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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63화 (463/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463화

101. 알아(2)

한이슬의 예상대로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서의 열기에 힘입은 차채은의 글은 많은 사람에게 호응을 얻었다.

타마키 히로시를 비롯해 콩쿠르에 참가한 이들이 얼마나 자신을 몰아 붙이고 노력했는지 깨달은 팬들은 박준수와 제니 헤트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녀가 평단 전체를 비판했다는 점이었는데 처음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글쟁이의 한풀이 정도 로 여겨 대응하지 않았던 평단도 사 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차채은의 글을 통해 음악 팬들이 평단을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ㄴ 솔직히 걔들 하는 게 뭐 있냐?

ㄴ 그러니까. 그냥 적당한 말이나 써대면서 교수랍시고 돈은 어마어마하게 벌대.

ㄴ 베토벤 콩쿠르 관련 글 대부분이 심사위원들 말 고대로 인용한 것들임.

ㄴ 다들 차채은 글 본 거야?

ㄴ ㅇㅇ. 근데 의도적으로 매장당한 음악가가 누군지 모르겠어.

ㄴ 아리엘 얀스.

ㄴ 확실해? 그 사람 안 좋은 이야기 많이 올라오던데.

ㄴ 그러니까 의도적이라는 거 아냐. 원래 음악계랑 평단이랑 상부상조하는 사이인데 그 일 이후로 좀 서먹 서먹하지.

ㄴ 마리 얀스는 진짜 대놓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는데, 북미 평 론가 협회는 걍 무시하는 중.

ㄴ 어차피 시장이 다르다는 거임.

ㄴ 사실 음악 주류가 북미랑 유럽이 이분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ㄴ 클래식이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주류 문화가 되기 전에는 북미 압승 이었음. 솔직히 그전에는 음악 유학 간다고 하면 무조건 미국이었잖아.

ㄴ 거기가 영화, 게임, 공연으로 얻는 수익이 훨씬 높기도 하고 음대도 그쪽이 훨 인정받았지.

ㄴ 인터플레이 이후 한번 물갈이 된 유럽이랑 북미 쪽은 완전 다름. 북 미는 그냥 고이다 못해 썩어버림.

ㄴ 연대도 잘 되어서 잘못 찍히면 매장당하기 일쑤임. 아리엘처럼 인 기 있는 사람이 그런 걸 당한 경우는 드물지만.

ㄴ 뭐야. 그러니까 진짜 아리엘이 의도적으로 공격당했다는 거네?

ㄴ 그런 의심이 가능하다는 거지.

그러나 모든 사람이 차채은의 뜻을 알아주지는 않았다.

글 게시 후 차채은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생겨났는데, 그녀가 증거도 없이 북미 평론가 협회를 비난했다는 내용이었다.

거기다 북미 평론가 협회의 회원 중 한 명이 날선 말로 차채은을 힐 난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 되었다.

“최근 우리 북미 평론가 협회를 향 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린 칼럼니 스트가 있다고 알고 있다. 알고 보 니 아직 대학도 졸업 못 한 어린애 의 말이라 대응할 가치를 못 느끼고 있다. 그녀의 교수는 그녀가 바른 길로 걷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른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척했으나 차채은의 글을 학사 졸업도 못한 학부생의 치기 어린 잡설로 가치 절 하하는 발언이었다.

그것을 접한 차채은도 가만있지 않았다.

근거 없는 비난이라는 말에 보란 듯이 지난 6개월간 북미에서 발표된 아리엘 얀스에 관한 평론을 분석한 자료를 게시하였다.

그것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아리 엘 얀스에 관한 모든 글이 변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만 명 가까이나 되는 사람이 어떻게 6개월간 하나의 논리로 한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미국 평론가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가졌나? 그럴 거면 뭐 하러 만 명 씩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아 직 대학 졸업도 못한 어린애는 모르겠네요. 가르침 좀 주세요, 박사님.”

차채은은 자신을 향한 무도한 발언을 잔뜩 비꼬았고 그것이 전쟁의 시 작이었다.

일본에서 취재를 하고 있던 한이슬 은 깜짝 놀라 차채은을 찾았다.

차채은은 그녀의 강력한 아군, ‘리 드’의 사무실에서 포도 주스를 마시 며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채은아!”

한이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차채은은 일본에 있어야 할 그녀를 의 아하게 보았다.

“어? 언제 왔어요?”

“언제 오긴.”

한이슬은 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는 리드의 편집장 미하엘 엔데를 보고 소리쳤다.

“편집장님!”

“한! 벌써 취재를 마치셨나 보군요. 반갑습니다.”

“네! 반가운데, 너무 놀라서 왔어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쓰게 하신 거예요? 어른이라면 말렸어야죠!”

한이슬은 차채은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녀 역시 평단의 더러움과 무가치 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지만 그들 과 맞서 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다져진 그들은 하나의 시장을 견고히 쥔 다수였다.

그 강력한 힘에 대항하다간 칼럼니 스트로서의 삶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실제로 아리엘 얀스와 같은 경우가 있었으니 더더욱 걱정할 수밖에 없

었고, 그것은 북미 평단에게도 민감 한 사안이었다.

만약 그들이 정말 의도적으로 한 음악가의 삶을 망쳤다면, 음악 팬들 이 가만있지 않을 테니 전력으로 차채은을 매장하려 들 터였다.

미하엘 엔데 편집장이 어깨를 으쓱 이며 고개를 돌렸다.

한이슬도 시선을 따르니 차채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부탁한 거야, 언니. 여기 말 고 다른 데는 안 내주겠다고 해서.”

“여기서도 내면 안 되지! 너 정말 무섭지도 않니? 그 사람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벌써 여론전 들어가서 너한테 안 좋은 이야기도 올라오고 있잖아.”

“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니? 결국에는 이 미지야. 너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 가 생기면 이미 되돌리기엔 늦어. 얀스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야?”

“알아. 왜 몰라.”

“얘가 정말?”

한이슬은 드물게 흥분하여 차채은 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차채은은 크게 반응하지 않

았고 한이슬은 겨우 차채은이 혹할 만한 말을 떠올렸다.

“그래. 배도빈도 그랬잖아. 개 짖는 소리에 반응하면 똑같이 개가 되는 거라고. 신경 쓰지 마. 네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차채은은 평소와 같이 답했다.

“그건 오빠가 음악가니까.”

“응?”

“그리고 난 평론가잖아.”

차채은은 한이슬을 통해 시야를 넓 힐 수 있었다. 그녀가 데리고 가주었던 학자들의 모임 ‘등대’를 통해 서 책임감을 느꼈다.

좋은 음악을 더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그것은 어렸을 적부터 배도빈과 최지훈의 음악을 사랑하고 그것을 부 모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첫 마음과 같았다.

그것은 차채은의 가슴속에 뿌리 깊게 뻗어 조금씩 하나의 신념으로 자 리 잡아 가고 있었다.

“좋은 음악이, 훌륭한 음악가가 알 려지지 못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 는데 어떻게 가만있어.”

한이슬은 차마.

그 순수한 의도를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위험한 길이었다.

어쩌면 정말 평단과 언론에게 짓눌 려 그 부조리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차채은이 말하는 바는 정 론이었다.

그것이 옳았다.

사회를 겪으며 타협해야 함을 깨달았던 한이슬은 이제 막 사회를 접하는 올곧은 정신에게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옳으니까.

차채은을 바라보던 한이슬은 고개를 돌려 그녀가 작성하고 있던 원고를 보았다.

파일명이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의 감독은 왜 사퇴하였는가’로 저장 되어 있었다.

한이슬은 차채은의 손을 잡고 얼굴을 가까이 했다.

“힘들 거야.”

차채은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다가 올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그것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녀가 각오를 다질 수 있었던 건 함께 자란 두 친구 덕분이었다.

배도빈과 최지훈.

두 사람은 음악을 하는 것이 힘들 지 않다고 부정한 적 없었다. 도리 어 쉽고 즐겁다는 말을 부정하는 쪽 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음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좋아하니까.

차채은도 마찬가지였다.

“ 괜찮아.”

그녀는 진심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좋은 음악을 널리 알리고 깊이 파 고들어, 그것을 타인과 교류하는 일 이 좋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진실되기에 한이슬에게 전달될 때도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한이슬이 차채은을 끌어안았다.

“뭐, 뭐야. 왜 그래.”

그녀 역시 각오를 마쳤다.

이 순수하고 올곧은 마음을 지켜내겠다고. 어느 누구도 꺾지 못하게

지키겠다고 마음먹었다.

배도빈은 심사위원들과 결승 과제를 정한 뒤 귀가하는 길에 차채은이 올린 글을 보았다.

그도 참가자들이 예상보다 우수하 고,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탈락 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아쉬워했기에 차채은의 말에 일정 부분 공감 하였다.

손녀처럼 생각하던 차채은이 이런 글도 쓸 수 있다는 점을 기특하게

여기던 중 차량이 숙소에 이르렀다.

“수고하셨어요. 오늘은 쉬고 싶으니 외부 연락은 연결하지 말아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서 죠엘 웨인과 인사 후 로비로 들어선 배도빈은 쉬고 싶은 마음뿐 이었다.

요 며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힘든 날이 반복되었고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 터였기에 오늘 저녁만 큼은 느긋하게 보내고 싶었다.

뜨거운 물로 씻고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자신의 교향곡을 들으며 혀

를 녹일 만큼 단 오렌지 주스를 마 실 계획이었다.

그런 뒤에는 침대에 누워 어떤 빛 도 소리도 나지 않는 공간에서 깊이 잠들 생각이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이자벨 멀핀 부장이었다.

배도빈은 방에 들어서면서 지친 목 소리로 전화를 귀에 가져갔다.

“네, 멀핀.”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잠시 통 화 가능하실까요?

“그럼요.”

배도빈이 최근 여러 일로 힘들었다

는 걸 모를 리 없는 이자벨 멀핀이 늦은 시간에 아무 용건도 없이 연락 할 리 없었다.

-이틀 전에 차채은 양이 올린 글 보셨습니까?

배도빈이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네. 들어오면서 봤어요. 무슨 문제 라도 있어요?”

-네. 제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보스의 지인이다 보니 걱정이 되어.

“걱정?”

-차채은 양에 관한 부정적 기사가 올라오는 중입니다. 북미 평론가 협 회는 노골적으로 그녀를 겨냥한 글

을 쓰고 있고요.

이자벨 멀핀의 말에 배도빈은 대수 롭지 않게 여겼던 일이 충분히 그렇게 번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차채은이 평단의 태도를 지적한 것 은 사실이었고, 그들이 자신들의 기 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더러운 짓을 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계속 해보세요.”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차채은 양이 언급한 아리엘 얀스 관련 일은 철저하게 보안받고 있어 누구도 발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걸 채은이가 건드린 거네요.”

-네. 그녀가 매수될 이유도 그들이 채은 양을 매수할 이유도 없었으니 까요.

“유럽 평단은요?”

-그들 역시 비슷한 일을 자행해 왔으니, 대서양 넘어 다른 대륙의 동족을 파헤칠 생각은 하지 않았죠. 도리어 인터플레이에 기생하고 있던 언론사가 기다렸다는 듯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배도빈은 이자벨 멀핀이 평소 쓰지 않는 단어를 사용함에 그녀가 얼마 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간 숨죽여 있다가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활로를 모색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린센 팀장은 차채은 양이 스스로의 글을 내리고 사과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배도빈은 이자벨 멀핀의 말을 들으며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과연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설 전이 오가고 있었다.

원색적인 비난까지 서슴지 않는 상 황에 배도빈은 기가 차버리고 말았다.

그는 그가 받아들인 이야기가 맞는

지 확인차 물었다.

“북미 평론가 협회가 아리엘 얀스를 의도적으로 실각시켰고, 채은이 가 그걸 지적하니 이렇게 나온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나요?”

-정확하십니다.

배도빈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이번 일은 이렇게 계속 보고해 주세요. 린센과 앙리는 이쪽 일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게 하시 고요.”

-바라신다면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알아봐 주기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배도빈은 생각을 정리 했다.

프란츠 페터와 타마키 히로시.

그 외에도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통해서 젊은이들의 저력을 확인한 배도빈은 그가 나서야 하는 일인가 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차채은은 분명 성장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대전부터 조금씩 이름을 알리더니 지금은 인터넷상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단이 이렇게 과민반응을 할 정도 로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가 된 것 이었다.

그런 차채은이 이번 일이 크게 벌 어졌음에도 배도빈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스스로의 행동에 확신이 있다는 뜻 이며 동시에 배도빈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언제 이렇게.’

배도빈은 그간 손녀처럼 귀여워하 고 친구처럼 지내고 학생처럼 가르 쳤던 차채은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대견할 뿐이었다.

‘달리 봐야겠지.’

예전 같았으면 나서서 도왔겠으나 지금은 지켜봐 주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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