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70화 (470/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70화

    102. 속일 수 없는 것⑷

    한편 중계를 통해 거장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던 전 세계 음악 팬들은 혼란에 빠졌다.

    ㄴ 그러고 보니 그러네?

    ㄴ 저게 무슨 말이냐? 모든 언론이 부패했다는 건 진짜 평단이 단합해 서 아리엘 죽이기라도 했단 말이야?

    ㄴ 당사자가 하는 말인데 뭔 말인들 못할까. 아리엘 얀스는 노답인 거 맞아.

    ㄴ 빡빡하다고 난리가 난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게 만점을 받았는데 그 소리가 나옴?

    ㄴ 이거 음모임. 음악가들이 아리엘 얀스 살리려고 단합해서 만점 주고 우승한 거임.

    ㄴ 미친 소리 하고 앉았네. 푸르트벵글러랑 토스카니니, 사카모토, 얀스, 발터, 배도빈이 그런 짓을 했다고?

    ㄴ 음악 좋았는데?

    ㄴ 난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적어도 만점 받을 만큼 감동받았음. 콩쿠르가 조작되었다는 말은 못 믿겠는데.

    ㄴ 아리엘이 니아 발그레이를 이길 리가 있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ㄴ 와 이거 진짜 사실이면 소름인 데. 차채은 말이 다 진실이었다면 평단이 멀쩡한 음악가 한 명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었단 거잖아;;

    ㄴ 멀쩡한 음악가 수준이 아니지. 심사위원단 반응 못 봤냐?

    ㄴ 굳이 심사위원단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감동받았음. 왈츠 잘 모르는 나도 너무 좋았는데, 지금 아리엘 욕하는 사람들은 대체 뭔 생각이야?

    로버트 패트릭이 심어둔 아르바이트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든 아리엘 얀스를 깎아내리고 레이라를 옹호해야 했는데, 두 사람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 면서 자신들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채팅을 남기고 있었다.

    “정말 멋진 소감이었습니다. 제3회 베토벤 기념 콩쿠르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아리엘! 아리엘!”

    “아리엘! 아리엘!”

    “ 대감!”

    그러는 와중에도 시상식은 진행되었고, 진달래가 해일과 같이 밀려드는 환호를 뚫고 뛰쳐나왔다.

    연인이 서로를 안아주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럴 줄 알았어.”

    “난 알고 있었지.”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들은 진달 래가 본에 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녀가 왜 모든 휴가를 다 써 가며 이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리 얀스가 심사위원석에서 벗어 나 시상식이 이뤄지는 무대로 걸어 나갔다.

    그를 확인한 진달래가 자리를 비켰 고 아리엘은 천천히 조부를 향해 걸었다.

    “할아버지.”

    “오오. 아리엘, 아리엘.”

    조부와 손자의 뜨거운 포옹 역시 뭇사람들의 눈물샘을 또 한 번 자극하였다.

    한편.

    최지훈과 함께 거장의 선택을 지켜 보고 있던 차채은의 눈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헐.”

    최지훈이 야단법석을 떨었다.

    “채은아! 아리엘 씨야! 아리엘! 어떻게 알았어? 도빈이도 나도 전혀 눈치 못 챘는데!”

    “어, 어?”

    최지훈에 의해 몸이 앞뒤로 휘둘리는 와중에도 차채은은 레이라와 아 리엘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사람일 줄이야.

    “대단하잖아! 정말 대단하잖아!”

    “그, 그만 좀 흔들어!”

    “멋지다, 차채은! 멋있어!”

    “아! 쫌!”

    최지훈은 차채은이 자신만의 시선을 갖추고 아무런 편견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는 데.

    그리고 그것을 거장의 선택을 지켜 보고 있던 모든 사람이 알아주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격했다.

    차채은은 자신보다 더 기뻐해 주는 최지훈에게 이끌려 강제로 춤을 추 면서 얼떨떨해 했다.

    * *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로버트 패트릭이 책상을 내려쳤다.

    분노가 치민 탓에 통증조차 느낄 수 없었다.

    “음모다. 이건 음모야! 잠적했던 놈이 1억 명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해? 배도빈이냐! 마리 얀스가 사주한 일이야!”

    단 한 순간의 일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거늘.

    평단의 권위에 도전한 아리엘 얀스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그의 입맛에 맞는 음악가를 어떻게 어르고 달랠지 상상했던 로버트 패트릭은 뒤통 수가 얼얼하였다.

    “교수님, 저……

    “뭐야!”

    연구원 마손 절머니가 전 세계 클래식 음악 팬들이 모인 사이트를 보였다.

    ㄴ 로버트 패트릭 수준ㅋㅋㅋㅋ

    ㄴ 그렇기 까대더니 결국 같은 사람 ㅋㅋㅋㅋㅋ 나 같으면 쪽팔려서 활 동 못 한닼ㅋㅋㅋ

    ㄴ 나 그 사람 강의 듣는데 어떨지 너무 궁금함 흐

    ㄴ 와, 저런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실망했다고 하네. 모르긴 해도 로버트 패트릭이나 북미 평론가 협회 말 하는 거겠지 ?

    ㄴ 싸워라! 싸워라!

    ㄴ  또 무슨 말로 뻔뻔하게 나올지 궁금해 미치겠넼ㅋㅋㅋㅋ

    ㄴ 패트릭 행님 보고 계십니까? 님 엿 됐습니다. 깔깔.

    ㄴ 차채은 까던 애들 다 어디 갔냐?

    ㄴ 이거 말이 안 됨. 심사가 잘못 되었음. 니아 발그레이가 우승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ㄴ 알바들 뇌정지 왔닼ㅋㅋㅋ 심사 위원단 권위 믿고 그렇게 빨던 놈들 이 이제 심사가 잘못됐다고 하넼ㅋㅋㅋㅋ

    “이것들 당장 그만두게 해!”

    로버트 패트릭은 자신이 고용한 댓글 부대들이 더는 헛소리를 못 하도록 지시했다.

    “뭘 꾸물거리고 있어! 당장 안 움직여! 박사 학위 필요 없어?”

    마손 절머니를 내쫓은 로버트 패트릭은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미소 짓는 아리엘을 보다가 이내 모니터를 뜯어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질 않아 책상에 있는 물건을 전부 집어던진 뒤에야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지. 아니야. 내가 이렇게 무너 질 리 없지. 그래. 많이 발전했다고 하면 돼. 누구도 못 알아볼 정도로 성장했다고 인정하면 아무 문제없어. 짜증 나는 방법이긴 해도 어쩔 수 없지.”

    오랜 세월 쌓아온 경험은 로버트 패트릭에게 지금은 굽혀야 할 때라 고 말해주고 있었다.

    말을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 고 쉬웠다.

    그는 자신의 말에 책임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신념 없이, 남의 말을 인용할 뿐이었기에 조금도 망설여지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의 권위에 흠이 난다는 것.

    ‘멍청한 학생’과 ‘무지한 대중’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것은 불쾌했으나 이 사건만 지나면 또 그들에게 서 돈을 뽑아먹을 수 있을 터였다.

    그가 아리엘 얀스를 의도적으로 공 격했다는 증거는 결코 나올 수 없었다.

    아리엘 얀스와 차채은, 한이슬이 아무리 떠들어대도 평단은 결코 흔 들리지 않을 터.

    모두가 공범이기에 이러한 위기일수록 더욱 똘똘 뭉칠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를 그렇게 헤쳐왔다.

    그러나.

    로버트 패트릭의 계획이 실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 종료 후 일주 일 뒤.

    파이널리스트 네 명의 곡을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진이 연주하는 날에 맞춰 전 유럽에 클래식 음악계를 발칵 뒤집는 뉴스가 전해졌다.

    -최근 음악계가 음악가와 평단으로 나뉘어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지요. 관련 내용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인 기자?

    -네. 저는 지금 베를린 필하모닉의 루트비히홀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이 곳의 악단주 배도빈 씨는 평단에 소 속된 이들이 음악을 평하기보다 권 력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기에 급급 하다고 발언하였습니다.

    -배도빈 씨는 평소에도 평론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셨는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작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베토벤 기념 콩쿠르 의 심사를 맡았던 거장들을 비롯해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회원 모두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입니다. 전 세 계 음악인들이 모인 것은 지난번 홍 콩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는 평단이 작곡가 아리엘 얀스와 칼럼니스트 차채은, 평론가 한이슬을 의도적으로 압박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평단은 이를 적극적으로 부정하 고 있었는데요. 어제, 로버트 패트릭

    교수 아래서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이의 내부고발로 파장이 확산 되고 있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자세한 이야 기를 듣기 위해 이번 일의 당사자이 신 이슬 한 씨를 모셨습니다. 안녕 하세요?

    -안녕하세요.

    -로버트 패트릭 교수의 연구원으로 있던 분께 제보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지금까지 로버트 패트릭 교수가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200명을 고용했다는 점과 친분 있는 평론가들에게 기사 내용을 제공했다는 이야 기를 제보 받았습니다.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한 사람의 발언을 믿으시는 근거가 있으십니까?

    -네. 지금까지 로버트 패트릭 교수 가 연구비를 횡령한 정황과 그것을 여론 조작에 활용한 내용이 적힌 장 부, 그리고 그가 동료 평론가와 주 고받은 메시지 파일을 확보하였습니다.

    해당 뉴스는 그 즉시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영국 BBC, 독일 ARD, 프랑스 TFl, 스페인 Antena 3, 이탈리아 Rai 등 주요 국가의 뉴스에서 방영 되었다.

    한이슬 칼럼니스트는 마손 절머니가 제공한 정보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보도하였고 현재 조사에 착수 한 검찰에게 이관.

    본인 역시 증거 유출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여론은 여태껏 속아 왔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 하였고 잡지 구독 취소, 온라인 개 인 채널 가입 취소 등의 방식으로 화를 표출하였다.

    관련 사실이 대서양을 넘는 것도 단 하루도 필요치 않았다.

    북미 클래식 음악 팬들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크게 반응했고 로버트 패트릭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카네 기 워터멜론 음대의 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패닉에 빠진 로버 트 패트릭의 연락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기랄. 제기랄!”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와 파파라치, 시간마다 수백 개씩 날아 드는 비난성 이메일, 터질 듯이 울려대는 전화기로 로버트 패트릭은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몰래 자택에서 빠져나와 연구 실로 피신했다.

    그리고 사건의 원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아꼈는데 내 등에 감히 비수를 꽂아!”

    로버트 패트릭 교수의 노성에.

    마손 절머니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12년간 박사 학위 하나 안 주고 부려 먹히긴 했는데, 예쁨 받은 기억은 없네요.”

    “뭐, 뭐?”

    “그런 머리로 대체 박사 학위는 어떻게 땄대?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정신 차려, 미친 노인네야. 난 더는 못해먹겠고 갈 길 가려니까 넌 그간 했던 죗값이나 치르라고.”

    로버트 패트릭은 당장 일주일 전만 하여도 자신의 발이라도 핥을 듯 아 부를 떨어대던 남자에게 어깨를 치 이고 그대로 쓰러졌다.

    “아, 아안 돼. 안 돼. 마손! 마손!”

    다급히 일어난 로버트 패트릭이 마 손 절머니를 돌려세웠다.

    “자네가 뭘 서운해 했는지 알았네. 올해. 올해만 넘기면 한 자리 알아 봐 주지. 자네 딸 학교에 들어가지 않나. 와이프 좋은 옷도 사 줘야지.”

    로버트 패트릭은 괜히 마손 절머니의 옷을 털고 그의 팔을 붙잡으며 광기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혐오스러운 물건이라도 보는 듯한 싸 늘한 표정뿐이었다.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지금도 너한테 그런 힘이 있을 거라 생각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네 연락 받는 사람이 있어?”

    “그건.”

    “이미 늦었어. 끝났다고.”

    “아, 아니야! 자네가, 자네가 조작 된 증거라고 말만 하면!”

    마손 절머니가 로버트 패트릭을 뿌리쳤다.

    그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은 로버트 패트릭이 고통을 호소할 때, 마손 절머니는 자조했다.

    “그래, 내 와이프, 딸. 멍청하게 박사 한번 되겠다는 남편이랑 아빠 믿고 여태 고생만 했지.”

    “그, 그래. 그러니 지금이라도.”

    “하, 그게 누구 때문인데. 어? 잡 지 마. 한 번만 더 그 더러운 입에 내 딸과 와이프를 담거든 혀를 뽑아 버릴 거니까.”

    로버트 패트릭은 마손 절머니가 얼 굴에 뱉은 침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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