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82화 (48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82화

    105. Her(1)

    [세기의 두 천재가 만나다!]

    [아리엘 얀스의 봄의 여신,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다]

    [아리엘 얀스, “비로소 완성되었다. 기대해 달라.”]

    [배도빈, “전과는 다른 느낌. 편곡이 잘 되었다.”]

    [독창을 맡은 진달래에 대하여]

    베를린 필하모닉과 아리엘 얀스의 만남이 베를린 대전 전날 이루어졌다.

    그간 아리엘 얀스는 베토벤 기념 콩쿠르 우승자 자격으로 베를린 필하모닉과 공연 및 앨범 제작을 준비 하고 있었는데.

    연인으로 알려진 진달래가 독창을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봄의 여신’은 더욱 이목을 끌 수 있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여러 인사들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찾았는데.

    언론 역시 최근 음악계를 가장 떠 들썩하게 했던 아리엘 얀스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만남을 취재하기 위 해 분주히 움직였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 심사 맡았던 사람은 다 왔네.”

    “그만큼 기대하고 있단 거겠지.”

    “아리엘은 아직 복귀 소식 없나?”

    “오늘 물어볼 질문이잖아.”

    “인터뷰를 딸 수 있다면 말이지.”

    한 기자의 우려처럼 인터뷰 경쟁은 치열했다.

    특히 마리 얀스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모든 기자가 한곳에 쏠려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어떤 기분이신지 한 말씀 부탁드 립니다!”

    “손자 분의 LA 복귀는 언제 이뤄 지게 되는지 답 부탁드립니다!”

    “리스텀에서 나왔습니다! 손자 분 과 진달래 양의 교제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마리 얀스는 난감하게 웃었다.

    “오늘은 관객으로서 즐기고 싶군요. 아리 엘에 관한 이야기는 답하지 않겠습니다.”

    마리 얀스가 인터뷰를 거절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높은 조회 수의 기사를 노렸던 기자들이 아쉬워했다.

    살아 있는 전설로 음악계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마리 얀스에 손자마저 모두가 인정하는 음악가가 되었으니 물어보고 싶은 말이 산떠미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아쉬움은 거짓말처 럼 사라졌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세상에.”

    “ 누구야?”

    명실상부 최고의 피아니스트 가우왕이 그의 새빨간 페라리를 끌고 정문에 나타나자 모두의 이목이 가우왕과 그 옆에 함께한 여성에게 쏠렸다.

    두 사람은 페어처럼 빨간 재킷을 입고 알이 크고 둥근 선글라스를 쓰 고 있었는데 누가 보아도 커플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단 한 번의 열애 설도 없었던 피아노의 황제 가우왕 이 여성과 함께했다는 사실을 놓치 고 싶은 기자는 없었다.

    “가우왕 씨! 함께하신 숙녀 분은 누구십니까!”

    수십 명의 기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질문하자 예나 브라움이 선글라 스를 벗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히 울렸고 동시에 그녀를 알아본 몇몇 기자가 기함하고 말았다.

    “예나 브라움 씨 맞으시죠?”

    한 기자의 외침에 주변이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브라움?”

    “찰스랑 같은 성이네.”

    “아직도 모르겠어? 기자 때려쳐라. 예나 브라움 공주잖아! 찰스 브라움 동생!”

    가우왕과 함께한 기자들은 물론 주변에 있던 팬들마저 예나 브라움의 정체에 크게 놀랐다.

    그때 예나 브라움이 입을 열었다.

    “예나 브라움 공주가 아니라 예나 브라움 박사입니다.”

    기자들이 잠시 할말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언제부터 만나셨습니까!”

    “오늘 함께하신 걸 어떻게 받아들 여야 합니까!”

    “무슨 사이이십니까!”

    예나가 가우왕을 올려다보았고.

    가우왕이 입을 열었다.

    “ 신혼.”

    정적이 흘렀다.

    거짓말처럼 북적거리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거리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해 졌다.

    1986년생 가우왕은 만 15세에 메이저 무대에 오르고 현재까지 25년 간 단 한 번의 열애설도 없이 활동 했다.

    비록 더러운 성격과 개성이 과한 패션 센스는 문제였으나.

    수천만 달러 수준의 자산과 잘생긴 외모 그리고 전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예를 가진 그가 누구 와도 교제하지 않음에, 그가 성불구 자일지도 모른다는 악성 루머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연애 사실을 밝힌 것도 아니고 혼인 사실을 밝힌 것이었다.

    특종 중의 특종.

    기자들은 확신했다.

    방계라고는 하지만 영국 왕실의 피를 잇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브}} 학위를 따 역사학자로서 활발히 활 동하고 있는 예나 브라움 박사와 가우왕의 결혼은 세기의 만남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상황을 인지한 팬과 기자들이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꺄아아악!”

    “정말? 정말 결혼한 거야?”

    “예나 브라움이 누군데?”

    “안 돼애! 찰스랑 결혼해야 한다고!”

    경악하는 팬들과 질문을 쏟아내는 기자들.

    “두 분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찰스 브라움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대체 가우왕의 어디가 좋으셨던 건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혼인 신고도 하신 건가요!”

    가우왕과 예나 브라움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나란히 콘서트홀 안으로 향했다.

    ***

    가수 대기실.

    모든 준비를 마친 진달래는 첫 무 대에 올랐던 순간만큼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아리엘의 곡을 제대로 전달해야 한 다는 부담과 드디어 함께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더욱이 본인이 직접 가사를 붙였기 에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 괜찮아.”

    아리엘이 빙그레 웃었다.

    “안 괜찮아. 실수하면 어떡해.”

    “그래도 괜찮아. 봄의 여신을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너니까.”

    전혀 근거 없는 말이었지만 괜히 좋았다.

    진달래는 ‘봄의 여신’을 준비하면 서 아리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 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조금은 서운했던 말투를 바꾸었고, 그녀는 아리엘이 알아주길 바랐던 ‘봄의 여신’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봄의 여신에 가사를 붙이는 작업을 함께하면서 서로를 더욱 깊게 탐하 고 구하며 이 순간에 이르렀다.

    똑똑一

    “달래 씨, 무대 뒤로 가주세요!”

    직원이 공연 시작을 알렸다.

    아리엘이 진달래에게 손을 뻗었다.

    “가자.”

    “ 응.”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이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 순간 절반으로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한편.

    가우왕과 예나 브라움이 혼인 사실을 밝히며 어수선한 와중에도 아리엘 얀스와 진달래의 공연을 향한 기 대는 변치 않았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통해 감동을 안겨준 아리엘 얀스가 다시금 정식

    무대에 복귀하는 날이었고.

    연인과 함께 무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어떤 호흡을 보여줄지.

    또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이 ‘봄의 여신’을 어떻게 연주해 줄지.

    잔뜩 부푼 가슴을 애써 달래며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내 베를린 필하모닉 A팀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남성 단원 대부분이 두피를 드러내고 있었고 여성 단원 들에게서도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수십 년간 재직하며 최고의 자리를 지켜 온 노장들의 비범함은 더욱 빛을 발 할 뿐이었다.

    잠시 후.

    배도빈과 아리엘 얀스, 진달래가 함께 무대로 올라섰다.

    헨리 빈프스키 악장이 단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그들이 얼마나 이 무대를 기다렸는지 알렸다.

    포디움과 객석 사이.

    무대 전면에 진달래와 아리엘 얀스가 나란히 섰다.

    단원들이 착석하고 지휘자 배도빈은 고개를 돌려 진달래와 아리엘 얀 스에게 시선을 준 뒤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아주 작은 소리조차 없이 고요해지며 기대가 절정에 이른 순간.

    마침내 지휘봉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관악기가 겨울의 이른 새벽을 알렸다.

    무겁게 깔린 어둠 사이로 첼로가 바람처럼 스며든다.

    “오래 기다렸어요.”

    바람을 뚫고 나선 맑은 목소리가 루트비히홀을 채워나갔다.

    성악을 공부하며 발성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끝없는 노력으로 복부에서부터 끌어올린 소리를 성대를 통과시키며 자연스럽고 풍부한 성량을 얻을 수 있었고.

    중성과 두성을 자연스레 활용할 수 있었지만 두 발성법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는 것은 해결하지 못했다.

    빠싸죠.

    고음과 중음 사이의 음역 대를 안정 화시키는 건 진달래에게 크나큰 과 제였고 음역대를 자연스레 오갈 수 없는 점은 가수로서 큰 단점이었다.

    지금껏 그녀는 고음과 초고음을 활 용하며 단점을 감췄으나 봄의 여신 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고.

    진달래는 자신의 부족함을 해결해 야만 했다.

    자신을 ‘봄의 여신’을 가장 잘 부 르는 사람으로 믿는 아리엘의 기대 에 부응하고 싶었고.

    그가 이렇게 멋진 음악을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고.

    온전한 솔로 가수가 되고 싶었다.

    “나무를 베는 바람도 들에 서린 얼음도 기다렸어요.”

    안정적인 중음이 사랑을 고백하듯 노래할 때 찾아오는 바이올린.

    아리엘 얀스의 아티큘레이션이 관악기가 깔아둔 어둠을 몰아내기 시 작했다.

    배도빈의 지휘로 관악기가 소리를 죽여나가며, 바이올린의 따사로운 음색이 대두된다.

    나윤희가 이끄는 제2바이올린이 아리엘 얀스의 연주를 따르며 이제 온 전히 아침이 열렸다.

    “겨울 밤 기나긴 밤 어둠을 몰아내고 봄 새벽 무심히 찾아온 당신을 기다렸어요.”

    첼로와 바순이 숨 쉬기 시작했다.

    얼어붙었던 초원이 녹아내리며 대 지가 생명의 탄생을 알리듯 숨 쉬었다.

    진달래도 그 리듬에 맞춰 호흡했고.

    감상하던 청중들도 자각하지 못한 채 첼로와 바순이 이끄는 대로 숨을 마셨다가 뱉었다.

    “추위에 익숙해진 날 떠나보내는 게 쉽지 않아 망설였죠. 당신의 온기를 느끼기 전까지 그저 망설였죠.”

    제1바이올린과 오보에가 나서며 얼 어붙었던 대지에 푸른 싹이 돋아났다.

    제2바이올린과 장난치듯 어울려 점 차 삭막한 대지를 푸르게 물들여갔다.

    “이제 알았요. 당신과 함께하니 알겠어요. 비로소 내 안이 충족되었어요.”

    살짝 고개를 튼 진달래는 사랑 가득한 푸른 눈을 볼 수 있었다.

    “내 안에도 이렇게 따뜻한 마음이 있었어요. 추위도 짓궂은 눈요정도 두렵지 않아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환경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

    추위가 싫다고 떠나보낼 수 있는 용기를 전해준 아리엘 얀스를 위한 노래였다.

    진달래를 향한 아리엘 얀스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졌던 감정을 관객에게 전해줄 노래였다.

    “아아- 나는 봄이었어요.”

    절정에 치닫는 순간.

    진달래는 입을 더욱 크게 벌렸고 성대를 열었다.

    관객석 저 끝까지.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온전히 전 달하기 위해 배와 가슴, 목, 머리를 최대한 열었다.

    아무런 가식 없는 진솔한 목소리가 관객의 가슴에 닿기 시작했다.

    “아아- 나는 봄이었어요.”

    진달래가 두 팔을 벌렸고.

    연주가 끝난 순간.

    “브라보!”

    무대 위로 감동의 파도가 들이닥쳤다.

    가우왕과 예나 브라움도 열렬한 환 호와 박수를 보내는 이들과 함께했고, 함께하는 첫 무대를 훌륭히 소 화해낸 연인은 서로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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