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79화 (479/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479화

104. 새빨간 재킷과 선글라스(5)

“알아서들 해!”

열이 머리끝까지 뻗친 푸르트벵글러가 미팅실을 나섰다.

나윤희를 제외한 다른 사람도 배도빈, 가우왕, 최지훈이 따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배도빈도 가우왕도 최지훈도 나윤희도 민망한 나머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배도빈이 악단주로서의 책임감 때 문에 어쩔 수 없이 먼저 말을 꺼냈다.

“어쩔 거예요?”

“뭘.”

가우왕이 팔짱을 낀 채 돌아보지도 않고 답했다.

“나가고 싶어 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적당한 때라 생각했고.”

배도빈이 토라져 고개도 안 돌리는 가우왕의 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있어 달라고는 못 해요. 당신 기다리는 팬들이 많고, 내가 바라는 연주보다 당신이 원하는 연주를 더 듣고 싶었단 말도 진심이에요. 가우왕 연주 좋아하니까.”

“그래도 있어 준다면, 지금보다는 더 신경 쓸게요.”

배도빈의 진심을 이해한 가우왕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팔짱을 풀었다.

“그래.”

“그래서 뭐요.”

“남고 싶다고! 굳이 말을 해야 알 아 듣냐! 어! 그렇게 확답을 듣고 싶어?”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배도빈은 당장이라도 가우왕의 엉 덩이를 걷어차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싸울 것 같아 일단은 참았다.

고개를 돌려 얼굴이 빨개진 최지훈을 보았다.

“서운했냐.”

최지훈이 답하지 않았다.

최고가 아니라도, 손이 망가졌더라 도 자신을 바란다는 말이 자꾸만 떠 올라 애써 속내를 감췄다.

“그런 생각했다는 걸 알았는데 어떻게 괜찮겠어.”

“지금은?”

“••••••몰라.”

배도빈이 거듭 묻자 최지훈이 대답을 회피했다.

“네 실력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네 가 어떤 상태든 널 들이고 싶었던 거야. 날 믿어.”

“마, 맞아. 도빈이 어제 회의할 때 도 너만 찾았어. 정말이야.”

나윤희의 말에 최지훈이 고개를 끄 덕였다.

일단 형제도 마음을 푼 듯하였기에 배도빈은 우선 당면한 일을 처리하고자 했다.

“오해가 있었다고 설명할게요. 남 아 줘서 고마워요.”

배도빈이 고맙다는 뜻을 전하자 그 제야 가우왕의 마음도 누그러들었다.

“피아니스트는 두 사람으로 하고. 경연은 은퇴 무대가 아닌 이벤트로 하죠.”

상황을 정리하던 배도빈이 갑자기 이상함을 느꼈다.

“그 전에.”

세 사람이 배도빈을 보았다.

“왜 내가 두 사람이 벌인 일에 곡을 써 주고 상금까지 줘야 하는지 말해 봐요.”

가우왕과 최지훈이 답을 찾지 못하 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미안.”

배도빈이 주먹을 꽉 쥐고 두 사람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단원이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것도 악단주의 역할이라 생각하며 애써 화를 눌렀다.

‘성격 정말 많이 죽었다.’

19세기 빈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그만큼 배도빈이 두 사람을 아끼는 탓이었다.

“그럼 퍼스트 피아니스트는.”

“그래. 맡아야지.”

“아, 응.”

가우왕과 최지훈의 말이 겹쳤다.

두 사람은 서로를 무슨 말을 하냐고 묻는 듯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제 자리예요.”

“내가 네 밑에 있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배려해 드릴게요.”

“배려어?”

겨우 한차례 태풍이 지나갔건만 또 다른 싸움이 일 것 같았다.

배도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더 잘하는 사람이 맡아야지.”

“지지 않아요.”

가우왕이 최지훈의 말을 맞받아치 려다가 문득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배도빈.”

“왜요.”

“너 아까 완벽한 피아니스트를 들 일 생각이었다면 직접 한다고 했었지?”

“그랬어요.”

“말이 안 되잖아. 너보다 내가 더 나은데 무슨 말이야.”

가우왕의 말에 배도빈이 코웃음을 쳤다.

“괜찮은 농담이었어요.”

“농담은 무슨. 어쩌다 한 번씩 연주하는 너랑 내가 비교가 되겠냐?”

“……말 다 했어요?”

“다 했지.”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던 배도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객기 부리지 마요. 또 망신 당하 고 싶지 않으면.”

“글쎄. 13년 전이랑 똑같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야.”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를 연주 했다고 자신감 가지는 건 좋은데 그

게 실력의 전부는 아니죠.”

“러시아 꼬맹이도 그런 말로 변명 하더라고.”

“뭐라고요?”

“억울하면 너도 참가하든가.”

배도빈이 가우왕의 도발을 철없이 여기며 고개를 저었다.

오케스트라 대전이 내년으로 다가 왔고, 올해 예선을 치러야 했기에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최지훈이 나섰다.

“나도 그 말 이상했어.”

“뭐가.”

“오래 쉬었잖아. 꾸준히 했던 나랑 가우왕 씨보다 낫다고 말하는 건 아 닌 거 같아.”

“그래. 말 한번 잘했다. 지금으로선 네가 배도빈보다 낫지.”

배도빈이 눈을 부라리며 가우왕을 보았다. 억울하면 덤비라는 듯 턱을 들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최지훈을 보자 진심으로 이길 거라 생각하는 듯 투지가 담긴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이 인간들이 정말.”

애써 자신을 억누르던 배도빈도 결국 전 세계 모든 피아니스트와 마찬 가지로 가우왕의 유치한 도발에 넘 어가고 말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입장 소명】

【배도빈 악단주.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예정된 경연과 퍼스트 피아니스트 자격은 무관. 축제로 즐겨 달라.”]

[가우왕 잔류! 최지훈 베를린 필하모닉과 정식 계약 체결!]

【충격! 배도빈 악단주 참전!]

【베를린 필하모닉의 퍼스트 피아니스트는 누구기

【배도빈. “베를린 대전에서 성적이 더 높은 쪽이 퍼스트를 맡기로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퍼스트, 세컨드 피아니스트에 주목!]

【황제와 태양 중 퍼스트 자리를 차 지할 사람은기

【베를린 대전 참가 신청 오늘부터】

【우승 상금 40만 유로, 총 상금 100만 유로의 빅 이벤트 개막!]

[우승자에게는 배도빈 악단주가 곡을 수여]

[막심 에바로트 참전 의사 밝히다!]

[16년 만에 격돌하는 황제와 혁명 가!]

【막심 에바로트, “흥분된다.”]

【해고 논란의 가우왕 심경 토로]

【가우왕. “충분히 대화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이미 내게 소중한 존재.”]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이런 놈들을 두고 내가 어떻게 마음 편히 은퇴를 해!1

【심경을 묻자 최지훈 인터뷰 거절.】

【마왕과 태양의 뜨거운 대화. 열애 설에 다시 불붙나]

ㄴ 결국 퍼스트 되려고 싸우네. 세 컨드 되고 싶은 사람 없지. 암.

ㄴ 미친놈아 그런 뜻 아니잖앜ㅋㅋ

ㄴ 그런 뜻이 뭔데요?

ㄴ 나만 쓰레기야?

ㄴ 시청률 치솟는 소리 들린다앗!

ㄴ 키야. 가우왕이랑 최지훈이라니.

배도빈 복 받았네. 복 받았어. 양손에 꼬추

ㄴ ?????????????

ㄴ 양손에 꽃이라고.

ㄴ 무슨 생각 하는 거얔ㅋㅋㅋㅋ

ㄴ 여기 이상한 사람만 모인 듯.

ㄴ 미쳤다. 도빈이도 참가해?

ㄴ 쇼팽 콩쿠르 우승하고 피아니스트로 경쟁하는 건 11년 만이래.

ㄴ 중간중간에 한 번씩 연주는 했는데 앙코르 무대 정도였음.

ㄴ 가장 최근에 했던 게 작년 월광 이었지. 하, 벌써부터 기대된다.

ㄴ 배도빈이 우승해서 자기가 건 상금이랑 곡 자기가 받아가는 거 아님? ㅋㅋㅋㅋㅋ

ㄴ 진짜 그럴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ㅋㅋ 엄청 귀찮아하던뎈ㅋㅋㅋ

ㄴ 글쎄. 예전이라면 모를까 가우왕이랑 최지훈이 워낙 성장해서 배도빈이 우승하는 건 힘들 것 같음. 니나 케베리히도 만만치 않고.

ㄴ  세월 참. 라떼는 말이야 배도빈이 어디 대회 참가하면 누가 2등할까 고민했지 우승은 당연히 배도빈이었어!

ㄴ  아냐. 막심 에바로트까지 합류해서 진짜 쟁쟁함. 사실 현 세대 정상은 다 모인 거나 다름없음. 피아니스트로 활동 안 한지 오래되어서 솔직히 배도빈은 그냥 참가했다 봐야지.

ㄴ 아 경연도 경연인데, 세 사람 이야기가 진짜 뭔가 따뜻하다.

ㄴ 따뜻이요? 치정극으로 봤는데.

ㄴ 맞아맞아. 처음에는 좀 놀랐는데 단원들끼리 저렇게 서로를 위할 수 도 있구나 싶네.

ㄴ 베를린 필하모닉이 좀 특이한 듯.

ㄴ ㅇㅇ 아무리 친해도 결국에는 직 장인데 신기하다.

ㄴ 좋은 게 좋은 거지.

ㄴ 아닠ㅋㅋㅋㅋ 열애설 나만 웃긴 갘ㅋㅋㅋㅋ 저 기사 쓴 사람 마약 검사’ 해야 함ㅋㅋㅋㅋ

기사를 확인한 배도빈이 눈을 감고 이마를 짚었다.

최지훈도 입을 가리고 착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차채은만은 즐거워 미칠 지경이었다.

“앟학학햫학학학핳꾸엑 아앟핳학.”

심하게 웃은 탓에 헛구역질까지 나 왔으나 차채은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고 숨이 넘어갈 때까지 웃으니 참다못한 배도빈이 짜증스럽 게 입을 열었다.

“그만 좀 웃어.”

“힣힛히히햣햫힣히.”

“그만 웃으라고!”

“아핳핳학핳학핳학!”

가만 있던 최지훈이 뾰루퉁하게 반응했다.

“그러니까 왜 말도 없이 그런 일을 해. 괜한 오해하게.”

“오해할 게 뭐가 있어! 애초에 네 자리란 건 알고 있었잖아!”

“그, 그래도 가우왕 씨 내쫓는 게 말이 돼? 정정당당하게 가져오려고 벌인 일이었잖아!”

“아직도 더 남았어? 해결됐잖아! 그만해!”

“캬하핳학핳학핳학!”

“그만 좀 웃으라 했지!”

“웃지 좀 말아 봐!”

차채은이 더욱 크게 웃자 배도빈과 최지훈이 동시에 외쳤다.

그 모습이 차채은을 더욱 웃기게 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두 사람은 싸우고 싶어도 계속 싸울 수 없었다.

한편.

예나 브라움도 웃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가우왕이 그렇게까지 흥분하고 당황하는 모습은 그녀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예나가 가우왕의 양 볼을 잡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왜 이렇게 귀여워?”

“시끄러워.”

예나가 한 번 더 웃다가 감탄사를 냈다.

“참. 어머니랑 아버지 놀러올 거야.”

“뭐?”

“사위 될 사람이 주인공인 경연인 데 꼭 보러 오라고 했지.”

들뜬 예나의 표정과 달리 가우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것을 놓칠 리 없는 예나 브라움이 가우왕 옆에 앉았다.

“불편해?”

가우왕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 가가.”

가우왕을 부르는 예나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는 가우왕을 억 지로 돌려 세우고 시선을 교환했다.

예나는 자신의 마음을 확신하고 있었고, 가우왕의 눈에서 사랑을 잔뜩 느낄 수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가방에서 소중히 간직했던 반지를 꺼내, 가우왕과 마주 앉았다.

“예나.”

“당신이랑 살고 싶어.”

“ 나는.”

“이제 듣고 싶어.”

예나가 반지함을 열어 가우왕에게 향했다.

“우리 무슨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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