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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54화 (45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54화

    99. 굴하지 않으리라(3)

    숙소로 돌아온 스칼라는 몇 시간 전 타마키 히로시의 안색이 좋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다음 과제를 위해서라도 빨리 나 아야지.’

    그는 아픈 친구에게 주려고 산 치 킨 스프를 챙겨 타마키 히로시의 방으로 향했다.

    “타마키.”

    문을 두드리며 친구를 불렀으나 타 마키 히로시는 나오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이상하네. 이 시간에 어디 갔을 리는 없고. 잠들었나?’

    스칼라가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고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든 그는 치킨 스프를 내려놓곤 배도빈의 방으로 달려갔다.

    “배도빈! 배도빈!”

    스칼라의 다급한 외침에 배도빈이 문을 열었다.

    스칼라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다소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배도빈은 그 모습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야.”

    “타마키가 반응이 없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아.”

    배도빈이 잠시 생각하다 이내 그러는 시간마저 아까워 실내화를 신은 채 타마키의 방으로 향했다.

    그도 스칼라와 같이 문을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었고 타마키에게 전화를 거니 안에서 핸드폰 울리는 소리가 났다.

    전화벨이 몇 번이 울려도 타마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많이 안 좋았어?”

    스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빈은 곧장 그의 비서 죠엘 웨 인에게 전화를 걸고 발을 옮겼다.

    -네, 보스.

    “차 대기시켜요.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갈 거예요. 사람 옮길 인원도 올려 보내세요. 407호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죠엘 웨인은 배도빈의 다급한 목소 리에 군말 않고 대답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배도빈과 스칼라는 1층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프론트로 달려갔다.

    “407호에 머무는 사람이 쓰러진 것 같아요. 문 열어주세요.”

    귀빈 중의 귀빈인 배도빈을 대한 호텔 직원은 난감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확인 절차 없이 다른 분의 방을 열어드릴 수는……

    “급해요.”

    직원이 난감해하며 우선 타마키의 방 407호에 내선 전화를 걸었으나 반응이 없었다.

    시스템을 통해 카드키가 꽂혀 있는 지 확인하려는데 배도빈이 테이블을 내려쳤다.

    “당장 열어.”

    직원이 안절부절못하고 다시 한번 내선 전화를 걸려는데 때마침 큰 소 리에 나온 팀장이 상황을 파악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마에스트로.”

    “내 직원이 방 안에서 쓰러져 있어. 당장 열어.”

    팀장이 직원에게 시선을 주었고 그는 체크 리스트를 보이며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을 진행하고 있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마에스트로, 확인할 사항이 많지 않으니 잠시만.”

    “부수기 전에 문 열어.”

    배도빈의 불 같은 성정을 모르지 않거니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팀장은 어쩔 수 없이 마스터키를 꺼내 407호로 달렸고 배도빈은 스 칼라와 대기하고 있던 베를린 필하모닉 소속의 경호원 둘과 타마키의 방으로 들어섰다.

    타마키는 화장실 문에 반쯤 걸쳐 쓰러져 있었다.

    “타마키!”

    스칼라가 깜짝 놀라 그에게 달려들었다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체온에 깜짝 놀랐다.

    “불덩이야.”

    배도빈의 입에서 까득 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옮겨요. 빨리.”

    경호원 중 한 명이 그를 들쳐업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로비에 도착한 배도빈에게 직원이 달려와 동의서를 들이밀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서명을 한 뒤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타마키 히로시는 배도빈의 도움으로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본 대학 부속 병원 응급실로 들어섰다.

    응급실 의사는 타마키 히로시의 상 태를 확인하곤 곧장 비번 중이었던 교수에게 연락.

    급히 불려나온 담당의는 말초혈액 검사와 골수검사를 실시하였다.

    그렇게 수 시간 후.

    타마키 히로시는 긴 검사를 마치고 무균실에 입원하였다.

    그사이 죠엘 웨인은 배도빈의 지시로 그의 가족들에게 타마키 히로시 가 쓰러졌단 사실을 알렸으며, 그들 이 본으로 올 수 있도록 가장 빠른 교통편을 예약해 주었다.

    보호자가 없는 탓에 배도빈이 그의 고용주이자 보호자 자격으로 타마키를 진단한 의사와 면담을 가졌다.

    “골수형성 이상증후군을 동반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입니다.”

    “••••••네?”

    배도빈은 귀를 의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어요.”

    의사가 검사 결과를 보며 신음하다 입을 열었다.

    “일본인인데 혹시 짐작 가는 일 없으십니까?”

    그 순간 배도빈의 머리를 스치는 일이 있었다.

    “최근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던 선수들에게서도 비슷한 일이 발발하고 있습니다.”

    “5년 전 일이……

    “보통 그때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죠. 5년에서 10년. 일본에 거 주했다면 2011년 이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다만 그것만 이 원인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죠.”

    충격적인 말이었으나 지금은 이유보다 해결을 우선해야 할 때였다.

    “치료. 치료 방법은 있겠죠?”

    “이식하는 방법이 있죠. 조혈모 세포 공여자가 없다면 관해유도 항암 요법이나 비다자 같은 방법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노력해 봐야죠.”

    배도빈은 의사가 치료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힘듭니까.”

    “현실적으로 그렇습니다. 이식을 한다 해도 생존율이 높지 않고 공여자가 없다면 더더욱 문제가 되죠. 더군다나 이 환자의 경우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죠. ……누구도 후 회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의사의 말은 회의적이었다.

    어떻게든 희망을 주고자 하나 결국 에는 절망적인 상황을 돌려 말하고 있었다.

    배도빈은 진료실을 나서서 대기석 에 앉아 타마키 히로시의 행동을 떠 올렸다.

    악보 뭉치를 들고 나타나 무작정 받아달라고 했던 그는 미숙했으나 열정만큼은 인정해 줄 만했다.

    어린이 타악 교실 강사로 있으면서 도 꾸준히 악보를 보여주어 귀찮게 했다.

    실력이 느는 속도는 느리고 타인을 혹하게 만드는 재주는 없었으나 돌 이켜보니 그 가혹하다는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서 8강에 들었다.

    '알고 있었나.’

    그는 이번 대회에서 무척 다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배도빈은 어쩌면 타마키 히로시가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다.

    대체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건지 온 몸이 뻐근하고 힘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영화에서나 보았던 환경. 온통 하얀 병실에는 가습기가 돌아가고 있었고 팔에는 바늘이 꽂혀 있다.

    결국엔 이렇게 되었구나.

    ‘멍청했어.’

    일본을 벗어난 뒤에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간 얼마나 멍청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해외에서는 연일 일본의 방사선에 대해 보도하는데 정작 일본에 살고 있던 나는 괜찮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멍청하게도 비상식적으로 높인 기 준점 이하라는 말을 믿고 아무 문제 없다고.

    그리 생각했다.

    그러고도 설마 괜찮겠지 생각하며 지냈거늘. 얼마 전,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 참가하기 며칠 전부터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애써 잊으려던 불안이 싹을 틔웠음 에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무서웠다.

    결국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면 서도 애써 부정했던 걸 보면 정말, 끝까지 미련한 놈이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콩쿠르.’

    순간 정신이 들어 왼손에 놓여 있던 버튼을 눌렀다.

    이내 의사와 간호사가 투명한 비닐 커튼 밖으로 모습을 보였다.

    “히로시 타마키 씨, 몇 가지 질문 부터 하겠습니다.”

    오랜 혼수 뒤에는 기억이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부터 한다고 어떤 책에서 본 것 같긴 하다.

    “ 그보다.”

    “네?”

    “콩쿠르. 콩쿠르는 어떻게 되었나요?”

    의사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 려 간호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 가 밖으로 나서자 다시 입을 열었다.

    “곧 가족 분들께서 오실 겁니다.”

    어머니도 오신 건가.

    이 꼴로, 무슨 면목으로 뵙지.

    “선생님, 씻는 건 되겠죠?”

    “히로시 씨, 지금은.”

    “부탁이에요.”

    의사의 부축을 받아 병실 안에 마 련된 세면대로 향했다. 며칠 누워 있었다고 야위고 꾀죄죄하다.

    얼굴에 물을 묻히고 양치를 했다.

    “면도 하고 싶은데요.”

    면도기를 찾으니 상처가 날 우려가 있다면 전동 면도기를 주었다. 한 번도 써 보지 않았는데, 깔끔하게 되진 않는다.

    그것만으로 지치고 말았다.

    머리도 감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적당히 넘기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달래고 입을 열었다.

    “이제 됐어요.”

    의사가 호출 버튼을 누르자.

    의사와 같은 복장을 한 두 사람이 들어섰다. 마스크까지 하고 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절대 흘리지 않으려던 눈물이 나오 고 말았다.

    손을 잡으시고 더듬더듬 손목과 팔꿈치 어깨를 지나 얼굴로 다가온 손.

    “타마기……

    어머니는 내 이름을 부르시곤 아무 말도 못 하셨다. 그저 흐느끼실 뿐.

    나도 어머니를 부르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베토벤 기념 콩쿠르 2라운드 두 번째 날이 저물었다.

    배도빈은 타마키 히로시가 정신을 차렸다는 소식에 급히 병원으로 향했고 특별히 면회 시간을 조정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타마키는 배도빈을 보며 웃었다.

    “배도빈이 날 위해 달려오다니 기분 좋은데?”

    어색함을 풀어보고자 한 농담이었으나 웃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때.”

    “아직은 잘 모르겠어. 괜찮아졌다가 다시 아팠다가 할 거래.”

    배도빈은 비닐 커튼 밖에 앉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신경 쓰지 마.”

    “어떻게 그러냐. 고맙다.”

    숨을 크게 내쉰 타마키가 다시 미소 지었다.

    “2라운드 과제는 뭐야?”

    “일주일 안에 곡 쓰기. 소나타 형 식에 맞춰야 해.”

    “이제 와서 새 곡을 쓰라고? 너무 하네.”

    배도빈이 어쩔 수 없이 씁쓸히 입 가를 올렸다.

    “지금부터 준비하려면 꽤 부지런히 해야겠어. 남들보다 이틀이나 늦었으니까.”

    배도빈이 눈썹을 좁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이제 5일밖에 안 남았다며.”

    타마키 히로시의 당당한 태도에 배도빈은 고개를 저었다.

    “치료부터 해. 그 몸으로 뭘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부탁 좀 하자. 나 여기서 곡 쓰게 해주면 안 될까?”

    “치료 들어가면 제정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낫기만 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배도빈의 거듭된 설득에 타마키 히 로시가 잠시 입을 닫고 그를 바라보았다.

    간격을 길게 두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힘들다는 거 알잖아.”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야.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으면 걸어야지.”

    “어머니랑도 불일치라고 들었어.”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대잖아.”

    “이식 말고도 방법이 있다고 했어! 여기서 안 되면 사카모토가 입원했던 곳으로 가면 돼. 사카모토도 죽 는다고 했는데 지금 잘 살고 있잖아.”

    타마키 히로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닌 거 알아. 오전에 어머니하고 같이 들었어.”

    “부탁해.”

    배도빈이 답하지 않자 타마키 히로 시가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설마 벌써 실격된 건 아니지?”

    배도빈은 또다시 답하지 않았다.

    타마키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제발. 나 나가고 싶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그 몸으로 뭘 하겠다는 거야.”

    “할 수 있어. 사카모토 료이치도 병실에서 곡을 썼다며!”

    “ 너는!”

    배도빈이 말을 삼켰다.

    사카모토 료이치는 시간을 두고 점 차 악화되었으나 타마키 히로시의 경우는 달랐다.

    그야말로 급성.

    그가 알고 있는 대로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서, 어쩌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차마 그 사실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타마키 히로시도 배도빈이 무엇을 말하려다 참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 시간이 없어.”

    시계가 도는 소리만이 남았다.

    배도빈은 장래가 유망한 동료 음악가의 바람을 들어줘야 하는지, 아니 면 그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모 두 시도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하고 싶다고.”

    배도빈은 잠긴 목소리가 겨우 전하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음악. 하고 싶다고.”

    타마키가 침을 삼켰다. 그 행위조차도 큰 고통이었다.

    “그러니까 남은 시간만이라도. 사람들 앞에 들려줄 수 있게 해줘. 부 탁이야.”

    “너라도 그럴 거잖아.”

    타마키의 말에 배도빈은 2세기 전을 떠올렸다. 죽기 직전에도 악보를 곁에 두고 있었던 당시의 마음을 너 무도 잘 기억하고 있었기에.

    결코 잊을 수 없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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