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42화 (442/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442화

96. 잔혹한 결과(1)

심사를 맡은 다섯 지휘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곡을 다뤘 으나 이러한 방식의 곡은 들어본 적 없었다.

‘이 무슨……

‘다음.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허허허허.’

콩쿠르에 나올 만한 곡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발표한다면 수십만 장은 우습게 팔릴 곡이라 확신했다.

비올라가 가진 수수함을 담담한 어 조로 활용한 경우는 많았으나, 점잖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담긴 갈망과 열정,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고유했다.

전설로 불리는 다섯 지휘자는 난데 없이 나타난 걸작에 감탄했고 동시에 의심했다.

이와 같은 걸작을 만든 이가 대체 누구인지, 무슨 이유로 베토벤의 이름으로 이 대회에 참가했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들이 그러할진대 다른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것 없는 주제를 이렇게 풀 어내다니.’

턱시도 가면을 쓴 채 이번 대회에 참가한 것을 다소 후회하고 있던 아 리엘 얀스도 마찬가지였다.

파울 리히터를 제외하고 참가자들 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했던 그는 비올라 소나타의 알 수 없는 마성에 이끌리고 있었다.

‘마왕 이외에 이런 곡을 쓰는 사람 이 또 있었다니. 세상은 정말 넓군.’

자극적이며 요란함 없이도 이렇게 몰입되는 악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에, 배도빈 이외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ㄴ 와 씨 뭔데 ㅋㅋㅋㅋ

ㄴ 2악장 빨리. 빨리!

ㄴ 더 가져 와! 이거 더 가져 와! 아니. 다 가져 오니

ㄴ 바이올린 소리 미쳤다.

ㄴ 비올라임 멍충아.

ㄴ 비올라도 비올라인데 피아노 진짜 미쳤는데? 지금 피아노 치는 사람이 참가자 맞지?

ㄴ 표현력 진짜 도라이 수준임.

시청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더 듣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심 사 위원도 마찬가지라 그들은 손으로 원을 그리며 계속 이어갈 것을 요구했다.

그 뜻을 이해한 배도빈과 료코가 2악장을 시작하였다.

피아노와 함께 노래할 수 있게 된 비올라는 행복했다. 그의 뒤에서 그 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할 때마다 큰 성취감을 얻었다.

실력이 아깝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듣기 싫었다.

자신은 처음부터 이 가수의 목소리 에 어울리고 싶었을 뿐이었기에, 이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배도빈이 피아노에서 손을 떼었다.

피아노의 연주를 따라가던 비올라는 순간 멈칫했고 그렇게 연주는 갑 자기 끊어지고 말았다.

작은 공백을 두고.

피아노가 천천히 작은 소리로 말하 기 시작했다.

‘노래하고 싶다.’

비올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어울렸으나 피아노 소리는 자꾸만 줄어들었다.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배도빈이 벼락이 꽂히듯 건반을 내 려 쳤다.

병든 가수의 절규였다.

‘목소리가 아니라면 다 주겠어! 왜!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돌려줘. 돌려줘!’

잔혹한 현실을 부정하며 악을 쓰는 피아노.

배도빈의 피아노는 격렬하고 찢어 지고 비참하며 탁한 소리로 울었다.

그러나 이내 그 목소리마저 쉬고.

악만이 남았다.

비올라가 눈물을 흘리며 피아노를 보담는다.

그를 위해 노래했던 그녀는 목소리를 잃어가는 피아노의 절망과 슬픔 에 깊이 공감하며 그를 위로하고자 한다.

2악장이 끝나고.

곧장 3악장으로 이어졌다.

함께하는 피아노와 비올라.

비올라는 피아노가 은퇴한 뒤로 무 대에 오르지 않았다. 그의 곁을 지 킬 뿐이었다.

노래하지도 않았다.

그의 아픈 상처를 건들고 싶지 않았고 피아노와 함께하는 무대가 아 니면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문득 그를 위해 요리를 만들며 흥얼거렸을 뿐이었다.

그제야 피아노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아름다워, 노래하지 않는 것이 죄악이었다.

너무도 훌륭한 가수가 자신 때문에 노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피아노는 비올라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넌 무대에 올라가. 제안도 많이 받았다며.’

‘싫어.’

‘고집 부리지 마. 나 신경 쓰지 말 고 넌 네 노래를 해. 그래야 해.’

‘……노래는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서 배웠을 뿐이야. 그러니까 얼른 나아서 같이 무대에 서자.’

‘난 가망 없다는 거 알잖아.’

‘그럴 리 없어. 꼭. 꼭 나을 거야.’

그러나 비올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피아노도 그녀가 그러길 바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노래를 공부하며 녹 음했던 파일과 메모해 둔 공책 그리고 일상의 허밍까지.

모든 것이 노래를 향한 그녀의 열 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재능 있는 가수가 노래하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겼던 피아노는 그 자신이 그녀의 족쇄였음을 깨달았다.

‘넌 무대에 서야 해.’

‘싫다고 했잖아.’

‘……사랑한다면서 날 어디까지 비참하게 할 생각이니?’

‘그게 무슨 말이야.’

‘노래할 수 없게 된 것으로도 모자라서 지금 내가 널 막고 있잖아. 그 게 무슨 짓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내가! 네 입을 막고 있잖아!’

‘아니야! 누가 그런 말을 해? 나 노래하기 싫어. 그뿐이야.’

‘거짓말하지 마!’

피아노의 감정이 격해짐에 따라 그의 탁한 목소리가 더욱 갈라졌다. 기침이 반복되었고 무리한 탓에 소 리는 더욱 미약해졌다.

그럼에도 피아노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속이지 말고 너도 속이지 마. 노래하고 싶잖아. 노래, 좋아하잖아.’

연인의 필사적인 모습에 비올라는 자신을 속여왔던 마음을 깨달았다.

혼자 노래하는 것이 미안해서 숨겼 던 마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네가 노래하면 내가 질투할 거라 생각했어? 아니. 나를 비참하게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노래할 수 없는 슬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네가 나 때문에 무대를 포기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챈 거야.’

피아노가 간신히 목을 짜내 멜로디를 펼쳤다.

전과 같이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다음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쓰려던 주제였다.

‘이제 네 노래야.’

잠시 망설이던 비올라가 피아노가 펼친 주제를 받아 노래하기 시작했다.

온전히 홀로 연주되는 비올라 소리가 펼쳐지며 곡이 마무리되었다.

압도적인 심상과 전개가 펼친 서사 속에 몰입하고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보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수백만 명이 함께 있는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도 확연히 줄어 있었다.

폭력성.

이미지를 강요받은 탓에 연주를 들 은 모든 사람은 피아노와 비올라의 관계, 그리고 온전히 한 명의 악기 로 거듭나는 비올라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망했어.’

모두가 깊은 여운에 빠져 있을 때.

프란츠 페터는 연주가 이어지는 30분 내내 절망을 반복하고 있었다.

반드시 결승에 올라 배도빈에게 은 혜를 갚을 거라고 다짐했던 프란츠 페터에게 루트비히는 절망이었다.

찰스 브라움과 파울, 레이라라는 뛰어난 이들이 나타나면서 결승에 진출할 네 자리 중 하나만은 어떻게든 가져오자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어떡하지.’

프란츠 페터는 지난 몇 년간 자신을 끔찍이 아껴주고 여러 가르침을 준 배도빈을 떠올리며 오돌오돌 떨었다.

본으로 오기 전, 베를린에서 응원 해 주던 모습과 그가 넘겨주었던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식 작곡가 계약서.

쌀쌀맞은 척하지만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것과 이탈리아에서의 진 심 어린 훈육까지.

그것에 보답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프란츠는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한편 심사 위원들은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30분간의 개인 리사이틀 로 만들어버린 괴물 같은 참가자를 노려보았다.

‘배도빈 군이잖나.’

‘배도빈이군.’

‘오오. 누군가 했더니 도빈 군이었어.’

‘건방진 꼬맹이 말고 누가 이런 곡을 쓸 수 있단 말이냐.’

마리 얀스, 브루노 발터, 사카모토 료이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루트비히의 정체를 간파했다.

거부할 수도 막아낼 수도 없는 폭 력적인 심상과 그것을 풀어내는 집요하고 탁월한 전개력.

지독하게 청자를 괴롭히지만 끝내 환희를 보여주는 스타일을 심사 위원들이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네 명의 심사 위원들과 마찬가지 로, 아니, 그보다 먼저 눈치챘던 빌 헬름 푸르트벵글러가 고함을 쳤다.

“이 녀석아! 휴가 간다는 놈이 왜 여기 있어!”

갑작스러운 호통에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배도빈이 깜짝 놀라 입을 닫으라고 눈치를 줬지만 가면 탓에 그 표정이 전달될 리 없었다.

“바쁘다는 놈이 여기서 뭘 하는 게야!”

배도빈이 다급히 검지를 입에 가져다댔지만 노발대발한 푸르트벵글러를 진정시킬 순 없었다.

“루트비히는 뭐고 그 우스꽝스러운 가면은 뭐냐! 그러고 있으면 누가 모를 줄 알아!”

푸르트벵글러가 펄쩍펄쩍 뛰자 진 행자 우진이 나서서 상황을 파악했다.

“마에스트로 푸르트벵글러께서 루 트비히 씨의 정체를 아신 것 같습니다. 친근해 보이는데, 시청자들을 깜 짝 놀라게 한 그는 대체 누구일까요?”

“듣고도 몰라! 배도빈이잖나!”

푸르트벵글러의 폭탄 발언에 배도빈이 가면을 벗고 소리쳤다.

“조용히 하라고 했잖아요!”

“너야말로 뭘 잘했다고 소리를 쳐!”

“이유가 있으니까 숨겼지! 푸르트벵글러 때문에 다 망쳤잖아요! 어떻게 할 거야!”

“이, 이놈이! 스승을 속이려 드는 것도 모자라 되레 성질을 부려!”

“스승은 무슨! 한창 재밌었는데 어쩔 거예요!”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두 거장을 보는 참가자들의 눈은 반쯤 튀어나와 있었다.

모두가 얼이 빠져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었고 좌절했던 프란츠 페터는 의문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혼란스러웠다.

‘어? 형이 왜 여기 있지?’

그제야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ㄴ 도빈앜ㅋㅋㅋㅋㅋ

ㄴ 거기서 뭐 햌ㅋㅋㅋㅋ

ㄴ 이상하다 했다ㅋㅋㅋ 저런 곡을 만들면서 피아노까지 미친 듯이 치는 사람이 배도빈 말고 또 있나 싶었넼 ㅋㅋㅋ

ㄴ 나 진짜 꿈에도 몰랐음ㅋㅋㅋ

ㄴ 아니, 왜 참가한 거야?

ㄴ  아까 음악하는 사람 중에 정상 없다고 했던 애 어디 갔냨ㅋㅋㅋ 칭찬해줘야 함 ㅋㅋㅋ

ㄴ 콩쿠르 시작하자마자 우승자 등장이요!

ㄴ  심사 위원석에 앉아 있어야 할 애가 왜 참가한 거얔ㅋㅋㅋ

ㄴ 대박 소름. 베토벤 기념 콩쿠르 가 도빈 재단에서 후원하는 거래.

ㄴ 미친ㅋㅋㅋㅋㅋ 나갈 만한 대회가 없으니까 자기가 직접 만들어서 참가한 거야?

ㄴ 창피하니까 숨겼나 봄.

ㄴ 다들 얼굴 멍청해진 거 봨ㅋㅋ

ㄴ 찰스랑 가우왕 눈 땡그렇게 됐어 ㅋㅋㅋㅋ

“미,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참가자 루트비히 씨의 정체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단주 배도빈 씨였습니다!”

진행자 우진이 소스라치게 놀란 탓에 그것이 의도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어쩔 거예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악성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기리는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중계하는 ‘거 장의 선택’의 첫 방송은 배도빈과 푸르트벵글러가 다투는 모습으로 마 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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