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47화 (44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47화

    98. 아무도 당신을 알아주지 못 한다고 생각할 때(1)

    베토벤 기념 콩쿠르 4일 차.

    첫 번째 과제를 훌륭히 통과했지만 참가자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두 번째 과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배도빈까지 심사 위원석에 합류한 탓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나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진행자 우진이 그에게 다가갔다.

    “프란츠 군,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나 보네요.”

    “아, 아, 그, 네.”

    프란츠 페터는 자리에 앉은 채 몸을 오들오들 떨고 이를 딱딱 부딪칠 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많이 긴장한 것 같은데 숨을 크게 마셨다가 내쉬어 보세요. 그렇죠.”

    우진이 그를 다독이며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프란츠도 숨을 고르니 다소 진정 되어 인터뷰에 응했다.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과제를 통과한 분 들을 상대하기 부담스럽기도 하 죠?”

    “네. 니아 고문님도 파울 악장님도, 아니, 파울 님도. 찰스 악장님 도레이라 씨도 정말 대단해요.”

    “하지만 프란츠 군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습니다. 마에스트로 배도빈의 제자라는 점 때문에 화제가 되고 있잖아요?”

    “형에게 배우고 있다는 걸 많은 분들이 부러워하시기도 하고 저도 과분한 일이라 생각해서……

    “아. 그래서 더 부담일 수도 있겠네요.”

    프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은 이 어리고 재능 있는 참가자가 힘을 내기 바라며 물었다.

    “오늘부터는 스승 배도빈 씨도 심사 위원으로 참가하니 그런 부담을 좀 덜 수 있지 않을까요?”

    우진이 질문을 끝마치기도 전에 프란츠가 몸을 격렬히 떨기 시작했다.

    어찌나 무서워하는지 인터뷰를 하기 전보다 상태가 더욱 심각해 보였다.

    우진과 시청자들이 보는 그대로 프란츠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고집이야? 이렇게 해 선 주 멜로디가 죽는다고 했잖아.’

    ‘페터, 코드로만 진행하지 말라고 했지. 감각에만 의지하면 균형이 무너진다고 했잖아. 책 펴.’

    ‘멋진 음악을 만들려면 여러 소리를 알고 있어야 해. 저기 있는 것 중에 적당한 거 가져와 봐.’

    ‘작곡할 때 악기에 의지하지 마. 피아노가 없어도 네 머릿속에서 선율이 들려야 해.’

    “ 아다다다다다.”

    프란츠가 다시 오돌오돌 떨었다.

    배도빈의 혹독한 과외를 떠올리 면저도 모르게 나오는 반응이었다.

    선생으로서의 배도빈은 무척 엄 했다.

    천재 프란츠 페터조차도 그가 바라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죽 을힘을 다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조목 조목 잘못된 곳을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들어야 했다.

    차라리 두들겨맞고 욕을 먹고 싶었다.

    ‘때리고 혼내면 네가 이걸 이해 해? 쓸데없는 말 치우고 다시 봐.’

    그럴 때마다 페터는 배도빈의 설 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멍 청함을 저주하며 싹싹 빌기까지 했다.

    ‘죄송해요. 형. 꼭 공부할 테니까 이제 제발 주무세요. 피곤하시잖아요.’

    ‘네가 이걸 못 이해했는데 잠이 올 것 같아? 이럴 시간 없어. 자, 3도 화음이 이렇게 배치되면 소리

    가 좀 더 안정적이지?’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하고 있는 배도빈이 자신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하는 상황.

    어린 페터는 그것이 가장 두려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동시에 배도빈에게 강습, 평가 받을 때마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페터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우진은 계속해서 다른 참가자들과 인터뷰를 나누었고 마침내 심사 위원들도 세트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 있는 전설들을 차례로 비추 던 카메라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과 비견되는 최고의 음악가를 마지막으로 화면에 담았다.

    ㄴ 그냥 지구방위대 수준이네.

    ㄴ 웃긴 게 역사고 나발이고 이제 겨우 세 번째 개최된 콩쿠르가 제일 권위 있어 보임 ㅋㅋㅋ

    ㄴ 심사 위원 하드캐리 ㅋㅋㅋ

    ㄴ 배도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마리 얀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사카모토 료이치. 저기에 누가 더 들어가도 욕먹을 듯.

    ㄴ 제르바 루빈스타인이나 엘가르 데를도 들어갈 만하지 않나?

    ㄴ 둘 다 대단하지만 솔직히 저 여 섯 명은 작곡, 지휘, 연주 분야에 모두 정통하잖아. 애초에 네임밸류도 차이가 좀 크고.

    ㄴ 르블랑지에서 조사한 건데 각 연 도별 가장 인기 있었던 악단이랑 지휘자에 대한 자료임.

    ㄴ 1980년대는 토스카니니(31.8%), 1990년대는 푸르트벵글러(37.0%), 2000년대는 마리 얀스(30.4%), 2 010년은 브루노 발터(45.8%), 20 20년대는 배도빈(66.6%)0| 집권했네.

    ㄴ 그냥 인기 투표잖아. 누가 1등이 냐는 질문에 꼽힌 사람 정리해 둔 표인 듯.

    ㄴ ㅇㅇ. 아무튼 저 여섯 명이 50년 가까이 해먹고 있다는 건 맞음.

    ㄴ 배도빈이랑 브루노 발터 수치 뭔 뎈ㅋㅋㅋㅋ

    ㄴ 브루노 발터는 인터플레이뽕을 좀 많이 받았었지. 결국엔 손절했지만.

    ㄴ 원래부터 안 친했음. 그때 제임스 버만이 내정 간섭 심하게 해서 발터랑 토스카니니 두 사람 모두 결국 재정 독립했음.

    ㄴ 근데 진짜 배도빈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수백 명의 지휘자 중에서 3 할 이상 득표한 다른 사람도 대단하 지만 배도빈은 2/3가 인정하네.

    ㄴ 오케스트라 대전 우승 때문에 더 그럴걸?

    ㄴ 저 수치를 그대로 믿어선 안 되는 게, 토스카니니가 31.8퍼센트 득 표했을 때 2등이 푸르트벵글러였고 29퍼센트였음. 사카모토 료이치랑 배도빈 제외하고 네 사람은 항상 1~4등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배도빈이 66퍼센트 이상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랑은 좀 다름.

    ㄴ 사카모토 료이치는?

    ㄴ 저거 기준이 오케스트라랑 지휘잖아. 사카모토 료이치는 최근에야 빈 필하모닉으로 복귀했고. 원래 작곡가로 활동하는 사람이라서 저런 조사에는 불리함.

    시청자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 진행자 우진은 오늘의 과제를 소개하고 있었다.

    “엄격하고 공정한 과정을 통과하신 참가자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그러나 2라운드에 진출할 사람은 단 여덟 명뿐. 오늘은 과연 어떤 과제가 여러분을 기다 리고 있을지, 오늘부터 심사 위원 단에 합류해 주신 마에스트로 배도빈께서 소개해 주시겠습니다.”

    우진이 배도빈을 소개하자 참가자들이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과연 그가 어떤 과제를 낼지.

    어떻게 하면 이 혹독한 심사 위원단의 마음에 들지 머리가 복잡 했다.

    무대로 나선 배도빈은 참가자들을 둘러보곤 피아노 앞에 앉았다.

    ‘ 뭐지?’

    ‘뭘 하려는 거야?’

    참가자들 모두가 잔뜩 긴장하여 마른침을 삼킬 무렵.

    배도빈이 건반을 눌렀다.

    솔시레, 라도井미.

    G코드와 A코드.

    배도빈이 의자에서 일어났기에 참가자들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 졌다.

    배도빈이 입을 뗐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이 주제를 가지고 3분 이상의 완성된 곡을 만드셔야 합니다.”

    참가자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너무나 단순한 주제를 던져주고 곡을 만들라는 것은 악상 전개력을 시험하겠다는 뜻.

    주제음이 같기에 비슷하게 들릴 테니, 어떻게 차이점을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치겠네.’

    ‘이런 심사방식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메이저 코드가 얼마나 많이 활용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 새 곡을 만들라는 심보는 대체 뭐야.’

    ‘이렇게? 아냐. 다들 똑같이 생각 할 거야. 어떻게 풀지? 아, 돌겠다.’

    참가자들이 혼란스러워할 때.

    배도빈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기한은 내일 이 시간까지. 완성 한 사람은 언제든지 그 즉시 심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참 가자들은 각기 따로 배정된 방에 서 나올 수 없습니다.”

    “ 네?”

    참가자들 일부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이런 방식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하루 만에 곡을 만들라니.”

    시청자들도 참가자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채팅창이 2차전 과제가 가능하냐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에 서 배도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 과제가 무엇을 평가하기 위한 일인지 납득할 수 없는 분이라면 돌아가도 좋습니다.”

    단호했다.

    과제의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한 다면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 남아 있을 자격이 없다는 뜻.

    레이라라는 가면을 쓴 아리엘 얀 스는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특색 없는 주제로 곡을 만들라는 말은 발상력을 보겠다는 뜻이고.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라는 뜻은 정체성을 보겠단 말이지. 쉬운 일이지만 문 제는 시간 제한. ……먼저 완성해 서 제출하느냐, 아니면 정해진 시 간을 최대한 활용하느냐의 싸움이겠어.’

    아리엘은 가면 뒤에서 웃었다.

    ‘재밌는 생각을 했군. 마왕이여.’

    너무나도 많은 작곡가가 활동하는 현재.

    범람하다시피 쏟아지는 신곡들에 그야말로 클래식 음악의 전성기가 도래한 듯싶지만 빛이 밝은 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수많은 문제 중에서 작곡가로서 의 삶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문제는 바로 표절시네.

    양심 없는 이들이 훌륭한 곡을 멋대로 가져다 쓰기도 하지만 개 중에는 우연한 결과도 있었다.

    발표가 늦어서 생기는 일.

    지금과 같이 너무나 많은 곡이 발표되는 시장에서는 ‘먼저 발표’하는 것조차 능력일 수 있었다.

    ‘시간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나 만의 곡, 그 누구도 만들지 못하는 곡을 만들면 아무 문제 없다.’

    아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운영 위원으로부터 안내받아 작업실로 향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작업실로 향하는 ‘레이라’를 보고 몇몇 참가 자가 따라가듯이 작업실로 향했다.

    항의하던 참가자 일부도 어쩔 수 없이 작업실로 향했다.

    의문을 제기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니, 참가자들은 조금이라도 서두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우진이 나섰다.

    “곡을 완성하신 분은 언제든지 이 곳 세트장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최종 기한은 내일 오전 10시! 단 1초라도 늦으면 그 즉시 실격처리 됩니다.”

    “으아아아.”

    프란츠 페터가 허둥지둥 작업실 로 향했고 타마키 히로시는 이미 발빠르게 개인 작업실에 들어서 준비되어 있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신시사이저를 확인했다.

    니아 발그레이, 찰스 브라움, 파 울 리히터의 얼굴에서도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ㄴ 와, 뭐지? 정말 저게 가능해?

    ㄴ 그러게. 진짜 하려는 건가?

    ㄴ 안 하면 탈락인데 당연히 해야지 ㅋㅋㅋㅋ

    ㄴ 엄청 당황스럽겠다. 갑자기 곡을 만들라니. 나 같으면 진짜 멘붕 올 듯.

    ㄴ 뭐야. 그럼 오늘 방송 이대로 끝 이야? 아직 방송 시간 한참 남았는데?

    ㄴ 아, 심사 위원들이 작업실 돌아 다니면서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물 어보네.

    ㄴ 내가 보기엔 저거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누가 더 빨리 만드냐도 일 일 듯.

    ㄴ 왜?

    ㄴ 다른 참가자랑 비슷하면 망하니까. 애초에 저런 대회에서 특색 없다는 건 경쟁력이 없다는 말이랑 같잖아.

    ㄴ 최소 반년 이상 준비한 곡으로도 수십 명이 탈락했는데, 하루 만에 저 심사 위원단을 만족하는 곡을 만들어야 하다니.

    ㄴ 장난 없다. 진짜.

    ㄴ 아, 시간도 없는데 왜 저래 ㅠ

    개인 작업실을 방문한 토스카니니는 계획이 없다는 참가자의 말에 노성을 터뜨렸다.

    “지금 계획이 없다고! 약속된 날짜에 앨범을 내야 할 때도 음반사에게 그런 말을 할 셈이냐!”

    토스카니니뿐만 아니었다.

    푸르트벵글러와 마리 얀스, 사카모토 료이치, 브루노 발터, 배도빈 역시 허둥지둥하는 참가자들에게는 호통을.

    계획을 설명하는 사람들에게는 방향성을 더욱 잡아주기도 하며 독려했다.

    그렇게 1시간이 흐르고.

    우진은 세트장으로 돌아온 심사 위 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느 참가자가 통과할 수 있을까요?”

    “니아 발그레이가 인상적이더군.”

    “그랬죠.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했으니까요. 비슷한 곡이 나올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 점에서는 파울과 레이라도 마찬가지였죠.”

    심사 위원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나눌 때, 배도빈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니아와 파울은 신중해. 최대한 시간을 활용해 멋진 곡을 만들 테고. 문제는 페터겠지.’

    배도빈은 프란츠 페터의 재기발랄함을 도리어 걱정했다.

    ‘감각에 의지하는 덕에 곡은 금방 만들 수 있지만 수정에만 반년이 걸렸어. 충분히 생각하면 좋으련만.’

    그러나 잔뜩 긴장한 프란츠 페터가 실수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했다.

    ‘잔뜩 떨고 있던데. 이제 와서 대체 뭐 때문에 긴장하는 거야?’

    배도빈이 걱정하고 있는 사이, 우진이 그에게도 질문했다.

    “마에스트로 배, 어느 참가자가 먼저 제출하시리라 보십니까?”

    “……프란츠 페터요.”

    “하하하. 제자 사랑이 각별하시네요. 프란츠 군은 평소에도 곡을 빨리 만드는 편인가요?”

    “아뇨. 이번 참가곡을 만드는데 수정만 반년이 걸렸죠.”

    “수정만 반년이라. 그럼에도 가장 먼저 제출할 것으로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있나요?”

    “발상이 뛰어나요. 그럴 듯한 음을 서랍에서 꺼내듯 만들어내죠. 아마 이 대회 안에서도 그것만큼은 가장 뛰어날 거예요.”

    “좋은 멜로디를 금방 만든다니 정말 대단한데요?”

    “네. 신중하라고 가르쳤지만, 상당히 긴장한 것 같아 자기 버릇대로 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역시 스승이라 그러신지 프란츠 군을 잘 파악하고 계시네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죠. 이번 과제의 뜻을 잘 이해했다면 충분한 시간을 들일 겁니다. 니아 고문이나 리히터처럼.”

    “그에 반면 프란츠 군은 다급한 나 머지 과제의 의미를 생각지 못할 테고 곡을 빨리 만드니 첫 번째로 나올 거라 예상하셨고요.”

    “그렇습니다.”

    “상당히 엄격한 평을 해주셨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에스트로 배도빈은 프란츠 페터 군이 가장 먼저 나올 거라 예측하였습니다. 과연.”

    우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거장의 선택’의 촬영 스태프 중 한 명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첫 발표자가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따라붙은 카메라에 타마키 히로시의 모습이 담겼다.

    우진이 그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배도빈을 보았다.

    그가 눈을 깜빡이며 읊조렸다.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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