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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48화 (448/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448화

98. 아무도 당신을 알아주지 못한 다고 생각할 때(2)

시청자들은 배도빈의 예상이 빗나 가자 그도 틀릴 때가 있다며 즐거워 했다.

촬영진과 심사 위원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영문을 모르는 타마키 히로 시는 그저 긴장한 채 서 있을 뿐이었다.

‘뭔지 몰라도 최선을 다했어.’

심사에 앞서 우진이 두 번째 과제 의 심사 방식을 설명했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 1라운드 두 번째 과제의 첫 제출자가 나왔습니다. 심사는 지금까지와 같이 실시간으로 진행됩니다. 각 위원마다 최소 1점에서 최대 10점까지, 60점 만점을 기준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상위 여덟 명만이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됩니다.”

카메라가 심사 위원들을 비추었다.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이들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 영광의 우승으로 향할 수 있을지! 타마키 히로시 씨, 악보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마키는 우진의 안내에 따라 보조 요원에게 악보를 전달하였다.

곧 심사 위원들에게 타마키의 악보 가 전달되었고 함께한 피아니스트도 세트장에 마련된 피아노 앞에 자리 했다.

“첫 번째로 제출하셨죠. 베를린 필하모닉 어린이 타악 교실 강사, 타 마키 히로시 씨의 곡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타마키 히로시는 함께한 피아니스트가 부디 실수 없이 연주해 주길 바랐다.

그것은 그가 미처 생각지 못한 일 이었는데, 곡을 빨리 완성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것을 연주하는 일도 문제였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다급한 나머지 파트너에게 연습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한 그는 차라 리 조금 늦어지더라도 연습 시간을 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또는 직접 연주할 수 있었으면 어 땠을까 싶었다.

‘손만 괜찮았다면.’

한때 그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웠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그때의 사 고만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순간 가장 만족스러운 연주를 할 수 있었을 거 라 생각했다.

‘아니야.’

타마키는 고개를 저었다.

손을 다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도요토미와 일본 협회가 준 명성과 인기를 자신의 실력으로 얻었다고 착각했을 터.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다.

타마키는 차라리 지금이 낫다고 판 단했다.

비록 무명이나 다름없어졌으나 그 사고를 당했던 덕에 지난 몇 년간 충실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후회는 충분히 했어. 지금은, 시간 이 너무 아까우니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금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타마키 히로시는 천천히 연주되기 시작한 자신의 곡을 들으며 배도빈을 바라보았다.

이 시대 모든 음악인의 목표이자 기준.

‘배도빈.’

타마키는 그와 같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있고 자신에겐 없는 것이 무엇일까 매일, 매시간 고민했다.

처음에는 그저 재능의 차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지켜본 그는 재능이 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매일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하여 깊은 밤이 되어서야 깃펜을 놓는 그에 게 재능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현존하는 그 어떤 음악가보다도 배도빈 앞에서 천부적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없음에도.

타마키의 눈에 배도빈의 힘은 하늘 이 내려준 무엇으로 비치지 않았다.

집착. 혹은 열애.

이미 수많은 곡을 성공시켰음에도 배도빈은 만족하지 않았다.

호사가들에게 신이나 마왕으로 불리고 새 시대의 선지자로 추앙받으면서도 만족할 줄 몰랐다.

완벽한 음악을 갈구하여 대중을 놀라게 했으나 매번 전과 다른 모습으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들려주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향한, 완벽한 음악을 향한 집착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타마키는 그런 배도빈이 부러웠다.

그의 재능보다 끝을 모르고 나아가는 열정을 닮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아.

얼굴과 이름을 가려도 단번에 누구 의 음악인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확고한 정체성을 지닌 그를 닮고 싶었다.

그 어떤 일을 겪어도 음악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자신을 잃지 않는 강인함을 얻고 싶었다.

타마키의 상념이 끝나갈 즈음, 그 의 파트너가 연주를 마쳤다.

“ 흐음.”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뜸을 들이 고는 입을 열었다.

“조급하군.”

타마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멜로디도 반주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전개다. 다른 참가자들과 차이를 두기 힘들 거라 판단했나?”

“그렇습니다.”

타마키 히로시가 무겁게 입을 열었고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솔직하군.”

“감사합니다.”

“약점을 드러내는 것보다 멍청한 일도 없지.”

“주제를 잘 알고 있죠.”

이번에는 살짝 웃으며 답했다.

토스카니니는 고개를 살짝 틀며 그 런 타마키를 노려보았다.

어디 한번 계속 떠들어보라는 행동 에 타마키는 의지를 다지며 침을 삼켰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단시간에 꺼낼 재주는 없습니다. 그것에 매달리기엔 시간이 아까워, 강점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강점?”

“네. 짧은 시간 안에 제 파트너가 온전히 연주할 수 있게 신경 썼습니다. 멜로디와 반주는 단순하지만 박자와 강세로 힘을 주었고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타마키를 꿰뚫기라도 하려는 듯 노려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자네 말대로 주제를 잘 알고 있군. 7점.”

토스카니니가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렸다.

틀림없이 적은 점수를 받을 것 같았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시청자들이 여러 반응을 내었고 그 사이, 토스카니니의 왼편에 자리한 마리 얀스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본인이 인정한 대로 특출 한 부분은 없었습니다만 기본에 매 우 충실한 악보로군요. 단순하긴 해 도 이 짧은 시간에 훌륭한 연주가 가능할 만큼 말이죠.”

마리 얀스가 타마키의 파트너에게 눈길을 주었다.

피아니스트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숙여 긍정했다.

“연주하는 사람이 작곡가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악보입니다. 멜로디에 집중하기보단 단순 한 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주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군요. 그것도 짧 은 시간에.”

마리 얀스가 빙그레 웃었다.

“8점 드리겠습니다.”

고득점이었다.

타마키 히로시는 침과 함께 들뜬 마음을 애써 삼켰다.

배도빈이 막 입을 열기 시작한 탓 이었다.

“작년이었던가요? 무작정 악보를 가지고 찾아왔던 게.”

“그렇습니다.”

배도빈은 악보를 살피다가 이내 그 것을 정리해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때 보았던 타마키 히로시의 절박함을 떠올렸다.

복도에 흩어진 악보를 허겁지겁 추 스르는 그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배도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토스카니니와 마리 얀스가 평했던 대로 멜로디는 단순하나 기본에 충실하며 연주자에 대한 배려도 엿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알 수 없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전과 달리 핵심을 짚을 줄 알게 되었네요. 강세 사용에 능숙해 연주에 리듬감이 더해지고요. ……아직 젊은 타마키 씨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궁금해지네요.”

배도빈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자신의 단점과 장점을 명확히 파 악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만 단점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죠. 장점을 살리되 부족한 점을 채우려 해보세요. 당신과 같은 열정이 있다면 언 젠가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타마키 씨는 너무 조급해 보여요.”

“감사합니다.”

“5점 드리겠습니다.”

배도빈에 이어 푸르트벵글러가 6 점, 사카모토 료이치가 7점, 브루노 발터가 5점을 부여했다.

총점 38점.

시청자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ㄴ 점수 너무 짜다;;

ㄴ 그러게. 첫 번째 과제 통과자면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라는 건데 60점 만점에 38점밖에 안 됨.

ㄴ 심사평하고 비교하면 적당히 나온 거 같은데?

ㄴ 첫 번째라서 점수 기준이 될 수도 있음. 심사 위원들도 신중하게 줘서 낮게 보일 수도 있지.

ㄴ 도빈이랑 브루노 발터 5점이 크다 ㅠ

대부분 점수가 너무 낮다는 의견이었지만 첫 평가였기에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를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타마키 히로시 역시 나쁘지 않은 점수라 생각하며 식은땀을 훔쳤다.

‘됐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야.’

일반적인 콩쿠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참가자와 심사 위원.

타마키는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가능성을 첫 번째 평가를 받는 것으로 보았다.

상위권을 상대로 자신이 없었기에 차라리 평가 기준이 되는 편이 나으리라 판단했고 그것을 위해 단순하 지만 완성도 있는 악보를 만드는데 전력을 다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 그래서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을 수 있게. 꼭.’

타마키는 간신히 참았던 구토감을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쳐갔다.

최지훈은 연주회를 마치자마자 대기실로 향해 ‘거장의 선택’을 틀었다.

그러나 이미 거의 끝나가는 것을 확인하곤 아쉬워했는데, 조금 남은 분량이라도 보며 넥타이를 풀었다.

이미 참가자의 곡 발표는 끝났고 토스카니니의 심사평이 나오고 있었다.

-조급하군. 멜로디도 반주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전개다.

그때 공연 기획을 맡았던 남자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미스터 최! 오늘도 최고였어요.”

“아,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최의 쇼팽을 듣고 싶은 이 들이 줄지어 있으니 내일도 잘 부탁 드릴게요.”

“그럼요.”

최지훈과 공연 기획자가 악수를 나누었다.

-약점을 드러내는 것보다 멍청한 일도 없지.

토스카니니의 목소리를 들은 기획 자가 테이블 위에 놓인 최지훈의 핸드폰을 확인하곤 웃었다.

“거장의 선택이군요. 저도 재밌게 보는데 저분과 푸르트벵글러는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도빈이도 합류했으니 더 대단해질 거예요.”

“하하! 그 맛에 보는 거죠. 오늘 분량 VOD가 올라오면 맥주 한잔하 면서 봐야겠습니다.”

최지훈이 싱긋 웃으며 거장의 선택이 나오고 있는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저런 말 들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쇼팽과 차이코프스키에서 우승하신 최에게 어느 누가 저렇게 말할 수 있겠어요.”

기획자의 반응에 최지훈이 씁쓸히 웃었다.

“가끔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 하는지 듣고 싶어요. 지금 저를 판단하는 건 저뿐이니까요.”

“전 유럽이 비르투오소 최에 열광 하고 있는데요? 평단에서도 칭찬하기 바쁘더군요.”

“그러게요.”

적당히 대답했지만 최지훈은 진실 로 저들이 부러웠다.

부상 끝에 바라던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더욱 멋진 연주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배도빈은 그에게 조언하지 않았고 스승 크리스틴 지메 르만도 손이 나은 뒤로는 묵묵히 응 원할 뿐이었다.

이미 그의 연주가 완성된 탓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동시에 지금 최지훈의 가장 큰 불만이기도 했다.

‘여기까지일 리 없어.’

최지훈은 분명 더 높은 곳이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나비와 함께 더욱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누군가 따끔하고 엄격하게 자 신을 바라봐 주길 바랐다.

-5점 드리겠습니다.

그때 배도빈이 심사평을 마쳤다.

최지훈은 타마키 히로시의 득점에 깜짝 놀랐다.

“도빈이가 5점이나?”

목소리가 컸던 탓에 함께 거장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던 기획자도 덩 달아 놀라고 말았다.

“무, 무슨 일 있나요?”

“아, 도빈이가 5점이나 줘서 놀랐나 봐요.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별말씀을.”

최지훈이 영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하자 기획자가 손을 저으며 별 일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그보다 최지훈이 그렇게까지 크게 반응한 이유가 더 궁금했다.

“5점이면 다른 심사 위원에 비해서 도 낮은 점수인데, 그렇게 놀랄 일 인가요?”

“네. 어렸을 땐 도빈이가 점수를 주곤 했거든요.”

“그거 궁금한데요. 미스터 최라면 분명 9점 이상 받으셨겠죠?”

“하하. 그럴 리가요. 처음에는 6점 이었어요.”

“그래도 저 친구보단 높군요.”

“아뇨. 백점 만점이었으니까요.”

최지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턱을 당기고 눈을 크게 뜬 기획자를 보며 웃었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는 50점을 넘겨본 적 없어요. 저 사람, 아마 예전엔 피아니스트였던 걸 로 기억하는데 정말 많이 노력했나 보네요.”

최지훈은 타마키 히로시라는 이름을 다시금 기억하며 짐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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