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95화 (495/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495화

107. 악성(5)

【배도빈•가우왕 재대결 결과는?]

【가우왕 조 1위로 2라운드 진출!]

【가우왕, “예상했던 결과.”]

【배도빈 충격의 첫 패배. 신의 몰 락인가!】

【배도빈 인터뷰 거절】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 이후 피아니스트 가우왕의 기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배도빈의 조 2위 진출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16년간 클래식 음악계의 마 왕으로 군림하며 단 한 번도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배도빈이 누군 가에게 밀렸다는 사실은 그의 팬들 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을 향유하는 모든 이에게 충격이었다.

ㄴ 와 설마설마 했는데 배도빈이 졌어.

ㄴ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우왕이면 그럴 만하지.

ㄴ 솔직히 피아노만 파고든 가우왕 하고 얼마 차이도 안 난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않나?

ㄴ 배도빈 성격에 그런 식으로 생각 하진 않을걸?

ㄴ 인터뷰도 거절했잖아.

ㄴ 표정 무서웠음 ㅠㅠ

ㄴ 진짜 2라운드에선 작정하고 나올 듯.

ㄴ 배도빈이 진짜 승부욕도 엄청 강 하고 자존심도 세서 이번 일로 상처 받았을 거 같아.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으니까.

ㄴ 자기가 아니면 누가 우승하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앤데 그럴 만 하지.

ㄴ 근데 솔직히 이번엔 좀 힘들 듯. 가우왕이 예전 가우왕도 아니고 막 심이나 최지훈도 있고.

결과 발표 직후, 팬들은 쏟아지는 관련 기사를 탐독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배도빈이 충격을 크게 받진 않았을 까 하는 우려와 2라운드에서 절치부 심해서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에 대한 기대.

동시에 이번에는 배도빈도 힘들 거 란 조심스러운 추측이 오가는 가운 데, 이자벨 멀핀이 배도빈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죠엘, 보스 안에 계시죠?”

“네. 계신데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죠엘 웨인의 태도로 생각보다 배도빈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멀핀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리하지 않도록 잘 보좌해 주세요. 알다시피 몸이 그리 좋지 않으니까요.”

“네.”

“두 시간 뒤에 찰스 왕세자와 미팅 있으니 상황 봐서 슬쩍 말씀드리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자벨 멀핀이 한숨을 내쉬곤 돌아섰다.

한편.

배도빈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도 그를 걱정하긴 마찬가지였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모든 인터뷰를 거부하고 집무실에 틀어박혔기에 그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여겼다.

“도빈이 삐졌어.”

왕소소의 말에 마누엘 노이어가 목을 벅벅 긁었다.

“그럴 만하지. 평생 져본 적 없는 녀석인데.”

“충격이 큰가 봐. 인터뷰는 그렇다 쳐도 우리랑 말도 안 하고.”

이승희도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단원들 모두 어린 보스를 걱정하는 와중에 정작 가우왕은 승리의 달콤 함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흐흐흐흐흐흐.

이승희가 가우왕을 한심하게 보았다.

“그렇게 좋냐?”

“당연하지.”

가우왕이 샴페인을 따르며 말했다.

“녀석보다 피아노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없지. 아무렴 없지.”

잔을 가득히 채운 그는 황홀한 표 정으로 그것을 살폈다.

“녀석이 만든 곡만 해도 알 수 있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연탄곡, 베를린 환상곡, 태풍, 아너,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까지. 녀석보다 피아노를 잘 이해하는 음악가는 없어. 그런 녀석을 이긴 거라고. 즐겁지 않을 리가.”

단원들은 진심으로 감격하고 있는 가우왕을 축하해 주고 싶으면서도 배도빈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왕소소가 그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으. 꼴보기 싫어.”

“맘대로 생각해. 지금 기분이 아주 좋으니까.”

왕소소가 밖으로 나섰고 단원들이 어색해진 분위기에 떨떠름하고 있을 때 찰스 브라움이 나섰다.

“신경 쓸 필요 없어.”

“ 찰스?”

“이 머저리가 눈치 없이 구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렇다고 신경 써 준다고 기쁜 걸 숨기는 것도 말 이 안 되는 일이지.”

“처남이 바른 말 하네.”

“그렇게 부르지 마라.”

찰스 브라움의 으름장에 가우왕이 입을 샐죽이고는 샴페인을 마셨다.

“이런 일로 삐지거나 하는 놈 아니 야. 인정할 건 인정하는 놈이니 걱정할 필요 없어.”

찰스 브라움은 벌써 수년 전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오디션 때의 일을 기억했다.

당시 이미 바이올린 연주에서 배도빈을 앞질렀던 찰스 브라움은 어린 소년이 순순히 그것을 인정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승부욕이 강하고 자존 심이 셌기에 자신이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줄 몰랐던 찰스 브라움에 게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것이 배도빈이 무서운 이유지.’

프라이드가 높으면서도 남을 인정할 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점.

찰스는 그것이 배도빈이 끝없이 나 아갈 수 있는 요인이라 생각했다.

‘저런 놈에게 한 번 졌다고 화낼 녀석이 아니야.’

찰스 브라움은 단원들이 상황을 너 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여겼다.

“빌어먹을.”

배도빈은 오늘 오전 연주를 들으며 복잡한 심경을 다스리고 있었다.

‘완벽해.’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가우왕의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는 완벽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완벽했던 함 머클라비어 소나타가 온전히 연주됨에 기뻤다.

그가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 그의 기량이 얼마나 올라와 있는지는 그것을 만든 배도빈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작곡가로서 더 없이 큰 행복이었다.

문제는 자신의 소나타로 경쟁했음에도 졌다는 것이었다.

‘이 내가.’

비록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곤 하나 소홀했던 것도 사실.

제자 프란츠 페터에게 뭐라 할 것이 아니었다.

배도빈은 자신과 가우왕의 연주를 반복해 들으며 기쁨과 분노를 번갈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죠엘이 2을 두드렸다.

“보스, 찰스 왕세자와 면담 시간입니다.”

벌써 오후 7시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배도빈이 재킷을 걸치고 나섰다.

“가죠.”

“아, 네.”

“왜 그래요?”

배도빈이 생각보다 멀쩡해 보여 잠시 의아해하던 죠엘이 어색하게 웃었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했는데 괜찮아 보이셔서요. 다행이에요.”

“ 아.”

죠엘 웨인의 말에 배도빈이 눈썹을 좁혔다.

신경 쓰지 않을 일이 아니었으나 배도빈은 굳이 죠엘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지금의 기분을 온전히 건반 위에 쏟아낼 작정이었다.

“차 준비 되어 있죠?”

“네. 바로 출발 가능하십니다.”

배도빈은 개의치 않고 WH호텔 베를린 지점으로 향했다.

준비된 스위트룸에 이른 배도빈은 곧장 찰스 왕세자를 만날 수 있었다.

‘ 뭐야.’

영국의 왕자라기에 찰스 브라움 정 도의 나이로 생각했던 배도빈은 찰스 아서 조지의 외견에 놀라고 말았다.

그는 마르고 주름이 많아 푸르트벵글러보다도 늙어 보였다.

“오오, 배도빈 공. 참으로 반갑소.”

방으로 들어선 찰스 왕세자가 두 손을 벌리며 반가움을 표했고 배도빈은 그를 마중하고자 일어섰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는데 찰스 왕세자의 수행원들이 배도빈을 가로막았다.

“왕세자님과의 신체적 접촉은 불가합니다.”

악수를 청했던 배도빈은 수행원을 노려보았다.

‘이 개떡 같은 놈이 뭐라는 거야.’

배도빈이 입을 열기 전 찰스 왕세자가 수행원을 탓했다.

“무례하게 굴지 말게, 닐.”

찰스 왕세자의 말에 수행원들이 뒤 로 물러섰고, 그는 배도빈의 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의도치 않게 결례했소. 왕실 예법 때문에 그런 것이니 공께서 이해해 주시면 바랄 게 없겠소.”

첫 만남부터 불편함이 있었지만 배도빈은 찰스 아서 조지란 남자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

여든 먹은 노인임에도 말과 행동에 품위가 있었고 자신의 신분을 내세워 거들먹거리지 않는 모습이 썩 마 음에 들었다.

귀족이란 부류에 치를 떠는 배도빈으로서도 오늘의 만남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죠.”

두 사람은 저녁을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실은 베를린 환상곡을 하루라도 듣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소. 특히 2악장의 발전부는 심금을 울리 지.”

‘제법.’

짧은 대화였으나 찰스 왕세자가 음악에 조예가 있음을 알기엔 충분했다.

“주제를 깊이 있게 만드는 데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드물죠.”

“그래서 그런가 싶소. 단 2도 활용은 베트호펜도 항상 활용했던 방법이니.”

배도빈이 눈썹을 들어올렸다.

“알아보시네요.”

“팬이면 당연한 일 아니겠소.”

두 사람이 작게 웃었다.

식사를 물리고 차를 마시는데 배도빈은 엄지와 검지로 찻잔 손잡이의 위를 잡고 중지를 걸쳐 놓은 찰스 왕세자의 자세에서 기품을 엿볼 수 있었다.

‘찰스도 저랬지.’

배도빈은 그의 소중한 악장을 떠올리며,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가 왕실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하나 궁금한 걸 여쭤보고 싶은데요.”

“얼마든지 하시오.”

찰스 왕세자가 미소 지었다.

“가우왕과 예나왕이 결혼한 사실은 알고 계시죠?”

“알고 있소.”

“집안 반대가 많다고 들었어요. 식민지 출신의 음악가 따위와 결혼시킬 수 없다고.”

질문하는 배도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찰스 왕세자를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그와 영국 왕실이 가지고 있는 거만함을 경 계했다.

찰스 왕세자가 안타깝게 입을 열었다.

“우리 나이 때가 젊었을 적에는 그런 생각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졌소.”

배도빈이 눈썹을 좁혔다.

“브라움 가에 대해선 잘 알고 있지만 그들 역시 과거에 사로잡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오.”

찰스 왕세자가 허허 하고 점잖게 웃었다.

“직계 쪽에서도 그러한 발언은 무척 조심하고 있소. 뿐만 아니라 모든 자리에서 정치적 발언은 금하고 있지. 식민지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그는 실제로 중국이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말을 덧붙이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베를린 대전에도 몇몇 사람 과 함께 찾았지만 그들 중에 음악을 취미가 아니라 장식품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가우왕에 대한 일은 애석할 뿐이오.”

듣고 싶었던 말을 모두 확인한 배도빈은 차를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오늘은 어디서 관람하셨죠?”

“좌측에서 봤네만 가까워서 참으로 좋았지.”

“내일부턴 특별석을 마련해 드리죠.”

찰스 왕세자가 고개를 저었다.

“수행원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특별석을 추천했네만 나는 무대와 가까운 자리가 좋소.”

배도빈이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차를 비우고 두 시간 남짓 짧은 만남을 끝냈다.

“고생하셨어요.”

죠엘 웨인이 다가왔다.

“아뇨.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요. 정말 팬미팅일 뿐이라는 게 의아하지 만.”

“그러게요.”

죠엘 웨인도 찰스 왕세자쯤 되는 사람이 베를린까지 와서 그저 수다나 떨기 바랐다는 데 의아해하면서 도 조금은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팬이시더라고요. 보스가 좋아하는 방식이라든가 풍조까지 언급하고.”

“네.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의 수행원들은 배도빈의 심기를 여러 번 건드렸으나 60년 가까이 차이나는 연령과 출신에 대해서도 조금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같은 왕실이라도 개개인의 차이가 있다는 건가.”

배도빈의 감상에 죠엘 웨인이 작게 웃었다. 도중에 가우왕의 일을 언급 할 땐 죠엘도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 그가 받았을 상처를 신경 쓰는 모습이 좋아 보인 탓이었다.

“오늘 일 가우왕 씨가 알았다면 좋아했을 거 같아요.”

“가우왕?”

“네. 보스가 이렇게나 신경.”

죠엘 웨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배도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차 대기 해두었죠?”

“네, 네.”

“빨리 가죠.”

죠엘 웨인은 갑자기 서두르는 배도빈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전의 치욕이 다시금 떠오른 배도빈은 피아노 앞에 한시라도 빨리 앉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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