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44화 (44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44화

    97. 격정의 세대를 말하며(1)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발칵 뒤집은 배도빈의 몰래 카메라!1

    【위원장 히무라 쇼우. “재능 있는 음악가를 발굴하고 조명하기 위해 콩쿠르의 화제성을 높이려던 의도.”]

    【참가자 루트비히, 심사 위원 배도빈으로 자격 전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별짓을 다 한다.”]

    【참가자 안톤 베베른,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 악장. 현 고문 니아 발그 레이로 밝혀져!]

    【우쭐대는 꾀꼬리의 정체! 바이올린의 황제 찰스 브라움!】

    【속속들이 정체가 밝혀지는 가운데 미모의 음악가, 레이라에 대한 관심 도 증대!]

    【배도빈, “심사 위원으로서 공정한 평가를 할 것.”]

    베토벤 기념 콩쿠르의 두 번째 날이 밝자마자 수천 개의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배도빈과 콩쿠르 운영 위원회는 이른 아침부터 기자회견을 열어 배도빈이 정체를 숨기고 참가한 이유를 설명하고, 모두가 관심을 가져주신 데 감사를 표했다.

    “크게 주목받고 있는 만큼 공정한 심사와 운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히무라 쇼우는 유려한 언변으로 언론과 대중에게 호소했고 시청자 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ㄴ ㅋㅋㅋㅋㅋ 웃곀ㅋㅋ

    ㄴ 진짜 상상도 못 했다.

    ㄴ 나두크 그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간이 자기가 만든 콩쿠르에 가 면 쓰고 나가다닠 ㅋㅋㅋㅋ

    ㄴ 확실히 히무라 쇼우가 이런 엔터 테인먼트 쪽도 잘 기획하는 듯. 어 제 오늘 일로 관련 기사 엄청 쌓였어. 다들 베토벤 기념 콩쿠르 이야 기만 함.

    ㄴ 배 타고 수금하러 다니는 것도 모자라 이젠 앉은 자리에서 조세 걷는 마왕 클라스

    ㄴ 근데 정말 몰카인가? 푸르트벵글러랑 배도빈 반응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 리얼하던데ㅋㅋㅋ

    ㄴ 찐텐이었음 ㅋㅋㅋ

    ㄴ 난 우리 치질, 아니, 찌질, 아니, 찰스 왕자님이 너무 웃곀ㅋㅋㅋ 우쭐대는 꾀꼬리 대체 뭔뎈ㅋㅋㅋㅋ

    ㄴ ㅋㅋㅋㅋ 채팅창에 누가 설마 했는데 진짜 찰스였엌ㅋㅋ

    ㄴ 치찔이

    ㄴ 발그레이도ㅋㅋ 진짜 푸르트벵글러 말처럼 동창회도 아니고 이게 뭐람ㅋㅋㅋ

    ㄴ 참가자들 반응이 너무 웃겼음ㅋㅋㅋ 중간에 어리고 통통한 애가 오들오들 떠는 거 나만 봤어?

    ㄴ 맞앜ㅋㅋㅋ 나도 봤음ㅋㅋ 꼬맹 이가 막 유명한 사람들 나오니까 허둥대는 거 너무 귀여웠음.

    반응하면 가우왕이랑 찰스짘ㅋㅋㅋ 눈알 튀어나오는 줄 알았닼ㅋ

    배도빈의 기행은 그렇게 시청자 들로부터 웃음을 유발하며 좋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철 좀 들어라. 네가 지금 그럴 위치에 있느냐? 베를린 필하모닉 의 주인이 엉덩이가 그리 가벼워 서 되겠느냔 말이다.”

    “여든도 안 됐으면서 뭐가 그리 꽉 막혀 있어요? 내 휴가 내 맘대 로 쓰겠다는데.”

    “그래! 그게 문제다! 나야말로 이 제 좀 쉬자! 언제까지 이러고 살 아야 해!”

    그러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은 서로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었는데, 배도빈은 계획이 망 가진 탓에 잔뜩 심통이 나 있었다.

    반면 푸르트벵글러는 카밀라와의 연말 계획까지 취소하며 시간을 할애했음에도 배도빈이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 때문에 서운해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기 싫었으면 안 하면 됐잖아 요! 히무라가 협박이라도 했어요? 왜 하겠다고 해놓고 이래요!”

    “가장 믿는 놈한테 속았으니 열이 안 뻗치고 배겨!”

    그러나 서로가 목소리를 높인 끝 에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푸르트벵글러가 무엇 때문에 화 가 났는지 이해한 배도빈은 군말 없이 사과했다.

    그러자 불같이 타오르던 푸르트벵글러도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망할 녀석. 지 제자는 그리 좋아 못 죽고 스승은 안중에도 없어?”

    푸르트벵글러가 인상을 쓴 채 중 얼 거렸다.

    확실히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기 에 배도빈은 순순히 그의 말을 들 어주었다.

    “이 늙고 힘없는 스승은 하루가 머 다하고 어떻게 하면 네 부담을 줄일 까, 힘들진 않을까 걱정하거늘. 제자 둬서 좋을 일 하나 없어. 응? 하나 없어.”

    “푸르트벵글러.”

    “내 팔자야. 아이고. 내 팔자야.”

    “푸르트벵글러……

    “아, 왜 자꾸 불러싸? 신경 쓰지 마라. 넌 귀여운 니 학생이나 돌보 러 가!”

    “항상 고마워요. 그리고 정말 미 안해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배도빈 이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그를 향 한 애정을 보이자 푸르트벵글러의 화도 누그러들었다.

    “그래. 네 심정도 이해는 간다. 네가 인정할 정도면 어지간한 콩쿠르에서는 쉽게 입상하겠지. 네 말대로 너무 어린데 그러면 태만해질 수도 있고. 언질이라도 했으면 내가 이렇게 화가 났겠냐.”

    “맞아요.”

    푸르트벵글러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래. ……그리고 요즘 일이 많긴 해. 음? 이 일뿐만이 아니라 이것 저것 하는 바람에 얼마나 바쁘냐. 내 나이에 배에서 열홀씩이나 있자니 너무 힘들구나. 그래서 예민 한 탓도 있다.”

    배도빈은 말없이 푸르트벵글러를 바라보았다.

    “이제 늙은 게야. 요즘엔 허리도

    아프고 한 번 공연하고 나면 아주 며칠씩 누워 있는다.”

    “푸르트벵글러.”

    “그래. 너도 내가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이번에 심사 위원을 하면서 느낀 게, 이제 이 정도 일이 적당하다 싶다. 얼마나 좋고 편하냐.”

    “푸르트벵글러.”

    “이제 조금씩 정리를 할 때가 된 거야. 본 근처로 오니 조용하고 살기도 좋은 것 같구나.”

    “푸르트벵글러.”

    배도빈이 폭군의 손을 꼭 잡으면 서 애정을 담아 말했다.

    “어떻게든 이 일이랑 은퇴를 엮어 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요.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그렇게는 절대 안 해줄 거니까.”

    “이 녀석아! 내 나이가 내일이면 여든이야!”

    “사카모토도 비슷한데 잘하고 있잖아요.”

    “그 녀석 요단강 넘을 뻔한 게 얼 마나 되었다고 그런 소리야!”

    “오늘 들어보니 토스카니니는 새 악단 만들 준비한대요. 다들 열심 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그만둘 생각만 해요. 팬들도 오래 보고 싶다잖아요. 혹시 베를린 필하모닉이 싫어졌어요?”

    “누가 싫다더냐! 상임 지휘자로서 만 40년! 단원 생활까지 합치면 50년이 넘는다! 50년이면 이제 내 삶을 살고 싶잖아!”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은 퇴 사유를 이해한 탓이었다.

    “단원들 눈치 보여서 결혼 못 하는 거면 해요. 다들 진심으로 축하 할 거니까. 요즘에 그런 거 누가 신경 쓴다고 그래요.”

    “나가!”

    고지식하게도 단원들의 눈치를 보고 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에게 정곡을 찔리자 또다시 호통을 쳤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 2일차. 전날과 같은 세트장에 참가자들이 심사 위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의 기세등등함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어제 밝혀진 참가자들의 정체 때문이었다.

    파울 리히터는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이었고 안 톤 베베른이란 가명으로 출전한 니아 발그레이는 그런 파울 리히 터를 제치고 베를린 필하모닉의 후계자로 낙점된 전력이 있었다.

    더군다나 바이올린의 황제로 불리며 수많은 명 앨범을 냈던 찰스 브라움마저 나섰으니 이미 결승전 에 오를 네 자리 중 세 자리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치겠네, 정말.’

    참가자들은 주변 눈치를 보았는데 어제 배도빈의 등장이 너무나 충격이라 잠시 잊고 있었던 레이 라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 역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비롯한 몇몇 심사 위원이 탐을 낼 정도로 훌륭한 곡을 발표했으니 이미 콩쿠르를 포기한 사람도 발생하고 말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심사 위원들이 나섰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마리 얀스,

    사카모토 료이치, 브루노 발터, 아 르투로 토스카니니 그리고 배도빈 까지.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가 여섯 명이 한자리에 모이자 어제의 악몽과 겹 쳐, 참가자들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게 되었다.

    진행자 우진이 나섰다.

    “경애하는 시청자 여러분, 제3회 베토벤 기념 콩쿠르의 두 번째 날 이 밝았습니다. 오전에 발표되었듯 이 콩쿠르의 주최자이자 21세기 최고의 음악가, 마에스트로 배도빈 이 심사 위원단에 합류해 주셨습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한숨이 나왔다.

    배도빈의 악랄함은 그가 여섯 살 때부터 잘 알려져 온 사실이었는데, 언론에서 배도빈의 음악이 지닌 마 성을 빗대어 ‘악마’, ‘루시퍼’, ‘마왕’으로 부르는 한편.

    베를린 필하모닉 내부에서는 그 의 집요하고 무자비함 때문에 ‘마 왕’으로 부른다는 소문까지 나 있었다.

    평생을 클래식 음악계에 몸담았던 참가자들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고.

    다섯 명의 엄격한 심사 위원단이 한층 더 상대하기 어려워진 데 걱 정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심사 위원이 여섯 명으로 늘어난 탓에 심사 방식에도 변동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첫 번째 과제는 지금까지와 동일하게 다섯 분께서 과반수로 정해주시고, 두 번째 과 제부터는 마에스트로 배도빈이 합 류. 점수제로 시행될 예정이니 참 가자 분들께서는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진이 대본 카드를 넘겼다.

    “그럼 여덟 번째 참가자를 모셔보도록 하죠. 베토벤 기념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본선 진출자입니다. 프란츠 페터 군, 앞으로 나와 주시 기 바랍니다.”

    마침내 프란츠 페터와 웃고 떠드는 밴드가 나서게 되었다.

    사실 프란츠 페터에 대해 잘 알 지 못하는 푸르트벵글러는 사랑하는 후계자의 제자라는 점 때문에 아주 작은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쩌면 배도빈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인물 이니, 어리다고 봐줄 생각은 눈곱만 큼도 없었다.

    ‘도빈이는 여섯 살 때부터 나와 대등히 대화했다. 열여섯이면 먹을 만큼 먹었지.’

    푸르트벵글러가 눈을 부라리며 프란츠 페터를 노려보았다.

    그 강렬한 시선에 프란츠 페터는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경을 칠 것 같아, 잔뜩 긴장하고 말았다.

    “귀여운 참가자군요. 자기 소개부 터할까요?”

    브루노 발터가 나서서 물었다.

    “베, 베를린에서 온 열여섯 살 프 란츠 페터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실내악팀에서 보조를 맡고 있습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프란츠 페터가 가슴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접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여 사카모토 료이치는 허허 웃으며 그를 살펴보았다.

    브루노 발터도 페터를 귀엽게 보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크리크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친구로군요. 지금은 베를린 필하모닉에 있다고요?”

    “네, 넵! 도, 도빈이 형한테 작곡을 배우고 있습니다!”

    프란츠 페터의 발언에 참가자와 심 사 위원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누구한테 배우고 있다고?’

    ‘ 쟤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뒤에 이름을 올린 배도빈은 현재 모든 음악가 의 목표이자 이상이었다.

    그가 참전했다는 소식만으로 단 하 루 만에 베토벤 기념 콩쿠르의 위상 이 달라진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배도빈이 누구를 가르친다는 이야기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한편 심사 위원들은 배도빈이 말 하던 제자가 프란츠 페터라는 사실에 관심을 보였다.

    ‘과연. 도빈 군이 아낀다니 기대 가 되는구만.’

    ‘저 건방진 꼬마가 품고 도는 녀 석이란 말이지.’

    사카모토 료이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같이 마리 얀스와 브루 노 발터도 내심 기대를 키워갔다.

    “기대해 보겠습니다.”

    ‘ 아으으.’

    프란츠 페터는 순식간에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다.

    특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심사 위원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정신 차리자. 해내야 해.’

    그러나 그러한 부담도 음악을 향한 어린 음악가의 불꽃 같은 열정을 끌 수 없었다.

    심사 위원들의 관심도.

    참가자들의 질투 어린 시선도 당연 한 일이었다.

    최고의 음악가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그보다 좋은 조건은 없었다.

    더욱이 연주진은 전 세계 모든 오케스트라의 정점, 베를린 필하모닉 내부에서도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된 이들.

    프란츠 페터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부담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짱을 끼 고 있는 배도빈과 심사 위원들을 등진 채 웃고 떠드는 밴드를 앞에 두었다.

    ‘봐주세요, 형. 꼭. 꼭 해낼게요.’

    프란츠는 그의 연주진과 시선을 교환하고.

    배도빈을 떠올리며 반년간 수정을 거듭해 완성한 관악 7중주 곡, ‘마왕’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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