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514화 (514/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514화

110. 그래도 나아가리라(5)

‘ 역시.’

한편 가우왕 역시 최지훈의 연주를 냉정히 평가하고 있었다.

‘그 꼬맹이가.’

가우왕은 최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배도빈이라는 규격 외 천재 곁에 있던 아이는 배도빈은 물론 여러 피아니스트의 장점을 모방하고 있었다.

그조차 배움의 수단이긴 하겠으나 그것만으로는 한 사람의 피아니스트 가 될 수 없었다.

배도빈을 따라다니는 꼬맹이.

가우왕에게 최지훈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 되어 나타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낌새를 보이기는 했다.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 뿐 이었다.

여러 콩쿠르를 경험하며 성장한 녀 석은 오케스트라 대전을 기점으로 조금씩 자신의 연주를 확립하기 시 작했다.

그러나 그때도 최지훈이 자신과 배도빈이 있는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한계.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그 벽에 막혀 평생을 발버둥 치다 좌절해 왔다.

끝없는 사랑으로 갈망해야만, 그러 고도 언제 이를지 알 수 없는 곳.

가우왕 본인조차 서른 줄에 이르러 서야 이해할 수 있는 세계였기에 일 년 이상의 공백을 둬야 했던 최지훈 에게는 벅찬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복귀 무대에서 최지훈은 그 의 예상을 완벽히 뒤집어놓고 말았다.

배도빈과 가우왕이 오래전부터 총 애해 왔던 니나 케베리히조차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던 ‘A108’을 자신 의 목소리로 훌륭히 연주한 것이었다.

다른 피아니스트를 따라 하던 꼬맹 이는 사라지고 한 사람의 피아니스트가 태어난 순간이었다.

압도적 기량의 천재가 곁에 있다면 그 영향을 받을 만도 한데 최지훈은 그러지 않았다.

결국 지금에 이르러서는 두 사람이 추구하는 음악은 전혀 달랐다.

배도빈의 연주가 거대한 성을 쌓는 것처럼 웅장하다면 최지훈은 마치 연주를 통해 아주 세밀한 공예품을 만드는 것 같았다.

티끌 하나 없는 순결의 보석.

음악을 아는 사람일수록 이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서로 가우왕 씨를 모시겠습니다.

“좋아.”

가우왕이 일어섰다.

“지훈이 정말 대단하다.”

나윤희가 감탄했다.

“알 것 같아. 가우왕 씨와 견줄 사람이 지훈이뿐이라는 말을.”

그녀 본인도 최고 수준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지난 몇 년간 배도빈을 사사한 덕에 나윤희는 최지훈의 정 밀한 연주를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왜 박자를 끄는지, 왜 장식을 더했는지, 왜 페달을 밟는지 모든 행위 에 의미가 있었다.

최지훈이 대단하긴 해도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 가우왕에게 비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연주를 듣고 난 지금, 그가 가우왕 만큼 대단한 피아니스트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의문은 하나 남아 있었다.

“우승, 가우왕 씨가 할 거라고 했잖아.”

“그럴 거예요.”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연주, 2라운드 때 가우왕 씨랑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나윤희가 배도빈의 손에 귤을 쥐여 주었다.

다디단 과즙과 육질을 음미한 배도빈은 나윤희의 생각에 동조했다.

“맞아요. 기량만 따지면 지훈이나 가우왕이나 다를 거 없어요.”

“그럼?”

“부족한 건 관객을 이끄는 거죠.”

“매력이 부족하단 뜻이야?”

“아뇨. 그걸 드러내는 방식에 익숙 하지 않다는 말이에요.”

“잘 모르겠어.”

설명이 길어질 듯했다.

“연주를 잘하는 기준은 여럿이라 모호할 수밖에 없어요. 각자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고.”

“응.”

찰스 브라움이 파이어버드의 부드 러운 음색을 최대한 활용하려 한다면 나윤희는 박자를 다뤄 힘 있고 정열적인 연주를 선호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연주자라면 어느 누가 더 낫다고 판단하기 힘들었다.

“가우왕이나 지훈이나 그런 단계는 이미 한참 전에 넘어섰지만 경험에 선 차이가 있을 수밖에요.”

“무슨 경험?”

“공연.”

배도빈이 손을 내밀자 나윤희가 얼른 귤을 하나 더 쥐여주었다.

“지금까지 지훈이는 공연보단 콩쿠르를 통해 성장해 왔어요. 자기 연주를 완성하는 데 집중했죠. 그것으로도 충분히 전달력을 갖췄지만.”

“응.”

“30년 가까이 관객과 소통해 온 가우왕에 비하면 부족할 수밖에 없죠. 자기가 가진 매력을 어떻게 보 일 수 있는지 잘 알거든요.”

“쇼맨십 같은 뜻이야?”

“ 비슷해요.”

나윤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로로 활동했을 때와 베를린 필하모닉 입단 후를 비교해 보면 과거에는 참으로 어설펐다.

관객과 교감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느꼈고 웃고 떠드는 밴드 활동을 통해 더욱 그들에게 다가 가고 싶었다.

그러면서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 조금씩 알 수 있었다.

배도빈은 최지훈에게 그런 경험이 적다고 판단하고 그것이 가우왕과 최지훈의 차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우왕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래서.”

“네. 결과가 팬 투표로 정해지는 이상 우승은 가우왕이 할 거예요.”

만백성 앞에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으로 빛나는 관.

붉은 비단 위에 금실로 수놓인 용 포를 입고 있는 그는 객석을 오시하 며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대신 천천히 걸으며 백성들을 훑어본 가우왕은 피아노 앞에서 멈춰 섰다.

두 팔을 크게 벌려 소매를 거두고.

무릎까지 내려온 옷을 휘날려 의자 에 앉았다.

그 모습이 사뭇 근엄했다.

ㄴ 저게 뭐얔ㅋㅋㅋㅋㅋㅋ

ㄴ 극한의 컨셉충

ㄴ 진짜 이 세상 컨셉이 아니닼ㅋㅋ 제정신이고서야 저럴 수가 없음ㅋㅋ

ㄴ 오우 중국 전통 예복인가? 무척 디테일하네.

ㄴ 아름답습니다.

ㄴ 반응 좋은데?

ㄴ 중국의 황제가 입던 옷인 듯. 미 스터 왕이 준비 많이 한 모양인데.

ㄴ 아니 저걸 왜 좋아하짘ㅋㅋㅋ

ㄴ 저거 소매 넓어서 방해 안 되나?

ㄴ 쟤는 상식이 안 통하는 인간이라 괜찮을 듯.

ㄴ 도양 전통에 환상 가지고 있는 애들 많잖아.

ㄴ 그거 차치하고도 개웃긴뎈ㅋㅋ 지가 황제라는 거잖아ㅋㅋㅋㅋ

ㄴ 가우왕이면 인정이지

디지털 콘서트홀 채팅창과 현장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몇 이는 가우왕의 복장에 웃었고 또 몇몇 이는 그 화려한 예복에 홀 려 버렸다.

그러나 그가 피아노 앞에 앉은 순간부터는 정숙하여 황제가 친히 나 선 무대에 집중했다.

가우왕이 결승에서 선택한 곡은 그가 녹음에 참여했던 마왕의 두 번째 정규 앨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의 수록곡 ‘태풍’이었다.

가우왕은 태풍 속에서 녹음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작곡가 배도빈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었냐.’

조용히 울리는 빗방울.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건반이 암운 이 드리웠음을 알렸다.

‘뽐내고 싶었을 테지.’

아홉 살 꼬맹이 주제에 이 시대 모든 피아니스트를 발아래 두었으니 자신의 기량을 한껏 자랑하고 싶었을 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만든 한계 수준의 연탄곡.

두 사람이 바람과 장대비가 내는 불규칙적인 음에 즉흥적으로 반응해 연주해야 하는 곡.

과연 세상을 오시할 만했다.

태풍전야의 고요함과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길함을 연주하던 가우왕이 눈을 떴다.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를 연주 하며 한계를 초월한 그의 손이 비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하강과 상승.

도약과 스케일.

두 손이 펼치는 가공할 강풍에 관 객들은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배도빈이 벌떡 일어났다.

주제를 들으면서도 설마 홀로 태풍을 연주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그는 경악하고 있었다.

11년 전 자신과 가우왕이 함께 연주했던 곡이 그에 의해서, 단 한 사람에 의해서 완벽히 재현되고 있단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세 개로는 부족해? 네 개라도 치겠어!’

배도빈은 순간 그가 했던 과거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읊조렸다.

“..미쳤어.”

그가 그러할진대.

백성들의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 인지할 수 있는 찰나조차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강풍은 멈추지 않았다.

때때로 거세지고 때론 느려지는 와중에도 이어졌다.

건반의 대부분을 활용하는 풍부한 종적 표현과 마치 태풍을 맞이한 듯 한 횡적 전개는 경이로움.

기적이었다.

가우왕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 했다. 눈은 의지를 태웠고 손은 피로를 몰랐다.

살을 에는 바람과 저항의 의지조차 꺾어버리는 폭우로 루트비히홀을 유 린했다.

‘이러고 싶었지?’

경악에 찬 루트비히홀.

이것이야말로 배도빈이 바랐던, 이 곡을 연주함으로써 바랐던 모습이었다.

‘이게 네가 바란 것 아니었냐.’

이미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그의 손이 끝을 모르고 빨라졌다.

완벽을 향해.

육신과 모든 영혼을 다해 한계를 부수고 넘어서, 자신을 옭아매는 모든 족쇄를 끊어내고도.

또다시 나아가는 강인한 의지가 그 의 손을 통해, 건반과 망치와 현을 통해 관객들의 가슴을 관통했다.

트릴. 트릴. 트릴.

불협화음이 변칙적으로 붙고.

스케일. 스케일. 스케일.

작달비가 내린다.

재해.

그는 재해다.

그 앞에 놓인 이들은 스스로의 나 약함을 깨닫고 두려워할 뿐이다.

넋을 잃은 채 그에게 종속되어 그 의 의지대로, 황제의 뜻대로 그저 기 도할 뿐이다.

그가 아량을 베풀기를 기도하며.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 속에서 태풍 이 그치길 바랄 뿐.

콰광-

가우왕의 손이 건반 위로 벼락같이 꽂히고.

그가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리자 백 성들을 두렵게 했던 태풍이 거짓말 처럼 멈췄고.

그 순간의 정적.

가우왕이 벌떡 일어나 팔을 크게 두르자.

“브-라보!”

“브-라보!”

그때까지 압도되어 있던, 핍박받고 있던 만백성이 일어나 위대한 황제를 연호했다.

그의 만세를 목놓아 외치며 복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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