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65화 (465/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65화

    101. 알아(4)

    ㄴ 대학 1학년이 뭘 안다고 지껄여. 평론은 뭐 아무나 하는 줄 알아?

    ㄴ 어이가 없다. 같은 일 하는 사람 으로서 어떻게 그런 누명을 씌우려 하지?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나?

    ㄴ 애초에 근거도 없잖아. 결국 평 론가들이 단합했단 증거가 어디 있나?

    ㄴ 범죄임. 경찰은 이런 애 왜 안 잡아가는지 모르겠네.

    ㄴ 이래서 동양에서 온 애들은 안 돼. 지들이 뭐 잘난 줄 아는데, 길 가다가 보면 면상 까버린다.

    ㄴ ㅋㅋㅋㅋㅋ 길 조심 하란다

    차채은을 향한 맹목적 비난은 유럽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인종차별 자들에게 좋은 먹이였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타 인에게 상처 주는 것을 즐겼다.

    특히나 차채은을 해하겠다는 이야기는 본인과 주변인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보, 아무래도.”

    “응.할수있는건다 해야지.”

    차채은의 부모는 딸의 안위가 너무 나 걱정되었다.

    사설 경비 업체를 고용해 차채은을 경호하게 하였고 경찰에도 신변 보 호를 요청했으나 그럼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사람은 차채은 본인이었다.

    만 17세의 어린아이가 불특정 다수의 협박을 감당할 순 없었다.

    그러한 글을 올린 이들을 형사 고소하여 조사가 들어갔으나 차채은의 불안은 커져만 갔다.

    일상적인 외출조차 줄어들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핸드폰 알람 소리마저 그녀의 가슴을 뛰게 했다.

    ‘뭐라도 해야 해.’

    가만있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꾸만 누군 가 해코지를 하려 들 거란 불안에 휩싸여 잠시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불안감에 잠조차 이루지 못해 매일 지쳐 눈 감길 반복했다.

    “채은아.”

    차채은의 모친 이은지는 그런 딸을 안타까워 어쩔 줄 몰랐다.

    “꼭 해야 하니?”

    "응."

    “왜. 다른 사람은 뭐 한다고 하니? 왜 네가 이런 일을 다 감당해야 해.”

    “모르겠어.”

    정말 알 수 없었다.

    정말 뜻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없는지, 진실을 알아주는 사람이 어쩌 면 이다지도 없는지 알 수 없었다.

    차채은이 서 있을 수 있게 버텨주는 것은 깊이 뿌리 내린 신념뿐이었다.

    “나라도 해야 해.”

    돈으로 움직이는 클래식 음악계.

    정직하게 노력한 이들보다 평단에게 돈을 주는 이들이 더 인정받는 생태를 이대로 놔둘 순 없었다.

    “다들 노력하고 있단 말이야.”

    차채은은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취재하면서 각 참가자들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고 그 자리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었다.

    타마키 히로시의 안타까운 사연뿐 만이 아니라 니아 발그레이, 파울 리히터, 프란츠 페터, 박준수, 제니 헤트니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분명 가장 주목받고 있는 레이라도 신분을 감춘 만큼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차채은은 그런 이들의 음악을, 그 들의 열정을 팬들에게 전달하고 싶을 뿐이었다.

    억울하게 매장당한 이를 위해 평단의 병폐를 알리고 싶을 뿐이었다.

    “아무도 안 한단 말이야.”

    대인기피증세까지 보이면서도 .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딸을 보며.

    부모는 기특해하는 한편 가슴이 미어 졌다.

    그날 저녁.

    또 하나의 기사가 올라왔다.

    【차는 대체 누구인가]

    최근 한 베를린 대학 학부생이 평 단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생의 이 어린 칼럼니스트는 현재 평단의 관심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 있음을 비판하며, 동시에 북미 평론가 협회가 한 음악가를 의 도적으로 공격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이전에 그녀가 과연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그녀는 세계적인 천재 마케터의 외 동딸로, 어려서부터 갖은 특혜를 누

    려왔다.

    익명의 제보자는 그녀가 중학생 시절, 오케스트라 대전을 관람하기 위 해 학교를 한 달간 결석했으면서도 졸업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상류층의 인맥으로 배도빈과 최지훈을 통해 쉽게 클래식 음악계에 입문.

    14살이라는 이례적인 나이로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음이 밝혀졌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그녀가 지금과 같은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배도빈, 최지훈이라는 걸출한 음악가와의 사적인 친분이 없었다면 이 어린 학생이 그러한 발언력을 얻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 생긴다.

    그녀는 북미 평론가 협회 소속 평론가들이 음악가 아리엘 얀스를 비판한 것을 부당하다고 주장하나, 그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이는 언론의 자유를 해치는 행위로 보여진다.

    몇몇 언론인이 발표한 기사들은 지금까지 여러 일을 겪으면서도 차채은을 믿고 있던 독자들마저 흔들리게 하였다.

    크게 생각지 않았던 독자 중에서도 차채은을 향한 악의적 댓글을 보며 의심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ㄴ 얘 요즘 대체 왜 이러냐?

    ㄴ 진짜 실망이다. 유명세 얻으려고 없는 말도 지어냈다는 거잖아.

    ㄴ 하기사 배도빈이랑 최지훈 없었으면 어떻게 유명해졌겠어?

    ㄴ 잘 보고 있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ㄴ 글 내리고 사과부터 해야지 뻔뻔 하기도 하지. 또 글 올리네.

    ㄴ 지금까지 쭉 애독해 온 독자입니 다만 최근 차채은 씨의 글에는 의문이 드네요. 반성하시길.

    ㄴ 얘도 결국엔 상류층 사람이었네. 이런 거 안 해도 먹고 살 만한 애가 뭐 하러 이런데? 돈이 그렇게 좋나?

    독자들의 반응은 간신히 버티고 있던 차채은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어렸을 적부터 감동을 전달하는 일을 좋아하여 지금에 이른 차채은은 자신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또한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아버지와 배도빈, 최지훈마저 구설수에 오르니 간신히 버티고 있던 의지마저 꺾이고 말았다.

    무너지듯 주저앉은 차채은은 잔뜩 어질러진 자신의 방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된 거야.’

    옳았다.

    그릇된 이들은 분명한데, 그들은 부끄러움조차 없이 망발을 해댔고 팬들마저 떠나고 있었다.

    억울함을 넘어서 두려워지고 있었다.

    대체 다음에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진심과 진실을 곡해할지 알 수 없었다.

    ‘……아리엘 얀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차채은은 아리엘이 겪었던 고독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었던 그 감정 은 무자비했다. 지금까지 믿었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불특정 다수에게 존재를 부정당해, 그녀의 자존감은 철저히 짓이겨졌다.

    밝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찾을 수 없었다.

    다지고 또 다졌던 의지마저 뿌리째 뽑혀 나갔다.

    도망치고 싶었다.

    -솔미미 파레레

    그때, 차채은의 핸드폰이 울렸다.

    힘없이 고개를 돌린 차채은은 진달래가 건 전화인 것을 확인하곤 고개를 떨어뜨렸다.

    다시. 또다시.

    반복해 울리는 A108을 듣다가 이내 전화를 귀에 가져갔다.

    “언니, 나 지금……

    -고마워!

    차채은은 눈물을 가득 머금은 진달 래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어?”

    -고마워. 고마워…….

    진달래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 누구도 아리엘 얀스에 대해 옳 은 말을 해주지 않았다.

    철저하게 부서진 연인 곁에서, 아 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진달래는 그 와 같이 분한 마음을 삭일 뿐이었다.

    너무나 억울했지만 누구도 알아주 지 않았던 나날.

    설마 그 억울함을 풀어주려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이 사람, 힘들 거예요.’

    ‘누구? 아, 채은이네.’

    ‘무서울 겁니다.’

    ‘이런 기사를 썼었어?’

    아리엘 얀스는 차채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특정할 수 없는 다수가 쏟아내는 근거 없는 비난은, 음악가로서 자부 심을 가지고 있던 고결한 영혼에 나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신념이 굳은 자일수록 그러한 불명예에 크게 흔들리기 마련.

    ‘분명 외로울 거예요.’

    차채은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 진달 래는 차채은이 이러한 일을 하고 있었음을 너무 늦게 알아서, 힘이 되 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또 그 이상으로 고마웠다.

    -미안해.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 해앱. 끄윽.

    “언니……

    같은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럴 수 있는 걸까.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 한 일은 아니었지만 진달래에게 인사를 받는 순간.

    같은 편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순 간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던 마 음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 고 말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

    두 사람은 전화기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한편.

    한이슬은 차채은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급히 관련 일을 조사하였다.

    그녀 역시 적지 않은 공세를 받을 터였으나 이제 막 평단에 발을 들인 차채은이 부조리한 일에 좌절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신인이었을 무렵, 부조리한 일에 타협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적의 자신을 보는 것처럼 당돌하고 재기 넘치는 차채은이 자 신과 같은 후회를 안고 살길 바라지 않았다.

    “이걸로 된 거야.”

    한이슬은 오래 전 침묵했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음악 평론가이자 일본 클래식 음악 협회장이었던 도요토미 류토 교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11년 전, 도요토미 류토의 대학생을 상대로 한 성추문 사건은 한스 레넌 기자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는데.

    한이슬이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었다.

    그 기사는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

    [평단의 추악한 민낯]

    11년 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았던 도요토미 류토는 심사 과정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해 경질되었다.

    이후 그래모폰의 한스 레넌 기자의 취재를 통해 그가 산타마르크 대학 피아노과의 교수로 재직했을 당시, 학생을 상대로 한 성폭력 가해자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유럽 평단의 권위자이며 교수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평단의 적폐가 최근 평단의 병폐를 지적한 칼럼니스트를 비난하고 있는 사실이 아이러니한 일이다.

    필자는 당시 활동했던 언론인으로 서 도요토미 류토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행했는지 밝히고, 나의 침묵을 벌 받고자 한다.

    현재 평단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이슬의 폭탄 발언은 음악계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도요토미 류토가 친분과 금전적 대가를 토대로 당시 유럽 언론사에 자 신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것을 요청한 점과.

    그로 인해 성폭력 피해 대학생들의 주장이 묻혔다는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었다.

    평단의 권위와 공정성을 믿고 있던 음악 팬들은 도요토미 류토가 그런 짓을 벌였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가 그러고도 지금까지 계속 교수직을 유지하고 평론가로 활동해 왔음은 더욱 큰 문제였다.

    ㄴ 아주 시발 새낄세. 어? 아주 시발 새끼야.

    ㄴ 저런 사람이 어떻게 계속 교수로 있어? 부정 청탁, 성폭력, 언론 통제 까지 했던 놈이잖아. 심지어 다 밝혀진 일이고.

    ㄴ 한이슬 기사 또 올라옴. 타마키 히로시가 저 사람한테 이용당했다고 하는데?

    ㄴ;; 뭐 하는 놈이야?

    ㄴ 한이슬 근데 무슨 일 있나? 자기 도 함구했으면 밝혀서 좋을 거 하나 없을 텐데.

    ㄴ 양심 고백이라잖아. 언론인으로 서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ㄴ 이번 일 다 밝히고 그만 둔대.

    ㄴ 진짜 큰맘 먹고 하는 거지.

    한이슬이 언론인으로서의 자격을 걸고 보도한 내용은 유럽의 평단에 도 큰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유럽 평단은 차채은에게 했던 행동 그대로 한이슬을 표적하였다.

    “언니!”

    그러한 상황을 확인한 차채은은 한 이슬을 찾았다.

    “왜 그랬어! 나보고는 하지 말라고 했으면 왜 그랬어!”

    한이슬은 울먹이는 차채은을 달래 고 앉혔다. 따뜻한 초콜릿 음료를 주고 차채은이 마시는 모습을 본 뒤 에야 슬며시 웃었다.

    “부끄러웠으니까.”

    “뭐가?”

    “다들 알고 있었어. 알면서도, 하지 말라고 해서 못썼어.”

    도요토미 류토에 관한 이야기였다.

    “관중석 그만두고 막 유럽으로 넘어왔을 때 일이거든. 위에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 짤리면 당장 뭐 먹 고 살아야 좋을지 막막했으니까. 그렇게 변명하면서 침묵했어.”

    “계속. 계속 부끄러웠어.”

    한이슬은 자조적으로 웃은 뒤에 차채은을 보았다.

    “이건 내 일이야. 네가 옳다고 말한 적 없어. 너를 향한 비난도 계속 될 테고. 그러니까 지금은 서로 어떻게 살아남을지만 생각하자.”

    말 그대로 한이슬은 차채은을 언급 하지 않았다.

    단지 유럽 평단의 적폐를 고발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분명 음악인과 팬들 의 의식을 바꿀 것이라는 것은 분명 한 사실이었다.

    차채은이 바라는 일이었고.

    사실상 함께 싸우는 일이었다.

    차채은이 들고 있던 머그컵에 눈물 이 떨어졌다.

    한이슬은 소리 죽여 끅끅 우는 어 린 칼럼니스트를 따뜻하게 바라봐주었다.

    귀가 후.

    차채은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의 감독은 왜 사퇴하였는가’를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 작업에 들어갔다.

    아리엘 얀스의 음악적 기량을 입증 하고 그를 향한 비난이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차채은은 아리엘 얀스의 악보를 수도 없이 살폈다.

    그가 현재 각광받고 있는 신예 음악가 레이라, 프란츠 페터, 타마키 히로시에 뒤처지지 않는 훌륭한 음악가라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비교군을 써도 될까.’

    차채은은 혹시나 덧붙일 것이 없을 까 싶어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서 발 표된 세 명의 신예 음악가의 악보를 살폈다.

    그러다.

    “어?”

    레이라와 아리엘 얀스의 악보에서 공통된 점을 발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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