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37화 (437/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37화

    95. 수수께끼의 천재와 지옥에서 올라온 비올리스트(3)

    “틱!”

    쾰른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 하고 있던 프란츠 페터는 계좌 잔액을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안 주신다고 하셨으면서.’

    1,100유로가 들어 있어야 하는 계 좌에 6,000유로가 넘게 들어 있는 탓이었고 배도빈이 5,000유로를 입 금한 내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액의 용돈을 받은 프란츠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못하 다가 이내 배도빈에게 문자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꼭 아껴서 중요한 곳 에 쓸게요. 감사합니다!]

    [그래.]

    ‘어? 금방 답장하시네. 바쁘실 텐데.’

    프란츠 페터는 몇 달째 여러 곡을 작업하느라 몰두하고 있던 배도빈을 떠올리곤 의아해했다.

    그러나 이내 짧고 무뚝뚝한 답장에 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곤 각오를 다졌다.

    ‘진짜 잘해야 해.’

    프란츠 페터는 폭력 조직으로부터 학대받았던 자신을 구제해 준 배도빈에게 감사했다.

    ‘오늘은 밥 먹을 수 있을까?’

    ‘빵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알 많이 배고플 텐데.’

    프란츠 페터는 구걸하고 다니며 얻은 돈을 모두 빼앗기면서도 동생 알 베르트 페터를 위해 조금씩 돈을 모았다.

    그것을 들키면 흠씬 두들겨 맞길 반복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다.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런 소년이 처음 욕심이라는 것을 냈는데 낡은 펍에서 항상 틀어놓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였다.

    매장 밖에서 귀를 기울이면 그 구 슬픈 멜로디와 처절한 악상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치열한 전개 끝에 울리는 희망은 부어오른 상처를 쓰다듬었다.

    매일 매장 밖에 쭈그려 앉아 있는 소년을 가엽게 여긴 펍 주인은 소년을 안으로 들였고, 그때부터 페터 형제는 하루에 빵 한 조각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온전히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느껴본 인정.

    너무나 간절했기에 프란츠 페터는 ‘할당량’을 채우는 것에 앞서 펍과 그 주변을 청소하고 주인장의 심부름을 하는 데 매달렸다.

    그것만이 유일한 구원줄이었다.

    학대가 더욱 심해져도 주인장이 혹 여나 이제 오지 말라고 할까 봐 힘든 내색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어 지금의 성격을 이루게 되었고.

    배도빈을 만남으로써 한 번 더 변 할 수 있었다.

    ‘비굴해지지 마.’

    ‘쉬운 길로 가려 하지 마.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걸 가지고 있잖아.’

    ‘피아노를 쳐. 곡을 써. 그게 네가 할 일이야.’

    이유 없는 호의라니.

    믿을 수 없었다.

    이러다 이용당할 거라고 언젠가는 내쳐질 거로 생각하며 프란츠는 배도빈이 바라는 걸 해내고자 어떻게든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믿고 싶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처음 인간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이었고, 베토벤과 낡은 펍의 주인장에 이어 희망을 준 세 번째 사람이었고.

    그의 도움으로 시작한 음악을 너무나 사랑했으니까.

    ‘형은 결승이라고 하셨지만 꼭 우 승할 거야. 하, 할 수 있을 거야.’

    보답하고 싶었다.

    프란츠 페터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 져준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살아남는 것만이 최선이었던 프란 츠에게도 음악이라는 삶의 목적이 생겨났고.

    베토벤 기념 콩쿠르라는 첫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 지고 또 다졌다.

    그때 다니엘 홀랜드가 허허하고 웃었다.

    “이야. 파울도 참가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돼서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고생 좀 할 것 같다, 페터.”

    “네?”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 악장 파울 리히터의 이름이 거론되자 프란츠 페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니엘 홀랜드가 스마트폰을 돌려 잡아 베토벤 기념 콩쿠르 본선 진출 자 명단을 보여주었다.

    그의 말대로 화면 중앙에 파울 리 히터의 이름이 떡하니 적혀 있었다.

    “자, 잠깐 봐도 괜찮을까요?”

    다니엘 홀랜드가 흔쾌히 핸드폰을 넘기곤 말했다.

    “나가더니 정말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모양이네. 저번에 캐나다에서 한 연주회도 크게 성공했다고 하던 데. 이번엔 작곡까지?”

    “나는 잘 모르지만 도전하는 모습 은 분명 존경스럽다.”

    스칼라도 맞장구를 쳤다.

    “지휘 콘테스트에도 참가할 예정이 라는 기사를 봤어요. 여러 곳에서 제안도 들어왔다는데 좀 더 경험을 쌓고 싶다며 거절하셨대요.”

    나윤희의 말에 찰스 브라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 서려면 그 정도는 해내야지. 분명 머지않아 큰 세력을 이룰 거야.”

    “궁금한 게 있다만.”

    스칼라가 나서서 물었다.

    “지휘자는 다 악기도 다루고 곡도 다루는 건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와 배도빈, 파울 리히터까지 못 하는 게 없군.”

    “적은 비율은 아니지. 악기를 못 다루는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고 편곡 자체가 곡에 대한 이해력을 기반으로 하 니까.”

    찰스 브라움의 대답에 스칼라가 고 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를 돕는 악장도 비슷한 소 양을 지녔단 말이군.”

    스칼라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 나윤희와 왕소소를 보았다.

    “난 못 해.”

    나윤희가 또다시 의문이 생긴 스칼 라를 위해 입을 열었다.

    “곡을 온전히 만드는 일과 편곡은 다르니까. 나나 소소는 아직 배워가는 단계라 파울 씨나 찰스 씨처럼은 무리야.”

    “크흠.”

    찰스 브라움이 헛기침을 하며 기쁜 내색을 감추었고 스칼라는 그런 찰스에게 감탄했다.

    “바이올린만 잘 켜는 찌질이라 생 각했는데 그런 면이 있었군.”

    “……너는 언제고 한번 독일어와 예절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군.”

    “가르침을 준다면 언제든지 환영이 지. 유치원도 졸업해서 이제 배울 곳이 없거든.”

    찰스 브라움이 눈짓으로 스칼라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물었고 나윤희는 고개를 돌려 답을 회피했다.

    한편 일행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본선 진출자를 확인하던 프란츠 페터는 몸을 벌벌 떨었다.

    반드시 우승해서 그 영광을 배도빈 에게 돌리려 했거늘.

    파울 리히터라는 고산도 모자라 또 하나의 거대한 산맥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브라움 악장님!”

    너무도 큰 목소리라 일행이 깜짝 놀랐지만 프란츠 페터는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악장님도 출전하신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요!”

    “뭐?”

    페터의 말에 다니엘 홀랜드와 왕소소, 나윤희가 다시 한번 놀랐다.

    일행과 어울리기 싫어 헤드폰을 끼고 있던 가우왕마저 그 소란에 수면 안대를 벗었다.

    “무슨 소란이야?”

    가우왕이 프란츠에게서 다니엘 홀랜드의 핸드폰을 빼앗아 제3회 베토벤 기념 콩쿠르 본선 진출자 명단을 확인했다.

    Adam Rose(익명, 비공개)

    Anton Webern(익명, 비공개)

    Franz Peter(16)

    Jenny Hettne(24)

    Leira(익명, 비공개)

    Ludwig(익명, 비공개)

    Park Junsoo(31)

    Paul Richter(56)

    Tamaki Hiroshi(26)

    Virtuous firebird(익명, 비공개)

    대충 스크롤을 내리던 중 ‘Virtuou S firebird’라는 가명을 확인한 가우왕이 고개를 돌렸다.

    “이거 너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찰스 브라움이 부정했으나 가우왕 은 못 볼 거라도 본 듯 고개를 젓 고는 수면 안대를 썼다.

    “누가 봐도 브라움 악장님이시잖아 요! 이런 가명 쓰면 누가 못 알아볼 줄 아셨어요?”

    “모, 모르는 일이라니까.”

    “저 꼭 우승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모르는 일이래도.”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진 프란츠 가 찰스 브라움에게 매달릴 때 왕소 소가 나윤희에게 물었다.

    “우쭐대는 꾀꼬리가 뭔 뜻이야?”

    “크학학학학!”

    그 질문에 다니엘 홀랜드와 나윤희 가 웃고 말았다. 고결한 불새라는 의미로 이해할 것을 오해한 것 같다 고 설명하니 왕소소가 그제야 납득 했다.

    “그럼 찰스 맞네.”

    소소의 반응에 프란츠가 더욱 날뛰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베를린 음대 교수이며 단 한 장이지만 바이올린 독주곡 앨범을 성공시킨 음악가가 참가한다고 하니, 반드시 우승해서 배도빈에게 보답하려던 프란츠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들 노는 콩쿠르에서 무슨 짓이 래? 주접이야.”

    왕소소까지 나서서 일침을 놓으니 찰스 브라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동료들에게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지. 놀라지 말고 들어라. 고 결한 불새는 사실 내 가명이다.”

    싸늘해진 분위기 따위 찰스 브라움 에게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너희도 알고 있다시피 얼마 전 난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엉덩이?”

    “크흡.”

    스칼라의 질문에 나윤희가 기어이 웃고 말았다.

    다니엘 홀랜드는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고 평소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왕소소도 밝게 웃었다.

    찰스 브라움은 간신히 이성을 유지 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니. 하나는 콩을 차지하라에서 저놈과 네게 밀렸던 것.”

    찰스 브라움이 손가락으로 가우왕을 가리키며 나윤희를 보았다.

    “둘은 최지훈에게마저 밀려나 결국 5위 밖으로 밀려난 것. ……나는 견 딜 수 없었다.”

    어느새 비장해진 남자를 보며 일행은 한숨을 내쉬었다.

    “배도빈에게 곡을 써 달라 하려고도 했지. 그러나 그랜드 심포니와 올림픽 주제곡, 파우스트까지 준비 하는 그에게 내 욕심을 강요할 순 없었다.”

    프란츠 페터는 소외받는 유학생들을 위해 직접 음대까지 설립하고 불우한 이웃을 도우며 자신의 욕심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정상적, 아니, 이상적인 인간 찰스 브라움이 대체 왜 배도빈에게 집착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배도빈이 말하는 집착과 간절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 그가 쓰기 힘들다면 직접 나서면 된다고. 그때 페터, 네가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 약한 대회였으나 심사 위원은 다섯 명의 마에스트로. 그들이라면 내 곡 의 가치를 알아주고 또한 빛내줄 거 라 생각했다.”

    “그리된다면 분명 팬들도 알아주겠지. 배도빈도 다시 생각하겠지. 나 영연방 왕국의 왕자 찰스 브라움이 야말로 그와 함께 음악을 할 남자라 고.”

    헤어진 연인에게 들러붙는 듯한 발 언에 왕소소는 질려 버렸다.

    다니엘 홀랜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보통 미친놈이 아니라고 생 각했고 나윤희는 또다시 불똥이 튈 까 모른 척했다.

    스칼라가 나섰다.

    “그럼 당신 곡은 누가 연주하지? 도빈이도 참가하나?”

    “아니. 말 그대로 바쁘니까. 그러나 그를 위해 준비한 곡을 다른 사람이 먼저 연주해서는 말이 안 되니, 직 접 하기로 했다.”

    “그런 것도 가능해요?”

    “그렇다더군.”

    “엄청 자유롭네요. 베토벤 기념 콩쿠르.”

    “덕분에 신분을 숨기고 참가할 수 있었지. 그러니 다들 이 일은 비밀 로 해주길 바란다.”

    일행은 찰스 브라움이 오케스트라 대전 때 치질 사실을 숨기려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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