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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77화 (47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77화

    104. 새빨간 재킷과 선글라스(3)

    잠시 후.

    배도빈 저택을 찾은 가우왕은 그때 까지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기세로 눈을 부라리며 배도빈을 윽박질렀다.

    “네가,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가우왕이 배도빈의 양팔을 쥐고 흔들었다.

    “진정해요.”

    “진정하게 생겼어! 뭐가 문제야! 이번엔 뭐가 문제냐고!”

    “일단 이것부터 놔요.”

    “말해!”

    배도빈도 가우왕이 화낼 거라 예상 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흥분할 줄은 몰랐다.

    그의 불 같은 성정에 익숙한 배도빈으로서도 눈이 반쯤 돌아간 가우왕의 태도에 당황하고 있었다.

    가우왕에게는 무척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탓이다.

    13년 전.

    독일에서 한국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그토록 함께하고 싶었던 배도빈을 만난 가우왕은 배도빈에게 한 차 례 거절당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가우왕의 완벽한 이력에 유일한 흠이었고 트라우마였다.

    자신이 유일하게 인정한 현대 작곡가에게 거절당했던 일은 피아니스트 가우왕의 자부심을 철저하게 짓밟았고.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배도빈과의 경합과 함께 절치부심한 가우왕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덕분에 가우왕은 세계를 발아래에 둔 듯한 기분으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가 인정하는 유일한 작곡가의 곡을 받으며 최고의 연주를 해내고 모든 이로부터 추앙받는 삶.

    브라움 가문과의 문제만이 남아 있을 뿐.

    가우왕의 오만함과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렇게 행복한 상황에서 배도빈의 해고 통보는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 올 수밖에 없었다.

    “말해! 뭐가 부족해! 3개로는 부족 해? 4개라도 치겠어!”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요!”

    “그럼 뭐야! 뭐냐고!”

    “이것 좀 놓고 말해요!”

    “내가, 이 내가 뭐가 부족해서 해 고했냐고!”

    “안 했다고!”

    가우왕에 의해 있는 대로 휘둘리던 배도빈이 더는 못 참고 그의 턱을 들이박았다.

    극심한 통증을 느낄 터였으나 가우왕은 배도빈이 자신을 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해 아픔도 잊고 말았다.

    “••••••뭐?”

    “해고 안 했다고요.”

    “정말이야?”

    “네.”

    “그럼 왜 그런 말을 해서 사람 열 받게 해?”

    “곧 할 거니까요.”

    “이 자식이!”

    가우왕이 또 달려들자 배도빈이 몸을 숙여 피해냈다.

    “다짜고짜 흥분하지 말고 앉아요. 설명할 테니까.”

    “그래. 지금 되게 추해 자기.”

    한차례 난동을 부린 가우왕은 예나 브라움에 의해 소파에 앉는 와중에 도 씩씩댔다.

    시간을 확인한 배도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회견 잡아놨으니 일단 가면서 해요.”

    “설명부터 해.”

    어제 그가 연락을 받지 않아 급하 게 처리한 일이기도 하여, 배도빈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지훈이랑 두 사람이 벌인 일 때문 에 경연 우승자를 퍼스트 피아니스트 자리에 앉혀야 하게 되었어요.”

    배도빈이 일 이야기를 시작하자 흥 분한 가우왕이 운전 중에 사고를 내 진 않을까 싶어 따라온 예나 브라움 이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가우왕도 짚이는 구석이 있어 우선은 배도빈의 말을 듣고자 팔짱을 꼈다.

    “그리 유쾌하지 않아요.”

    “왜. 최지훈이 나한테 질 것 같으니까?”

    약이 바짝 오른 가우왕이 배도빈의 성질을 긁으려 도발했다.

    자신은 이렇게 화가 나는데 침착하 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 싫은, 유 치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네.”

    빠바바밤— 빠바바밤—

    배도빈의 핸드폰이 울렸다.

    알람을 확인한 배도빈이 일어났다.

    “가면서 이야기해요.”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마음대로 해요.”

    배도빈이 나서자 가우왕이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차량에 탑승하고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퍼스트 피아니스트 자리는 지훈이 거예요. 그건 가우왕도 알고 있었잖아요.”

    “그래.”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고 다른 사람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래서 가우왕이랑 지훈이가 벌인 일과 분 리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런 생각이었구만.”

    가우왕의 반응에 배도빈이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가 자신의 바람을 이해해 주었다는 착각이었다.

    “그래서 일을 이 따위로 진행했어. 빌어먹을 자식.”

    “일을 멋대로 진행한 건 당신이랑 지훈이에요.”

    “헛소리.”

    “고집 부리지 마요. 누구를 데리고 오든 그건 내 마음이에요. 당신도 나가고 싶었으면서.”

    가우왕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기자회견장에 이를 때까지 한 마디도 섞지 않았고 백여 명의 기자들 앞에 섰다.

    이 시대 최고의 음악가 배도빈과 가우왕의 아름다운 이별과 그 은퇴 식을 기대하는 팬들도 중계를 통해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진행을 맡은 이자벨 멀핀이 기자회견을 알렸고 배도빈이 입장을 밝히 려는 찰나, 가우왕이 입을 열었다.

    “시작하기 전에 말해 두는데, 나갈 생각 없어.”

    배도빈이 고개를 돌렸다.

    가우왕도 마이크를 떼고 배도빈을 보며 말했다.

    “멋대로 정하지 마. 내가 나가고 싶었다고? 이제 와 쫓아낸다고?”

    충격적인 발언에 기자들조차 놀라, 잠시 멈추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셔터 소리가 연속해 울리며 이목이 집중되었다.

    ㄴ 저게 무슨 말이야?

    ㄴ 뭔 일이래.

    시청자들도 당황해하며 상황을 지 켜 보았다.

    “본인 입으로 그랬잖아요. 오래 있지 않을 거라고. 아까 내 말은 뭐로 들었어요?”

    가우왕의 얼굴이 씰룩였다.

    “내가. 내가 너한테 그렇게 걸림돌 이었냐.”

    “누가 그렇대요?”

    “그럼 왜 이런 웃기지도 않는 짓을 해서 난리야!”

    “지훈이 들이고 싶어서요. 당신도 나가고 싶어 하니까!”

    “누가!”

    가우왕이 다시금 흥분했다.

    그의 자존심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다.

    “누가 나가고 싶다고 했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1년 내내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

    “나간다고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심술이예요? 내가 원치도 않는 당신을 잡았어야 했어요?”

    배도빈의 말에 가우왕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놀라서 달려온 단원 들을 볼 수 있었고.

    차마 떨어지지 않았던 입을 열 수 있었다.

    “누가 나가고 싶었다는 거야!”

    “본인이 그랬잖아요! 왜요! 그새 마음이 달라졌어요?”

    “그래!”

    가우왕의 말에 배도빈도 단원들도 놀랐다.

    “빌어먹을 오케스트라에 있는 것도 재밌더라. 같이 하는 음악도 재밌더라!”

    “가우왕?”

    “머저리들만 모여 있는 게 아니라, 죽기 살기로 하는 놈들만 있어서 좋았다고!”

    배도빈은 가우왕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아니, 들어오고 나서도 혼자 활동하길 좋아했던 가우왕이.

    베를린에서의 생활이 좋다고 말하 고 있었다.

    “점잖빼고 음악 한답시고 개염병 떠는 새끼들만 보다가! 진지한 놈들이랑 있으니까 좋았다고! 엉망이긴 해도 페터 저놈이 편곡한 거 연주하는 것도 재밌었고!”

    지목당한 프란츠 페터가 깜짝 놀랐다.

    “소소가 웃으면서 지내는 거 보는 것도 좋았고! 덜떨어진 인간들이랑 술 마시는 것도 좋았어. 좋았다고!”

    가우왕의 속내를 몰랐던 왕소소가 눈썹을 찡그리며 아파했고.

    가끔 가우왕과 술잔을 기울였던 피 셔 디스카우, 한스 이안, 진 마르코 가 작게 탄식했다.

    가우왕은.

    프로로 활동하면서부터 튀는 행동과 복장으로 여러 사람에게 질타받았다.

    티켓 파워는 20대 때부터 확실했으나 평단은 그를 기교는 있지만 깊이가 없는 2류 피아니스트로 평가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음악적 완성을 이룬 뒤에도, 그 깐깐하고 까탈스러운 성격 탓에 여러 오케스트라로부터 함께하기 어려운 피아니스트로 여겨졌다.

    가우왕도 그들을 배척했다.

    완벽하지 못한 연주를 할 바에야 무대에 오르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에 적당히 대충하는 뭇 음악가들을 하찮게 여길 뿐이었다.

    그래서 배도빈이 더욱 좋았고.

    그래서 베를린 필하모닉이 좋았다.

    “가우왕……

    배도빈이 그를 안타깝게 불렀다.

    “그래! 솔직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갈 거라 했어! 혼자 활동하는 게 더 좋다고 했어!”

    가우왕이 이를 악다물었다.

    그의 분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이러는 법이 어딨어. 나만 좋았냐? 나만 즐거웠던 거냐고!”

    배도빈과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들 이 가우왕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평소 버릇처럼 솔로 활동으로 돌아 갈 거라 말했던 탓에 그가 진심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에서의 생활을 좋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자존심 강한 그가.

    전 세계로 송출되는 수백 대의 카 메라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만큼.

    진심으로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줄은 차마 몰랐다.

    미안하면서도 . 고마우면서도 .

    그러한 감정에 앞서 유대감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배도빈의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그럼 그렇다고 처음부터 말하지 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대요!”

    “너 같으면 그런 부끄러운 말을 할 수 있겠냐!”

    “잘만 하면서 뭐라는 거야!”

    다시금 싸우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며 시청자와 기자들은 어리둥절하였다.

    ㄴ 쟤들 뭐 하는 거임?

    ㄴ 사랑과 전쟁 시즌2임?

    ㄴ 시즌1 in 푸르트벵글러호에 이어 사랑과 전쟁 in 베를린이 방영 예정 입니다. 시청자 분들의 많은 사랑 바랍니다.

    ㄴ 아닠 ㅋㅋㅋㅋ 뭐야 대쳌 ㅋㅋ 누가 나 이해 좀 시켜줰 ㅋㅋㅋ 은퇴 관련 기자회견 한다고 했으면서 갑 자기 왜 사랑싸움이얔ㅋㅋㅋ

    ㄴ 배도빈은 가우왕이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내보내려 했는데 실은 가우왕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는 거 같은데.

    ㄴ 은퇴식 하기 전에 물어보고 했어야 할 거 아냨ㅋㅋㅋㅋ

    “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요! 어쩌자고!”

    “너야말로 난데없이 무슨 짓이야!”

    “당신이 멋대로 일정 잡아서잖아 요! 사람들 베를린에 와 있다고 난 리고 오디션 언제 하냐고 성화인데 어떡해요? 어제 전화만 받았어도 이렇게 안 됐잖아요!”

    “전화 안 받은 게 문제야? 어제만 날이었어? 왜 이제 와서 난리야!”

    “바빴잖아!”

    베토벤 기념 콩쿠르, 타마키 히로시의 장례, 평단과 언론 등을 규탄 하는 시위 등으로 송년 음악회조차 케르바 슈타인에게 맡겼던 배도빈이었다.

    악단과의 사전 협의 없이, 전 세계 피아니스트들에게 1월 말에 덤비라 고 광고했던 가우왕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다시금 성을 냈다.

    “그렇다고 날 해고하려 해? 못 나가. 안 나가!”

    “……진심이에요?”

    “그래!”

    “진심이냐고요.”

    배도빈의 달라진 말투 때문에 회견장이 조용해졌다.

    “솔로 활동 하고 싶다는 것도 거짓 말이었어요? 맨날 공연 수 부족하다고, 출장 좀 보내달라고 한 것도 거 짓말이었어요?”

    “하고 싶은 연주회 마음껏 하고 싶잖아요. 그 연주 더 많은 사람한테 들려주고 싶잖아요!”

    “그런 마음 뻔히 아는데 내가 당신 붙잡고 있어야 해요? 여기 남아서 뭐 하려고!”

    “너.”

    “왜 내가! 왜 베를린 필하모닉이 당신 걸림돌이 되어야 해! 나는! 당 신한테 기회 더 못 주는 나는 그동 안 편했을 것 같아요? 왜 일을 복 잡하게 만들어요!”

    “당신 피아노 좋은 거 세상이 다 아는데!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잡아 주길 바랐냐고, 이 머저리야!”

    “머, 머저리?”

    “그래!”

    ㄴ이 드라마 재밌네요.

    ㄴ 뜨겁다 뜨거워.

    ㄴ 아, 도빈이도 내심 고민 많이 했었나 보네.

    ㄴ 솔직히 가우왕 실력은 배도빈이 가장 잘 알고 있을 듯. 그런 사람이 공연 좀 많이 다니게 해달라고 하는 데 악단주로서 무조건 그렇게 해줄 수도 없었을 테고.

    ㄴ 둘이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데 오해가 있었네.

    ㄴ 둘 다 똑같음 ㅋㅋㅋㅋ 멋대로 일정 잡고 나간다고 노래 부른 가우왕 이나 미리 이야기 안 하고 일 처리 한 배도빈이낰ㅋㅋㅋ

    ㄴ 또 신파야? 드라마 진짜 볼 것 없다.

    ㄴ 이걸 내가 생중계로 보다니. 오늘 복권 사야겠다.

    “너 아까부터 말이 자꾸 짧아진다!”

    “어쩔 건데!”

    언성을 높이고, 점점 유치해지는 싸움 속에서.

    짝짝 _

    짝짝짝짝_

    두 사람의 열렬한 사랑싸움을 지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싸우던 배도빈과 가우왕은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변에 당황했다.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의자에 앉고는 서로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고 개를 돌렸다.

    “아무튼 나갈 생각 없어.”

    “말했잖아요. 처음부터 정해진 자 리였다고.”

    “그러니까 경연 하면 될 거 아냐. 너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자는 최고여야 한다며.”

    “그러니까 누구를 들이는 건 제 마음이라고요.”

    “그래서 최지훈으로 하겠다? 최고 여야 한다며! 자신 있으면 최지훈 보고 참가해서 우승하라 하면 되잖아!”

    그때 한 센스 있는 카메라 기자가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최지훈을 잡았다.

    항상 방실방실 눈웃음 짓고 있던 최지훈의 눈이 드물게 커져 있었다.

    “우승이랑 상관없다고 몇 번을 말 해요! 내가 최지훈 데려오고 싶다고요!”

    “왜 나는 안 되고 걔는 되는데!”

    잠깐의 휴전 뒤에 다시금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가우왕이 배도빈을 몰아세웠다.

    “내가 우승할 것 같으니까 그러잖아! 그러니 내쫓고 이벤트로 치부하 려는 거 아냐!”

    가우왕의 말에 답하지 못하는 배도빈을 보는 최지훈의 눈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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