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39화 (439/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39화

    95. 수수께끼의 천재와 지옥에서 올라온 비올리스트(5)

    그 날 선 발언에 침착하게 연주를 이어가던 아담 로즈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연주를 정상화하려 했으나 한 번 뒤엉킨 마음은 그를 조급 하게 했다.

    “ 그만.”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아담 로즈를 노려보았다.

    “연주자를 쓰지 않고 본인이 직접 연주한 이유는?”

    아담 로즈는 당장에라도 토스카니 니에게 잡아먹힐 것 같았다.

    그 강렬한 시선에 압도된 그는 간 신히 정신을 붙잡고 답했다.

    “제 곡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저라고 생.”

    “고작 그런 실력으로? 요즘 어린애 들은 자신감이 넘친다더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군.”

    아담 로즈가 대답을 끝내기도 전에 토스카니니가 입술을 씰룩댔다.

    “소리는 탁하고 본인이 써놓은 비 브라토는 수전증이라도 있는 건가? 이 따위 연주는 독방에서나 해!”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연주자를 구해서.”

    “방금 말한 것도 부정할 셈인가? 이 빌어먹을 음표 집합을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라고 했지?”

    “……저라고 했습니다.”

    “곡을 만든다는 사람이 연주자를 믿지 못해서야 대체 어떻게 음악을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군. 작곡가 의 기본은 연주자에게 의도를 정확 히 전달하는 것이다. 네 악보를 받 은 연주자를 믿지 못한다는 말은 너 스스로가 이 불쏘시개를 못 믿는단 말이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아담 로즈를 향해 악보를 던졌다.

    그의 꿈과 눈물이 악보와 함께 진 눈깨비처럼 내렸다.

    ㄴ 와. 살벌하네.

    ㄴ 처음부터 뭔 일이냐.

    ㄴ 개처형 CC

    ㄴ  저 사람 다시 음악 할 수 있는 거야? 나 같으면 좌절해서 못 일어날 것 같은데.

    ㄴ 근데 또 말하는 거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님. 다른 사람이 잘못 연주할까 봐 본인이 직접 연주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연주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ㄴ 아님. 내가 바이올린 전공이라 아는데 어디 가서 욕먹을 수준은 아니야.

    ㄴ 그러네. 저 사람 검색해 보니까 작곡도 하면서 마이클 힐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6강에 들었음. 단 지 국제 콩쿠르에 머무는 수준이 토 스카니니의 성에 안 차는 듯.

    ㄴ 마이클 힐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면 엄청 유명한 대회 아님? 베토벤 기념 콩쿠르 진짜 빡세네;;

    ㄴ 말했잖아. 역사적인 인물들 이 심사를 맡았기 때문임.

    ㄴ 그렇긴 해도 진짜 무섭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폭언에 시청자는 물론 진행자와 촬영 스태프 까지 압도되고 말았다.

    그의 괴팍한 성격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전 세계로 송출되는 방송에 서 이런 식으로 모욕을 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가장 놀라고 두려워하는 이들은 참 가자였다.

    얼이 빠진 그들은 현재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딱딱딱딱-

    놀란 프란츠 페터는 이제 소리까지 내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어, 어떡하지. 조, 좋은 곡 같았는 데 저렇게까지 혼나는 거야?’

    한편.

    가면을 쓰고 상황을 지켜보던 배도빈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잘하네.’

    듣는 내내 짜증이 났던 그는 본인 이 하고 싶었던 말을 시원하게 해대는 토스카니니에게 대리만족을 느끼 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진행자 우진이 나 섰다.

    “마에스트로 토스카니니의 심사평 이었습니다. 마에스트로 얀스께선 어떻게 보셨습니까?”

    백의의 노인이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벌벌 떠는 참가자를 살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로 말하듯 작곡가는 악보로 말합니다. 지휘자 나 연주자는 그것을 통해서만 작곡 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 죠. 그러나 이 악보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고려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군요. 아담 로즈라고 했던가요?”

    아담 로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분. 박자 변화가 이뤄지는 이곳 앞에 지시문 하나만 추가해도 뜻을 명확히 할 수 있겠죠. 단순히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드는 것만이 작곡가의 일은 아닙니다. 안타깝지 만 2라운드에 진출할 자격은 갖추지 못한 듯싶네요.”

    마리 얀스가 정확하고 단호히 심사 평을 내렸고 아담 로즈의 얼굴에 절 망이 차올랐다.

    우진이 나섰다.

    “다섯 분의 심사 위원 중 이미 두 분께서 탈락 의사를 밝히신 상황.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평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에스트로?”

    마리 얀스 옆, 심사 위원석 가운데 에 자리하고 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마이크를 들었다.

    “전형적인 화음 진행 끝에 약간의 스케일. 바흐 흉내라도 낼 셈이었나? 쯧쯧.”

    “저, 저는 그저 바이올린의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지루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간절하게 반박하는 아담 로즈의 말을 들은 체 도 안 하고 손을 내저었다.

    우진이 나섰다.

    “아담 로즈 씨, 아쉽게도 탈락입니다.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담 로즈는 입을 몇 번 뻐끔거리 다가 이내 체념한 듯 자신의 악기와 토스카니니가 내던진 악보를 줍기 시작했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악보가 번져나 가는 장면이 그대로 전 세계에 송출 되었다.

    치욕이었다.

    시청자도 참가자도 수백만 명이 지 켜보는 자리에서 혹독한 평을 받고, 탈락한 뒤에 내팽개쳐진 악보를 챙기는 그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르투로 토스 카니니가 입을 열었다.

    “정신머리까지 빠진 놈은 아니군.”

    아담 로즈가 쭈그려 앉은 채 입을 앙다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에 라도 소리 내 울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그는 악보에 붉은 색으로 첨삭된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본래 자신이 운영진에 넘겼던 원본 에는 없는 문구와 기호가 여럿 적혀 있었다.

    평생을 음악 공부를 해왔던 그가 그것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아담 로즈가 고개를 들었다.

    “네 음악을 사랑할 줄 알고 네 악보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스스로에 게 감사해라.”

    수모를 당했다고.

    치욕을 당했다고 악보를 챙기지 않은 채 도망쳤다면 평생 받아보지 못 할 귀중한 가르침.

    가장 위대한 지휘자에게서 받은 첨 삭은 그 어떤 강습보다도 귀중한 경 험이었다.

    아담 로즈가 괴팍한 노인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깊이.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절망과 치욕의 눈물을 애써 참아냈 던 아담 로즈는 감격하여 결국 오열하고 말았다.

    그 모습에.

    참가자와 시청자는 살아 있는 전설 이라 불리는 다섯 심사 위원이 이번 대회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ㄴ 뭔데? 뭔데?

    ㄴ 대박이네. 대충 보니까 저 악보 전체를 첨삭해 준 것 같음.

    ㄴ 카메라가 비춰주네.

    ㄴ 꽤 많이 체크되어 있는데?

    ㄴ ㅇㅇ.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엄청 신경 써준 것 같다.

    ㄴ 마냥 미친 노인네는 아니었나 봄.

    ㄴ 그 짧은 시간에 꼼꼼하게 많이도 봐줬다.

    ㄴ 저렇게 해줄 거면서 악보를 던지 긴 왜 던져;;

    ㄴ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님? 저만한 인물이 저렇게 신경 써서 봐 줬는데 수준 미달이니까 화낼 만한 일 같은데.

    ㄴ 그것도 일종의 시험 아닐까? 솔 직히 공개적으로 저런 말을 들었는 데 저거 주울 생각을 누가 하겠냐.

    ㄴ 열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높이 평가하는 것 같긴 하다.

    ㄴ  울면서 나가는 거 보니까 찡하 네. 솔직히 구제해 줄 줄 알았는데.

    ㄴ 그러면 솔직히 쇼나 다름없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향한 시청 자들의 생각이 변하는 것처럼 참가자들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억만금을 주어도 움직이지 않는 다 섯 음악가에게서 첨삭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특히 벌벌 떨었던 프란츠 페터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보인 의외의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

    ‘그래도 저렇게 신경 쓰고 계셨구 나. 표현이 조금 과격하신 것뿐일 거야.’

    우진이 두 번째 참가자를 무대 위 로 불러들였다.

    그들이 연주를 3분쯤 이어갔을 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입을 열었다.

    “ 그만.”

    그는 피곤한 듯 미간과 콧대를 문 지르더니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악보를 들어 찢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ㄴ 미친

    ㄴ 저건 좀 심한 거 아니냐;;

    ㄴ 그냥 쓰레기 취급하네.

    ㄴ 표정 보느 아니, 못 하면 못 하는 거지 왜 저렇게 화를 내 ㅠㅠ

    “주제 활용 전무. 이 괴상한 전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 모를 일이군. 이건 왜 굳이 악보에 달아 넣었지? 대체 이 쓰레기에 달린 음 표들이 말하는 게 뭐야?”

    한 문장을 말할 때마다 악보를 찢은 그는 스태프에게 눈치를 주었다.

    “예선을 누가 심사했다고? 잘도 이 런 쓰레기를 올렸어. 재활용도 못할 쓰레기야.”

    푸르트벵글러 앞에 선 두 번째 참 가자는 주저앉을 듯, 연주진에 기대 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말해봐. 대체 이딴 건 왜 적은 거 지? 이렇게 난잡한 연주를 몇이나 알아들을 것 같나? 트릴을 집어넣은 악보라니. 세상에.”

    “대답해!”

    “그, 그게..."

    “고민조차 없이 그저 멋 내려고 넣은 노트 때문에 대체 무엇을 말하는 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조차 알 수 없는 걸 음악이라고, 평가해 달 라고 가져왔나!”

    푸르트벵글러의 질문에 두 번째 참 가자 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음악은 대화다. 네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적어도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걸 만들어 와!”

    궁지에 몰린 참가자 존이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마에스트로는 이해하시잖아요! 제 음악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시잖아요!”

    “닥쳐!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누 가 알아주길 바라는 생각은 애새끼의 발상이다. 어리고 이기적일 뿐! 네 혼잣말 따위를 누가 듣고 싶어 한다는 말이야!”

    ‘암 그렇고말고.’

    두 번째 참가자의 연주를 들으며 오렌지 과즙을 잔뜩 넣은 탄산수를 들이켜고 싶었던 배도빈은 그제야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두 번째 곡은 분명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의도를 어느 정도 추 측할 수 있었다.

    배도빈이나 푸르트벵글러, 심사를 맡은 이들이라면 그 진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배도빈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사카모토 료이치가 가 장 끔찍하게 여기는 부류였는데, 듣는 사람을 교묘하게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음악에 의외성은 언제나 드라마틱 한 효과를 불러일으키지만 그것은 사전의 전개가 탄탄하기에 가능한 일.

    응당 들려야 할 소리 대신 다른 것이 들림으로써 생기는 놀랍고 즐거운 감정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참가자의 곡은 의 외성만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곡의 전개도 무엇을 말하고 그리는지 좀 처럼 알 수 없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경직되어 있는 클래식 장르를 탈피, 벗어나고자 하는 실험적 시도.

    그러나.

    음악을 작곡가와 연주자, 청중 사 이의 대화로 여기는 배도빈과 푸르트벵글러, 사카모토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소음이었다.

    “집어치워. 제길. 귀라도 씻고 싶군.”

    푸르트벵글러가 고개를 돌렸다.

    “마에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께서 탈락을 결정하셨습니다. 다음 에는 마에스트로 사카모토 료이치께 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 해야 할 말은 앞서 나왔고. ……존이라고 했나요? 그런 생각으로 임해서는 결코 좋은 음악가가 될 수 없습니다. 명심하세요.”

    사카모토 료이치가 경고하듯 말했다.

    심사평이 끝나자 우진이 다음 사람을 호명하려 했으나 브루노 발터, 마리 얀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모 두 고개를 저었기에 탈락이 확장되

    었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참가자도 모두 혹독한 평가를 받으며 세트장 에서 떠나야만 했다.

    “다음은 다섯 번째 참가자를 만나 볼 차례입니다.”

    “잠깐.”

    마리 얀스가 손을 들어 우진의 말을 가로막았다.

    “네, 마에스트로.”

    “참가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네만 잠시 시간을 허용해 주겠나?”

    “물론이죠.”

    우진이 한 발 물러서자 마리 얀스 가 60명의 참가자를 상대로 우려를 표했다.

    “저는 도전하는 이를 사랑합니다. 그것은 여기 계신 다른 지휘자도 마 찬가지입니다. 그런 이들이 있는 덕 에 음악은 계속 발전해 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저도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서 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에 응원하게 됩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참가자들을 숙 연하게 했다.

    “그래서 심사를 제안받았을 때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유망한 젊은 음악가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이 대 회의 정신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 죠. 그러나 앞서 심사를 진행해 보 니 저와 다른 심사 위원들이 잘못 생각했나 싶기도 합니다.”

    상냥했던 말투가 경직되기 시작했다. 백작 마리 얀스는 진심으로 분 노하고 있었다.

    “여러분, 성공한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까?”

    그의 질문에 몇몇 참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여러분이 지향해야 할 것

    은 성공한 음악가가 아니라 멋진 음악을 만드는 일입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그에 따라오는 일이죠. 성공한 음악가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사람이 성공한 음악가가 되는 겁니다.”

    대 음악가의 진심 어린 충고에 숙 연해진 참가자들 사이에서 한 사람 만이 가면 뒤에서 웃고 있었다.

    ‘좋아. 좋아.’

    배도빈은 그들을 섭외한 일에 매우 흡족해하며 대회를 즐기고 있었다.

    ‘내 콩쿠르라면 이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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