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태어난 베토벤-421화 (421/564)

다시 태어난 베토벤 421화

91. 이름(5)

[파울 리히터. 32년간 함께했던 베를린 필하모닉을 떠나다1

【마누엘 노이어, “파울은 내가 알고 있는 악장 중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었다.”]

【이승희. “그의 바이올린은 언제나 안정감을 주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안정감은 그 덕분이었다.]

[케르바 슈타인, “우리는 그의 빈자 리를 크게 느낄 것이다.”]

[헨리 빈프스키, “많은 이야기를 나 누었고 우리 모두 그의 도전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배도빈. “기둥을 잃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이제 파울 리히터를 더 이상 내 학생 또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으로 대하지 않길 바란다. 그는 나와 동등한 음악가다.”]

그의 동료와 팬 모두 음악가로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파울 리히터를 축복했다.

또한 그의 인터뷰는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다.

【파울 리히터. “누구보다도 떠나기 싫었습니다.”】

지난 8일 베를린 필하모닉을 떠난 바이올리니스트 파울 리히터(56)는 자신의 연주 영상을 여러 매니지먼 트에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의 악장이라는 명예를 스스로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파울 리히터의 자택에서 그의 속마 음을 들어보았다.

“믿을 수 없었죠.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어요.”

파울 리히터는 1993년, 베를린 필하모닉에 입단했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사이먼 래틀, 헤르베르트 폰 카라 얀이라는 전설을 감히 누가 이을 수 있을까 싶던 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보란 듯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대 전성기를 이끌었다.

“반하지 않을 수 없었죠. 여러 제 안을 받았지만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하는 걸 망설인 적 없었습니다.”

그는 당시 준비했던 악보를 보여주었다. 수백 장의 악보는 한눈에 봐도 알아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진]

그의 서재는 이러한 악보로 가득 차 있었다.

“힘들 때도 있었죠. 아무리 노력해 도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연주를 반복하던 때도 있었고 그런 상황에 서 정기 연주회에 계속 올라야 할 때는 포기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내 재능은 여기까지인가 하고요.”

살아 있는 전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아낀 그의 다섯 제자이면서 동 시에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 받았던 사람의 고백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집 곳곳에서 그가 얼 마나 노력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과 동료들이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악단 전체 가 최고의 연주만을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보면 그런 고민을 할 시간도 없었어요.”

그는 니아 발그레이 베를린 필하모닉 현 고문과 배도빈 악단주에게서 차이를 느꼈다고도 고백했다.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편곡과 연주를 했죠. 정말 대단한 음악가예요. 그런 두 사람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게 되어 정말 다행 이라 생각합니다.”

파울 리히터의 표정에서는 질투나 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담담한 말투에서 배도빈을 향한 신뢰를 느 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떠나기 싫었습니다. 평 생의 반 이상을 함께한 베를린 필하모닉이 어떻게 변할지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욕심이 나더라고요. 나도 뭔가 더 할 수 있지 않을 까. 아니, 하고 싶다고 말이죠.”

그렇게 말한 파울 리히터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실연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꼭 노려 보라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루트비히 홀’의 좌석을 가 르쳐 주었다.

선물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 휘한 베를린 필하모닉의 명반을 주 기도 하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가장 사랑한 남 자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마 음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음악가란 이런 존재인가 싶으며 그 가 내민 앨범을 받았고.

지금 그 놀라운 표현력에 감탄하며 파울 리히터가 무엇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그 역시 이런 음악을 하기 위해 나섰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의 앞길에 축복이 가득하길 버너란다.

-한이슬(평론가, 칼럼니스트)

그와 동시에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 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애써야 했다.

배도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케르 바 슈타인 3인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파울 리히 터의 힘이 크게 작용했는데.

그가 떠난 현재, 예전의 빡빡한 일 정을 답습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것은 늙은 푸르트벵글러와 지휘 자로서 이제 막 자리 잡은 케르바 슈타인 그리고 작곡에 매진하고 있는 배도빈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현재는 헨리 빈프스키가 어떻게든 파울 리히터가 맡았던 역할까지 수 행하고 있지만, 인원확충이 시급한 시기였다.

그러한 때 오랜 세월 견습 생활을 이어왔던 한스 이안 수석이 가장 먼 저 후보로 거론되었다.

망나니 같던 그였으나 최근 10년 간 장족의 발전을 보였던 터라 배도빈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악장단 도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파울 리히터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겠지만 평소 그가 보여준 모습대 로 노력한다면 왕소소와 나윤희처럼 빠른 시간 안에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배도빈은 푸르트벵글러, 케르바 슈 타인, 악장단을 불러놓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논의, 한스 이안에게 다 음과 같은 사실을 통보하였다.

“……이상 테스트 준비하라는 보스 의 지시입니다.”

“잠깐. 농담이죠?”

“저도 농담이나 하자고 이 서류를 준비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한스 이안은 직원이 넘겨준 과제를 확인하곤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스트리아 빈 의과대학 병원에서 1년간 수술과 치료, 재활을 받아온 최지훈은 간절히 기다렸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고생했어요. 이제 천천히 본 업으로 돌아가셔도 되겠습니다.”

“그럼.”

“네. 다 나았습니다. 며칠 정도는 더 조심하시고 통증이 없다면 내원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1년간 수고해 준 의사에게 거듭 인사한 최지훈은 서둘러 빈에 있는 크리스틴 지메르만의 별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일찍 왔네요. 병원에선.”

최지훈은 스승이 부르는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연습실로 향했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달랠 생각도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위에 손을 얹었다.

살짝 힘을 주니 참으로 건반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어색함.

오랜만에 만난 연인도 최지훈도 서로를 낯설어 했지만 사랑했던 마음 은 전보다 더욱 크고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솔미미 파레레.

어색함 따위 금방 잊힐 터.

최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들뜬 최지훈을 따라 연습 실에 들어섰고, 건반을 누르는 제자를 보며 마찬가지로 안도했다.

최지훈은 배도빈에게 헌정했던 ‘너 울’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습작은 여럿 있었지만 온전한 소나 타로는 처음 만든 곡이자 지난 1년 의 아쉬움을 쏟아부은 작품이었다.

굳은 손가락은 예전만 못했다.

어려운 곡이 아님에도 마음과 달리 자꾸만 손이 빗나갔다.

뭇 음악가들 사이에서 인정받았던 절정의 기량이 무색했다.

단지 1년간 떨어져 지냈을 뿐인데, 여섯 살 때부터 단 하루도 놓지 않았던 피아노가 어색했다.

버벅대는 연주를 들으며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최지훈이 얼마나 힘들어 할지 걱정했다.

뛰어난 실력을 지녔기에 곧 일정 수준 이상으로 치고 올라올 테지만 일반적인 감각을 넘어선 경지는 작은 차이로도 결과를 크게 비틀었다.

일생을 바쳐 겨우 그곳에 이르렀던 최지훈이 겪을 상실감.

지메르만은 지금부터가 최지훈에게 가장 힘든 시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최지훈이 건반을 닫았다.

그러고는 피아노를 끌어안고는 덮 개 위에 볼을 부볐다.

“기쁜 것 같아 보기 좋아요.”

“아, 선생님.”

두 시간이나 같은 방에 있었는데 최지훈은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스 승을 대했다.

그 놀라운 집중력이 있다면 앞으로 어떤 역경이 있어도 잘 이겨내리라.

지메르만은 굳게 믿었다.

“어때요?”

“좋아요.”

최지훈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메르만은 알고 있었다.

적응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건 부상을 입었던 모든 피아니스트가 예상 하는 바였다.

그러나 모두 예전 기량을 되찾기까 지 오래 걸릴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아니, 본인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지 나도 공허함을 채울 수 없어 망가지는 이들을 숱하게 봐왔었다.

그때 쉬지만 않았다면, 다치지만 않았다면 이 정도 곡은 쉽게 칠 수 있었을 텐데.

지독한 상실감은 피아니스트의 과 거뿐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갉아먹었다.

‘굳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만.’

지메르만이 물었다.

“더 안 하나요?”

“네.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 정도는 무리하지 말라 해서요.”

최지훈이 아쉬운 듯 피아노를 쓸어 내렸다.

‘누구보다도 오늘을 기다렸을 텐 데.’

스승은 이성적인 제자가 기특했다.

“그럼 오늘 아쉬움을 달래볼까요.”

“어떻게요?”

“사카모토 선생과 빈 필하모닉보다 멋진 진통제는 없겠죠.”

몇 시간 뒤.

최지훈은 빈 필하모닉의 공연에 영혼을 빼앗겨 버렸다.

그들의 음악은 항상 최고라고 생각 했지만 사카모토 료이치를 맞이한 빈 필하모닉은 그 이상으로 변모해 있었다.

철저한 형식미를 통해 전해지는 자 유로운 악상.

배도빈이 지난 몇 년간 베를린 필하모닉을 개혁해 나간 것처럼 사카모토 료이치는 그만의 방식으로 빈 필하모닉에 다양한 레파토리를 추가 하였다.

바로크와 고전, 낭만, 현대까지.

가장 고전적인 오케스트라는 가장 자유로운 지휘자를 맞이해 그들조차 알지 못했던 가능성을 꽃 피우고 있었다.

공연을 관람한 크리스틴 지메르만과 최지훈은 지휘자실을 찾았다.

“이게 누구신가!”

사카모토 료이치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고 최지훈의 손이 나았다는 소식을 접하곤 본인 일처럼 기뻐 했다.

“허허허. 이제 엘리자에게 들들 볶일 일도 없겠구만.”

“ 네?”

“자네 소식을 어찌나 묻는지 난감하다네.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해도 그 고집 어디 가겠는가. 껄껄껄.”

최지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전부터 친근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이후 더욱 미움 받는 것 같아 난감할 뿐이었다.

한차례 웃은 뒤 사카모토 료이치가 최지훈의 손을 잡았다.

“지금부터라는 거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

“네.”

“나도 자네 스승도 모두 한 번씩 경험해 본 일이라 결코 쉽다고는 말 못 하겠네. 다만 지금까지 지켜본 자네라면 분명 잘 이겨낼 수 있을 걸세. 그렇지 않은가, 크리스틴.”

“그럼요.”

최지훈은 스승이 굳이 사카모토 료이치와 만나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역시 그녀의 배려였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직 겪지 못해서 쉽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최지훈이 입을 뗐다.

“쉽진 않아도 즐거울 것 같아요. 지금도 너무나 기대되는 걸요.”

피아노와 다시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최지훈은 그 어떤 일이 기 다리고 있어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사랑하니까.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서야 피아노 가 떠날 리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두었으니 피아노가 잠시 토 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했다.

더 큰 사랑으로 함께하면 될 일이었다.

사카모토와 지메르만이 빙그레 웃었다.

앞서 부상을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섣 불리 걱정했건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도빈 군이 가까이 두는 이유가 있었어.’

사카모토 료이치는 두 사람이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다.

“역시 형제라 할 만큼 닮았구려.”

사카모토의 말에 최지훈이 쑥스러 운 듯 웃었고.

“사카모토 선생님, 그건 오해예요. 두 사람은 형제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이름에 돌림자라는 걸 쓰더군요. 도빈, 지훈. 같은 말이 없는 게 힌트였어요.”

크리스틴 지메르만은 사카모토가 자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 록 친절하고 상냥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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