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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508화 (508/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508화

109. 참을 수 없었다(3)

아침이 밝아 오고 왕 부부는 가우왕이 평소 다니는 살롱으로 향했다.

안내 받은 장소는 가우왕이 연주한 앨범이 홀러나왔고 은은한 허브향을 풍겼다.

옷을 갈아입은 뒤 스파를 즐긴 두 사람은 관리사의 안내를 받아 나란히 누웠고 곧 몸을 녹이는 듯한 마 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안락함에 다시 한번 잠이 밀려들 즈음 가우왕이 입을 열었다.

장인 장모와 만나는 자리라 가우왕 으로서는 오늘 초대 받은 저녁 식사 자리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예법 같은 것도 있다고 들었는데.”

“있지.”

예나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말해봐.”

“괜찮아. 알려준다고 바로 되는 것 도 아니고 자긴 평소대로가 멋있으니까.”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도빈이는? 괜찮대?”

“지 말로는 그렇다는데 모르지.”

가우왕이 불편한 듯 끄응 하고 앓 은 소리를 냈다.

너무나 걱정됨에도 괜찮다고만 하 니 도리어 더 마음이 쓰였다.

“빨리 나으면 좋겠네.”

가우왕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반쪽짜리 피아니스트였던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배도빈이었다.

세계가 우러러 보는 입장이 된 지 금도 그를 충족시켜 주는 건 배도빈 뿐이었다.

음악적 관계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예나를 제외하고 그에게 인 간적 유대감을 심어준 것 또한 배도빈뿐이었기에 가우왕에게 배도빈은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나을 거야. 반드시.”

가우왕이 그래야만 한다는 듯 말했다.

늦은 오전, 스파로 피로를 풀고 피부 관리와 마사지를 함께 받은 두 사람은 간단한 점심을 먹으며 신혼을 즐겼다.

양쪽 부모에게 드릴 선물을 살피기도 했고 신혼집을 살피기 위해 부동산 중개인과 만나 몇몇 집을 살피기 도 했다.

그러면서 찰스 왕세자가 여는 저녁 만찬 시간이 다가왔다.

예나왕이 머리를 차분히 뒤로 넘기고 평범한 연미복을 입은 남편을 살 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멋있다.”

“당연하지.”

두 사람은 행복하게 웃으며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베를린 시내의 연회장에 도착하자 곧장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안녕하십니까.”

부부가 인사했으나 브라움 부부는 딸 부부를 보자마자 무시해 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장한 부모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에게 찰스 브라움이 말을 걸었다.

“예상했던 일이잖아. 상처 받지 마.”

무뚝뚝한 위로에 가우왕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말도 할 줄 알았네?”

“너한테 한 말 아니다.”

부모의 태도로 속이 상했던 예나왕 은 티격태격하면서도 대화를 이어가는 오빠와 남편을 보며 그나마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예상보다 만찬회는 더욱 잔인했다.

부부가 함께 들어선 순간 멸시의 눈초리가 그들에게 쏟아졌다. 몇 번 얼굴을 봤던 사람들이, 웃으며 지냈 던 그들이 너무나 변해 있었다.

“저 천박한 피아니스트는 대체 어떻게 온 거죠?”

“왕세자께서 초대하셨겠지요.”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브라움가도 틀린 거지. 장남은 나 라를 배신하고 장녀는……

스치듯 들려오는 그릇된 혐오에 예나왕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것을 눈치 챈 가우왕이 아내의 어깨를 감아 안으며 웃어 보였다.

“왕세자가 연 만찬이라더니 제법 괜찮네.”

남편의 의연한 태도에 예나왕이 어 렵사리 미소 지었다.

그들 옆을 지키고 있는 찰스 브라움 역시 매우 불쾌해하며 샴폐인을 마실 뿐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연회장에 찰스 왕세자가 모습을 드 러 냈다.

모두가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가장 유력한 가문인 레밍턴 부부 뒤에 누가 찰스 왕세자와 대화를 나눌 것인지 눈치를 보기 생 각했고 곧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오오, 찰스.”

찰스 왕세자가 찰스 브라움과 왕 부부를 향해 다가갔다.

“저하.”

찰스 브라움이 고개를 숙였다.

찰스 왕세자는 너무나 반가워하며 그를 일으켰다.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연주는 항 상 듣네만.”

“건강하신 듯해 다행입니다.”

찰스 왕세자가 고개를 돌려 왕 부부에게도 말을 걸었다.

“예나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구나.”

“저하.”

설마 하니 왕세자가 가장 먼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예나 왕은 당황한 와중에 고개를 숙였다.

찰스 왕세자가 가우왕을 보았다.

“급히 초대했는데 응해주어 고맙 소. 평소 흠모하고 있던 피아니스트가 와주니 무척 기쁘구려.”

가우왕이 아내를 따라 고개를 살짝 숙이곤 입을 열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례 로 제 연주회에도 초대해 드리죠.”

레밍턴 부부와 초대받은 이 모두 경악했다. 가우왕 나름대로 정중하 고자 했으나 감히 딴따라가 왕세자를 초대한다는 걸 그들로선 받아들 일 수 없었다.

“껄껄. 그거 기쁜 일이지.”

찰스 왕세자가 즐겁게 웃으며 가우왕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조차 연회장에 모인 이들에겐 충 격이었다.

찰스 브라움과 예나왕마저 당황하 고 있는 사이, 왕세자는 왕 부부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늦었지만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 하네. 참으로 잘 어울리는군.”

왕세자가 두 사람과 손을 포개어 가볍게 흔들고는 돌아섰다.

왕 부부는 서로를 보며 어리둥절했고 찰스 브라움이 나섰다.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올 테니 자 리잡고 있어.”

“오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 받아들이셔야지.”

부모와의 어긋난 관계를 다시 이어 주려는 오빠의 마음에 예나는 미안 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찰스 브라움이 브라움 부부를 찾았고 가우왕 은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괜찮은 구석이 있어.”

“그럼. 우리 오빠만 한 사람이 어 디 있다고.”

“안녕하십니까.”

대화를 나누는 부부에게 레밍턴 가 문의 장남 레밍턴 리졸과 몇몇 사람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일면식이 있었지만 그들이 보냈던 멸시의 눈초리를 기억하고 있던 예나왕은 경계하며 인사를 받았다.

가우왕도 슬쩍 인사를 하자 레밍턴 리졸이 웃으며 말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아주 근사한 옷을 입고 연주를 하신다고.”

“뭐, 그렇죠.”

“한데 오늘은 정상적인 옷을 입고 계시군요.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레밍턴 리졸과 그와 함께한 이들이 소리 죽여 웃었다.

명백한 모독이었다.

가우왕이 눈매를 좁혔고 예나왕이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뭐라 하셨죠?”

“아아, 기분 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 단지 농담일 뿐이니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시길.”

예나왕이 분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는데 가우왕이 크게 웃었다.

“하하! 그거 재밌는 농담이네요.”

예나왕이 그런 남편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고 레밍턴 리졸과 그의 측근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거 생각보다 말이 통하는 분이셨군요.”

“안 통할 거 없죠.”

가우왕이 태도에 레밍턴 리졸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 바로는 피아노를 잘 연주한다고 하시던데.”

가우왕이 어깨를 으쓱이며 긍정했다.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레밍턴 리졸이 정말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동양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아이를 혹사시킨다 들었습니다. 최근 유명한 음악가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라 하니 그 학대가 얼마나 가혹했을지 짐작됩니다.”

예나왕이 레밍턴에게 다가서려 하자 가우왕이 그녀를 붙잡고 대신 나

“오해가 있군요. 어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좋아서 스스로 감내한 일입니다.”

모욕을 주기 위한 발언에도 가우왕이 의연히 대처하자 왕세자와의 첫 대화에서 밀린 레밍턴 리졸의 기분은 한 번 더 망가졌다.

“하하. 이런 분이니 음악을 사랑하시는 왕세자께서도 친애하는 거겠지요. 어떻습니까. 왕세자 저하를 위해서라도 한 곡 연주하심이.”

“적당히 하세요. 레밍턴 경.”

프로 피아니스트에게 예정에 없던 연주를 청하다니, 그것도 왕세자를 위한다는 명목을 들어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예나왕이 더는 참지 못했다.

남편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기에 더욱 화가 났다.

그때 가우왕이 한 번 더 웃었다.

“좋죠.”

“가가.”

예나왕은 이 자리 때문에,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들의 차별을 받아들이는 남편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화가 난 그녀는 가우왕의 얼굴을 본 순간 그가 얼마나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우왕이 웃었다.

“괜찮아. 분위기도 살릴 겸 좋잖아.”

이 모든 것이 브라움 부부, 부모에 게 잘 보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예나가 모를 리 없었다.

세계 그 어떤 곳에서도 이러한 대 접을 받아본 적 없는 남편이 그것을 위해 수모 받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녀가 잡기도 전에 가우왕이 일어 나 샴페인을 들었다.

이목이 쏠렸다.

“오늘 절 초대해 주신 왕세자 저하를 위해 한 곡 연주하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오오.”

사정을 모르는 찰스 왕세자가 기꺼 이 가우왕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찰스 브라움은 눈썹을 찡그리며 주변 분위기를 살폈다.

가우왕을 위해 밴드 옆에 피아노가 준비되었고 그는 처음 만난 실내악 팀에게 물었다.

“좀 해?”

실내악 팀은 위대한 비르투오소를 처음 만나 얼떨떨한 와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우왕이 씩 하고 웃곤 한 번 더 물었다.

“브람스 分단조 4중주.”

“네, 네!”

“천천히 가자고.”

가우왕이 피아노 앞에 앉아 실내악 팀과 시선을 교환하고 연주를 시작 했다.

실내악 팀의 수준은 베를린 필하모닉에 비해 한참 부족했으나, 일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황제 가우왕과의 협연에 최선을 다했다.

찰스 왕세자도 흡족하게 그들의 연주를 감상했다.

그러나 기껏 연주를 청했던 레밍턴 리졸과 그 무리는 듣는 척 마는 척 하며 각자 할 일을 했다.

마치 사용인을 부리는 듯한 태도에 예나왕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무대 위로 찰스 브라움이 올라섰다.

“ 나와.”

그가 가우왕의 팔을 붙잡고 일으키 려 하자 가우왕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짓이야?”

만찬회장이 술렁였다.

“이딴 취급이나 받으려고 왔어? 일 어나.”

찰스 브라움의 말에 가우왕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

찰스 왕세자가 그의 수행원을 불러 사정을 알아보도록 지시하는데, 찰스 브라움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일어나!”

“거참 시끄럽네. 뭐가 문제야. 다들 재밌게 놀고들 있구만. 나도 좀 놀 자고.”

“그래요.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찰스 브라움.”

레밍턴 리졸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본인이 왕세자 저하를 위해 나섰 다고 밝혔는데 그 연주를 망치는 의 도가 무엇입니까.”

“ 리졸••••••

찰스 브라움이 그를 노려보았다.

“이거 참으로 애석하군요. 정말이 지 애석합니다. 왕실 오케스트라 제 안을 거절하면서까지 독일로 가 동 양인 아래서 활동할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브라움 경, 정말 경우가 없으시군요.”

“뭐야?”

“더군다나 장녀는 저렇게 꼴사나운 사람과 만나니 브라움 당주께서 슬픔을 토로하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 가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브라움 공.”

레밍턴 리졸이 크로프트 브라움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던 두 가문 사이에, 오늘 왕세자까지 왕 부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니 레밍턴 리졸 은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가 받은 모욕 이상을 주기 위해 다시 한번 입을 열려고 하는데 찰스 왕세자가 손뼉을 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고 찰스 왕세자가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무례요.”

레밍턴과 그 일행이 씩 하고 웃었다. 그러나 왕세자는 그들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레밍턴 경, 가우왕과 브라움가에 사과하시오.”

“••••••저하?”

되물었음에도 찰스 왕세자의 표정 이 변하지 않자 레밍턴 리졸이 하 하고 탄식했다.

“저의 언사가 조금 과했던 것 같군요. 유감입니다.”

이빨 빠진 왕세자의 말이 그를 제 어할 수 있는 범위는 거기까지였다.

그가 다시 미소 지었다.

“어떻습니까. 브라움 경도 거기 가우왕 씨와 함께해 분위기를 풀어보 심이.”

찰스 브라움마저 모욕하는 말이었다.

그 순간.

가우왕이 의자를 박차고 나서 레밍턴 리졸의 면상에 발을 쑤셔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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