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36화 (436/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36화

    95. 수수께끼의 천재와 지옥에서 올라온 비올리스트(2)

    2025년 11월 20일.

    대회 활성화를 위해 전력을 다한 베토벤 기념 콩쿠르 협회였지만, 예 상을 훨씬 웃도는 참가자 수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가 신청서와 악보, 녹음 파일을 담은 소포가 산더미처럼 쌓인 탓에 따로 보관할 장소를 물색해야 했고.

    다섯 명의 전설이 엄격히 심사한다는 이슈와 결승 진출 곡을 베를린 필하모닉이 직접 녹음해 준다는 파격적인 혜택으로 나날이 커져 가는 기대 속에 신청자가 물밀 듯이 늘어 났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자 운영회 내부 에서 본선 진출자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거론되었다.

    앞서 두 차례 콩쿠르 진행을 총괄 했던 히무라 쇼우로서도 이 예상치 못한 큰 관심을 어떻게 풀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곡을 발굴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콩쿠르입니다. 다행히 많은 분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니 이번 기회를 놓쳐선 안 됩니다.”

    “확실히 이런 호재를 놓칠 순 없지요. 이미 여러 단체에서 협업 문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콩쿠르를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면 어떻게……

    한 운영 위원의 말은 모두의 뜻과 같았으나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저도 그리 생각하다만, 현재 본선 참가자를 선별하는 일만으로도 모든 업무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일반 직 원들은 규정에 따른 신청서를 구분하는 데만 벌써 사홀째 밤을 새우고 있고 미리 시작한 예선 심사도 마찬 가지예요.”

    “다른 팀에서 인력을 끌어올 순 없습니까?”

    “마케팅팀은 포화 상태입니다.”

    “기획팀은 이미 지원 나가 있는 상황입니다.”

    “허어. 취지를 따르자니 인력이 부족하고 무시하자니 기대가 너무 크 고. 자칫 잘못했다간 다음 콩쿠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협회장 히무라 쇼우가 입을 열었다.

    “직원들의 업무 과다는 최대한 인력을 끌어 해결하도록 하죠. 중요한 건 보다 많은 지원자에게 기회를 주 고, 콩쿠르의 격을 높이는 일이니 별개 문제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빌, 다른 협회에 파견 요청을 넣어 보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히무라 쇼우가 눈길을 주자 한 직원이 나서서 히무라가 준비한 안건을 언급했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의 인지도를 확보하고 보다 많은 참가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몇 가지 방안을 실행하고자 합니다.”

    운영 위원들이 그 말에 관심을 보였다.

    “우선 기존 본선 진출 인원을 16 명에서 64명으로 증대할 예정입니다. 그에 따라 변경될 이야기는 참 고자료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 구성도 바뀌어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JH스튜디오와 미시시 피 프라임 비디오에서 생중계될 방송도 변경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걱정이네요.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들이 따라올 수 있을까요?”

    “이미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조율 중에 있습니다. 이어서 바뀐 진행 방식을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전면 스크린에 베토벤 기념 콩쿠르 의 새로운 일정이 도식화되어 나타났다.

    “기존 16명, 8명, 4명을 뽑는 3라 운드제 선발 인원이 64명, 8명, 4명으로 나뉠 예정입니다.”

    운영 위원들은 갑작스레 변하는 심 사 방식을 우려했으나 뒤이은 설명에 어쩔 수 없이 납득하고 말았다.

    “심사 위원단은 본선 진출자를 늘 려야 한다는 우리 측 요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작곡 콩쿠르의 한정적인 기준에 따를 수 없다는 이유로 1라운드 64명에 대한 심사는 매우 빠르게 처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운영 위원회 사람들이 저마다 시선을 교환했다.

    예상된 일이었는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같은 인물을 섭외할 때 심사 방식에 대한 전권을 넘기기로 합 의한 탓이었다.

    히무라 쇼우가 나섰다.

    “여기서부터는 직접 말씀드리지요. 수고했어요.”

    직원이 물러섰고 히무라가 운영 위원회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쉽게 말하면 1라운드는 서바이벌입니다. 심사 위원단이 요구하는 과 제를 수행하지 못한 인원은 그 즉시 탈락 처리됩니다.”

    히무라의 말 속도에 맞춰 스크린 화면이 바뀌었다.

    “과제는 2라운드에 진출할 8명이 남을 때까지 반복됩니다. 그 내용은 그들을 섭외하기 위해 위임한 전권으로, 심사 위원단이 향후 통보할 예정입니다.”

    미리 합의된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기에 운 영 위원회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시로 알려온 것을 말씀드리자 면…… 예선 참가곡을 즉홍 해서 편 곡하는 것. 심사 위원이 제시한 공 통된 주제로 완성된 곡을 만드는 일 같은 것입니다.”

    “곡을 대회 기간 중에 직접 만든다 고 하셨습니까?”

    “네.”

    “그렇다면 대회 기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만.”

    “저도 같은 생각으로 여쭸습니다만 다섯 심사 위원 모두 하루를 주면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 그대 로 하루 정도야 일정에 큰 변동이 없을 테고요.”

    히무라 쇼우의 발언에 베토벤 기념 콩쿠르 운영진들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자칫 진출자가 없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히무라 쇼우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외 네 명의 거장이 바라는 수준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단 하루 만에 정해진 주제음을 가 지고 그들에게 인정받는 곡을 만들라니.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배도빈이 참가하는 걸 몰랐더라면 히무라 역시 결승 진출자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터였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한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 또한 이슈가 되겠죠.”

    “그럼 참가자에게 기회를 준다는 목적이……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유망한 작곡가를 지원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 나 어디까지나 수준 이상일 때의 이 야기입니다. 정말 좋은 곡이라면 심 사 위원 다섯 분이 모른 척하실 리 없겠죠.”

    수준 미달의 참가자에게 지원할 수는 없다는 협회장 히무라 쇼우의 발 언은 작은 우려를 남기고 받아들여 졌다.

    “자, 그럼 결정된 사항은 조속히 공지토록 하고 심사 방식은 현장공 개를 원칙으로 하겠습니다. 외부 인력 파견 요청은 말 나눴던 대로 즉 시 하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한편 그 시각.

    베토벤 기념 콩쿠르 협회의 직원들 은 규정에 맞게 온 참가 신청서를 분류하여 예선 심사 위원에게 실시 간으로 넘기는 중이었다.

    명단을 작성하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렇게 현 물로 신청을 받아. 진짜 미치겠네.”

    “나만 답답해? 나만 그러냐고.”

    “벌써 집계된 사람만 2천 명이 넘었어. 이건 미친 짓이야.”

    불평을 듣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동료를 노려보았다.

    “입 닫아. 불평할 시간이 하나라도 더 처리하라고. 오늘 밤도 철야하기 싫으면 당장 펜부터 다시 쥐어.”

    협회 직원들이 사투를 벌이는 도중, 예선 심사를 맡은 이들도 고생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 이 사람 내가 아는 그 사람 맞아?”

    그때 명단을 적고 있던 사람이 신 청서를 받아보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아. 그렇더라. 대단하지 정말. 프리로 전향하고 나서는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겠다는 것 같아.”

    직원은 이미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 악장이라는 명성이 있음에도 그에 안주하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도전 하는 사람, 파울 리히터의 이름을 적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다음 신청서를 넘겨받았는 데 피식 웃고 말았다.

    “진짜 별별 인간들이 다 참가했네. 루트비히라니. 이 대회가 누구를 기 리며 만들어졌는데 이런 가명을 써?”

    “실명일지도 모르지.”

    “성이 없잖아. 참내. 뭐, 규정상 넘 기기는 하겠지만 보나 마나 예선에 서 떨어질 게 뻔해. 어떤 인간인지 얼굴 한번 보고 싶네.”

    “도빈아!”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 케르바 슈타인이 배도빈을 급히 불렀다.

    집무실에 있던 배도빈은 그를 반갑 게 맞이했다.

    “어서 와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왜 하필 지금인데! 선생님이 심사 위원으로 나갈 시기에 너까지 자리를 비우면 지휘는 누가 하고.”

    배도빈은 케르바 슈타인을 볼 뿐이었다.

    그가 당황해서 물었다.

    “한 달 동안 모든 공연을 다 맡으라고?”

    “케르바는 할 수 있어요.”

    밑도 끝도 없는 신뢰에 케르바 슈 타인은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크루즈 일정이 없다 해도 이건 무 리야. B팀 레퍼토리는 그렇다 쳐도 A 팀은?”

    “30년 동안 콘서트마스터로 있던 사람이 있죠.”

    “할 수 있어요. 어차피 정기 연주 회뿐이니까 하던 대로만 하세요. 게다가 올해 송년 음악회는 케르바한 테 맡기자고 푸르트벵글러와 이야기했고요.”

    베를린 필하모닉의 송년 음악회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이벤트로 최근 50년간 지휘봉을 잡았던 사람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배도빈뿐이었다.

    그 크나큰 자리를 맡긴다는 말에 케르바 슈타인의 어깨는 무거워졌고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하, 하지만.”

    “앞으로도 유동적으로 움직일 거예요. 할 일이 많아진 만큼 예전처럼 한 사람이 도맡을 순 없으니까요. 다행히, 베를린 필하모닉엔 케르바슈타인 같은 좋은 지휘자도 있고요. 헨리도 보조해 줄 테니 걱정 말아요.”

    “……도빈아.”

    기나긴 세월,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케르 바 슈타인은 감동받고 말았다.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나이를 떠나 최고의 음악가로 인정하는 배도빈이 송년 음악회를 맡기니 반드시 부응해야 한 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 맡겨줘.”

    “그럴 생각이었어요.”

    케르바 슈타인이 믿음직스러워, 배도빈은 웃은 뒤 다시금 펜을 들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뭐가요?”

    “한 달이나 비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 혹시 전에 말하던 그랜드 심포니 때문이야? 아니면 파우스트 오페라?”

    케르바 슈타인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대규모 사업으로 예정되어 있는 대교향곡과 파우스트 오페라를 언급 하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양쪽 모두 거의 완성 직전에 이르렀다고 알고 있던 탓인데.

    배도빈은 차마 그런 케르바 슈타인 에게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 익명으로 참가하고자 자리를 비운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배도빈이 뭐라 답하기 전에 케르바 슈타인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연말이라 다들 바쁘긴 한 모양이야. 찰스도 휴가 내더니.”

    “아, 베트호펜 기념 콩쿠르 때문일 거예요.”

    “참참. 그러고 보니 페터랑 대회 출전하는구나. 그럼 다른 밴드 멤버 들도 다 같이 가겠네. 한 달이나 떠나 있으면 제법 썰렁하겠는데?”

    “한 달이요?”

    “찰스가 그러던데?”

    배도빈은 찰스 브라움이 한 달이나 빠진다는 말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대교향곡과 올림픽 주제곡, 파우스 트, 베토벤 기념 콩쿠르 출전곡까지 준비하느라 직원의 휴가 같은 작은 일은 카밀라 앤더슨에게 위임해 두었기에, 다른 밴드 인원도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배도빈이 컴퓨터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인트라넷에 접속하여 직원들의 휴가 신청 처리 현황 탭을 눌렀다.

    가우왕, 다니엘 홀랜드, 나윤희, 왕 소소, 스칼라가 국제 표준 대외 행 사 참여를 이유로 18일간의 특별 휴가를 지급받고 사용했다고 표시되 어 있었다.

    ‘이게 정상인데.’

    베토벤 기념 콩쿠르 일정상 2라운드까지 연주자가 필요했으나 결승은 참가자만 참여 가능했다.

    참가자는 한 달 가까이 본에 머물러야 했으나 연주진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기에 배도빈은 찰스 브라움의 한 달 휴가를 의아히 여겼다.

    “사정이 있겠지. 연말이니 대학 일도 바쁠 테고. 아무튼 무대는 맡겨 두고 너도 네 일에만 집중해. 베를린 필하모닉의 이름에 어울리는 연주를 해낼 테니까.”

    “항상 믿고 있어요.”

    “하하. 이거 기분 좋은데? 그럼 간다. 수고.”

    지금까지 본인과 베를린 필하모닉을 위해 전 직원과 단원들을 구슬렸던 배도빈은 그 때문에 가장 고생한 케르바 슈타인에게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분명 독일 차를 좋아했지.’

    케르바 슈타인의 차량이 제법 오래 되었단 사실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메모를 해두고 다시 일을 보려는데 복도에서 나는 단화 소리가 가까워졌다.

    ‘페턴가?’

    짧은 보폭으로 무게감 있는 소리라 프란츠 페터가 아닐까 싶던 차.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와.”

    “형, 저 페터! 어?”

    집무실로 들어온 페터는 자기 몸통만큼이나 큰 배낭을 메고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전 거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이제 출발하는 거야?”

    “네! 주차장에 모여 가기로 했어요!”

    배도빈이 손짓으로 페터를 가까이 불렀다. 소년이 뒤뚱뒤뚱 다가오자 배도빈이 봉투를 꺼냈다.

    그것을 본 프란츠 페터가 화들짝 놀랐다.

    “저, 저 저금해 둔 거 있어요! 게다가 숙식 모두 지원되어서 돈 필요 없어요!”

    “돈 아니야.”

    “••••••히히.”

    프란츠 페터가 봉투를 받아 열었다.

    하나는 정식 단원 계약서였고 하나는 베를린 필하모닉 미화원 계약서였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기에 소 년은 그저 두 계약서와 배도빈을 번 갈아 볼 뿐이었다.

    “우승하라고는 안 해. 결승까지 오르면 그 순간 넌 베를린 필하모닉 소속의 정식 작곡가가 되는 거야.”

    프란츠 페터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

    “정말요? 정말, 정말 그래도 돼요?”

    “그래.”

    벌써 전속 작곡가가 된 것처럼 좋아하던 프란츠 페터가 다른 계약서를 보았다.

    “그럼 이건……

    “결승에 못 올라도 밥은 먹고 살아 야 할 거 아니야.”

    “ 네?”

    결승에 오르지 못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조차 박탈시키겠다는 말에 프란츠 페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는 애 써 괜찮은 척했다.

    “혀, 형도 인정해 주셨고. 연주자도 저보다 좋은 조건은 없을 거예요. 괘, 괜찮아요!”

    “그래. 그러고도 결승에 오르지 못 하면 말이 안 되지.”

    ‘어떡해.’

    프란츠 페터는 배도빈의 단호함에 잔뜩 쭈그러졌다.

    “그, 그럼 저 가볼게요!”

    배도빈은 잔뜩 긴장해서 이것저것 벼락치기를 할 프란츠 페터를 바라 보며 씩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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