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24화 (424/564)
  • 다시 태어난 베토벤 424화

    93.   가장 빛나는 별⑴

    【토마스 필스. 구스타프 하나엘 이 후 최악의 시기를 맞이한 명가]

    【아리엘 얀스의 무딘 감각이 로스앤 젤레스 필하모닉에 악영향을 미치다]

    【정체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아리엘 핀 얀스에 대한 언론과 평 단의 공격은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사적인 감정이 업계인들 사이에 퍼 졌고 뒷담화는 실체 없는 악의를 형성하였다.

    아리엘은 그렇게 발표되는 글을 하 나하나 반박해 나갔다.

    그에게 잘못된 논증을 지적받은 평 론가들은 그들의 전문성이 의심받을까 두려워 합심했고 더욱 세차게 젊 은 천재를 몰아붙였다.

    그러한 상황이 이어지자 아리엘의 음악을 사랑하던 이들조차 조금씩 등을 돌리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을 찾는 이 들은 여전히 객석을 가득 채웠지만 디지털 콘서트홀의 방문자는 매주 줄어들었다.

    협력 단체와 기업들까지 은연중에 우려를 표하니 악단 내부에서도 이 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로스앤젤 레스 필하모닉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평론가와 언론을 회유, 통제하려 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반인 사이 에서도 그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려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ㄴ 최근에 LA 필하모닉 실연 보러간 사람 있어?

    ㄴ 나 다녀옴.

    ㄴ 뭔가 예전 같지 않아서 나만 그런가 싶네.

    ㄴ 난 좋았음.

    ㄴ 찾아보니까 이런 기사들이 있더 라고. 아리엘 얀스의 곡 해석이 진 부하다고. [링크]

    ㄴ 처음 활동했을 때랑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이네. 잘 모르겠는데 그런가?

    ㄴ 조금 그렇더라. 전문가들도 이렇게 말하고.

    ㄴ 난 얘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얼마 전 일 때문에 더 싫어졌음. LA 필하모닉은 대체 왜 이런 사람을 데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ㄴ 무슨 일 있었어?

    ㄴ 사생활이 엄청 문란한가 봐. 모델들 서른 명 태우고 요트 여행 다 닌대. 벌거벗고 놀고.

    ㄴ 이상하네. 아리엘 검소하기로 유명하지 않나?

    ㄴ 다 이미지 마케팅이지.

    그런 상황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은 다름 아닌 아리엘 얀스 본인이었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 두 모국의 빈곤층을 위해 기부하는 그로서는 상상도 못할 루머가 퍼지고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디지털 콘서트홀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았던 몇몇 이가 그의 음악성을 의심하고 지적했을 때는 이성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 내용이 한 평론가의 악의적인 비난과 같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억울하였고.

    동시에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다는 데에서 절망했다.

    고립되어 있던 자신을 받아준 로스 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명예가 더렵혀 졌다는 생각과 팬들이 작성한 공격 적인 코멘트는 마치 사랑하는 이에 게서 욕설을 듣는 일과 같았다.

    숱하게 쏟아지는 기사와 칼럼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아리엘 얀스가, 단 하나의 코멘트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10년째 팬인데 최근 너무 실망스 럽다. 2악장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휘했는지 이해할 수 없네. 토마스 필스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그 댓글은.

    이를 닦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악보를 고칠 때 도, 진달래와 통화할 때도, 잠을 청 할 때도 아리엘을 지배했다.

    조금씩 무뎌져서 잊을 만하면 또 다른 코멘트 올라와 그를 괴롭혔다.

    그는 조금씩 쇠약해졌다.

    빛나던 외모가 수척해질수록 악플 러들은 신이 났다. 그들이 적은 짧은 문장으로 아리엘 얀스가 괴로워 할 때마다 어떤 성취감을 얻었다.

    어린 나이부터 크게 성공한 잘생긴 음악가를 향한 질투, 또는 단순히 관심을 받기 위한 행위는 더욱 교묘 한 방식으로 그를 괴롭혔다.

    ‘난 좀 별로다’라고 시작하여 자신 의 생각을 말할 뿐이라고 어필하며 비난을 가했다.

    ‘초심을 잃었네’라는 식으로 사실 과 무관한 이야기로 상처를 주었다.

    혹은 그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을 망치고 있다는 식으로 직접적이 고 더 큰 고통을 주었다.

    아리엘은 언론과 평단의 거짓에 고 개를 숙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로 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이 쇠락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 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감독직을 내려놓겠습니다.”

    아리엘 얀스의 발언에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토마스 필스와 구스타프 하나엘을 잃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은 아리엘 얀스라는 걸출한 인재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영화 OST 녹음으로 악단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은 두 명장을 잃은 뒤 신뢰를 잃어 갔다.

    여러 영화사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에 의뢰하는 것을 저어했지만 오케스트라 대전 이후 아리엘과 단 원들은 스스로 건재함을 증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아리엘 핀 얀스 감독 의 공로가 지대했다는 것은 모든 이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악장단과 직원들은 아리엘 얀스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뛰어나지만 오래 함께할 순 없지. 어리고 호전적이야.’

    ‘확실히 여론을 돌리는 데 드는 비용보다 새 지휘자를 들이는 편이 낫겠어.’

    ‘본래 영입하려던 칼 에케르트가 나았을 뻔했어. 마침 빈 필에서 떠 났으니 이번에는……

    그러나 임원진은 현재 상황을 보다 경제적으로 해결하길 바랐다.

    당장의 비용도 부담되었지만 무엇 보다 여론을 돌리기까지 필요한 시 간이 큰 문제였다.

    문제가 해결되리란 보장도 없으며, 정상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악단 수 입은 계속해 줄어들 터였다.

    아리엘의 발언에 잠시 혼란스러워진 회의가 임원들을 통해 다시 진행 되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을 위한 얀스 감독의 결단을 존중합니다.”

    “남은 임기는 어찌해야 할까요.”

    “새 지휘자를 영입하는 것이 우선 이겠죠.”

    임원들이 나누는 대화에 악장단과 직원들은 기가 찰 지경이었다.

    타개책을 구상하기 위해 마련된 임직원 회의가 새로운 지휘자를 영입 하자는 쪽으로 흐르니.

    몇 년간 아리엘 얀스와 호흡을 맞췄던 악장단과 직원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체 지금 무슨 말씀을 나누고 계십니까!”

    이승훈이 탁상을 치며 일어났다.

    “얀스 감독이 없었더라면 우리 악단은 모든 걸 잃었을 겁니다. 얀스 감독의 신곡으로 반등했던 일을 벌 써 잊으셨습니까? 기존의 계약을 이 어나가기 위해 그가 무슨 일을 해냈 는지 모르십니까? 거짓 정보를 뿌리는 언론과 평단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하려 모인 자리에서 대체 무 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승훈의 발언에 한 남자가 나섰다.

    “본인이 그러길 바라지 않습니까.”

    이승훈이 고개를 돌렸다.

    아리엘 얀스는 평소와 같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편 채 담담히 앉아 있었다.

    단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승훈이 그를 다그치려 할 때 임원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이 악장, 우리도 그를 떠나보내고 싶진 않습니다.”

    이승훈은 그 뻔뻔한 말을 놀리는 입에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었다.

    그때 앤 사브리나 부장이 입을 열었다.

    “급히 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리엘 얀스 감독은 지금까 지 감독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하였습니다. 그가 사임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방도가 있어서 하는 말입니까?”

    “거짓 정보를 낸 이들을 상대로 법적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정정보도를 내면.”

    “한 번 잃은 명예와 굳어버린 이미지를 다시 얻는 일이 쉽진 않을 테지요.”

    그 또한 사실이었기에 아리엘을 옹호하던 앤 사브리나 부장은 대꾸할 수 없었다.

    새 지휘자를 영입해야 한다고 마음 먹은 임원들과 어떻게든 타개책을 강구하려는 악장단, 직원들 사이에 정적이 홀렀다.

    “새 지휘자가 결정되면 통보해 주십시오. 그 전까지는 평소대로 있겠습니다.”

    아리엘 얀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임원들은 내심 반가워하는 눈치였고 직원과 악장단은 못 들은 말이라도 들은 양 인상을 썼다.

    “더 할 말이 없다면 일어나겠습니다.”

    아리엘 얀스가 일어서 회의실을 나 섰고 이승훈이 그를 뒤쫓아 손목을 낚아챘다. 아리엘을 돌려 세운 그는 그의 멱살을 잡고 외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놓아라.”

    “우리는! 우리 생각은 듣지도 않고 네 멋대로 나가겠다고?”

    아리엘이 이승훈의 손을 뿌리치고 옷매무새를 정리하였다.

    “들어보지.”

    그러나 이승훈은 이 사태를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르니까 같이 생각해 보자고 하는 거잖아.”

    아리엘이 고개를 돌리려 하자 그의 말이 더욱 다급해졌다.

    “팬들은 신경 안 쓸 거라며. 팬만 있으면 괜찮다며! 우리 음악을 하다 보면 분명 알아줄 거라고 말하던 놈 은 어디 갔어? 네가 언제부터 주변 사람들 말 들었다고 이래?”

    이승훈의 간절함이 복도에 울렸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임직원들과 조 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던 단원들은 이승훈과 아리엘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아리엘이 입을 열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들의 거짓을 막아낼 수 없다.”

    자신감에 차 있던 그가 한 말이라 고는 믿을 수 없었다.

    이승훈과 단원들은 평소와 같이 올 곧은 눈빛과 담담한 어조로 스스로 무력하다고 말하는 아리엘 얀스를 믿을 수 없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적으로 두어도 동요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남자가 이렇게까지 힘들어 할 줄은 몰랐다.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명예가 실추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아리엘 얀스가 가슴주머니에 있던 장미를 꺼냈다.

    “함께해서 소중한 것을 잃을 바에 야 떨어지는 게 낫다. 당신과 단원 들은 어떤 지휘자와 함께해도 빛날 테니.”

    “누가 너더러!”

    아리엘이 이승훈의 입에 장미를 가져다댔다.

    “착각하지 마라.”

    그의 눈은 타오르고 있었다.

    “포기하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아니다. 나 아리엘 핀 얀스, 비겁하게 살 바에야 싸우다 죽을 것이다. 지금은 그러기 위한 이별일 뿐.”

    아리엘이 이승훈의 가슴주머니에 장미를 꽂았다.

    “그때까지 부탁한다.”

    이승훈은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헛 소리를 해대는 아리엘 얀스를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음악을 향한 진지한 태도가 그를 믿고 싶게 하였다.

    아리엘 얀스의 전격 사임으로 떠들 썩했던 가을도 지나갈 무렵.

    최지훈은 여전히 하농을 반복하고 있었다.

    크리스틴 지메르만에게서 손에 부담이 덜 가는 방법을 배운 그는 조 금씩 연습 시간을 늘려나갔다.

    단순한 타건 연습.

    지루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매일 이어나가고 있었다.

    ‘정말 신기하네요.’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그런 최지훈 이 신기할 뿐이었다.

    긴 공백 때문에 처음부터 천천히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어떤 피아니스트도 아무런 음악성이 없는 연습곡을 반복하고 싶어 하진 않았다.

    그러나 최지훈은 지메르만이 요구 했던 기간 이상으로 자신의 감각을 되찾는 데 힘썼다.

    다시는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익히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네 달째.

    최지훈은 익숙해졌던 버릇도 고쳐 나가기 시작했다.

    ‘가우도 이렇게까지 참을성 있지는 못했는데.’

    적어도 피아노에 있어서만큼은 완 벽했던 첫 번째 제자조차 이 지루한 행위를 세 달 만에 그만두었다.

    크리스틴 지메르만도 이 이상의 자 가 조율은 의미없다고 판단하여 최지훈에게 곡 연습을 권유했다.

    그러나 최지훈의 답은 한결 같았다.

    ‘아직이 에요.’

    지메르만은 오늘도 하농을 반복할 뿐인 최지훈을 보며 차를 마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청명한 멜로디가 지메르만의 사색을 깨뜨렸다.

    ‘이 곡은.’

    퀸 엘리자베스 결승곡이자 최지훈이 헌정받은 피아노 협주곡 ‘A108’ 의 독주 부분이었다.

    대체 얼마나 반복해 되뇌었을까.

    1년의 공백과 지난 네 달간 하농만 반복했던 사람의 연주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가장 권위 있는 세 개의 피아노 콩쿠르에서 모두 우승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형제이자 벗이며 스승이자 목표였던 이가 헌정한 곡을 처음 공개하는 자리였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분명 그 한이 사무쳤을 터.

    고지식한 피아니스트는 너무나 아름다운 연주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