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34화 (434/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434화

94. 라이징 스타(4)

배도빈의 말에 최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히무라한테 상담했더니 좋아하더라고. 심심해하는 거 같았는데 다행이지.”

배도빈이 말하는 재단이라면 유장 혁 회장이 만들어 손자에게 넘긴 도빈 재단뿐이었다.

“ 정말?”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지훈은 스마트폰을 펼쳐 베토벤 콩쿠르를 검색하고 공식 홈페이지를 살폈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 협회가 운영하 며 도빈 재단이 후원.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라이징 스 타 엔터테인먼트가 지원한다는 내용 이 홈페이지 최하단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대회 운영을 위한 협회를 따로 두 고 재단이 지원하는 방식은 흔한 일 이었지만 라이징 스타 엔터테인먼트 (샛별 엔터테인먼트)까지.

배도빈의 말대로 제법 이름 있는 콩쿠르가 그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지훈은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이 해하려 했지만 형제가 무슨 이유로 콩쿠르까지 개최하는지 알 수 없었다.

“굳이 만들 필요가 있었어? 설마 페터 때문이야?”

“설마.”

프란츠 페터를 아끼지만 고작 좋은 기회를 주고자 3년 전부터 대규모 사업을 실행할 리 없었다.

“베트호펜 이름 달고 있는 콩쿠르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

설명을 들으니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배도빈이 베토벤을 좋아하고, 어렸을 때는 그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곡을 여럿 썼다고는 해도 이렇게까 지 존경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게 뭐야.”

“중요한 거야.”

최지훈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형제가 또 한 번 헛소리를 하는 거라 생각하며 이해하길 포기 했다.

“굳이 말하면 하나 더 있는데.”

배도빈이 베토벤 기념 콩쿠르를 만든 두 번째 이유를 풀기 시작했다.

“가우왕이랑 찰스 브라움이 왜 현대 클래식을 다루지 않는지 알 것 같더라. 형식 파괴를 하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그런 의도만 남으니까 음악이 가져야 하는 성질마저 잃고. 그래서 음악다운 음악 만들어보라고. 잘 만들면 상 주겠다고 만들었지.”

최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도빈이 활동하기 전만 하더라도 발전과 변화를 거듭한 클래식은 더 이상 나아갈 길을 잃은 듯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신고전주의를 발전시켜 여전히 중심을 지켰고 사카모토 료이치는 음악 장르 전체를 아울러 여러 시도를 해나갔다.

양쪽 모두 성과를 거두었고 소수의 이름 있는 작곡가도 작품성을 갖추었으나 문제는 그 외 작곡가 무리였다.

스스로 음악이 아름답기 위해 범하 지 못할 규칙이란 없다고 발언한 배도빈 역시 장르에 구애받지 않았으나 그들의 파괴 행위만은 결코 인정 하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4분 33초’.

우연성 음악의 개척자인 존 케이지는 1952년 음표가 없는 악보를 발 표하였다.

연주자는 4분 33초간 앉아 있을 뿐 시간이 흐른 뒤에는 연주를 마친 사람처럼 개의치 않고 무대에서 내 려왔다.

피아니스트가 아무 것도 연주하지 않는 동안 관객들의 불평과 에어컨 소리, 기침, 숨 쉬는 소리가 어울려 그 또한 하나의 음악이라는 실험적 사고에 의한 일이었고.

당시에는 비난받았으나 또 하나의 사조를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말하자면 음악이라는 예술의 한계를 시험하고 넘어서고자 하는 실험적 행위.

그러나 배도빈은 그것을 음악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존 케이지의 발상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나 순수한 의도로 표현된 악상으로 작곡가와 연주자, 청중이 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음악의 완성이라는 배도빈의 미학에 위반되는 일이었고.

동시에 ‘쉬운 음악’을 표방하는 그 의 지침과도 반대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좋은 뜻을 지닌 ‘행위’라도 그것을 청중이 이해할 수 없으면 무의미한 짓.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소통이 부재 되었음에, 배도빈은 분노했다.

형식 파괴를 표방하는 포스트모더 니즘 또한 마찬가지.

‘사상은 자유. 그러나 음악은 아름 다워야 한다. 전달되어야 한다.’

미학의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사 상만이 남은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 배도빈과 찰스 브라움, 가우왕의 생각이었다.

배도빈은 유명하면 악기를 부수는 행위조차 음악의 일환으로 인정받는 행태와 그 아래에서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졌다.

그래서 만든 것이 자신의 옛 성을 따서 만든 베토벤 기념 콩쿠르(Beeth oven memorial competition),

음악다운 음악이 존중받고 그런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콩쿠르였다.

‘도빈이답다.’

최지훈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설립자가 자신의 대회에 가 명으로 출전한다는 이야기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뭐야. 완전 사기잖아.”

“알고 있는 건 운영장뿐이야. 그러 기 위해서 신분을 감추는 거고. 차 별 없이 오직 곡으로만 판단해야 하니까.”

“흐응.”

그럴 듯한 말이었다.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 의심의 여지를 남겨두었겠지만 최지훈은 자존심 강한 배도빈이 스스로를 속일 거라 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심사위원도 신경 썼어.”

“심사위원?”

최지훈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심 사위원 명단을 확인했고.

입을 크게 벌렸다.

“말도 안 돼.”

“히무라는 유능해.”

최지훈은 남에게 평가받길 극도로 싫어하는 배도빈이 대회 준비를 즐거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과연 깐깐한 형제도 납득할 만한 위인들이 모였다고 생각했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 협회는 세 번 째 경연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본 격적으로 나서 마케팅을 펼쳤다.

설립자 배도빈의 의지에 따라 충분 한 예산이 확보되어 있었고, 금전 이상의 조력까지 얻었기에 협회 전 체가 고무되어 있었다.

개최지는 악성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의 고향 본.

그를 기리는 기념품으로 가득한 도 시였으나 3년 전부터는 더욱 활기를 띠었는데 거리마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 관한 포스터로 가득했다.

본의 주민들은 올해 말에 관광객이 잔뜩 몰려들 것을 대비하며 그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을 기대했다.

“빌리! 내가 침대 고쳐 놓으라고 했지! 곧 있으면 관광객들이 넘쳐날 거라고!”

“알았어요. 알았어. 작년에도 난리 치고 먼지만 털었으면서 재촉하긴.”

“뭐? 너 뭐라 그랬어!”

“그렇잖아요! 그깟 콩쿠르 하나 가 지고 사람이 많이 몰리면, 아무나 다 부자 됐겠죠!”

“하하하! 빌리! 이 염병할 자식. 지금 감히 내 와이프한테 큰소리를 친 것이냐?”

“아, 아빠. 악!”

“걱정 마라. 이번에는 심상치 않아. 벌써 방송국에서도 나와서 촬영하고 다니지 않냐. 네 엄마 말대로 올해는 사람이 미어터질 거야.”

본 시민들의 생각대로 제3회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 대한 관심은 예사롭지 않았다.

협회는 작년부터 세계 여러 언론사 와 국가별 클래식 음악 협회에 대회 요강을 보내어 참가를 독려했는데.

앞선 두 차례의 콩쿠르에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들도 이번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

우승자 및 준우승자에게는 약속된 부상 때문.

우승자 3만 유로, 준우승자 1만 유로, 결승 진출자 5천 유로라는 상금도 매력적이었지만.

결승에 진출한 4명에게는 그들의 곡을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여 앨범으로 제작해 주는 특전이 부여 됐고 작곡가에게 있어 그보다 매력 적인 조건은 있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 각지의 작곡가들이 기성과 신인을 가리지 않고 베토벤 기념 콩쿠르에 참가하고자 했고.

언론을 통해 다섯 명의 리빙 레전드가 심사를 맡는다는 이야기가 전달되면서 음악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베토벤 기념 콩쿠르. 다섯 명의 심사위원 공개】

지난 1일, 베토벤 기념 콩쿠르 협 회가 세 번째 대회를 맞이하여 심사 위원진을 공개하여 화제가 되었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무소속), 브루 노 발터(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 석 지휘자), 마리 얀스(암스테르담 로얄 콘세르트허바우 총감독), 사카모토 료이치(빈 필하모닉 상임 지휘 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베를린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수많은 명장 중에서도 20세기와 21세기를 대표했던 이들이 한 자리 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1회 오케스트라 대전에서는 사카모토 료이치가 불참, 제2회 오케스트라 대전에서는 아르투로 토스카니 니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참전이 불확실한 가운데, 이미 고령의 이들 이 함께하는 자리는 이번이 마지막 일 거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협회장 히무라 쇼우는 이 다섯 명 의 마에스트로를 섭외하는 과정이 험난했다고 말하며, 최고의 콩쿠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오랜만에 일감을 얻은 히무라 쇼우는 자신의 대업을 과시하려는 듯, 전 세계 유명 매체는 모조리 동원하여 해당 사실을 알렸다.

덕분에 다소 인지도가 낮았던 베토벤 기념 콩쿠르는 순식간에 화두에 올랐고, 히무라가 바라던 대로 팬들 은 열광했다.

ㄴ 와 개미쳤다 진짜.

ㄴ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대체 돈을 얼마를 풀었길래 저 인간들이 다 나와?

ㄴ  적어도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닌 듯.

ㄴ 저 라인에 배도빈 없으니까 이제 이상하게 느껴지는 내가 이상하다ㅋ

ㄴ 참가자들 멘탈 터지겠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푸르트벵글러랑 토스 카니니는 인정사정없이 깔 텐데.

ㄴ 앜ㅋㅋㅋㅋ 진짜 그렇겠다. 감히 내게 이 따위 곡을 가져와서 시간 낭비를 하게 해! 라고 할 듯ㅋㅋㅋ

ㄴ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온라인 여론 반응을 체크하던 히무라 쇼우가 빙그레 웃었다.

사실 참가자 중에서 이름을 알린 사람이 거의 없는 탓에 관심도가 낮았던 베토벤 기념 콩쿠르가 지금은 전 세계 음악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배도빈의 강요로 다섯 음악 가를 섭외하는데 크게 고생했던 그로서는 그보다 보람찬 일도 없었다.

반년 전, 히무라는 배도빈의 갑작 스러운 요구를 받았다.

‘섭외좀 부탁해요.’

‘섭외?’

‘베트호펜 기념 콩쿠르 심사위원이 마음에 안 들어요.’

‘아직 내정된 사람이 없어서 괜찮지만, 생각해 둔 사람이라도 있어?’

‘푸르트벵글러나 사카모토, 마리 얀스 정도면 좋겠어요.’

‘……차라리 직접 한다고 하지?’

‘그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출 전해야 해서 안 돼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절 평가할 정도의 사람 이 아니면 안 돼요.’

‘도빈아, 잠깐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야. 네가 바라는 건 사카모토 선생님 정도의 사람인데, 전 세계를 탈탈 털어도 다섯 명뿐인 사람을 어떻게 섭외하라는 거야?’

‘다섯 명?’

‘사카모토 선생님, 푸르트벵글러, 마리 얀스,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지.’

‘그 정도면 괜찮네요. 다섯 명이니 구색도 맞춰지고.’

‘야!’

‘할 일 없어서 심심하다고 했잖아요. 오랜만에 힘 좀 써봐요.’

‘내가 도라에몽이냐? 말만 하면 다 해내게?’

‘그게 뭔지는 모르는데 말만 하면 다 해냈잖아요.’

그 지나친 신뢰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어 쨌거든 과업을 수행한 히무라 쇼우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의 오랜 친구 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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