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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33화 (433/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33화

    94. 라이징 스타(3)

    그 상냥함에 취한 아리엘이 미소 지었다.

    다리를 벤 채 누워 자신을 올려다 보는 진달래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입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리엘이 진달래의 이마에 입술을 댔다.

    그것이 간지러워 진달래가 몸을 뒤 척였다.

    그러나 천천히 입을 옮겨 미간과 콧잔등을 지나는 아리엘의 온기를 충분히 느꼈다.

    그의 정중하고 사랑 넘치는 행위는 언제나 즐겁고 설렜다.

    아리엘이 입술을 뗐다.

    입술을 오므리고 잔뜩 기대하고 있던 진달래가 눈을 떠 항의하자 아리 엘이 난감하게 웃고 말았다.

    “자세가 불편하네요.”

    “뭐얔

    진달래가 아리엘의 오른쪽 볼을 잡아 늘였다.

    두 사람이 한차례 웃었다.

    아리엘은 책을 폈고 진달래는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 크를 흥얼거렸다.

    평온.

    언론과 여론의 비난 속에서 상처 받은 순수한 영혼은 진달래와 있을 때 비로소 치유 받았다.

    아리엘은 진실로 그녀와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처음에는 외견에 반했고 두 번째는 명랑한 모습에, 세 번째 만남 뒤에는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상냥함도 급한 성격도.

    록을 좋아하는 것도 극성스러운 면 도 기가 센 점도 그러면서도 간혹 덜렁대는 모습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활동하는 지역이 달랐기에 어 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 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고민을 털어놓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두세 달에 한 번 만나 며칠을 함께할 뿐이었으니, 그 시간만은 즐 겁고 행복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굳이 상처를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아리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접했던 진달래 도 그 일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았다.

    아리엘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말해줄 거라 생각 하며, 상처를 감추려는 연인을 평소 처럼 대할 뿐이었다.

    그 상냥함 덕분에 아리엘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미숙함으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을 잃은 치욕을, 감추고 싶었던 일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잘 보이고 싶은 이에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진달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나가는 아리엘을 안아주었고, 아리 엘은 포기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진달래를 끌어안았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의지하며, 또 한 번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해.”

    진달래의 말에 아리엘이 눈을 깜빡였다.

    “베토벤 콩쿠르 말이야. 신원확인도 안 한다며.”

    “네. 덕분에 가명으로 참가할 수 있었죠.”

    “조금 수상하지 않아?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었으면서도 상금도 많고. 채은이가 심사위원도 엄청 신경 썼다고 하던데.”

    “확실히 3년 전에 만들어진 콩쿠르 치고는 여러모로 혜택이 많습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등단 코스이기도 하고요.”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봤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으으음. 아무튼 꼭 우승해!”

    “그럴 생각입니다.”

    진달래가 활짝 웃으며 오른쪽 손목으로 아리엘의 뺨을 어루만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리엘에게 기댄 채 TV를 돌리고 있던 진달래가 베를린 필하모닉에 대한 뉴스가 나오자 채널을 고정하였다.

    푸르트벵글러호를 배경으로 서 있는 기자는 베를린 필하모닉에 대한 우려를 보도하고 있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베를린 필하모닉의 크루즈 푸르트벵글러호 가 세 번째 출항을 마쳤습니다.

    “재밌었겠다.”

    진달래의 말에 아리엘이 웃으며 그 녀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케르바 슈타인이 이끄는 C팀과 함께한 여행에 여행객들은 만족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만선을 채우고도 운영에 제한이 있다는 소식 또한 들리고 있습니다.

    “ 아.”

    진달래의 표정이 좋지 않아졌다.

    -한 관계자는 푸르트벵글러호의 운영 비용과 크루즈 여행 상품 가격 이 맞지 않음을 지적하며, 베를린 필하모닉이 푸르트벵글러호를 운영함에 있어 손해를 감수하고 있을 거 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대 해 베를린 필하모닉 사무국은 부정 하며 푸르트벵글러호 사업이 계속 이어질 거라 밝혔습니다.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은 디지털 콘서트홀을 통해…….

    뉴스는 디지털 콘서트홀 수입으로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리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재정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진달래가 TV 전원을 꼬고 신음했다.

    “으으으아아.”

    “틀린 말은 아니네요. 완편 오케스트라가 2주간 활동하는 데 반해 푸르트벵글러호 패키지 상품은 지나치 게 저렴한 면이 있습니다.”

    “응. 손해는 아닌데 남는 게 거의 없나 봐. 지상에서 할 때는 온라인 수입이 많아서 괜찮은데 크루즈에서는 제한되는 게 많으니까.”

    진달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티켓 값을 올릴 여지는 없습니까?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면 충분히 수요 가 있을 텐데요.”

    “응. 도빈이가 그 이상은 절대 안 된대. 애초에 더 많은 사람이 실연을 들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랬어.”

    9박 10일 패키지 가격인 5,500유 로조차 배도빈이 더 내리려는 것을 사무국과 크루즈사업부가 결사반대 하여 겨우 지킨 마지노선이었다.

    단원 모두 크루즈 공연과 그에 딸 린 해외 공연을 반가워했지만, 인건 비를 포함한 푸르트벵글러호 유지 비용을 제외하면 수익이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인테리어 및 배의 보수 작업에 들어가는 비용도 발생 할 테고 베를린 필하모닉으로서는 그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마왕에 대한 소식이 뜸하군요. 저런 일을 처리하느 라 바쁜 건가요?”

    “도빈이?”

    아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엔 곡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 그러고 보니 올해는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밖에 없었네.”

    매해 적어도 두세 곡씩 발표했던 배도빈은 2025년 1월, 가우왕에게 헌정한 세 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 이외에 2025년 10월까지 침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연주나 지휘에서 평소와 같은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에 대해 별생각 없던 진달 래도 이상하게 여겼다.

    “정말 바빠서 그런가? 아닌데? 요 즘엔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는데.”

    고민하던 진달래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배도빈 걱정은 하는 거 아 니야. 어련히 잘하겠어.”

    그렇게 말한 진달래가 갑자기 우울 해졌다.

    “그럴 시간에 내 걱정이나 해야지. 10억 4천만 원 남았다……

    복귀 이후 최전성기를 맞이한 최지훈은 유럽 여러 오케스트라와의 협 연을 연이어 소화했다.

    A108 이후 본인만의 색채를 띠기 시작한 최지훈을 향한 언론과 팬덤 의 반응은 그보다 호의적일 수 없었다.

    1, 2년 전의 다소 얌전하다, 밋밋 하다는 평가가 무색하게, 평론가들 은 그를 비르투오소라고 칭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인내했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최지훈은 쉬지 않고 무대 에 올랐고 10월 한 달에만 네 번의 협주와 세 번의 개인 리사이틀을 가졌고.

    덕분에 유럽에서 최지훈의 연주가 끊이질 않고 울렸다.

    언론에서는 날개를 단 최지훈이 좀 더 욕심을 부릴 거라 예상하여 11 월과 12월, 북미와 아시아에서도 활동할 거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 번의 부상으로 휴식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최지훈은 한 달간의 폭풍 같은 일정 뒤에 충분한 휴식을 가지며 그를 오래 기다렸던 북미, 아시아 팬들을 안달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

    슈프레강을 끼고 있는 배도빈의 저택을 방문하여 침대에 엎드린 채 턱을 괴고 배도빈을 관찰하고 있었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응?"

    “너 정말 못된 거 같아.”

    난데없는 시비에 악보 작업을 마무리 중이던 배도빈이 고개를 돌렸다.

    “ 뭐야.”

    “그렇잖아. 기껏 열심히 준비한 페터는 뭐가 돼.”

    “스승은 원래 엄해야 해.”

    “그렇다고 같은 대회 출전하는 게 어딨어.”

    배도빈이 깃펜을 내려놓고 악보 무 더기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한 부의 악보를 꺼내와 최지훈에게 보 여주었다.

    자세를 고쳐 앉아 그것을 살핀 최지훈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와. 이거 페터가 쓴 거야?”

    배도빈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책 상 앞에 앉았다.

    “녀석은 천재야. 정식으로 공부한 적도 없는 놈이 그런 곡을 만들었어. 고작 16살에.”

    분명 대단한 일인데 만 3살 때부 터 부활과 같은 곡을 만들었던 배도빈에게 들으니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네가 그런 말 하니까 이상하다.”

    “……객관적으로.”

    배도빈의 말대로 비교 대상이 배도빈이기 때문이지, 프란츠 페터의 재능은 이례적이었다.

    연주해 보지 않아 확실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음표를 따라가며 자연스레 떠오르는 악상은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빨리 배우나 보다. 진짜 대단해.”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한 최지훈은 적어도 곡을 쓰는 데 있어서는 프란 츠 페터가 자신보다 몇 발 앞서 있다고 판단했다.

    “머리가 좋은 건 아니야. 화성학을 가르치는데 이해를 못 하더라고. 그 런 주제에 이런 멜로디를 만드니까 천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지. 지금 은 나도 포기하고 코멘트만 해주고 있어.”

    “신기하다.”

    배도빈은 최지훈이 프란츠 페터의 재능을 이해한 듯하여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놈이니까 콩쿠르에 출전할 정도의 수준에서는 독보적일 거야.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성공하겠지. 힘들게 살았던 만큼 기뻐할 테고.”

    “응.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그럴 거야. 하지만 아직 어려. 쉽게 자만해질 수 있고 보상 심리 때 문에 망가질 수도 있어.”

    “너무 못 믿는 거 아니야? 귀여운 학생이잖아.”

    “귀여워서 그래.”

    “걱정도 팔자. 그거 노파심이야.”

    “ 맞아.”

    최지훈은 배도빈이 재능 있는 음악가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배도빈에게 재능 있는 음악가는 경쟁자가 아니라, 그의 미학에 자극을 주는 존재였다.

    서로 다른 음악을 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더욱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와 음악적 교류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음악가가 몇 안 되기 때문에, 배도빈은 재능 있는 음악가 가 바르고 정직하게 성장하길 바랐고.

    최지훈 역시 그 과정을 이뤄나가고 있었기에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승 못 하게 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

    최지훈이 배도빈이 작성한 베토벤 콩쿠르 참가 신청서를 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배도빈이 신분을 숨기고 출전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 루트비

    히라는 가명이 적혀 있었다.

    “한 번이면 족해. 그다음부터는 알 아서 잘할 거야.”

    배도빈은 평소처럼 무심하게 답했고 그를 유심히 관찰하던 최지훈은 곧 그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여 빙 그레 웃었다.

    “실은 같이 놀고 싶은 거지?”

    배도빈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

    “거짓말.”

    “아니야.”

    “ 진짜?”

    “그래.”

    최지훈은 열심히 키워낸 제자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자신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형제를 바라보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외로워 보였던 배도빈이 지금은 너무나 즐거워 하니, 그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속내를 들킨 듯한 배도빈은 언짢아 하며 베토벤 콩쿠르에 출품할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이 가명, 신원확인 같은거 안 하려나? 서류 통과는 되는 거야?”

    “응. 확인하지 말라고 했어.”

    최지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배도빈이 그 모습을 보곤 물었다.

    “말 안 했었나?”

    “ 뭘?”

    “내가 만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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