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72화 (47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72화

    103. 일상으로(1)

    유럽과 북미에서 부패한 언론과 평 단이 대대적으로 물갈이 되는 한편, 차채은과 한이슬은 그 반대급부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40만 구독자에서 27만까지 떨어졌던 차채은의 블로그 구독자가 열흘 만에 100만을 넘겼고.

    그래모폰, 슈피겔, 클래시컬 뮤직, 르 피가로, 리스텀 등 유럽 각국의 유력 잡지는 앞다투어 차채은에게 인터뷰 요청을 보내왔다.

    여러 매니지먼트에서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글을 의뢰해 오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학부생 신분의 차채은에게 강연을 요청하는 대학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차채은 칼럼니스트 님. 우딘 매니지먼트입니다.]

    【귀하의 칼럼을 싣고 싶습니다.]

    【클래시컬 뮤직에서 연락드립니다.]

    【베를린 대학 교무과입니다.]

    【광고 문의 드립니다.]

    갑자기 반전된 여론과 관심 속에서.

    여태 절대 다수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았던 차채은은 안도와 기쁨 이 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자신을 향한 대중의 열광이 진실된 것인지 의심하였고 긴 고민 끝에 그것이 한시적인 현상일 뿐이 라고 여겼다.

    반면 한이슬은 적극적으로 활동하 길 권했다.

    “지금 나서야지. 네가 옳았단 걸 알리는 거야. 못 했던 말도 풀고.”

    “다들 알고 있는데, 뭐. 안 할래.”

    “언론도 자꾸 타야 해. 안 그러면 잊히는 거 순식간이다?”

    “괜찮아. 이번 일로 느꼈는데…… 음악가는 음악으로 말한다는 걸 좀 알 것 같아.”

    한이슬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차채은이 한숨을 내쉬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내가 유명해지고 그런 거 그리 중 요하지 않은 거 같아. 부담스럽고. 내 글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그걸로 좋은 음악가들이 알려지면 그걸로 만족할래. 그게 좋아.”

    음악가는 음악으로.

    평론가는 글로 말하는 게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대중의 지나친 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어오는 평론 의뢰가 부담스러웠다.

    “이런 일 받으면, 정말 유명해지면 나도 그 사람들처럼 되는 거잖아. 그런 거 싫어.”

    그로 인해 자신이 또 하나의 권력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단 한 편의 글로 평범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돈을 벌고, 주변의 기 대와 주목을 받으며 지금처럼 자유 롭게 글을 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방송사, 잡지사, 신문사 등을 통해 활동하게 되면 지금 이상으로 자본 이 집중될 것이었다.

    돈을 받고 음악가들을 조명시키다 보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글을 쓰게 될 때도 생길 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털어놓자, 한이슬이 차채은의 머리를 쓸었다.

    “그러지 않을 거잖아.”

    사랑 가득한 목소리에서 걱정과 안 타까움이 묻어나왔다.

    한이슬은 힘을 가진 사람의 책임과 부담을 이해하는 차채은이 대견했다.

    어린 나이에 큰 관심을 받으면 한 시적인 힘에 취해 자신을 과신하고 망가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권력과 부에 눈이 멀지 않고 글로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차채은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 고 있었다.

    그러나 한이슬은 그렇기에 더욱 나 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옳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필요 해. 이번 일 겪으면서 느꼈잖아.”

    대답하지 않았지만 한이슬은 차채은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무서운 거지?”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 해, 차채은은 더 이상 한이슬을 속 일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모르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욕먹는 것도, 자신의 글이 왜곡되어 알려지는 것도 싫었다.

    최근 한 달간 차채은은 너무나 다 양한 악의를 접했다.

    동양인 주제에, 여자 주제에, 어린 주제에 관심받는다고, 부유하게 산 다고 시기와 질투를 받았다.

    ‘글이 예전 같지 않네요.’

    ‘좀 멍청한 듯.’

    ‘레이라랑 아리엘이 비슷하다고요? 유명한 사람들 전부 다르다고 하는 데요? 제대로 공부도 안 하고 글 쓰시네요.’

    ‘왜 이렇게 유치하지? 내가 쓰는 게 더 낫겠다.’

    ‘대학생이 평론가 흉내 내고 있네.’

    ‘아, 뭔 말 하는 거야. 글 병신 같이 쓰네.’

    그들은 어떻게든 차채은을 헐뜯으려고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했다.

    마음 놓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간혹 차채은이 답글을 다는 경우는 오랫동안 봐오며 익숙한 몇몇 독자 뿐이었다.

    악플을 다는 인간이 정상적으로 대

    응할 리도 없었으며, 자신만이 옳다 고 여기는 이들은 차채은이 무슨 말을 하든 들으려 하지 않았다.

    대중을 상대로 한 일이었기에 혹시 나 안 좋은 이미지가 커질까 봐, 악 플러를 마음 놓고 고소할 수도 없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억울함이 쌓였고 이내 형체를 알 수 없는 악의에 대 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또 상처받을까 봐 무서웠다.

    “더 나서면…… 그런 일 더 많이 당할 거잖아. 끄읍. 흑.”

    한이슬은 눈물을 훔치며 울먹이는

    차채은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대중을 상대로 한 사람이라면 필연 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고 평생을 짊어질 일이었다.

    아픔은 무뎌지지도 않았다.

    매일 새로운 악플로 상처 입을 터였다.

    그러면서도.

    잔뜩 겁에 질렸으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에 더욱 안쓰 러웠다.

    “맞아. 앞으로 더 힘들 거야.”

    한이슬은 부정하지 않았다.

    달콤한 거짓으로 잠시나마 달랠 수는 있겠지만 차채은을 위한다면 그 래서는 안 되었다.

    “끄으읍,,

    앙다문 입에서 두려움이 홀러나왔다.

    “그래도 네 덕분에 희망을 갖는 사람도 생겼잖아.”

    차채은은 반응하지 않았다.

    많은 생각이 엉켰다.

    대중에 대한 두려움과 그럼에도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과 아리엘 얀스 와 진달래가 전한 감사 인사.

    “그러려고 시작한 일이잖아. 힘을 가져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 마음 굳게 먹어야지.”

    차채은은 한이슬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한 달 만에 외출하기 위해 나선 차채은은 문을 여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한이슬은 심하게 떨리는 차채은의 손을 지켜봐 주었다.

    차채은은 눈을 질끈 감았고 간신히 손잡이를 잡았다. 한숨을 크게 내쉬고 문을 열어, 마침내 학교가 아닌 사회로의 첫발을 내디뎠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온 배도빈은 악단 관련 일을 처리하고 곧장 차채은의 집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안녕하십니까.”

    차채은의 모친 이은지가 배도빈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 채은이하고 얘기 안 했니? 세상에 너무 잘생겼다. 반가워요.”

    “네?”

    “방금 나갔거든. 방송국에 간다고 해서 금방 오진 않을 거 같은데.”

    아쉽기는 했지만 한 달 내내 틀어 박혀 있던 차채은이 외출했다고 하 니 배도빈은 일단 안도했다.

    “어쩔 수 없죠. 다음에 올게요.”

    “그래. 또 놀러와.”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채은이도 좋아할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발을 돌린 배도빈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베를린으로 돌아온 뒤로 줄곧 쫓아다니는 아리엘 얀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왜 자꾸 따라다녀.”

    “차채은 씨에게 볼일이 있을 뿐이야.”

    배도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막상 뭐라 할 수도 없는지라 세 블록 떨어진 자택으로 발을 옮기는데 아리엘이 또다시 그의 뒤를 쫓았다.

    “왜 따라와!”

    “같은 방향이니까.”

    배도빈은 아직 자신의 저택에 하숙하고 있는 진달래를 떠올리며 아리 엘과의 거리를 벌리고자 성큼성큼 걸었다.

    그러나 아리엘 얀스의 긴 보폭 때문에 두 사람 사이는 좀처럼 벌려지 지 않았다.

    한 블록을 지나기도 전에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아리엘이 배도빈에게 물었다.

    “달래가 오징어덮밥을 해놓았다고 하는데, 같이 먹을 거냐고 묻네.”

    “안 먹어.”

    “저녁 때 오페라를 예약했는데 같이 가지.”

    “안 가.”

    “그러면.”

    “왜 자꾸 친한 척이야!”

    “달래가 친하게 지내라 했으니까.”

    배도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는 전과 달리 정상적인 말투로 친근하게 다가오는 아리엘 얀스가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음악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 했지만, 앙숙처럼 지내던 아리엘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더구나 진달래뿐만이 아니라 프란츠 페터, 가우왕, 찰스 브라움, 나윤희, 왕소소 등 모든 사람이 아리엘 과 배도빈이 친하게 지내길 바랐다.

    배도빈은 그 참을 수 없이 간지러운 분위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좀 떨어져!”

    “적당한 거리잖아.”

    배도빈이 아무리 성을 내도 아리엘은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를 일관하 며 배도빈과 친해지려 노력했다.

    여태 스스로 친구를 만든 적이 없었던 아리엘의 미숙함과 충만한 의 지가 배도빈에게는 쥐약이었다.

    옥신각신하며 걷는 중.

    한 차량이 그들 옆으로 서행하다 창문을 내렸다.

    최지훈이었다.

    “채은이네 들렸다 가는 길이야?”

    “잘 됐다.”

    최지훈을 발견한 배도빈은 냉큼 문을 열어 조수석에 앉았다.

    “빨리 가.”

    최지훈은 배도빈의 말은 무시하고 아리엘 얀스와 인사를 나누었다.

    “반가워요,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네요. 최지훈이라고 해요.”

    “앨범은 여러 번 들었습니다. 아리엘 핀 얀스라고 합니다.”

    “도빈이네 가시는 거죠? 괜찮으시 면 타세요.”

    아리엘은 거절하려다가 호의에는 호의로 응해야 한다는 진달래의 가 르침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빈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디 아파?”

    “••••••아니.”

    배도빈의 반응을 개의치 않게 여긴 최지훈이 살짝 고개를 틀며 아리엘 에게 말을 붙였다.

    “아마데우스 정말 좋았어요.”

    “멋진 곡이죠.”

    “하하. 맞아요. 베를린 필하모닉이 랑은 언제 연주하는 거예요? 오케스트라로 편곡도 하시겠죠?”

    “편곡은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연주하고 싶어 남겨두었습니다.”

    “아, 확실히. 그러면 앨범 제작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베토벤 기념 콩쿠르 우승자의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듯한 발언에 최지훈은 잠시 의아해했다.

    그러나 아리엘 얀스에게 ‘아마데우 스’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생각하면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녹음 하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남은 문제는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협연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였다.

    “봄의 여신이란 곡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 재작년에 발표하신 곡이죠?”

    “네. 달래가 불러주길 바랐는데, 베를린 필하모닉 소속이라 그럴 수 없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의뢰했습니다.”

    “아, 잘됐다. 정말 좋네요. 일이 잘 풀려나가서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말을 나눌 때.

    배도빈은 최지훈과 아리엘 얀스가 친해질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무인도에서도 친구를 만들 정도로 친화력이 좋은 녀석이라 아리엘 같은 인간이라도 이렇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고.

    주변 사람 중에 아리엘과 친분을 나누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

    “그러면 미국으로는 언제 가시는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돌아가고 싶지만 여유가 있을 때 들어야 하는 이벤트가 있어서 그때까지는 머물 예정입니다.”

    “들어야 하는?”

    “다음 주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퍼 스트 피아노를 누가 맡는지 결정된 다고 들었습니다.”

    “아! 아하하. 쑥스럽네요.”

    “현재 가우왕의 기량은 그 누구와 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재밌는 경합이 될 것 같습니다.”

    아리엘은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 타’의 가우왕을 이 시대 최고의 피

    아니스트라 여기면서도.

    작년, 부상에서 복귀한 최지훈의 기량이 그에 준한다고 생각했다.

    유독 뛰어난 인물이 기라성처럼 버 티고 있는 피아노계에서도 가우왕과 최지훈에게서는 특별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이른 말이지만 괜찮으시다면 곡을 하나 써드리고 싶습니다. 당신과 같은 피아니스트가 연주해 준다면 영 광이겠죠.”

    “정말요? 세상에. 저야말로 너무 감사하죠. 그래도 바쁘실 것 같은데

    괜찮으신 거예요?”

    “복귀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니 그 간 작품 활동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찰스 브라움 왕자에게도 의뢰 받았습니다.”

    찰스 브라움이 아리엘에게 곡을 의 뢰했다는 소식에 배도빈이 눈썹을 꿈틀댔다.

    “그간 이런저런 일도 답답하셨을 테니 좋은 일이네요. 그럼 기대할게요.”

    “웃기고 있네.”

    듣다 못한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최지훈이 잠깐 고개를 돌려 배도빈의 삐진 얼굴을 확인했다.

    “왜?”

    “베를린 필하모닉 퍼스트 피아니스트가 다른 사람 곡을 받는다는 게 말이 돼!”

    배도빈의 외침에 깜짝 놀란 두 사람이 간격을 두었다가, 최지훈은 웃 으며 아리엘은 무덤덤히 반응했다.

    “ 질투해?”

    “질투였나.”

    배도빈이 입을 씰룩이더니 호통을 쳤다.

    “차 세워!”

    “응. 도착했어.”

    최지훈이 방긋방긋 웃으며 성을 내는 배도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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