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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43화 (44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43화

    96. 잔혹한 결과(2)

    스트리밍이 종료된 채팅창에 ‘여기서 끊으면 어떻게 하냐’, ‘당장 다시 방송 틀어라’, ‘내일까지 어떻게 기 다리라는 거냐!’ 등의 항의가 빗발 치는 와중에도 배도빈과 푸르트벵글러의 언쟁은 계속되었다.

    “웃기지도 않은 꼴로 나온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푸르트벵글러가 상관할 일 아니라 고 말했잖아요!”

    “사, 상관할 일이 아니라? 인석아! 화가 안 나게 생겼어! 내가 뭐라 했더냐! 바쁘다고 이 심사 대신 맡아 달라 하지 않았느냐!”

    “그래요!”

    “못 나온다며!”

    “바쁘다고 했잖아요!”

    기가 찬 푸르트벵글러가 손을 들어 배도빈을 홅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 꼴을 보고 네 말을 믿으라는 게냐! 누가 봐도 놀고 있잖느냐!”

    “대회 참가하느라 바빴다고요! 이 곡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한 줄 알아요?”

    “그걸 왜 여기서 발표해! 멀쩡한 콘서트홀 냅두고!”

    두 사람이 진정하지 못하자 찰스 브라움, 다니엘 홀랜드, 나윤희, 파울 리히터, 타마키 히로시가 달려들 어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가우왕, 왕소소, 나카무라 료코, 프 란츠 페터까지 주변으로 모이니 그 광경에 푸르트벵글러의 혈압이 치솟았다.

    프란츠 페터와 웃고 떠드는 밴드 멤버들은 알았지만 어린이 타악 교실 교사 타마키 히로시도 참가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배도빈의 연주자가 나카 무라 료코였다는 것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고.

    푸르트벵글러는 그가 지극히 사랑 하는 단원들에게 속았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다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동창 회야? 어! 내가 베를린 필하모닉 동창회에 나온 게냐! 또 누구야! 빨리 안 나와!”

    “이, 이게 다예요.”

    “진정 좀 하세요, 세프.”

    단원들이 있는 대로 성을 내는 푸르트벵글러를 말리는데, 참가자석 가장자리에 가면을 쓰고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다들 의아해하며 그를 살폈다.

    명찰에 안톤 베베른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누가 봐도 오스트리아 의 천재 음악가 안톤 베베른의 이름을 빌린 것이었다.

    그가 슬며시 가면을 내려놓았다.

    “아하하.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다들 같은 생각이었나 보네.”

    니아 발그레이가 멋쩍게 인사했다.

    “니, 니아? 너마저!”

    충격을 받은 푸르트벵글러가 말까지 더듬는 사이, 프란츠 페터는 졸도할 지경이었다.

    단원들과 파울 리히터가 니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문님!”

    “이야, 이거 반가운데. 잘 지냈지?”

    “그럼요. 파울도 잘 지내죠?”

    화목한 분위기를 헤치고 푸르트벵글러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넌 또 여기서 뭐 해!”

    사랑하는 제자를 또다시 만난 푸르트벵글러는 그 반가움과 기쁨을 주 체하지 못했다.

    * * *

    콩쿠르 첫 번째 날을 마치고.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은 한적한 호텔에서 때 아닌 소모임을 가졌다.

    옛 동료 파울 리히터까지 함께하니 그간 서로 못 나눈 이야기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니아, 너까지 참가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요.”

    청력 손실과 마비 증상은 많이 호 전되었으나 예전과 같이 활동할 수는 없던 니아 발그레이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고문으로 활동해 왔다.

    그렇게라도 아쉬움을 달래려 했으나 배도빈과 후배 단원들의 활동을 보며 음악을 향한 열정이 꿈틀거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럴 때 파울이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내가?”

    “네.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남 아 있지 않을까 싶었죠. 꾸준히 곡을 쓰긴 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있더라고요.”

    “이해해. 모른 척할 수가 없더라고.”

    파울 리히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도 그러했기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마리 얀스, 아르투로 토스카 니니, 브루노 발터, 사카모토 료이치 에게 냉철히 평가받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현 시대에 국한하지 않더라 도, 지휘자라는 직업이 생긴 이후로 가장 위대하다는 평이 아깝지 않은 인물들이 자신의 곡을 어떻게 평가 할지, 음악가로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료코 제법.”

    한편 다른 테이블에서는 왕소소가 나카무라 료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윤희도 그에 동조했다.

    “정말 멋졌어. 갑자기 휴가 내서 무슨 일 있나 걱정했는데 솔로 준비 하고 있었구나?”

    “죄송해요. 도빈이가 비밀로 하라고 해서.”

    “그러게. 도빈이 콩쿠르 원래 싫어 하잖아.”

    소소와 나윤희가 돌아가며 물었다.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콩쿠르 운영 위원회로 향한 배도빈은 그의 동료 들에게도 참가 이유와 그 사실을 비밀로 붙인 일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 탓에 남은 사람들의 의문은 풀 리지 않았고 배도빈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궁금해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모르겠어요.”

    “심심했나?”

    “흐. 설마.”

    세 사람이 나름대로 고민을 이어가 던 중, 베를린 필하모닉의 어린이 타악 교실 교사 타마키 히로시가 불 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자극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 감히 그에게 도전하는 사람이 없으니 정체를 감추고 실력자를 모은 것 아닐까요?”

    나윤희, 왕소소, 나카무라 료코가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얼굴을 모았다.

    소소가 물었다.

    “누구?”

    “나는 모르는 분이신데……

    “ 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물이 왜 같은 장소에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세 사람이 그를 피했다.

    타마키 히로시는 잔뜩 풀이 죽은 채 연회장 구석으로 향했는데, 쪼그 려 앉아 있는 프란츠 페터의 곁이었다.

    ‘형이 왜? 설마 아직이라고 생각하셨던 걸까? 안 돼!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형도 분명 잘했다고 하셨잖아. 가우왕 님도, 브라움 악장 님도 인정해 주셨고. 그러면 왜?’

    불안이 극도로 심해진 프란츠는 타마키 히로시를 보자마자 그에게 매 달렸다.

    “히로시 씨! 형이! 도빈이 형이 왜 나왔는지 아세요?”

    타마키 히로시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 것이 반갑고 고마운 나머지 자 신의 생각을 장황히 풀어냈다.

    “그러니까 지금 배도빈에게는 자극이 필요하다는 거지. 멋진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감을 얻을 수 있는데, 사실 들을 만한 곡이 발표되는 일이 드물어. 왜? 다들 배도빈과 비교하니까. 이런 대회를 만 든 이유도 분명 양질의 곡이 더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고 또 그 흐름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안 그 래?”

    “그런가요?”

    “확실해. 분명 그럴 거야.”

    프란츠 페터는 어쩌면 타마키 히로 시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하면서도 배도빈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리히터 악장님, 브라움 악장님, 레 이라 씨에 이젠 발그레이 고문님과 도빈이 형까지……. 내가 결승까지 살아남을 리가 없잖아.’

    배도빈에게 음악을 배우면서 행복 해진 프란츠 페터는 그것을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우승은커녕 이제 결승전, 네 자리에도 들지 못할 위기였다.

    “그러니까 아마 정체가 밝혀졌다고 해도 강행할 것 같아. 사실, 규정상 아무런 문제도 없고 말이야. 이거 크리크 이후로 다시 맞서게 되다니. 내 생각보다 훨씬 빨랐어.”

    “어? 뭐가요?”

    “나랑 배도빈. 그간 열심히 준비했으니 배도빈이 어떻게 들어줄지 기대된다고.”

    “ 네?”

    “……나도 참가하는 거 모르는 거 아니지?”

    “그, 그럴 리가요. 아하하.”

    프란츠 페터는 애써 웃으며 아는 척했다.

    한편.

    베토벤 기념 콩쿠르 운영 위원회는 뜻하지 않게 콩쿠르 설립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배도빈은 턱을 괴고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운영 위원들은 자금을 대주고 있는 배도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사카모토 료이치와 마리 얀스, 브 루노 발터는 허허 웃을 뿐이었고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숨을 거칠게 뱉으며 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위원장 히무라 쇼우가 분위기를 풀 고자 입을 열었다.

    “하하하. 역시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금방 알아보시고.”

    유쾌한 말투에 밝은 미소가 함께했지만 푸르트벵글러에게는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대단하긴! 그런 곡을 만드는 놈이 쟤 말고 누가 또 있나!”

    사카모토 료이치, 마리 얀스, 브루 노 발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까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강렬한 아이덴티티 때문 에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게, 히무라. 자네도 우릴 속인 겐가!”

    “면목 없습니다, 마에스트로.”

    히무라가 사과하자 토스카니니가 쇠 긁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 그건 둘째 치고. 주목받지 못 한 음악가를 재조명하는 취지 아니었나? 음?”

    “그래! 내 반드시 들어야겠다. 대 체 우리까지 속이면서 나선 이유가 뭐더냐!”

    두 사람이 다그쳤지만 배도빈은 딴 청을 부릴 뿐이었다.

    사카모토 료이치가 나섰다.

    “도빈 군, 이대로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걸 알지 않은가. 이 두 친구 도, 시청자들도 궁금해할 테니 말해보게.”

    배도빈이 테이블을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대회 방침과 취지는 다르지 않습니다. 주목받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양질의 곡이 만들어 지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도 사 실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나온 게 문제라고 하는 거 아니냐!”

    배도빈은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 쉬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가르치는 애가 나오는데.”

    “뭐라고?”

    “가르치는 애가 나온다고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왜 날 속였냐고 묻지 않느냐!”

    “그러니까 말하고 있잖아요! 가만히 좀 있어요!”

    배도빈은 한 번 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쉽게 우승할까 봐 교육상 나왔어요.”

    미팅실에 정적이 흘렀다.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이 너무 쉽게 우승할 것을 우려해 정체를 감추고 나섰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위원회의 어느 누구도 배도빈의 발언을 믿지 않았는데, 그를 잘 아는 몇몇 사람만은 알고 있었다.

    허세도 거짓도.

    허튼소리 한 번 한 적 없는 그가 이런 자리에서 농담을 꺼낼 리 없었다.

    “이, 이런 팔푼이를 봤나......

    푸르트벵글러는 어이가 없어 한탄 하고 말았다.

    “누가 팔푼이라는 거예요! 프란츠 가 우승해서 기고만장해지고 그래서 게을러지면 푸르트벵글러가 책임질 거예요?”

    “이 녀석아! 이 대회에 누가 나올 지 알고 그런 생각을 해! 이 팔푼 아! 제자 사랑이 아주 지극하구나 지극해!”

    “하하하하하하!”

    브루노 발터가 크게 웃었다.

    “자넨 뭐가 재밌다고 웃어!”

    “그렇지 않은가, 빌헬름. 제자를 지 극히 아끼는 모습이 딱 자네랑 똑같은데 말이야. 거 화낼 이유도 없는 것 같구만 성질 좀 죽이게.”

    “뭐라?”

    푸르트벵글러가 또 역정을 내기 전 에 마리 얀스도 나서서 그의 입을 막았다.

    “분명 규정상 문제될 것은 없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현 재 도빈 군의 입장이네만.”

    사카모토가 마리 얀스의 의견에 동 조했다.

    “그렇지. 도빈 군, 자네 뜻이 어떠 하든 베토벤 기념 콩쿠르의 취지를 생각해 보세. 본인이 만든 등용문이 아닌가.”

    사실 이렇게 된 이상 배도빈도 더 이상 참가자 신분으로 남을 이유가 너무도 아끼는 제자 프란츠 페터의 독주를 걱정했는데, 막상 대회가 시 작되니 파울 리히터, 레이라, 게다가 배도빈에 앞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후계자였던 니아 발그레이까지 참가 하고 있었다.

    대회 규모가 작아서 걱정했는데, 히무라 쇼우와 운영회가 너무나 열 심히 노력해 준 덕에 참가자의 수준 이 올라간 상황.

    정체도 드러난 탓에 몰래 구경하는 즐거움도 사라져서 크게 불만이었으나 참가자 신분을 유지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다만 이 상황을 어떤 형태로 수습 할지가 문제라 배도빈은 고민을 거듭했다.

    푸르트벵글러가 역정을 냈다.

    “뭘 고민해! 당장 짐 싸들고 돌아 가! 네가 없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말이 되느냐!”

    그때 구석에서 쭈그리고 있던 진행 자 우진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사회자 양반은 가만있게!”

    푸르트벵글러의 기세에 밀려 우진 이 몸을 뒤로 뺐다.

    “아뇨. 들어보죠.”

    배도빈이 그에게 발언권을 주자 ‘거장의 선택’의 감독과 함께 회의 에 참가한 우진이 조심스레 의견을 내놓았다.

    “이렇게 된 이상 깜짝 쇼라는 것으로 하고 배도빈 씨도 심사를 봐주시는 게 어떨까요? 더 화제가 될 것 같은데.”

    배도빈이 우진을 노려보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고 반대로 심사 위원 들의 얼굴은 밝아졌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사카모토가 밝게 웃으며 우진의 의견에 동조했고.

    운영 위원회와 히무라마저 콩쿠르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모두가 한뜻으로 배도빈을 바라보았다. 귀찮은 일을 떠맡을 것 같았기에 배도빈은 신속히 회의를 마무 리 지으려 했다.

    “사퇴하고 돌아가는 쪽으로 하죠.”

    “이 콩쿠를 만든 사람이 할 말이더 냐! 만들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지!”

    ‘베토벤 기념 콩쿠르’로 카밀라와 의 연말 계획이 무산된 푸르트벵글러는 배도빈이 결코 편하게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꼴을 볼 수 없었다.

    “너도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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