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83화 (48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83화

    105. Her(2)

    연습 때도 확인했지만 진달래가 이 제 제법 프로다운 느낌을 내고 있다.

    지금까지 실내악팀이나 소편성과 함께했을 뿐, 정규 편성 오케스트라를 두고 혼자 노래한 적은 처음인데 목소리가 객석 끝까지 제대로 전달된 듯하다.

    ‘봄의 여신’이 중음과 고음을 자연 스레 오가기 때문에 그것을 좀 더 자연스레 표현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성법을 확립한 듯.

    기악과 달리 성악의 경우 지식이 깊지 않아 관여하지 않았는데, ‘Let me up’이나 ‘Eternal rain’처럼 대중 음악을 할 때와 같이 만족스러운 역 량을 보여주니 기특할 뿐이다.

    ‘3년인가?’

    3년인지 4년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짧은 시간 안에 이만큼 성장했으니 분명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지만 오늘만 같다면 아리엘과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칠 터.

    녀석이 LA로 가고 싶다면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말 못 하려나.’

    문득 치료비라든지 생활비 같은 사 소한 걸 신경 써서 LA로 가고 싶어 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점에선 페터가 더 심하지만.

    다음 무대 ‘마왕’.

    본인의 곡을 지휘하는 일은 또 다른 일이라, 경험으로 삼으라고 페터 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쉽지 않은 일이라 고생깨나 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베트호펜 기념 콩쿠르 때 느낀 바를 깊이 간직한 듯.

    제법 흉내는 내기에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진달래의 거취와 페터의 첫 무대에 대해 생각하며 쉬고 있자니 죠엘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똑똑-

    “보스, 죠엘이에요.”

    “들어와요.”

    죠엘도 멀핀을 대신해 비서 역할을 꼼꼼히 처리해 주고 있다.

    다들 각자 위치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만족스럽다.

    “연주 후에 곧장 얀스 씨, 페터 군 과 함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2강당에서 이뤄지니 마지막 프로그램 이후 오시는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연주회의 마지막 곡은 타마키 히로시가 남긴 ‘타마키 히로시’.

    베트호펜 기념 콩쿠르 파이널리스트 특전으로 페터에게는 ‘마왕’을, 니아에게는 ‘새벽의 왈츠’를 지휘하게 했고.

    ‘타마키 히로시’는 직접 연주하기로 했다.

    그 이후에 인터뷰가 예정된 것.

    ‘타마키 히로시’에 대한 이야기도 그때 언급할 생각이다.

    본인이 살아 있더라면 더 없이 기뻐했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직접 만들고 싶어 했으니까.’

    녀석은 시간이 없어 ‘타마키 히로시’를 피아노 독주곡으로 만들 수밖 에 없음을 한탄했다.

    다른 악기를 넣을 시간이 없었던 것.

    ‘타마키 히로시’를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해 주길 바랐던 마음을 조 금이나마 보담아주고자, 녀석의 곡을 대신 편곡해 나가고 있다.

    완성 단계에 이른 ‘대교향곡’과 함께 ‘타마키 히로시’의 협주곡 버전 은 내년 오케스트라 대전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큰 힘이 되어줄 터.

    하늘에서나마 녀석이 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모니터로 ‘마왕’이 연주되는 걸 볼 수 있다.

    페터가 그럴싸하게 무대를 꾸민 뒤, 니아가 지휘봉을 잡았을 땐 ‘타 마키 히로시’를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무대에 올랐다.

    앞서 가우왕이 연주했을 때와 큰 차이는 없다.

    가우왕이 타마키를 위해 최대한 자 신을 배제하고 악보 그대로 연주한 탓이고, 나 또한 같은 생각이라 세 세한 몇몇 부분만 다를 뿐.

    관객들도 좋아해 주었다.

    ‘타마키 히로시’의 연주를 마치고 내려와 2강당으로 향하고자 계단을 오르니 기자들이 잔뜩 있다.

    “배도빈이다!”

    “오늘 연주 어떻게 자평하십니까!”

    “가우왕 씨에 대한 소식 알고 계셨습니까?”

    “이봐요! 길 터드려요! 왜 회견 있는데 거기서부터 막습니까?”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자 웬일로 달려들던 기자들이 알아서 길을 터주었다.

    가우왕에 대한 소식이 뭔지 모르겠지만 기특하게도 길을 비켜주니 걸 어가는데, 1강당에 이르자 사람이 너무 많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비켜달라고 말하려던 차, 1강당 안 쪽에 기자들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가우왕과 예나 브라움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페터랑 니아는 어디 가고?’

    아리엘도 안 보인다.

    일단 멀핀과 몇몇 직원도 1강당에 모여 있으니 여기인 듯싶은데.

    ‘죠엘이 착각했나?’

    아니면 ‘타마키 히로시’를 연주하는 동안 2강당에 문제가 생겨 이쪽으로 옮겼을지도 모르겠다.

    의아해하며 1강당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들이 알아서 자리를 마련해 준다.

    예나 브라움이 눈인사를 하기에 인 사하고 앉으니 단상에 있는 멀핀과 눈을 마주했다.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페터, 니아, 아리엘이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

    주인공 세 명이 안 보이고, 오늘 연주를 하지 않은 가우왕이 앉아 있는 게 이상하긴 하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왜 있지?’

    두 사람이 만나고 있는 건 비밀일 텐데.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즈음 이자벨 멀핀이 옆방 2강당을 가리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복도까지 사람이 가득 차 갈 수 없어 어깨를 으쓱이자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입을 연다.

    “갑작스러운 발표에도 큰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지 금부터 가우왕 씨와 예나 브라움 씨께서 직접 결혼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가우왕 씨?”

    “어?”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가우왕이 마 이크를 잡았다.

    왕가우가 갑작스레 요청한 기자회 견은 그가 앞서 발표한 내용 때문에 ‘베토벤 기념 콩쿠르 파이널리스트 공연’만큼이나 주목받고 있었다.

    이미 수십만 명의 팬들이 가우왕과 예나 브라움의 긴급 기자회견을 지 켜보고 있었다.

    ㄴ 둘이 진짜 잘 어울린다.

    ㄴ 방송 사고닼ㅋㅋㅋ 아리엘 쪽에 도빈이 없어서 난리남ㅋㅋㅋㅋ

    ㄴ 커플룩 예쁜 거 봐 ㅠㅠ

    ㄴ 가우왕 저 거지 같은 빨간 재킷 좀 버렸으면 했는데 같이 입으니까 왤케 이뻐 보이지 ㅋㅋㅋㅋ

    ㄴ 예나 브라움이 누구?

    ㄴ 말도 안 돼애 ㅠㅠ

    ㄴ 도빈아 거기 아니얔ㅋㅋㅋㅋ

    ㄴ 같은 브라움이면 찰스랑 하라고

    ㄴ 오 ㅠㅠㅠ

    ㄴ ㅋㅋㅋ 다들 미쳤나 봨그 크 크

    ㄴ 도빈이 놀랐어 ㅋㅋㅋㅋ 도빈 이한테도 비밀이었던 거야?

    왕가우가 입을 열었다.

    “예나와는 8년간 사귀어 왔습니다.”

    “9년이예요.”

    왕예나의 지적에 왕가우가 고개를 돌렸다.

    “8년 아니야?”

    왕예나가 눈을 흘겼다.

    “세 번째 데이트가 17년 발렌시아 불꽃 축제였잖아.”

    “사귄 건 부다페스트 때부터지. 18 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왕예나의 목소리가 차게 식었다.

    ㄴ 결혼이 아니라 이혼 발표였어?

    ㄴ 야잌 ㅋㅋㅋㅋㅋ

    ㄴ 문화 차이 때문에 그런 듯ㅋㅋㅋ 동양에서는 사귀자 해야 사귀는데 저기선 만나다 보니 만나는 거잖아.

    ㄴ 그래도 그렇지 1년이나 차이나는 게 어딨엌ㅋㅋㅋㅋ

    ㄴ 요즘 베를린 필하모닉 드라마 잘 만드네. 아주 흥미로워.

    왕가우가 왕예나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정면을 보았다.

    “9년입니다.”

    당장 말을 바꾸는 왕가우의 모습은 지금껏 그의 이미지와 상당히 대조 되었고 그럴수록 시청자들의 기대는 커져갔다.

    “오랜 만남 끝에 그녀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식은 오늘 오전 조용히 올렸고 앞으로 쭉 함께할 예정입니다. 놀란 분도 계실 텐데 좋은 모습 보 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왕가우가 고개를 돌려 아내 왕예나를 보자 그녀가 미소 지었다.

    “예나 브라움 박사입니다. 이젠 예나왕이 되겠네요. 중국식으로 부르면 왕예나인데, 아직은 어색해요.”

    왕예나의 농담에 기자회견장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그러나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는데, 복도에서 소동이 나버렸다.

    “안 돼!”

    “ 오빠?”

    공연을 마치고 나서야 소식을 접한 찰스 브라움이 1강당을 찾은 것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왕가우에게 달려들 어 멱살을 잡았다.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오빠!”

    “이 결혼 무효야! 무효!”

    회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ㄴ 아니 진짜 뭔뎈ㅋㅋㅋㅋㅋ 요즘 진짜 쟤들 왜 저랰ㅋㅋㅋㅋ

    ㄴ 이거 웃을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찰스 진짜 화난 거 같음.

    ㄴ 말 안 하고 결혼했나?

    ㄴ 설마 속도위반이야?

    ㄴ 이렇게 갑작스러운 거 보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ㄴ 이 와중에 죠엘이 도빈이 데리러 왔엌ㅋㅋㅋㅋ

    ㄴ 옆방은 옆방대로 배도빈 어디 갔냐고 난리였음ㅋㅋㅋㅋ

    “보스, 옆 강당으로 가셔야 해요.”

    “잠깐만요.”

    “네?”

    배도빈이 발을 떼지 못하자 죠엘은 그가 왜 이러는지 확인하고자 주변을 살폈다.

    왕가우의 멱살을 잡고 뒤흔드는 찰스 브라움과 그를 말리는 왕예나 그 리고 평소답지 않게 묵묵히 찰스 브라움의 화를 받아내고 있는 왕가우 까지.

    “어머.”

    죠엘 웨인도 배도빈을 데려가야 한 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말았다.

    “오빠! 그만해!”

    “너 똑바로 말해!”

    “뭘!”

    “협박 당한 거야? 그런 거지?”

    “협박은 무슨 협박이야!”

    “협박이 아니면 지금 네 꼴을 어떻게 설명해! 이 불량한 가죽 재킷과 말도 안 되는 선글라스는 뭐야! ……너 설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왕예나가 왕가우의 멱살을 쥐고 있는 찰스 브라움을 그에게서 떼어냈다.

    “협박이라니 말조심해. 오빠가 생 각하는 건 전부 아니야. 나 이 사람 사랑해. 제발 예의 좀 갖춰. 대체 어디까지 망신주려는 거야? 오늘 나 결혼한 날이야. 축하해 주면 안 돼? 내가 행복한데?”

    왕예나가 왕가우의 손을 잡았다.

    “찰스.”

    왕가우도 더 이상 가만있지는 않았다.

    “오빠로서 화나고 당황스러운 마음 이해한다.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알지만 예나와 행복하게 살 거 야.”

    찰스 브라움은 기가 막히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동생의 갑작 스러운 결혼 발표.

    더군다나 그 상대가 난봉꾼 가우왕 이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꽉 잡고 있는 두 손과 진 지한 눈빛을 보니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너…… 정말 괜찮은 거야?”

    “응. 좋아.”

    찰스 브라움이 동생을 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사랑을 가득 담아 그녀를 안았다.

    “……행복해야 한다.”

    “ 오빠.”

    남매의 따뜻한 모습에 동료들이 박 수를 보냈고 몇몇 기자도 동참하였다.

    왕가우와 왕예나는 몇 번의 질문을 더 받은 뒤 회견을 마치고자 했다.

    기자들이 포즈를 요청했다.

    “두 분 좀 더 가까이 붙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결혼반지 보여주세요!”

    왕예나가 괜히 민망하여 웃다가 왼손을 들어 보이며 환히 웃었다.

    그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기에 동료들 틈에 있던 찰스 브라움이 눈 물을 보였고 피셔 디스카우와 마누 엘 노이어는 그를 위로했다.

    “저렇게 좋아하잖아. 가우왕 녀석 알고 보면 그리 나쁜 놈도 아니라고.”

    “그래. 결혼은 당사자가 행복한 게 제일이야.”

    찰스 브라움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끅끅 댔다.

    “그런데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그러니까. 별 문제 없지 않았나?”

    디스카우와 노이어는 찰스가 걱정 하는 만큼 가우왕이 어떤 문제를 일 으켰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그들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마땅한 사건이 없었는데 찰스가 왜 유독 가우왕을 양아치, 불한당으로 여기는 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클럽에 다니는 걸 봤어.”

    “••••••뭐?”

    “그런 천박한 곳에 다니는 녀석이 정상적일 리 없잖아.”

    찰스의 반응에 디스카우와 노이어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 두 사람도 가우왕과 함께 몇 번 춤을 추러 갔던 적이 있었던 탓 이었다.

    물론 퇴폐적인 곳도 있어 찰스 브라움이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잠깐, 찰스. 단지 춤을 추는 곳일 뿐이라고.”

    디스카우의 말에 찰스가 콧방귀를 뀌었다.

    “고상한 사교회장은 얼마든지 있어. 어제도 뒤포르 부인이 자선 파 티를 여셨지.”

    찰스의 단호함에 디스카우와 노이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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