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15화 (51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515화

    110. 그래도 나아가리라(6)

    가우왕을 향한 환호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마치 두 사람이 연주하는 듯.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경이로운 연주에 압도되었던 이들은 경외감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차채은이 그들 사이에서 중얼거렸다. 말 그대로 말이나 상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음을 믿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기적의 피아노.

    한이슬, 정세윤 그리고 배도빈 콩쿠르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생각이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신사숙녀 여러분, 모든 순서가 마 무리되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신 참가자들께 주최측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자벨 멀핀이 충격에 휩싸인 루트 비히홀을 다독이며 진행을 이어나갔다.

    “투표는 10분 뒤 마감되니 아직 참여하지 못한 분께서는 오늘 최고 의 기량을 펼쳤다고 생각하는 참가 자에게 표를 주시기 바랍니다. 1번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 2번 막심 에바로트, 3번 최지훈, 4번 가우왕 입니다. 우승자에게는 40만 유로의 상금이 지급되며 추후 배도빈 악단 주께서 곡을 직접 헌정해 주시기로 되어 있습니다.”

    루트비히홀을 찾은 관객과 시청자 들이 모두 가장 큰 감동을 느낀 피아니스트에게 투표하였다.

    잠시 뒤 투표가 마감되었다.

    “집계가 진행되는 동안 해설위원 두 분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카메라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비췄다.

    그는 마이크를 쥔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잔뜩 찡그린 그의 표정으로 그가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잠시간 간격을 둔 뒤 푸르트벵글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툭타미셰바는 훌륭했다. 갈고 닦은 기량을 만개했지. 힘이 부족한 약점을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도 명확해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를 잘 소화해냈다.”

    숨을 한 번 고른 뒤 계속해서 해 설을 이어나갔다.

    “에바로트는 여전하군. 어떻게 연주해야 관객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연주였다. 최고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감정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잘 건 드렸죠. 특히나 전개부에서의 리듬 활용이요.”

    “그렇지.”

    크리스틴 지메르만이 푸르트벵글러의 말에 첨언했다.

    “최지훈은…… 놀랐다.”

    푸르트벵글러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많은 연주자가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르면 자신의 기량에 매몰되어 해 석의 영역을 넘어서는 실수를 범한다. 편곡과 해석이란 핑계로 원곡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 가 많은데, 최지훈의 쇼팽은 여기 지메르만과 같이 그보다 완벽할 수 없었다. 앞으로 쇼팽은 최지훈을 통 해 들을 것이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극찬에 객석이 잠시 술렁였다.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 레데리크 쇼팽의 최고 권위자이자 완전무결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틴 지 메르만과 최지훈을 그녀가 있는 자리에서 동격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기쁜 일이에요.”

    그때 지메르만이 입을 열었다.

    “지훈 군의 피아노는 가장 빛나는 보석으로 세공된 공예품과 같습니다. 노트 하나마저 계산하여 그것을 온전히 전달하니 그 가치는 다이아몬드보다 귀하죠. 하나의 곡을 감상 할 때 지훈 군보다 좋은 연주를 아 직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녀마저도 푸르트벵글러의 발언을 부정하지 않고 도리어 칭찬을 아끼 지 않으니 관객들이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문제의 한 사람만이 남았다.

    푸르트벵글러가 다시금 미간을 찡 그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정말 대단한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내가 직접 접한 사람 중에서 호 로비츠가 있었고 폴리니, 길렐스, 글 렌, 사카모토, 여기 지메르만, 블레 하츠, 도빈이, 최지훈까지 누구 하나

    빠질 수 없지. 역사에 길이 남을 피아니스트야. 그러나.”

    푸르트벵글러는 가우왕의 연주를 들으며 받은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 지 못한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중 최고는 가우왕이다. 시간이 홀러 피아니스트들의 기량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그를 뛰어넘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군. 다들 귀와 가슴으로 충분히 느꼈을 터. 여기까지 하지.”

    푸르트벵글러가 마이크를 내려놓았고 관객들은 그의 말에 놀라기도 납 득하기도 하면서 지메르만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전에 저보다 나은 피아니스트가 둘 있다고 했었습니다. 배도빈과 가우왕이었죠. 몇몇 언론에서는 그 두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하기 위 한 수사적 표현으로 여긴 듯한데 오 늘은 그게 증명되었네요. 정말 자랑 스럽고 기쁩니다. 다만.”

    크리스틴 지메르만이 안타깝게 말을 덧붙였다.

    “배도빈 악단주가 건강 문제로 이 자리에 참가하지 못한 것만이 유일 하게 아쉬운 점입니다. 그가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 가우왕과 최지훈, 툭타미셰바 그리고 수많은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네요. 이상입니다.”

    가우왕의 연주에 놀랐던 관객들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크리스틴 지 메르만의 발언으로 그들이 받은 감 동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전설마저 최고로 꼽는 피아니스트.

    과연 황제란 말이 어울리는 남자임 이 다시금 확실시된 것이었다.

    관객들은 배도빈이 중간 사퇴한 것 이 안타깝다는 크리스틴 지메르만의 말에 공감하며 오늘의 감동을 전해 준 피아니스트들과 두 해설위원에게 박수를 보냈다.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동시 에 집계가 완료되었네요. 많이들 궁 금해하실 테니 곧장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루트비히홀 중앙에 대형 스크린이 내려왔다.

    그곳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로고가 비쳤고 각 참가자의 이름과 사진이 소개되었다.

    “2026년 제1회 배도빈 콩쿠르 파 이널라운드. 총 2,718만 3,092분께 서 투표해 주셨습니다.”

    국가 단위의 참여자에 관객과 시청 자 그리고 참가자들마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 해도 어느 정도 특정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2,700만 명 이상이 투표에 참가한 이상 오늘의 발표가 음악계 전체를 아우르는 대중성을 띤다는 의미였다.

    “우승의 영광이 누구에게 돌아갈 지, 투표 결과 공개합니다!”

    이자벨 멀핀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중앙 스크린에 파이널리스트의 이름이 재배열 되었다.

    배도빈 콩쿠르 결승전 투표 결과

    가우왕 (52.8%, 14,352,673표)

    최지훈 (31.5%, 8,562,673표)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   (11.7%, 3,180,422표)

    막심 에바로트  (4.0%, 1,087,324표)

    “와아아아아!”

    결과가 발표되자 루트비히홀이 진동했다.

    만족스럽게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린 가우왕을 향해 다니엘 홀랜드, 피셔 디스카우, 진 마르코 등이 달려들었다.

    “뭐, 뭐야?”

    “뭐긴 뭐야! 들어. 들어.”

    “들자. 들자.”

    “얌전히 있어.”

    “이거 놔! 안 놔?”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에게 붙잡 힌 가우왕은 발버둥치다가 공중으로 높이 뜨고 말았다.

    “만세!”

    “부감독 만세!”

    갑작스러운 헹가래에 당황한 가우왕은 바락바락 소리 질렀으나 단원 들이 그의 바람을 들어줄 리 없었다.

    몇 번을 더 던지고 나서야 타깃을 바꾸었다.

    “최도 하자.”

    “최도 있네.”

    단원들이 가우왕을 내팽개치고 가우왕을 위해 열심히 손뼉을 치고 있던 최지훈에게 다가갔다.

    “어, 어? 자, 잠시만요. 잠깐.”

    “잠깐은 무슨 잠깐.”

    “잡아. 잡아.”

    “환영식도 못 했는데 이참에 같이 하자고.”

    “저 괜찮은데.”

    “하나〜 둘〜 셋!”

    “아앗!”

    최지훈이 단원들에 의해 통통볼처 럼 튀어오르며 기겁할 때 망신창이 가 되어버린 가우왕이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통받 고 있는 최지훈을 보며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이 제정신이 아님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아 내와 마주할 수 있었다.

    “ 가가.”

    예나왕이 가우왕을 와락 안았고 가우왕은 그녀를 품으며 웃었다.

    “나 멋있지?”

    “응. 최고야.”

    기자들이 그 광경을 놓칠 리 없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계곡물처럼 세차게 이어졌고 그 감동의 무대 한쪽 에서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는 중앙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 내가••••••?’

    혁명가. 가우왕과 함께 가장 강력한 티켓 파워를 보유한 위대한 피아니스트 막심 에바로트보다 많은 표를 받았단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차례를 마치고 막심, 최지훈, 가우왕의 연주를 들으며 수상을 포기했던 그녀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리자!”

    얼떨떨해 있는 그녀를 향해 매니저가 달려왔다.

    “축하해! 정말, 정말 축하해!”

    “어, 어.”

    매니저에게 안겨 어리둥절하던 엘 리자베타 툭타미셰바의 시선에 헹가 래로 인해 엉망이 된 최지훈이 들어 왔다.

    최지훈이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밝게 웃었을 때.

    그녀도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배도빈 콩쿠르 종료!]

    【가우왕, 역사를 새로 쓰다!]

    【새로운 세계를 연 황제 가우왕】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불가능한 연주를 해낼 유일한 피아니스트.”]

    【크리스틴 지메르만, “피아니스트가 쌓아온 역사의 가장 정점에 서 있다.”】

    【최지훈. 당당히 반열에 들다】

    【모든 평론가가 새시대의 거장으로 인정한 최지훈의 발자취】

    【무관의 여제 엘리자베타 툭타미셰 바 과실을 얻다]

    【막심 에바로트. “새 시대가 도래함을 느낀다.”]

    【배도빈 콩쿠르 결승전 최고 동시 시청자 2억 명의 대기록]

    【배도빈. “우리는 또 한 번 나아갔다. 음악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한 콩쿠르를 열 수 있어 영광이다.”]

    배도빈 콩쿠르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주최자 배도빈의 말대로 한계에 이렀다고 생각한 음악계가 또 한 번 도약한 순간이었고 그것은 오케스트라 대전을 앞둔 수많은 음악가들에 게 크나큰 자극제가 되었다.

    “네?”

    “함께해 달라 말씀드렸습니다.”

    배도빈 콩쿠르를 통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우수함과 그 저력을 다시금 확인한 아리엘 핀 얀스는 제2회 오케스트라 대전을 위해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에게 면담을 청했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으로 복귀가 확정된 젊은 지휘자는 배도빈, 베를린 필하모닉 그리고 가우왕, 최지훈을 상대하기 위해 그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를 골랐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빈 필에.”

    엘리자베타가 스승 사카모토 료이치와 함께 있는 것을 이유로 거절하려 하자 아리엘이 그녀의 말을 끊어 냈다.

    “저라면 당신을 가우왕과 최지훈보 다 빛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리엘은 당당했다.

    “당신과 함께라면 베를린 필하모닉 보다 멋진 음악을 할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는 망설였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통해 아리엘 얀스가 얼마나 대단한 음악가인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간절히 바라는 지휘자는 없었기에 당황하고 있었다.

    “생각 좀…… 해볼게요. 시간을 주 세요.”

    “오케스트라 대전 참가 신청일이 한 달 남았습니다. 그 전에는 답을 주시겠습니까?”

    엘리자베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이 방을 벗어나자 그녀의 매니저 리디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잘했어! 저쪽에서 먼저 이야기한 거니까 시간을 끌면 조건도 더 좋게 붙을 거야.”

    “아, 어.”

    “그나저나 대단하다. 아리엘 얀스잖아. 배도빈의 유일한 대항마. 오케스트라 대전에서도 분명 상위권에 오를걸? 그런 사람이 제안한 거잖아.”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니. 그냥.”

    엘리자베타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선생님께 죄송하잖아.”

    리디아가 엘리자베타의 코를 쿡쿡 누르며 탓했다.

    “죄송한 생각부터 하는 거 보니 이 미 가고 싶은 거네, 뭐.”

    “걱정 마. 사카모토 교수님이 누구 신데. 네가 바라는 일은 기꺼워하실 분이잖아. 그리고 솔직히, 네가 언제 부터 사카모토 교수님을 걱정할 정 도였니?”

    “ 뭐?”

    “막말로 너 없어도 사카모토 교수 님이 어디 부족하신 분이야? 도리어 LA로 가면 네가 무서워해야 할걸?”

    엘리자베타가 리디아를 노려보다가 두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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