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베토벤 471화
102. 속일 수 없는 것(5)
북미 평론가 협회를 향한 대대적인 수사가 연일 보도되었다.
마손 절머니가 제공한 로버트 패트 릭의 장부에는 무려 3,000명 이상이 연류되어 있었고.
수많은 언론인과 평론가가 금전을 대가로 평론을 써댔단 사실과 함께 유력 음악업체들이 자금을 공급했다는 일까지 낱낱이 밝혀지고 있었다.
현금을 통한 거래도 있었다는 사실 까지 밝혀지자 경•검 이외에 미연방 국세청까지 수사에 참여.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세무범죄 조사국의 무자비한 수사를 받아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평 론가, 언론인, 기업은 없었다.
로버트 패트릭을 포함한 평론가들 은 그들의 정•재계 인맥을 동원하여 사태를 수습하고자 했으나 미연방국 세청 산하 세무범죄조사국은 어떠한 걸림돌도 없이 그들의 자금 이동 정황을 털었고.
지난 수십 년간 탈세를 이어온 평 론가, 언론인 그리고 그들에게 자금을 대주었던 기업들은 그들이 감당 할 수 없는 세금을 물어야만 했다.
도덕적인 문제로 소비자를 잃음과 형사상의 처벌을 받기 이전에 그들의 삶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인플루언서 댄 하 디는 유일하게 무혐의를 받았는데,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억울함을 표출하였다.
.나는 진짜 억울하다니까? 무혐의 라고. 난 돈 같은 거 받고 글 쓰는 사람 아니야. 단지 차채은이 한 말 이 너무 말이 안 돼서 그랬던 거지. 평단 전체가 그럴 줄 누군들 알았겠냐? 정말 너무 억울해.
그러나 그의 호소는 이미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대중을 속일 수 없었다.
ㄴ 이 새끼가 젤 병신임 ㅋㅋㅋㅋ
ㄴ ㅇㅇ.돈도 안 받고 사기꾼들 똥 닦아주는 놈ㅋㅋㅋㅋㅋ
ㄴ 아, 그래서 로버트 패트릭이랑 찍은 사진이 3장이나 있어요? S
ㄴ 어떻게든 로버트 패트릭한테 빌붙어서 콩코물 주워 먹으려 했는데 실패하니까 발 빼는 거 보솤ㅋㅋㅋ
ㄴ 마손 절머니가 공개한 자료에 니 이름도 있던데 무슨ㅋㅋㅋㅋ
ㄴ 팬들이 바본 줄 아냐?
ㄴ 로버트 패트릭한테 얘는 그냥 공짜로 쓸 수 있는 말이었다는 거잖아. 진짜 멍청한 놈이넼ㅋㅋ
ㄴ 진짜 개웃기넼ㅋㅋㅋ 그 돈 받지도 않으면서 그런 글을 썼댘ㅋㅋ 결국 자기가 멍청하다고 밝히는 말밖에 더 돼냨ㅋㅋㅋㅋ
ㄴ 너도 마손 절머니처럼 자수하고 형량이나 감형 받아ㅋㅋㅋㅋ 아, 돈도 안 받고 발가락 핥아서 혐의는 없었구나
30만 명이 넘던 댄 하디의 블로그 구독자는 매일 1만 명 이상이 줄어 들었다.
광고주들의 요청으로 그에게 붙어 있던 광고가 모두 내려갔고, 그렇게 구독자도 수익 모델도 잃은 댄 하디 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고작 몇 백 명 수준이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무혐의를 근거 로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음악 칼럼니스트란 사람이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도 없이 무작정 달려들었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더 이상 신뢰받을 수 없었다.
한편.
전 일본 클래식 음악 조합장 나카 무라 이데도 이러한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일본 및 유럽에서 활 동하며 세를 유지하고 있는 도요토 미 류토와 일본 음악계의 종양,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를 몰아내기 위 해 그간 준비했던 자료를 적극적으로 풀었다.
그 과정에서 한이슬과의 연대는 훌 륭한 시너지를 보였다.
한이슬은 평단과의 전쟁 때문에 잠 시 미뤄두었던 니혼 필하모닉 단원 들의 집단 사망 사건에 관한 정보를 나카무라 이데에게 제공.
나카무라 이데 조합장은 이와 같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긴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와 도요토미 류토를 규 탄하는 성명을 냈다.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전과 달랐다.
타마키 히로시 덕분이었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통해 일본에 도 배도빈, 최지훈, 아리엘 얀스와 같이 뛰어난 젊은 음악가가 있었음을 깨달은 일본 국민들은 그의 요절을 깊이 슬퍼했는데.
나카무라 이데의 도움으로 타마키 준코가 도요토미 류토와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로부터 이용당했던 정 황을 밝힌 것이었다.
젊은 천재의 비극적 상황에 분개한 일본인들은 부패한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의 해체를 요구하였다.
최고 원로이자 권위자인 사카모토 료이치 역시 동참하니, 도요토미 류 토와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해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도요토미 류토는 소환장을 받고도 귀국하지 않았다.
일본 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한 도요토미 류토는 자신이 재 직하고 있는 대학에 머물며, 망명 신청을 하였다.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인들 은 더욱 분개, 독일인들조차 도요토 미 류토와 같은 쓰레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섰다.
독일 이민보호심판소도 범법자의 망명 신청을 기각.
철저하게 고립된 도요토미 류토에게 마지막 비수가 날아들었다.
“네. 맞아요. 산타마르크 대학에 있을 때 자꾸 엉덩이를 만지더라고요. 자기 말 들으면 정식으로 학교 다니 게 해주겠다고. 거기를 걷어차 주고 나왔죠.”
오래 전 묻혔던 도요토미 류토 교수의 대학생 성폭행 사건이 한 용기 있는 음악가에 의해 다시금 폭로된 것이었다.
한이슬의 양심선언으로 다시금 재조명된 해당 사건에 대한 취재가 이 어지는 도중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니나 케베리히가 자신의 청강생 시 절 경험을 언급한 것.
그녀의 발언에 당시 도요토미 류토의 교수로서의 권위, 추천서를 빌미 로 협박받았던 학생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비록 그들이 보상 받을 길은 없었고 너무나 오래된 일이라 증거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었지만.
일본에서도 독일에서도 버림은 도요토미 류토를 마지막 도피처에서 끌어낼 수는 있었다.
분노한 학생들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대학은 도요토미 류토를 해임 하였다.
독일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진 그는 비자가 종료되는 시점 까지 버티다, 일본으로 향해 처벌받 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도요토미 류토조차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의 죗값을 가장 혹 독하게 치른 사람은 아니었다.
*
영국 런던, JH 그룹 사옥.
“ 흐음.”
단 4년 만에 JH 그룹을 유럽 최고 의 음악 플랫폼, 악기제조업체, 음향 업체, 공연사업체, 매니지먼트로 키 워낸 굴지의 사업가 최우철이 턱을 쓸었다.
“말해보게.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최우철은 그의 집무실로 초대한 해 먼 쇼익에게 물었다.
해먼 쇼익은 소파 끄트머리에 걸터 앉아 몸을 떨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기다리기 지루했던 최우철이 검지 와 중지를 들었다.
곧 그의 비서가 시가를 손질해 최 우철에게 들려주었다.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향을 느낀 뒤에도 해먼 쇼익이 아무 말 없자 최우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겁먹지 말게.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니까.”
“죄, 죄송합니다.”
“아니지. 아니야. 내가 두 번이나 묻지 않았나. 무슨 생각이었냐고.”
최우철은 해먼 쇼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난 자네 같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아. 도리어 신뢰하지. 권력과 돈에 빌붙어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만큼 솔직한 이도 드물거든.”
사업가 최우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돈에 미쳐 있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것을 쥐어주면 평범한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 어떤 일도 저질러 버리기에 최우철에게는 그보다 훌륭 한 말도 없었다.
속내를 감추고 양심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결코 믿지 않았다.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나. 실제로 제임스 버만이 무너질 때도 자네를 내버려두지 않았나.”
“자네가 버만 가문에 충성했다면 그때 처리했겠지. 하지만 난 자네가 좋았어. 왜? 제임스 버만이 무너지 면 또 다른 권력에 빌붙을 걸 알았기 때문이야. 자네는 훌륭한 가축이 될 수 있었다고.”
최우철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자금을 대주던 인터플레이가 무너 졌으니 해먼 쇼익과 비슷한 부류의 가축들이 자연스레 새 주인을 모실 거라 여겼다.
유럽 음악계의 패권을 장악한 JH 와 베를린파 음악계를 위해 나설 거 라 생각했다.
해먼 쇼익은 그 전까지 누구의 편 에서 떠들었던 자신의 말과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이日와 이日의 수익의 상당 량을 확보해 주는 베를린파 음악계 에 빌붙어 나팔을 불지 않은 해먼 쇼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우철의 상식으로는 너무나 멍청 한 선택이었던 탓이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나? 이제 조금 지루해지니 어서 말해보게.”
“저, 저는……
최우철은 인내심을 갖고 해먼 쇼익의 말을 기다려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최우철이 눈을 두 번 감았다 떴다.
시가 연기를 입에 머금었다가 길게 내뿜을 뿐이었다.
침묵이 이어지자 해먼 쇼익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저는 그저 제가 생각했던 바른 일을……
“거짓말은 좋지 않아. 특히 속일 수 없는 거짓말은 더더욱 말일세.”
해먼 쇼익은 미칠 지경이었다.
‘이 미친놈이 대체 뭐라는 거야.’
그는 대체 왜 이곳에 끌려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 영국을 좌지우지하는 실세가 왜 자신과 같은 글쟁이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어 두려웠다.
해먼 쇼익의 입이 또다시 닫히자, 최우철이 그의 비서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의 비서가 고개를 숙이더니 해먼 쇼익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고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는 데, 해먼 쇼익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기름진 수염과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남자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제임스 버만은 족히 몇 달은 씻지 않은 듯한 때 묻은 얼굴 로 푸른곰팡이가 핀 빵을 입에 물고 있었다.
신발도 없이 구석진 골목에 쪼그려 앉아 있는 그는 무척이나 겁을 먹은 듯 보였다.
해먼 쇼익이 가까스로 얼굴을 돌려 최우철을 바라보았다.
그는 태연히 눈썹을 들어올리며 답을 촉구할 뿐이었지만 해먼 쇼익에 게는 제임스 버만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입을 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껏 그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 최고의 재벌가였던 버만 가문마저 철저하게 몰락시킨 남자의 협 박.
해먼 쇼익의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잔뜩 떨렸다.
“이, 인터플레이가 무너지고 새, 생계가 힘들어서.”
“그럴 테지.”
최우철은 드디어 말이 통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촉구했다.
“어, 어떻게든 평단에 다시 서고 자…… 했습니다.”
최우철이 눈썹을 모았다.
“그래. 그 부분이 이상하단 말일세.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나. 자네 같은 돼지가 빌붙을 곳을 찾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안 돼.”
“돈 냄새는 그리 잘 맡으면서 어찌 발을 남궈야 할 곳인지, 아닌지 구 분을 못 하냐 이 말이야.”
최우철은 겁에 질려 벌벌 떠는 해 먼 쇼익을 보곤 그제야 납득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본 듯하구만. 머리 잘 돌아가는 돼지인 줄 알았는 데,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하고 달려드는 멧돼지였어.”
최우철이 해먼 쇼익의 얼굴에 시가 연기를 뿜었다.
“자네가 정말 살고 싶었다면 인터 플레이 아래서 했던 말을 철회했어 야지. 안 그런가?”
“내 아들에게 했던 말, 도빈이한테 했던 말 모두 말이야. 잘못을 빌고 그 더러운 입으로 구두라도 핥았어 야지. 그게 자네의 유일한 쓰임새였는데 말이야.”
최우철은 해먼 쇼익의 발언력을 높이 평가했다.
가장 앞에 나서서 베를린파 음악인들을 비판했던 해먼 쇼익이 말을 돌 리면 그로 인해 대중은 누가 옳았는 지 깨달을 터고, 동시에 인터플레이 에 빌붙어 있던 수많은 벌레들이 낼 울음소리도 예방할 수었었다.
그것이 해먼 쇼익이란 돼지의 유일 한 존재 가치였다.
그런데 이젠 며느리로 삼고 싶은 아이마저 괴롭히다니.
최우철은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다시 실수를 저지른 멍청 한 멧돼지를 더는 살려둘 마음이 없었다.
“가 봐.”
최우철의 말에 해먼 쇼익이 깜짝 놀랐다.
꼼짝없이 어디론가 끌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해당할 거라 생각 했기에 순순히 보내주겠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뭘 망설이나. 힘든 하루였을 테니 집에 가서 가족들과 인사도 하고 근 사한 곳에서 저녁도 먹게.”
“예, 예! 죄,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우철은 도망치듯 나서는 해먼 쇼익에게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다만 그의 비서에게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고 있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