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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베토벤-432화 (432/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32화

    94. 라이징 스타(2)

    배토벤이 안 보인다.

    분명 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는데, 악보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보통은 눈에 띄는 곳에 있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밥 먹을 시간인데.’

    어제 밥을 먹지 않았으니 배가 제법 고플 텐데 걱정이다.

    “완성!”

    고개를 돌리니 피아노 앞에서 한참을 꼼지락대던 프란츠 페터가 두 손을 들었다.

    악보를 바라보다 쪼르르 다가와서는 자신 있게 내민다.

    “다 만들었어요.”

    잘 고쳤는지 확인해 보니 확실히 전보다 나아졌다.

    탁월한 발상을 부드럽게 전개시키는 강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대부 분 화음으로 처리하는 것을 지적했더니, 기를 쓰고 달려들어 마침내 완성 시켰다.

    신기한 건 수정을 그렇게 반복했는 데 악보가 깨끗하다는 것.

    새 오선지를 쓰는 건가 싶어서 물었더니 그러면 아깝다며 지워서 쓴 단다.

    녀석이 굳이 연필을 깎아다가 쓰는 이유였다.

    심지어 그조차 악보가 지저분해진 다며 음표 하나를 기입할 때도 신중 히, 최대한 바르게 쓴다.

    4분음표 같이 검은 머리를 그릴 때는 꼭 둥글게 그리고 그 안을 빼 곡히 채워 넣는다든지.

    혹시나 수정할 때를 대비해 꾹꾹 눌러 쓰지 않고 최대한 힘을 빼고 쓴다든지 말이다.

    그래서 녀석의 악보는 항상 흐리고 완성된 부분만 명확해서 알아보기 힘들다.

    이탈리아에서 미아가 됐던 이후로 솔직하고 밝아지긴 했지만 이런 부 분에 있어서는 변하지 않는 듯.

    물건을 아끼는 습관이 나쁜 것도 아니라 뭐라 할 수도 없다.

    “좋아. 내일부터 연습 들어가자.”

    “만세!”

    반년 이상 수정만 반복하다가 완성 했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클까.

    겉으로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좋아 하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곡은 가우왕, 찰스 브라움, 나윤희, 왕소소, 다니엘 홀랜 드, 스칼라와 같이 각 분양에서 최 고의 연주자로 구성된 실내악팀, 웃 고 떠드는 밴드가 연주할 예정.

    분명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

    “출품까지 두 달 남았지?”

    “네!”

    “그래. 잘 준비하고. 아직 연습실에 있을 텐데.”

    “복사해서 지금 바로 보여드리러 가려고요.”

    더 붙잡았다가는 안달이 난 녀석이 더는 못 참을 것 같다. 손짓해서 보 내니 녀석이 후다닥 방을 나서는데 마침 죠엘 웨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저번 달부터 여러 사업을 병행하면 서 바빠진 멀핀을 대신해 이런 잡무를 담당해 주고 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프란츠와 인사를 나눈 죠엘이 오늘 처리할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프란츠 군 표정이 밝네요. 좋은 일 있나 봐요.”

    죠엘 웨인이 밴드 연습실로 향하는 프란츠를 보며 말했다.

    “방금 완성했어요. 밴드가 연주할.”

    죠엘이 손뼉을 쳤다.

    “드디어 작곡가 데뷔네요. 멋지다. 산타도 좋아할 것 같아요.”

    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누이답다.

    나이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일반적 인 관계보다는 보호자 같은 느낌이 다만 곁에서 보기에 그렇게 우애 좋을 수 없다.

    “밴드 공연이니까 산타도 꼭 들을 수 있게 데려가요.”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죠.”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그녀가 가져온 서류를 살피는데 또 루드 캣 관련 이야기가 있었다.

    사업 개요가 자세히 적혀 있지만 너무 길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 루드 캣, 이日가 공동 추진하고 있는 가상 콘서트홀 시범 운용 사업에 베를린 필하모닉이 참여해 주길 바란다는 협 업 요청서입니다.”

    물어보길 잘했다.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다.

    “잠깐 앉죠.”

    소파에 앉아 자리를 권하니 죠엘이 난감해한다.

    “왜 그래요?”

    “어디 앉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 악보들 조금 정리해도 될까요?”

    내가 보기에는 자리만 잘 잡으면 누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녀에겐 아닌 듯하다.

    그러라고 하자 순식간에 주변을 정 리했다.

    “빠르네요.”

    “산타랑 있다 보면 이 정도는 금방 이죠. ……이 방은 힘들겠지만.”

    죠엘이 보물로 가득한 내 집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긴, 어지럽거나 지저분한 건 아 니지만 이렇게나 훌륭한 곡이 쌓여 있으니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일부터 난항일 것이다.

    “아, 설명드리던 걸 계속 말씀드리 자면, 가상현실 사업을 확대 중인 루드 캣과 플랫폼 확장에 힘쓰는 JH가 협력해 실험적 사업을 추진하 려는 것 같습니다.”

    이日는 분명 최지훈의 부친이 운영 하는 회사로 알고 있는데, 인터플레 이의 빈자리를 성공적으로 꿰찬 걸 로 알고 있다.

    가상 콘서트홀을 만드는 것도 서비 스의 일환일 텐데, 굳이 게임 회사 인 게임 회사인 루드 캣과 엮인 이 유를 알 수 없다.

    “루드 캣은 게임 회사잖아요.”

    “몇 년 전에 그들이 만든 음악 교 육용 게임이 크게 성공했으니까요. 이日도 그 기술력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음악 교육용 게임?”

    “네.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와 함께 추진한 일인데, 아시다시피 크리 크 국제 음악 콩쿠르 이후로 계속 영재 교육에 힘쓰고 있었는데 루드 캣이 함께하게 되었죠.”

    “그랬나요?”

    “네. ……보스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건 알고 계신 거죠?”

    기억이 안 나서 눈썹을 들자 죠엘 웨인이 눈동자를 한 바퀴 돌리더니 이내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튼 그래서 루드 캣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음악 교육용 VR 게임을 만들었는데 그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음악 교육용 게임이라.

    음악을 배우는 데 굳이 게임을 얹 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던 중.

    문득 예전에 채은이가 샀던 공포 게임이 무척 현실적이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그것도 루드 캣에서 만든 게임 이었을 텐데 꽤 오래 전부터 가상현실에 관한 사업을 진행해 온 듯하다.

    몇 년 전에 그만큼 실감나는 퀄리 티였으니 지금은 확실히 가상 콘서트홀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교육과는 무관하겠지만.

    “마에스트로 사카모토 료이치의 특 강도 포함되어 있어서 꽤 호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아.”

    굳이 게임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사카모토와 같은 명장의 수업은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데, 그런 방 식이라면 인터넷 강의와 같이 여러

    번, 현장에 있는 느낌으로 배울 수 있으리라.

    첫인상보다는 효과적일 것 같은 느낌이다.

    “잘 아네요.”

    “산타가 좋아하거든요.”

    정말 정 많은 누나다.

    “이미 사업성과 기술력이 입증된 사례라 이日가 관심을 보인 듯합니다. 루드 캣과 공조해 현재 각 오케스트라가 따로 운영하고 있는 디지털 콘서트홀을 VR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구성하려고 하니까요. 그 시범사업을 우리 베를

    린 필하모닉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한 거고요.”

    콘서트홀을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 려는 의도는 좋다.

    “더군다나 다음 오케스트라 대전 때 활용할 수 있도록 세계 클래식 음악 협회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은 나보다 더 잘 아는 이들이 많으니 그들의 이야기를 들 어 봐야겠다.

    “이 건은 의논 후에 결정하도록 하 죠. 일정 잡아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꾸악-

    어디 숨어 있었는지 배토벤이 어깨로 올려오려고 바둥거렸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실내악팀, 웃고 떠드는 밴드는 만 16세의 어린 작곡가가 만든 곡에 감탄했다.

    배도빈이 처음 프란츠에게 작곡을 맡겼을 때만 해도 의심했는데, 이렇게 훌륭한 관악 7중주 곡을 가져오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보를 확인한 가우왕이 입을 샐쭉였다.

    “다음 주까지라고?”

    “네! 일정은 넉넉하니까 충분히 준비하라 하셨어요.”

    프란츠가 힘차게 대답했고 가우왕은 별말 않고 개인 연습실로 향했다.

    반년 이상 야심차게 준비했던 곡을 밴드 멤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던, 사실은 좋아해주길 바랐던 프란츠 페터가 다소 풀죽었다.

    “개인별 연습이 끝난 뒤에나 시작 될테니 다음 주까지는 따로 만나지 않아도 되겠어. 다음 미팅은 다음 주로 잡지.”

    “아, 네.”

    리더 찰스 브라움도 곡에 대한 코멘트 없이 다음 일정을 잡은 뒤 미팅실을 빠져나갔다.

    ‘마음에 안 드시나?’

    다소 의기소침해진 프란츠 페터에게 나윤희가 다가갔다.

    “곡 좋다. 고생 많았을 텐데, 열심히 준비해 볼게.”

    “아, 가, 감사합니다!”

    프란츠가 놀라서 인사했다. 그러고는 가우왕과 찰스 브라움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가우왕 님이랑 찰스 브라움 님은 마음에 안 드시나 봐요.”

    “좋아하는 거야.”

    소소가 끼어들었다.

    프란츠 페터는 소소의 말이 위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비르투오소라는 가우왕과 찰스 브라움이 짧은 코멘트도 남기 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윤희가 멋쩍게 웃는 프란츠 페터에게 물었다.

    “가우왕 씨랑 찰스 씨, 현대곡 연주 안 하는 거 알아?”

    “ 네?”

    다니엘 홀랜드가 나섰다.

    “껄껄껄. 질 떨어지는 곡 연주할 시간 없다고 거드름 피우고 다니잖아. 덕분에 두 사람 다 욕을 바가지 로 먹고.”

    다니엘 홀랜드는 정말 특이한 사람 이라고 덧붙이며 고개를 저었다.

    나윤희가 말을 이어받았다.

    “다니엘 씨 말씀대로 두 분 모두 현대 작곡가가 만든 곡은 연주하지 않아. 도빈이 곡만 예외. 그런 두 사람이 일단 한다고 했으니까 내색은 안 해도 인정하는 거야.”

    그 말에 프란츠가 밝게 웃었다.

    “이번 곡은 가사가 없는 건가?”

    스칼라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는 진달래의 노래가 좋다만. 오늘 보이지도 않고.”

    “달래 일주일 휴가.”

    소소가 악기를 챙기며 진달래가 휴가를 갔단 사실을 알려주었다.

    스칼라는 그의 여신이 말을 걸어주었다는 데 설레면서도 애써 점잖은 척 눈인사를 보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난 듯해, 프란츠가 가사가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일단은 심사 기준에서 빠져 있거든요.”

    “심사?”

    “실은 이 곡, 연말에 있는 베토벤 콩쿠르에 출품할 예정이라서요. 도빈이 형이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추천해 주셨어요.”

    “음. 대회에 나선다고 하니 더욱 열심히 준비해야겠군.”

    스칼라가 주먹을 쥐어 보이며 프란츠를 응원했다.

    한편.

    휴가를 신청한 진달래는 생애 처음으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연인과 오붓한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얀스 가문의 재산 중 유일하게 남은 오래된 성은 외딴 곳에 있고 사람도 몇 없어 한적하게 지내기에 좋았다.

    “그래서 이번 베토벤 콩쿠르에 출품할 생각입니다. 가명으로요.”

    아리엘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누워 있던 진달래가 연인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좋은데!”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씩씩댔다.

    “우승해서 아주 혼구녕을 내줘!”

    “혼구녕? 그 단어는 처음 듣네요.”

    “잘근잘근 밟아주란 뜻이야.”

    진달래가 독어로 의미를 대충 설명 하니 아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가명을 짓지 못했습니다.”

    "으음."

    진달래가 다시 아리엘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좋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저는 다즐링 로즈라는 멋진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카모토 선생은 매우 좋지 않은 생각이라 하 더군요.”

    “응. 매우 안 좋은 생각 같아.”

    아리엘이 아쉬워했다.

    “이름을 감추거나 바꾸는 것은 상상해 보지 않아 마땅한 방도가 없습니다.”

    “응. 우리 자기 자부심 엄청나니까.”

    조금 더 고민하던 진달래가 손뼉을 치고 고개를 젖혀 아리엘을 올려다 보았다.

    “페터도 거기 나간다고 하던데. 도빈이가 출전하라고 했나 봐.”

    “페 터?”

    “응. 우리 밴드 편곡가 겸 작곡가. 도빈이가 직접 가르치고 있어.”

    “마왕의 애제자란 말이로군요.”

    아리엘이 눈을 번뜩였다.

    “떼끼. 친하게 지내.”

    “친하게 지내겠습니다.”

    “옳지. 착하다.”

    진달래가 손을 뻗어 아리엘의 목을 감아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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