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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64화 (46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64화

    101. 알아(3)

    “아, 개빡치네.”

    차채은이 이를 갈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소위 배웠 다는 이들이 그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상식 이하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었다.

    “유치하게 진짜.”

    차채은은 논란의 쟁점을 점점 더 그녀가 어리다는 것으로 몰아가는 북미 평론가 협회의 행동을 믿을 수 없었다.

    근거와 논리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어리기에 논리도 옳지 않다는 억지를 밀어붙였다.

    차채은은 정말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분명 뭐가 옳은지 아는 사람이 있을 거야.’

    평단이 유치하고 치졸하게 나올수록 차채은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감독은 왜 사퇴하였는가’를 퇴 고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야만 하기에 선택했던 일.

    도중에 포기하는 선택지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도리어 평론가에 대한 실망이 커질 수록 이러한 관행을 바르게 잡아나 가야 한다는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똑똑“

    집중한 탓에 차채은은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하고 원고를 다듬었다.

    간격을 두고 노크 소리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울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었다.

    최지훈이 싱긋 웃고 있었다.

    “어머님이 유자차 주셨어.”

    “당 떨어지는데 잘됐다.”

    최지훈이 엉망진창인 차채은의 방으로 들어섰다.

    원고와 신문 스크랩, 프린트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최지훈은 유자차를 챙겨 키보드 앞 에 앉은 차채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머리도 감지 않은 채 잠옷 차림으로 원고를 고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키보드 주변도 어지럽긴 마찬가지.

    초콜릿 포장지나 과일 그릇, 빼곡 하게 붙어 있는 포스트잇 등으로 엉 망이었다.

    ‘심해.’

    볼꼴 못 볼꼴 다 본 사이고 평소 에도 정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 만 정상적인 환경이 아니었다.

    최지훈은 차채은이 최근 며칠간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차채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차채은이 선수를 쳤다.

    “말리지 마.”

    그녀는 아리엘 얀스에 관한 인터넷 기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그만 두라는 말 너무 많이 들었어. 걱정되는 것도 알고 내 생각보 다 훨씬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는 거 느끼고 있어. 그래도 말리지 마.”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행동이 정말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리드’와 몇몇 언론사가 차채은에 대한 보도를 최대한 중립적으로 전 달해 주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어 줄 뿐.

    매일 거짓된 기사가 수십 개씩 쏟 아지고, 40만 명을 넘어섰던 구독자는 매일 줄어들고 있었다.

    차채은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은 그 녀의 예상보다 적었고, 그녀를 욕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저열한 방식으로 나섰다.

    무서웠다.

    평단의 공세는 차채은이 예상한 수 준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라, 그녀는

    어쩌면 자신이 하려는 일이 정말 아 무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 각했다.

    악플이 늘어날수록.

    혹시 누구에게 해코지라도 당하진 않을까 하는 원초적인 불안도 생겨 났다.

    그래서 부모님께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최지훈도 말린다면.

    정말 그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듣고 싶지 않았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때 최지훈이 평소와 같이 부드러 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 오타 있다.”

    “……아. 땡큐.”

    차채은의 원고에서 오타를 발견한 최지훈은 콧노래를 훙얼거리며 그녀 의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최지훈이 자신을 말리 지 않자 차채은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최지훈은 방 이곳저곳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신문 기사와 서적 등을 종류 별로 나누어 모았다.

    ‘왜 저래?’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최지훈이 자신의 양말을 들자,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했던 차채은이라 해도 버틸 수 없었다.

    “뭐 해!”

    “왜?”

    “양말은 왜 집어! 빨리 내려놔! 아! 왜 그래애!”

    “심심하단 말이야.”

    “내려 놔! 지저분하잖아!”

    차채은이 펄쩍 뛰었다.

    최지훈은 그 모습이 재밌어서 양말

    을 빼앗으려는 차채은을 피했다.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야 돌려주었고 차채은은 방에 널린 옷가지를 세 탁 바구니에 쑤셔 넣었다.

    차채은이 침대에 누워 숨을 고르며 경고했다.

    “한 번만, 더, 그래, 봐.”

    “이제 안 할 건데?”

    “아아악! 진짜!”

    최지훈은 방실방실 웃으면서도 차채은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 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타이핑 소리, 초췌한

    눈가, 평소보다 격앙된 목소리 그리 고 무엇에 쫓기는 듯 원고를 쓰는 모습.

    모두 차채은이 심적으로 압박받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 힘들겠지.’

    불안하기 때문.

    이런 장난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차채은이 격하게 반응했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임을 오랜 친구로서 알 수 있었다.

    걱정되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한 사람이 어려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녀가 맞이할 위험이 얼마나 가혹 할지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언론에 노출되었던 최지훈이었기에 익명 뒤에 숨은 이 들의 잔인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때 가장 위로 가 되었던 말을 해줄 수 있었다.

    “채은아.”

    “왜!”

    “멋있다.”

    차채은이 몸을 뒤로 빼며 경계했다.

    “갑자기 왜 그래?”

    “그냥.”

    “……뭐야.”

    배도빈과 마찬가지로 최지훈도 차채은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할 수밖에 없는 일.

    남들이 말리고, 얼마나 위험하고, 몸을 망가뜨릴 정도로 힘들다 해도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다.

    최지훈은 차채은도 마침내 그런 일을 찾았고 각오를 다진 것으로 여겼다.

    ‘채은이 싸움이야.’

    마음 같아서는 백 번이고 천 번이 고 돕고 싶었다.

    아니, 차채은을 비난하는 이들을 벌하고 싶었다.

    소중한 동생을 향한 악의적 기사를 남발하는 그들을 어떻게 매장시킬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움직이지 않은 건 이 싸움이 차채은이 해내야 하는 일 이고, 그러기 위해 그녀가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싫어할 거야.’

    같은 입장에 서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유럽 최고의 비르투오소로 칭 송 받는 최지훈은 그 영광을 다른 이의 도움이나 운으로 돌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순전히 자신의 노력으로 이룩한 성 과였기에 당당하고 스스로 자랑스러 웠다.

    그래서 차채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여겼다.

    자신이 도우면, 지금껏 차채은이 노력해 온 것을 부정하게 되는 일이 라고 생각했기에 그저 응원할 뿐.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최지훈은 다시금 모니터를 응시하

    고 있는 차채은을 보다가 그녀의 머 리를 꽉 붙잡고 힘주었다.

    “ 아아.”

    “시원하지?”

    “응.”

    여러 생각과 걱정으로 가득한 차채은이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두피를 마사지한 최지훈이 방을 나섰고.

    차채은은 입을 삐죽 내밀고 방문을 응시하다가 다시 원고를 작성하였다.

    *

    【로버트 패트릭 교수, “사실무근. 악의적인 명예훼손.”]

    【소설가 해먼 쇼익, “차의 논리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 반성할 것.”1

    [평론가 댄 하디, “베를린 대학의 학부생이 치졸한 문장으로 음악인을 현혹하고 있다.”]

    [도요토미 류토 교수. “상식 이하의 수준 낯은 선동.”1

    【칼럼니스트 차채은. 유명세를 얻고 자 북미 평단을 모욕하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 결승전 과제가 발표된 이후로도, 미국과 유럽 일부 에서 차채은을 비난하는 기사가 하 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졌다.

    박사 학위 소지자, 교수, 소설가, 유명 평론가들이 돌아가며 아리엘 얀스를 의도적으로 실각시켰다고 주 장한 차채은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한 흐름은 이내 일부 1인 언 론인들에게 이어지며, 보다 저열한 방식으로 그녀를 압박해 왔다.

    그러던 중.

    차채은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 해 인기를 얻은 클래식 음악 평론가

    댄 하디가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차채은, 대가성 글 게시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였다.

    그 내용은 베토벤 기념 콩쿠르 2 라운드 결과가 명확히 밝혀졌음에도 차채은이 박준수, 제니 헤트니 등에 게 대가를 받고 글을 썼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그녀의 의도는 뻔하죠. 누가 봐도 심사는 공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박준수나 제니 헤트니에 대해 언급하는 걸 보면 뭔가 대가를 받았단 뜻이죠. 베토벤 기념 콩쿠르 의 심사위원들이 어떤 분들이십니

    까? 그런 분들이 파이널리스트가 더 뛰어났다고 평가했는데, 굳이 떨어 진 사람을 조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댄 하디는 차채은의 글을 심히 왜 곡하였다.

    박준수와 제니 헤트니도 훌륭한 음악가라는 말을, 심사가 공정하지 못 했다는 뜻으로 풀어냈다.

    음모론으로조차 분류할 수 없는 글 이었으나 인플루언서의 악의적 말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차채은뿐만 아니라 박준수, 제니

    헤트니도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지 만 제기된 의혹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들이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도, 서로 가 금전적 거래를 하지 않았단 방법 도 어찌 증명할 길이 없었다.

    차채은은 리드의 도움으로 고소 절 차를 밟았으나, 타국에 있는 그를 소환해 조사, 판결을 받기까지 얼마 나 걸릴지.

    하물며 그들의 국가에서 협조할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사건이 해결되는 시간이 지

    연될수록 차채은 본인은 물론, 박준 수와 제니 헤트니까지 큰 타격을 입 어야 하는 상황.

    ‘나 때문에.’

    그녀는 비로소 여러 사람이 우려했던 걱정이 무엇이었는지 절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정작 미안해할 사람은 따로 있음에도.

    차채은은 죄 없이 이러한 일에 말 려든 박준수와 제니 헤트니에게 무 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해줘 야 하는지 몰라 괴로웠다.

    지금까지 자신을 향한 악의적 비난

    속에서도 의지를 다졌던 차채은에게 그것은 첫 번째 시련이었다.

    본인뿐만이 아니라 관련된 사람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이 감 당키 힘든 일이었다.

    “정신 차려.”

    그럴 때.

    한이슬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앞으로 더한 일도 생길 거야. 지 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박준수랑 제 니 헤트니에게 사과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거잖아.”

    차채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신이 박준수, 제니 헤트니와 연관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모아 공개했고.

    리드와 몇몇 언론사가 그것에 호의 적인 기사를 등재하면서 차채은의 대가성 기사 등재 논란은 일단 가라 앉는 듯했다.

    그러나.

    한이슬의 말대로 시작일 뿐이었다.

    평론가들은 그들의 이권에 도전하는 이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북미 평론가 협회뿐만 아니라, 인 터플레이를 등에 업고 베를린 필하모닉과 최지훈을 공격해 매장당한 줄 알았던 유럽 쪽 언론인들도 나섰다.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기득권층에 아양을 부려 다시금 콩고물을 주워 먹을 심산이었다.

    그들이 개입으로 차채은을 향한 수 위를 넘은 비난은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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