 같아요.”

“동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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