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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68화 (468/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68화

    102.  속일 수 없는 것(2)

    프란츠 페터의 발표가 끝나고 심사 가 이어졌다.

    “실망이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프란츠 페터를 노려보며 엄포를 늘어놓았다.

    페터는 침을 꿀꺽 삼켰으나 내심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편향된 공부만 해왔던 탓에 결승 과제를 준비하는데 고생했고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절실 히 깨닫고 있었다.

    “예선과 2라운드에서 날 놀라게 했던 꼬맹이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군.”

    이어지는 혹평에 페터는 이를 앙다 물었다.

    전과 같았다면 혼나는 것 자체에 그저 겁먹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소년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타오르고 있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자신을 향한 분노로 발산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오르고 싶었던 이 자리에 더 충실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분해서 당장 연습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음 곡을 기다리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5점을 부여 하며 심사를 마쳤다.

    ㄴ 저 할배 진짜 밉상인데, 그래도 왜 거장인지 좀 알 것 같다.

    ㄴ 나두. 다음에 발표할 곡 기대한 다잖아. 저러면 더 열심히 할 수밖 에 없지.

    ㄴ 토스카니니가 매정해 보여도 은 근히 정 있는 스타일인 듯. 깔 건 까면서도 악보 챙겨주고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 곡 챙겨 듣겠다는 마인드 가 대단한 것 같아.

    ㄴ 페터도 달라졌네. 1라운드 때만 해도 벌벌 떨었는데 지금은 씩씩해 보임.

    ㄴ 콩쿠르 도중에 다들 성장하는 게 보여서 진짜 기특하다.

    ㄴ 맞아. 나도 L|0^ 발그레이 다시 감 찾아가는 거 보면서 아빠 미소 지음.

    ㄴ 니아 발그레이 82년생인데, 님 춘추가 대체……?

    ㄴ 5살임.

    ㄴ 2011 년생이면 완전 아빠뻘인데 아빠 미소 짓는다고? ㅋㅋㅋㅋㅋ

    ㄴ 뭐 어때.

    심사는 계속 이어져 배도빈의 순서로 돌아왔다.

    그는 말을 하기 전 점수부터 입력하였고 4점을 부여받은 프란츠 페터는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배도빈이 입을 열었다.

    “다들 대단했지?”

    프란츠 페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들 필사적으로 달려들고 있어. 더 멋진 음악을 만들기 위해, 단 한 번이라도 무대에 서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걸 쏟아내고 있을 거야.”

    심사를 마친 배도빈은 스승의 입장 에서 프란츠 페터를 대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잊지 마. 네 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결과는 반복될 거야.”

    “……네.”

    “요 한 달간 내가 바라는 이상으로 성장해 줘서 고맙다.”

    배도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렸다.

    페터는 머뭇하더니 이내 감정을 주 체하지 못하고 스승의 품에 안겼다.

    “죄송해요. 끄으읍. 죄송해요.”

    우승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도빈에게 배웠다고, 배도빈의 제자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음악을 향한 순수한 향상심으로 자 신의 부족함을 여실히 깨달았으나, 그렇다고 배도빈에 대한 감사와 존 경 그리고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사 라질 리 없었다.

    음악을 배운 시간이 짧아서.

    아직 배우지 않은 장르라서.

    그런 변명 따위 조금도 통하지 않는 무대의 공정함과 무게감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자신을 탓하면서도.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죄 스러웠다.

    그러나 배도빈은 페터가 진심으로 자랑스러웠다. 유약하고 소극적이었던 천재가 경쟁을 통해 음악가로서 갖춰야 할 소양을 키웠기에 더 이상 기쁠 수 없었다.

    이제 프란츠 페터는 어렵다면서 학 교 공부에 소홀하지도, 화성학 시간에 졸지도 않을 터.

    배도빈은 품 안에서 우는 제자의 등을 쓸어주었다.

    ㄴ 아 씨 눈물 좀.

    ㄴ 그동안 스승과 제자가 맞는지 의 문이었는데 지금 보니 맞네.

    ㄴ 너무 간지러운데.

    ㄴ 보기 좋구만 뭘.

    ㄴ 심사위원이라서 그랬던 듯. 사이 완전 좋잖아.

    ㄴ 아니 나이 차이 얼마 나지도 않는데 왜 저렇게 보이지ㅋㅋㅋㅋㅋ

    ㄴ 심사위원으로서 점수부터 주고, 심사 끝나니까 다정하게 말하는 게 너무 좋다 ㅠㅠ

    ㄴ 그러고 보니 그러네.

    ㄴ 프란츠 확실히 결승곡은 ‘마왕’에 비해 너무 아쉽긴 하다. 토스카니니 말처럼 더 많이 배워서 다음엔 ‘마왕’ 같은 곡 써줬으면 좋겠음.

    스승과 제자의 훈훈한 모습을 지켜 본 시청자들은 어린 음악가 프란츠 페터를 응원하고 나섰다.

    그렇게 프란츠 페터가 받은 점수는 총 32점.

    뒤이어 너무나 우아한 왈츠를 선보 인 니아 발그레이의 58점과는 큰 차이를 보이며, 우승의 영광을 얻진 못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프란츠 페터가 여 기서 멈출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우진이 나섰다.

    “니아 발그레이가 새벽의 왈츠로 58점을 기록한 가운데, 제3회 베토벤 기념 콩쿠르의 결말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것 같습니다.”

    아리엘 얀스는 무대 뒤에서 우진의 말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기나긴 여정이었다.

    한때는 길을 잃어 방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미 긴 시간을 지체했기에 돌아서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최고의 음악가로 이름 높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사카모토 료이치, 아 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그리고.

    넘어서고 싶었던 배도빈까지.

    ‘증명하겠어.’

    아리엘 얀스는 지금도 자신을 믿고 기다리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단원들과 가장 힘들 시기에도 곁을 지켜준 진달래를 위해.

    평단에도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어린 칼럼니 스트를 위해.

    무엇보다 지금도 아리엘 얀스의 곡을 들어주는 팬들을 위해 최고의 곡을 연주할 마음으로 가득했다.

    ‘마지막. 아니, 시작이다.’

    숭고한 음악가는 유년 시절 그를 지탱해 주었던 신에게서 벗어날 준 비를 마쳤다.

    그 덕분에 음악을 알게 되었고.

    음악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이제 온전한 한 사람으로 독립하기 위해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더 이상 그의 그림자를 쫓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신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동등한 입장에 있는 음악가로서.

    헌정하는 원무곡.

    ‘당신 덕분에 음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악의 신에게서 완전히 벗어난, 아리엘 얀스의 첫 번째 곡이었다.

    “무대 앞으로 나와주세요!”

    아리엘 얀스가 사회자의 부름을 받 고 무대 앞으로 걸어가 바이올린을 받쳤다.

    연주할 곡은.

    바이올린 왈츠 1번, ‘아마데우스’.

    바이올린 현이 천사의 날갯짓처럼 튀었다.

    ‘새로운 천사가 태어날 거예요!’

    ‘빨리 보고 싶어요!’

    천사들이 빛 주변에서 재잘거렸다.

    빛은 그저 포근히 알을 품었다.

    곧 태어날 천사를 위해 자애롭고 따스하게 감쌌다.

    바이올린은 생명의 탄생을 기대하는 천사들이 추는 춤처럼 우아한 멜 로디를 이어나갔다.

    ‘이름은 어떻게 지으실 거예요?’

    ‘무엇을 좋아하는 아이에요?’

    ‘꿈틀대는 걸 보니 빨리 나오고 싶나 봐요!’

    ‘장난꾸러기가 분명해요!’

    천사들의 재촉에 빛이 답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란다.]

    [이름은 정하지 않았구나.]

    천사들이 꺄르르 웃었다.

    ‘음악이 뭐예요?’

    ‘막내는 음악이란 걸 받았대!’

    ‘음악은 어떤 은총이에요?’

    [음악은 너희의 목소리만큼 아름다 운 거란다.]

    천사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는 우리를 가장 사랑해요!’

    ‘우리가 떠드는 걸 좋아해요!’

    ‘막내는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걸 선물받는 거네요?’

    빛이 자애로운 광채를 키웠다.

    그 빛이 알에 스며들자 조잘대던 천사들이 모두 날개를 접고 알 주변 에 둘러앉았다.

    음악을 은총받은 천사가 막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알이 꿈틀거렸다.

    천사들의 눈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찼다.

    ‘이름은 아직 안 정하셨어요?’

    ‘알에서 나오면 바로 불러줘야 하잖아요!’

    ‘답답한가 봐요!’

    ‘아마데우스는 어때요?’1)

    1)테오필루스 (Theophilus): 하늘의 은총을 받은 자. 아마데우스(라틴), 아마데(프랑스), 고틀리브(독일) 등으로 번역되었다.

    [아마데우스라. 좋은 이름이구나.]

    빛은 마지막 힘을 다해 알에게 축 복을 내렸고 이내 장난끼 많은 알이

    통통 튀기 시작했다.

    천사들이 깜짝 놀라 비켜섰다.

    ‘아마데우스가 움직여요!’

    ‘아직 알에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름이 생겨서 좋은가 봐요!’

    ‘어어!’

    통통 뛰어다니며 천사들을 둘러보던 알이 구름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천사들이 놀라 펄쩍 뛰었다.

    ‘떨어졌어요!’

    ‘어떡해요!’

    ‘다치진 않았겠죠?’

    ‘장난꾸러기 아마데우스!’

    본래 천계에 태어났어야 할 아이가 하계로 떨어지고 말았다.

    천사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할 소중 한 아이를 잃었음에 빛과 형제는 크 게 낙담했다.

    그러나 부여받은 은총이 사라질까.

    요하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강구 스 테오필루스 모차르트는 인간의 육신으로 태어나 하늘에서 부여받은 재능을 마음껏 펼쳤다.

    3살 때는 클라비어를 연주했고.

    5살 때는 작곡을 시작했다.

    6살이 되던 해,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음악을 배워나갔다.

    모든 이가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를 사랑했고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그에게 아낌없이 지식을 전수하였다.

    14살 때는 오페라를 작곡해 크게 성공시켰고 연이어 두 곡을 더 의뢰 받아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져갔다.

    그러나 신의 재능을 물려받은 그조 차 항상 성공하지만은 못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궁정음악가로 활동하고 싶었고 통치자 페르디난트 대공도 모차르트를 곁에 두고 싶었으나, 페르디난트의 모친이자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대공, 마리아 테레 지아는 모차라트 부자를 천박한 이 로 취급하여 반대했다.

    17살이 되었을 때.

    유럽 전역에서 신동으로 명성을 쌓았던 모차르트는 더 이상 주목받는 음악가가 아니었다.

    그나마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음악 가로서의 삶을 영위했으나, 새로 부 임한 영주는 모차르트가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박하게 대했다.

    살아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연봉.

    모차르트는 자신의 천재성과 노력이 권력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리엘 얀스의 왈츠가 조금씩 무거워 졌다.

    활기 넘치고 재기발랄한 분위기 뒤로 이어진 분위기에 잠시 춤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찾아왔다.

    짧은 간격을 두고 다시금 연주가 이어졌다.

    왕실과 귀족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음악가로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모차르트는 고뇌했다.

    잘츠부르크를 떠나 뮌헨에서 직장을 찾으려 했으나, 막시밀리안 선제 후는 잘츠부르크의 영주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을 이유로 모차르트를 받아주지 않았다.

    파리에서도 실패한 그는 굴욕적인 제안을 수락하며 다시 고향 잘츠부르크로 돌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본인의 음악을 마음 껏 펼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신동 모차르트의 명성은 추락할 대 로 추락하여, 이제 그에게 작곡을 의뢰하는 이들도 찾기 힘들어졌다.

    천부적인 재능을 부여받았고.

    뼈와 살을 깎는 노력으로 자신을 가꾸었던 청년 모차르트는 그렇게 9 년간, 음악가를 향한 냉혹하고 부조 리한 세계를 절감해야만 했다.

    아무리 좋은 곡을 만들어도 강력한 집권층에 의해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모차르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거듭된 실패로 성격이 괴상해지고 음악을 향한 사랑과 자부심과 이상 그리고 악만 남았다.

    그리고 그가 25살이 되던 해.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다고 칼을 갈 던 그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1781년, 1월.

    모차르트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 아부어, 뮌헨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거두었다.

    지금까지의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천재 모차르트의 면모가 처음으로 드러난〈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

    이후 모차르트는 비로소 우리가 아는 모습을 보여주고 음악사 중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이름을 남겼다.

    아리엘 핀 얀스는.

    천재라는 이름 뒤에서 현실에 좌절 하고, 그럼에도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던 천재를 칭송했다.

    한줌의 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앞을 밝혀주었던 신을 찬양하며, 이제 그의 뒤를 쫓지 않고.

    본인의 목소리로 노래하겠다고 선 언했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 춤추는 고결한 영혼.

    아리엘 얀스가 연주를 마치자.

    숨죽이며 감상하던 전 세계 1억 명의 클래식 음악 팬들이 마침내 탄 사를 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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