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46화 (44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46화

    97. 격정의 세대를 말하며(3)

    “한때는 잘 될까 걱정하기도 했지 만 참가자들의 수준을 보니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

    “하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과 연 이 많은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여간 걱정이 아니었는데, 첫 번째 과제를 통과한 이들 모두

    높이 평가받을 만합니다.”

    “미스터 배가 왜 이런 콩쿠르를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요. 레이라 와 프란츠 페터와 같은 이들이 여태 무명이었다니 말이죠.”

    “니아 발그레이와 파울 리히터까 지 합류하면서 참가자들의 격도 높아졌고요.”

    “껄껄. 설마 설마 했는데 찰스 브라움이 오랜만에 작곡에 손을 댄 것도 놀라운 일이었죠.”

    “흐음. 정말 응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각각의 사연이 있으니까요. 운영 위원으로서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겠지만 저는 미스터 배의 제자, 프란츠 군에게 마음이 가더군요.”

    “확실히 레이라와 함께 이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지요.”

    1라운드 첫 번째 과제가 모두 종 료된 뒤의 저녁 만찬회.

    모두 페터의 곡에 감격한 듯하다.

    당연한 결과.

    예상 밖의 인물들이 참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페터의 ‘마왕’이 제 평가를 받지 못할 리 없다.

    탁월한 발상에 전개는 두말할 필 요도 없이 훌륭하다.

    단 하나의 우려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을 듯하다.

    ‘좋은 일이야.’

    첫 번째 과제를 지켜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걱정과 달리 이번 콩쿠르에는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정말 많이 함께하고 있었다.

    앞서가면서 겪을 외롭고 괴로운 경험을 조금이나마 늦춰주고 싶었는데 참으로 잘 되었다.

    고생깨나 할 테지만 이것으로 페 터도 좀 더 분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경쟁과 목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경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명확한 목표를 둔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다.

    그저 더 나은, 아름다운, 멋진 음악을 생각하면 될 뿐이니까.

    그런 점에서 페터는 이 콩쿠르를 통해 내게서 벗어나 여러 음악을 접할 것이다.

    콩쿠르의 결과가 나올 즘에는 고 유한 이야기를 본인만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방법을 깨달았으면 한다.

    그런 과정 없이 선두에 서게 되면 초조해지거나 안일해져서 음악 가로서의 삶을 망치게 되니까.

    선두.

    남들보다 앞선다는 말은 곧 뒤따라 오는 이들의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다른 이들의 목표가 되어 분석당 하고 비난받기도 하면서 끝끝내 추월당하기도 한다.

    그 누구도 영원히 정상에 있을 순 없다.

    그럴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 이 정체성.

    나는 이번 대회를 통해 페터가 그것을 찾길 바란다.

    이미 지니고 있는 탁월한 감각이 나 발상,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얼 마든지 익힐 수 있는 기술적 능력 보다 중요한 정체성을 말이다.

    본인이 누구고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다른 음악가와는 무엇이 다른지 자각하게 된다면 분명 어 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 이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자신보다 뛰 어난 음악가를 시기하고 질투한다.

    또 본인이 최고에 위치해 있어도 불안해한다.

    ‘자신’이 없어서다.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를 만 들고 누군가 물은 적 있었다.

    피아니스트로서 가우왕에게 추월 당한 것이 분하지 않냐고.

    다시금 그와 경합을 벌일 생각은 없냐고.

    ‘경쟁’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 이 들에게나 허용되는 질문이라 무시 했는데, 한 가지만은 사실이다.

    분명 지금의 나로서는 가우왕과 같은 연주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와 나의 우위를 가를 순 없는 일이다.

    그는 대단하고, 나는 그와 같은 연주를 못하며, 가우왕도 나와 같은 연주를 하지 못한다.

    가우왕도 그것을 알기에 내게 재 차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정체성을 확립한 음악가들 사이 의 경쟁은 무의미하다.

    사카모토 료이치와 푸르트벵글러 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음악가들이 나를 시기하지 않는 이유도 그와 같은 이유다.

    인격자라서가 아니라.

    가슴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가 다 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서로를 인정할 뿐 인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가진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첫 번째 과제를 통과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기준으로 가진 이는 몇이나 있을까.

    어느새 음악은 또다시 하나의 풍 조를 굳혀가기 시작했다.

    나, 배도빈의 사상에 동조한 이들 이 비슷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대중도 그에 따르고 있다.

    내 음악을 좋아해서든, 아니면 내 게 따라오는 부를 탐내서든 좋지 못한 현상이다.

    그런 이들은 결코 음악가로서 오 래 활동할 수 없다.

    파울 리히터, 니아 발그레이, 찰스 브라움과 같이 정체성이 확고한 이들만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훌륭히 내는 사람만이 결국 대중에게 오래 사랑받을 수 있고 이미 오래 전 그 단계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레이라라는 사람도 소리를 다루는 일에 집중하여, 본인만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아마 이 대회에서 가장 크게 도 약할 이는 아마 레이라일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과제를 통해 페 터를 포함한 대부분의 참가자가 나를 좇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화음 배치도 활용도 전개도 모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을 주 고 있다.

    페터와 그들의 차이는 적용에 있다.

    내 음악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겉만 따라하려 했던 이 들과 달리, 페터는 내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풀 어낸 것이다.

    반응은 좋았지만 ‘프란츠 페터’라는 사람의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곡을 다루고 멋진 연주를 한다 해도 아이덴티티가 없이는, 자신의 이야기가 더해지지 않고서는 의미 없는 일이다.

    음악은 대화니까.

    가면을 쓰고 그럴 듯한 이야기를 해서 상대를 현혹시킬 수는 있어 도 그 관계는 덧없을 뿐이다.

    진실된 대화를 나눠야만 관객과 함께 소통할 수 있다.

    그래서 일정 수준을 넘어선 뒤에는 ‘나다운 음악’을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그것이 확고해졌을 때야.

    대중성을 고려할 수 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페터는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음에도 뛰어난 경쟁자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보며, 녀석이 내 그늘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괜히 즐거워진다.

    언젠가는 나와 다른 기준을 명확 히 내세워, 동등한 자리에서 대화 할 날이 오리라.

    그런 미래를 그리다 보면 푸르트벵글러나 사카모토의 마음이 이러 했을까 싶다.

    이제 막 세 번 방영되었던 제3회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 대한 관심 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최고의 음악가들의 엄격한 심사 와 더불어 그에 부응하는 참가자 들의 높은 수준, 그리하여 탄생할 또 다른 스타에 대한 기대감까지.

    클래식 음악 팬들은 저마다의 의 견을 나누기 바빴다.

    ㄴ 우승은 무조건 니아 발그레이지. 몸에 이상 와서 은퇴하기 전까지는 푸르트벵글러가 후계자로 키우고 있었잖아.

    ㄴ그건 지휘자로서지. 작곡 능력만 보는데 무조건 그러리란 보장 없음.

    ㄴ 맞아. 게다가 이름값으로 따져도 밀리지 않는 사람 많음.

    ㄴ 파울 리히터의 ‘나의 왕이시여’랑 찰스 브라움의 ‘밤을 지새우며’도 진 짜 너무 좋았음.

    ㄴ 그 두 사람도 우승후보지.

    ㄴ 난 레이라가 우승할 것 같음. 진 짜 제일 듣기 편함.

    ㄴ 2222 이 대회 최고 다크호스는 레이라랑 프란츠 페터지. 둘 다 어 린데 너무 훌륭하잖아. 솔직히 심사 위원들 평도 니아, 파울, 찰스에 밀 리지도 않고.

    ㄴ 새삼 느끼지만 대회 수준 진짜 높다. 그 심사 위원에 그 참가자야.

    ㄴ 2 라운드도 아니고 1라운드 첫 번째 과제에서 40명 떨어짐 ㅋㅋㅋ

    ㄴ 남은 사람들은 그만큼 대단하단 거잖아. 이름도 대부분 들어본 사람 들임.

    대회 반응을 살피던 나카무라 료 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배도빈이 정체를 들키면서 모처 럼 헌정받은 곡이 더 이상 방송되지 못해 아쉬웠다.

    “운도 없지.”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 의문이 기는 했어도 그렇게 단번에 들통 날 줄은 몰랐던 료코는 침대에 얼 굴을 파묻었다.

    그러기를 얼마간.

    노크 소리와 함께 배도빈이 그녀를 불렀다.

    “왜.”

    잔뜩 풀 죽은 료코가 문을 열고 배도빈을 맞이했다.

    배도빈은 시큰둥한 태도를 이상 하게 여기며 노트를 건넸다.

    “이게 뭐야?”

    “스케줄이랑 녹음 때 참고해야 할 거 적어놨어. 2라운드부터 오프닝 곡으로 쓸 거니까 내일 녹음실로 가. 가이드 적어뒀으니까 이대로 작업하고.”

    “어?”

    료코의 눈이 생기를 되찾았다.

    “심사 때문에 신경 못 쓰니까 잘 해. 문제 생기면 히무라한테 연락하고.”

    배도빈의 무덤덤한 말에 료코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겨우 곡을 받았는데 다시금 묻히 는가 싶어 우울했던 감정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신경 써주고 있었구나.’

    ‘거장의 선택’은 이미 폼이 완성 되어 있어 굳이 오프닝 곡을 새로 작업할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말을 꺼낼지 알 수 없었던 료코는 번거로운 일까지 더하며 약속을 지켜준 배도빈에게 크게 감격했다.

    “잘할게.”

    배도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러고는 그간 차마 챙기지 못했던 일들을 정리했는데 생각나는 일이 너무도 많았다.

    ‘찰스랑 니아도 곡 욕심을 내고 있는지 몰랐는데. 다음 공연 때 쓸 곡 만들어 보라 할까.’

    A팀 140명, B팀 100명에 210명 의 직원들까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거대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 소속원 개개 인에게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주의시켰고 배도빈도 경계하 고 있었다.

    단원 한 명 한 명이 의지를 가지 고 정진해야만 베를린 필하모닉이 존재할 수 있기에.

    그러나 홀로 그 많은 사람을 모 두 신경 쓸 수는 없기에 배도빈은 악장단과 각 악기별 수석들에게 최대한 의지했고.

    이미 노령화가 오래 진행된 A팀 단원들이 조금씩 은퇴를 고려하고 있는 상황은 배도빈에게 크나큰 걱정거리였다.

    ‘키워야 해.’

    악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세 대교체를 무리 없이 해내야만 했다.

    그 사안의 중요성을 아는 배도빈 으로서는 현재 남은 단원들이 최 대한 건강하고 오래 활동할 수 있게 배려하는 한편, 그들의 뒤를 이을 사람을 양성해야 했다.

    비올라 중에서는 나카무라 료코.

    배도빈은 그녀가 부디 훌륭한 비 올리스트로서 성장하고 동시에 자 신이 받았던 관심을 동료, 후배 연주자들에게 나눠주길 바랐다.

    그것이 왕으로서의 사명.

    악단주가 되고 2년째, 배도빈은 지금까지 귄터 전 악단주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고 있던 짐을 느끼고.

    그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었다.

    ‘뭔가 까먹은 거 같은데.’

    뭔가 이상했지만 허기를 느낀 배도빈은 일단 배를 채울 생각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한편 그 시각.

    “네, 어머니! 첫 번째 과제 통과 했어요!”

    베토벤 기념 콩쿠르 1라운드 첫 번째 과제를 통과한 타마키 히로시는 기쁜 마음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 그러니? 방송에는 나오지 않아서 떨어졌나 했지. 축하한다.

    “••••••네?”

    -어쨌든 열심히 하고 있구나. 우리 아들 파이팅!

    -타마키, 얼른 와. 영화 시작하겠어.

    -아, 그래. 히로시, 엄마 영화 시간 되어서 전화 끊을게. 사랑해-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친 타마키 히로시는 당황하여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 관련한 기사를 검색했다.

    그에 대한 언급은 통과자 명단뿐 이었다.

    더군다나 다시보기를 통해 확인 한 방송에서도 타마키 히로시의 차례였던 마지막 순서는 포함되지 않아 있었다.

    방송 편성에 따라 잘린 듯했다.

    “아하하. 그래. 쉬울 리 없지. 그래도 통과한 건 통과한 거니까.”

    과거, 멍청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바닥부터 다시금 오르기 시작했으니 급할 필요 없다고 여겼다.

    결국에는 배도빈을 좇아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꾸준히 공부했던 것을 인정받 아 첫 번째 과제도 통과했으니 도 리어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은 타마키 히로시는 저녁을 먹고자 방을 나저 멀리 배도빈의 뒷모습이 보여 타마키 히로시가 반갑게 달려갔다.

    “여! 밥 먹으러 가?”

    배도빈이 고개를 돌려 타마키 히로시의 얼굴을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여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니. 밥 먹으러 가는 길이지. 같이 가자.”

    “그게 아니라. 휴가 왔어?”

    “응. 썼지. 그간 안 쓰고 모아둬 서 다행이야. 한 달이나 있어야 하니까.”

    “별일이네. 휴가까지 써서 굳이 이런 데를 오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잖아. 열심 히 노력했다고.”

    “그래. 열심히 일했으면 휴가도 즐겨야지.”

    타카미 히로시는 배도빈과의 대 화가 자꾸만 엇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애써 그 불길한 마음을 무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정말 노력했다고. 페터도 대단하 지만 나도 언젠가는 네게 인정받아 작곡가로 일할 거야. 산타 가르치는 것도 재밌지만.”

    성큼성큼 걸어가던 배도빈이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타마키가 목에 걸고 있는 베토벤 기념 콩쿠르 참가자 명찰을 보았고 잊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렸다.

    “아, 그, 그래. 잘해봐.”

    결코 말을 더듬지 않는 배도빈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타마키의 불안이 확신이 되었다.

    “나 참가자인 거 몰랐어? 줄곧 심 사 위원석에 있었잖아! 첫 번째 날에도 봤잖아!”

    “그게••••••

    배도빈은 생각을 정리하다 이내 타마키 히로시의 등을 툭툭 쳐주었다.

    “그래.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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